엔쿠라스 194화-후회(2)
"너 너.."
"어떻게 이곳에 있는가 하는 촌스러운 질문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왜 냐고 묻는다면 내가 할 대답이야 뻔하니까,"
너를 흡혈귀로 만들기 위해서. 라고 그녀가 살짝 속삭여 온다.
"그건 싫다고 했을텐데,"
하지만 마음속은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것은 다름아닌 힘. 흡혈귀가 되면 그녀의 불사에 가까운 신체를 얻을수 있는건가? 하는 의문과 그 힘을 얻고 레니아를 구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잘 생각해 보라고, 나는 보통의 저급한 녀석들과는 질이 틀려. 나의 직계는 굳이 인간의 피에 집착하지 않아도 살아 나갈수 있고 태양아래에서도 걸어 다닐수 있으며 인간이 알고 있는 약점에도 어느정도 저항이 가능하지. 그저 더욱 진보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이야기. 이건 너를 부하로 만들기 위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야."
그래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곳에서는 이미 흡혈귀던 어떠한 괴물이던 되어서 레니아를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차마 고개를 젓지는 못했지만 긍정도 할수 없었다. 레니아식으로 말하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게 반쯤의 정답으로 반쯤 틀린것은 그 내용이 개인의 자존심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조금 다르게, 방금 하던 고민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할까?"
벤하르트의 옆에 털썩 앉으며 그녀가 말했다.
"접근하지마! 반응할수 없는 거리에 너를 두기는 싫으니까, 그래 10딜 이상 떨어져 줬으면 좋겠군."
검을 뽑아 들고 선을 그어 둔채 그는 몇걸음 떨어진 곳에 앉았다. 화려하게 밝혀져 있는 도시의 빛은 착찹한 벤하르트의 심정을 비웃듯이 요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흘끗 그녀를 보니 벤하르트쪽은 보지도 않은채 흥얼 거리면서 도시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흥얼거리는 소리는 객관적인 평가로 보면 아름다운 음색이었을 것이나 그 음은 다름아닌 벤하르트를 잡으려 했을때 흥얼 거렸던 그것이었기에 벤하르트는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후 먼저 입을 뗀것은 의외로 벤하르트의 쪽이었다.
"진심으로 물어 보고 싶은게 있다."
"오.. 말을 걸어 주는 건가? 놀라운걸. 이 상황은. 바라마지도 않았던 전개야."
"단순한 질문이니 호들갑 떨지 마. 너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거지?"
"질문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만,"
가늘게 뜬 눈이 벤하르트의 의도를 떠보려는 듯했지만 벤하르트도 인간으로서는 오래 살았다고 자부해온 노련미가 있었다. 뱀처럼 날카로운 그녀의 눈빛에도 기죽지 않을수 있었던 것은 애초에 그녀에게 살기가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벤하르트도 심력이 성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 그대로, 지금이라도 공격하면 나를 부하로 만들수 있는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 아니 저번에도 그렇고 이해가 안가. 흡혈귀는 피를 빨아 자신의 동족을 만드는것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여기에는 사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어. 로엔도 요셉도 다른 누구도.. 그런데 어째서 노리지 않는거지?"
그 말은 완벽하게 자신의 무덤을 파는 행동이었지만 그랬기에 직설적으로 묻지 않으면 얻을수 없는 답이기도 했다. 거기에 흡혈귀가 된다면 그것을 이용해서라도 레니아를 구하겠다고 이미 마음 먹었기에 그는 아무 꺼리낄 것이 없었다.
"나는 말이지. 콜렉터(collector)야."
"콜렉터?"
"수집가라는 말이지. 내 눈에 뜨인것은 무엇이든지 손에 넣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물건이던 사람이던 괴물이던.. 그중 하나 눈에 뜨인게 너였을 뿐이지.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으니까 이런식으로라도 시간을 떼우는 것이지만,"
"수집가던 말던 그건 별로 상관 없는 일이지. 내가 묻고자 하는것은 어째서 네가 나를 지금 얻으려 하지 않느냐 하는 말이다."
"호오. 왠지 얻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투로군."
송곳니를 들어내며 그녀가 사악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그녀 본인은 사악하게 웃을 속셈이었지만 애초에 살기가 실리지 않은 그녀의 미소에는 별반 독기가 없었기에 벤하르트의 표정에는 미동이 없었다.
한숨쉬며 아주 작게 그녀가 말했다.
"표정연기에는 역시 익숙치 않아."
"뭐?"
"아니. 아무것도.. 어쨋든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지. 수집가이기는 하지만, 아무렇게나 모으는건 아니야. 실제로 내가 '부하'로서 흡혈귀로 만들려고 하는것은 네가 여섯번째니까,"
'수백년간 여섯번째라..'
벤하르트는 그녀의 나이를 그 나름대로 달콤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원의 흡혈귀는 흡혈귀의 시초.. 인간이 처음 생겨났을때보다 더욱더 이전에 존재하던 요셉의 말처럼 신과 같은 존재 아니 그 이상의 존재와 다름 없는것이었다. 실상 만약 직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보면 현역시절의 레니아라 해도 명함을 못내밀 정도의 직위 였을정도 였으니 수백년이라고 생각한 벤하르트의 생각은 아주 멋진 오해라 할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남은 부하는 둘 밖에 없거든. 그것도 처음에 만들었던 둘. 그중 하나는 생각하기도 싫은 녀석이고, 다른 녀석들은 나를 따르지 않고 억지로 만들면 언제나 거부하고 또 거부하다 죽어 나갔거든. 사실 그래도 별로 상관은 없어. 그정도의 녀석들이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흡사 레니아가 이전에 인간을 보는것과 같은 그런 말투였다.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벌레를 보는듯한.
"하지만 그것은 목숨적인 차원의 문제고 나의 자존심과는 별개의 문제지. 모은다라는것은 그들을 지키는것도 병행 했을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거니까,"
"애초에 처음에는 강제로 흡혈귀로 만들 생각이었지 않나?"
"군데군데 계속해서 너의 의견을 물어 주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애초에 나는 원의 흡혈귀. 흡혈귀가 되어 버린 인간 조차도 본래대로 되돌릴수 있을 정도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억지로 만들어 놓으면 별로 흡혈귀성을 버리고 싶어하는 인간은 없으니까, 일단 만들고 보자 라는 심정이었지만, 벤. 너정도의 의지력이면 이야기가 달라져 버리게 되버리니.."
흡혈귀가 되어 버린 자 마저 인간으로 되돌릴수 있다는 말에는 아무리 벤하르트라도 놀랄수밖에 없었다. 듣기로는 역시 그런건 불가능하다고 전해져 내려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은 하지 않은채 그가 말했다.
"친한척 부르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너와 나의 관계는 칼과 칼을 맞대는 원수면 충분하다고 본다. 벤하르트로 불러."
"그럴수야 없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너는 정에 약한 모양이니까, 역시 벤이다."
년수로는 헤아릴수 없을정도의 세월을 살아온 여자의 통찰력에 벤하르트는 찔끔 하고 지리며 되물었다.
"나의 의지력이라는건 뭐지?"
"흡혈귀가 되면 너는 부하 나는 주인이라는 투명한 공식이 생겨 버리게 되지만, 먼저의 다섯중 한명은 자신의 의지로 나의 피를 이겨내 버렸거든. 고작해야 인간 주제에. 이몸에게 있어 날파리 보다도 못한 존재인 인간 주제에.."
'눈앞에 수집하고 싶은 인간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
"말했던 두명 중 한명은 내 원(原)의 피를 받아 자신의 의지로 그 자신만의 원(原)이 되어 버렸지. 지난번 만났을때 말했지? 조종할수만 있다면 어찌 되든 상관 없는게 나의 미학이라고, 조종할수 있으면 상관 없어. 자의던 타의던 어쨋든 내 부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하지만 조종할수 없는 그런 일은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거든. 차라리 그러느니 부하를 안 만들고 말지. 사실 처음에는 말뿐인 인간인줄 알았는데 조금 알고 보니 너는 그녀석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것 같아서 말야. 피를 줘도 내 부하가 되기는 글렀다 싶었거든 그래서 작전을 변경했지."
"작전...?"
"나에 대한 호감을 높히는것!"
당당하게 말하는 그 자세에서도 뭔가의 핏빛 기품이 느껴지는듯해 역시나 높기는 높구나 하고 벤하르트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녀가 말한 생각에는 속으로 콧방귀를 꼈지만,
"그래서 벤. 너의 고민은 뭘까나? 나에 대한걸 전부 말해줬으니 전부 말해 주겠지?"
벤하르트라면 이럴 것이다. 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어조로 그녀가 물어왔다. 당연히 그런 물음에 교과서적인 벤하르트의 답이 입에서 흘러 나왔다.
"일행이 저곳에 붙잡혀 있어. 구하러 가야하는데 힘이 없어. 그것 뿐이다."
"그 상황은 정말 나나 너에게 있어 최고인것 같아. 우선 내 부하가 되어 흡혈귀가 된다. 자연히 너는 힘을 얻을테고 나는 부하를 얻고 연합전선으로 그 일행이라는 녀석도 구할수 있겠으니 일석 삼조네. 좋아. 이리 목을 가져 오너라."
이미 확정 되었다는듯 그녀의 송곳니가 벤하르트의 목으로 접근했다. 벤하르트는 검을 들어 그녀의 머리칼을 베어내고 말했다.
"그것만은 안돼. 네가 생각하는것보다 일행과 나의 관계는 더 복잡하니까,"
"아.. 아!! 그거. 혹시 애인인건가?"
"틀려. 단순한 친구다!! 뭐.."
말끝을 흐리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다가 검을 뽑아들었다.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때가 아니라고, 헛소리를 할거면 상대하지 않을거다. 잘 있어라."
백색의 빛을 휘감고 그는 건물에서 뛰어 내렸지만 중력으로 인해 떨어지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느새 붉은 갈퀴가 그의 다리를 묶어 달아 놓은 것이다. 키득거리며 웃는 그녀에게 벤하르트는 화난듯 말했다.
"놔."
"반응을 보면 역시 짝사랑인가?"
키득거리는 모습과 이런 말투를 듣고 있는대로 성질이 뻗힌 벤하르트는 검기를 날렸다.
"핫."
백색의 기로 그녀의 혈기를 끊어내고 그는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거라면 별 문제 없는데, 난 딱히 부하의 자유를 구속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너는 내 취향을 많이 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거야 별로 상관 없는 일이지. 부하가 원한다면야 뭐."
어느새 같이 떨어지며 그녀가 한다는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별로 네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라고."
벽을 발로 퉁겨 다른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간 벤하르트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얼굴은 홍당무같이 물들이고서..
"아아.. 저 반응. 정말로 가지고 싶어 지잖아. 아니 뭐 원래부터가 가지고 싶었지만,"
"하아 하아."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 대충 따져도 수만 딜은 뛴듯 했다. 그렇다손 쳐도 본래는 그다지 지칠 벤하르트가 아니었건만 이번만큼은 심리적인 압박감이 너무도 컷다.
"이제 포기?"
"원하는게 뭐냐고, 그냥 괴롭히고 싶은거냐? 싸울 생각은 없지만 네 부하가 되는것도 할수 없어."
"하지만 그녀는 구해야 하잖아? 그 알량한 무언가 때문에 확실하게 구할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고 싶은건가?"
대답은 없었다. 정말로 정확하게 그녀가 집어온 그대로이기 때문이었다. 처음 보았을때와는 다르게 그녀는 정말로 벤하르트의 편의를 많이 봐주었다. 부하라는 지칭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혀 그에게 불리한 조건은 달지 않고 있었다. 한없이 높은곳에 있으면서 그정도. 아마 레니아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냅다 흡혈귀가 되었을지도 모를정도로.. 그녀는 봐주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몰리고도 벤하르트는 대답할수 없었다.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그래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오는 대답은 전혀 다른 그것이었다.
"그래도.."
"답답한 녀석. 상대는 환마왕이야. 나라해도 가볍게 싸움을 걸수 있는게 아니라고, 한낱 인간 따위가 살아서 돌아오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
방법은 이것뿐. 머리가 터질듯이 죄여 왔다. 무엇때문에 고민을 하는지 알수 없을정도로. 그저 선택하면 될 뿐인데도 그는 할수 없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왠지 레니아와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는것만 같았기에..
"나의 주인은 네가 아니니까,"
"그럼 어쩔수 없지."
불길한 살기가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한순간에 압도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목을 졸라 매는듯한 끈적거리는 기가 그의 전신을 타고 올라왔다.
"고작해야 이정도가 그 애송이 마왕의 수준이야. 네가 이것을 감당할수 있다고 생각해?"
실제로 그녀가 싸운다고 해도 애송이라고 치부할정도의 세기는 아니었지만 기도를 보여 줄수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벤하르트는 그녀가 환마왕의 윗줄이라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
"끝내 부하가 되겠다고는 대답하지 않는군. 하지만 역시 그점이 마음에 든달까. 포기보다 도리어 얻고싶어서 왠지 불타오르는것 같잖아."
몸을 흐느적이며 언제 그랬냐는듯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 반응에 벤하르트는 탁 하고 맥이 빠져 버렸다.
"어?"
"힘을 보태주지."
"어어어?"
"단 조건이 있어. 거짓은 말하지 않고 진실 되게 한가지만, 지금이 아니라도 좋아. 때가 되고 정말 마음이 내킬때가 되면 혹은 그 역으로 네가 가진 속박이 사라진다면 언제든 내 부하가 되어 주겠다고,"
"그건 확답할수 없어."
진심에는 진심으로 그가 답한다.
'뭐니 뭐니해도 레니아는 신이니까, 쉽게 죽지도 않을뿐더러 죽을 날이 오기는 오는건가? 힘을 잃었다곤 하지만,'
속박이라면 레니아. 레니아가 죽을때라면 곧 자신이 죽을때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레니아가 죽기 전에는 저 흡혈귀 밑으로 들어갈 일이 있을리가 없을터였으니 그런 애매한 대답이 될수 밖에 없는것이었다.
"그정도면 충분해."
처음에는 실제로 원수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던 벤하르트는 그렇게 의외로 간단하고 쉽게 적의 침입을 허용하고 말았다. 물론 그의 내부는 더더욱 단단한 벽으로 지키고 있었지만 일단은 그것으로 만족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말그대로 영겁에 가까운 시간. 천천히 간다 한들 그녀에게 손해 볼것은 없었다.
한명의 흡혈귀와 한명의 인간이 손을 잡은 그날 밤은 유유히 흘러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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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결정이 안난 것중 하나는 바로 벤하르트를 반 흡혈귀화 할것인가 아니면 생으로 갈것인가 하는 문제 입니다. 그리고 흡혈귀의 이름도.. 아직 미정!(미쳤군) 추천 받습니다.(반쯤 진심) 벤하르트가 완전한 흡혈귀로 간다는 선택지는 우선은 없습니다만,,, 고민중에 있습니다. 하아.. ㅠㅠ
추석을 끝내고 너무 오랜만에 쓰다 보니 뭔가 빠진게 있을까 두렵군요. 내일 한 10화정도 재탕하면서 수정할게 있나 살펴 봐야 겠습니다. 'ㅅ';;
그리고 추천해주신 앤드류님께는 역시나 감사의 인사를 안드릴래야 안드릴수가 없지요. 뭐라고 비유해야 하나요. 제 어휘능력으로 형언할수 없을 정도로 감사합니다. 앤드류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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