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184화-수마행(數魔行)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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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에서 벤하르트가 깨어났다.
"얼마나 잔거지."
해가 저물어 어둑해진 하늘 덕에 한치 앞을 확인할수 없는 어둠속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박 이틀을 주무셧습니다."
"나우스."
책망하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저도 모르게 말투는 싸늘했다.
"죄송합니다."
"사과 할 생각은 하지 마라. 문제가 있다고 해도 받아 들인 나의 잘못이지. 요구한 네 잘못이 아니니까, 그것보다 왜 아직 여기 있는거지?"
나우스는 잠시 생각하다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도 오늘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들은 놀러 나가셧습니다."
"정말 너무한 녀석들이다."
그래도 한때 적이었던 나우스인데 그런 자를 놓고 어딘가로 놀러 나갔다는건 무신경의 극치나 다름 없었다. 설사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해도 인정도는 남기는게 남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괜시리 기분이 나빠졌다.
"몸은 어때?"
그런 말을 꺼내면서 왠지 어른의 관용을 보여준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원망했다.
"괜찮습니다."
"잘 됬군. 그럼 나가라. 처음의 약속 대로 서로의 관계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좋은 관계를 유지 하고 싶은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할지라도 원래는 방금전의 생각도 있고 해서 조금은 훈훈하게 마무리 짓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직설적이고 조금은 냉랭해서 마치 아직도 앙금을 품은 치졸한 인간마냥 비추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벤하르트의 말을 들은 나우스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일단은 나가겠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할것 같습니다."
"잠깐 그게 무슨 소리지?"
"네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말야. 그 말을 못들어서 물은게 아니라고, 그게 무슨 뜻이냐는 이야기다."
"그럼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나우스가 검을 휘두르자 검은 꽃잎이 그를 휘감았다. 나우스의 모습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곧 언제 있었냐는듯 그가 있던 곳에는 검은 꽃잎만이 남아 있었다.
"내일 보자니.. 무슨 생각인거지."
요셉과 로엔 인은 거진 해가 떠오르기 직전에 들어왔다. 벤하르트의 몸 상태는 꽤나 호전 되어 있었지만 살기도 없는 그들의 조용한 몸놀림을 눈치채면서까지 일어나지는 않았다. 애초에 아침에도 깨워야 일어날 정도로 잠이 많았기에 특정한 움직임이 아니라면 반응을 하지 않는것도 당연했다.
하루가 지나고 해가 중천에 뜰 쯤에야 벤하르트는 잠에서 깰수 있었다. 내리 3일 정도의 휴식으로 인해 풀어진 몸 상태는 상당히 괜찮았다.
"흐음."
세명의 남자가 흐트러져 누워 있는 모습은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문득 그는 레니아의 자는 모습을 거의 본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깨워 본적이 거의 없던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렇기에 지금까지 그것이 당연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니아와 다시 만나게 되면 한번쯤은 깨워 줘야 겠군.'
문득 아직 레니아와 여행을 떠나기 전. 동굴에서 생활할때가 생각났다. 레니아의 잠자던 모습을 떠올리고는 순간 얼굴이 화끈 하고 달아올랐다.
'으음. 조금 주책을 부렸나. 하지만,'
만나게 되면 꼭 이라는 생각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그는 요셉들을 깨웠다.
"히야. 정말이지 벤하르트는 운이 없어. 어제도 그렇게 광란의 밤이었는데 말이지."
"별로 가고 싶지도 않았고 미련도 없으니 그만좀 말해주시지요."
"그래도 말야. 으흐 조금은 기대하고 있는게 아니냐?"
"도대체 뭘 말입니까?"
로엔과 요셉 그리고 인의 표정을 보면 상상이 안가는것도 아니었지만 일생 경험이 없었던 그는 애써 망상의 생각을 일절 차단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석이 없어졌군."
"나우스는 어제 제가 돌려 보냈습니다. 원래 적과 적의 관계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이제는 상관 하지 않고 지내기로 했습니다."
"아 그런가? 하지만 그녀석 상당히 정성이었는데 말이지."
"정성이라니 그건 또 뭡니까?"
"아 네가 이틀동안 누워 있을때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정량의 치료 시간을 빼면 우리들은 전혀 네게 손을 데지 않았거든 간병이라던가 몸을 봐주는 것은 그녀석이 거의 다 했으니까, 악의도 없어 보였고 로엔이 결계도 쳐 두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나갈수 있었거든."
'그녀석.'
오늘에야 일어났다 라고 말했던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 벤하르트가 그것에 뭉클해지지 않을리 없었다. 하지만 앞서 누누히 자신을 한심하다고 했던 요셉의 앞에서 감격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바보확정이라는 꼬리표가 붙을게 뻔했기 때문에 그는 애써 냉정을 유지 한척 했다.
"어쨋든 그덕에 우리는 놀러 갔다 올수 있었지. 일에 말려 들게 한건 괘씸하지만, 뭐 고맙다고는 해두고 싶었는데 아쉽군."
수를 써두고 갔다고 한들 요셉이 자신을 빼놓고 놀러간것을 저리 자신있게 말하는것을 보면 설사 같이 놀러 가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기분이 상하기 마련이었다.
"요셉."
"뭐냐?"
"그 모자 말인데, 안어울려요."
"아 너도 그렇게 생각해? 이곳 마계는 너무 멋을 모른다니까, 이런 면에서 보면 인간들은 괜찮은 편이지. 암."
화를 나게 하는것도 실패하고 화를 낼 부분도 잡지 못해 불만스레 어물 거리는 벤하르트를 보고 즐거워 하면 요셉이 말했다.
"자 그럼 벤하르트도 부활 했겠다. 이제 브릴타리아도 나가기로 할까. 이건 뭐 쉬러 왔는데 되려 손해만 보고, 시간도 계속해서 버리게 되고 말이지."
"잠깐 잠깐! 나는 지금 방금 일어났다구요. 이곳에서 있던 기억은 수십번 죽을뻔 한것과 음식을 먹은것 그것 밖에는 없는데,"
"어쩔수 없잖아? 지금 이시간에도 마왕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가렌더 부크에 한발 한발을 걷고 있는데 너는 이곳에서 쉴 생각이나 하려는 거냐?"
"지금까지 실컷 놀아 놓고서는 그런 말이 나옵니까?"
"어쩔수 없었지. 벤하르트가 움직일수 없는데 우리끼리 여행을 떠날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노는것은 겸사 겸사의 일일뿐 우리는 전혀 주가 되는 일을 잊은적이 없었다. 그러니 네가 깨어나 상당히 상태가 좋은 지금이야 말로 적기 라는 것이지."
벤하르트는 분한 마음에 배를 움켜 쥐고 그대로 쓰러졌다. 물론 거짓의 행동이었지만 축 늘어져 쓰러진 모습이 정말 실신한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런 일류급의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몸을 다루는 전문가가 둘이나 있는 이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었다.
"어디 보자 이곳을 만지고."
"끄아아."
"이쪽도 괜찮은지 확인해 보겠네."
"아아아아아악."
"뭐야 아주 팔팔하게 돌아가고 있잖냐. 이쪽도 저쪽도."
"으으윽."
"잔꾀는 부리지 말라고 벤하르트. 결과적으로 보면 너도 레니아를 빨리 만나게 되는 거라고, 그 레니아도 성격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말야. 그래도 빠른게 낫지 않겠냐?"
레니아라는 말까지 나온 시점에서 이미 그의 선택지는 정해져 있었다.
"벤하르트 레니아가 누구야?"
"몰라도 돼."
순진한 얼굴로 묻는 인에게 그는 짜증스런 목소리로 대답하고 묵묵히 준비를 시작했다.
여행을 위한 짐을 싸면서 벤하르트가 요셉에게 물었다.
"한가지만 물어 보고 싶습니다."
"어? 뭔데? 대답할수 있는거라면 성심성의것 대답해주지."
"솔직히 말해주세요. 저 괴롭히는거 맞죠?"
"꽤나 직설적인 질문이구만, 벤하르트. 대답만을 보자면 7할은 맞다고 할수 있겠지."
3할이라는 무언가가 존재 했지만 어떻게 생각해봐도 벤하르트의 입장에서는 괴롭히고 싶다 라고 밖에는 해석되지 않았다.
"하아."
"나는 말이지 성격이라는게 간단히 고쳐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왠 성격?'
"타고난 성격은 그중에서도 더하지. 사실 지난 수백년간 너무도 쓸쓸했다. 누군가를 슬쩍 슬쩍 건드려 보고 싶고 괴롭혀 보고도 싶고 가지고 놀고도 싶은데 못하는 그런 기분을 알겠냐?"
"알리가 없지요. 알고 싶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단언해두겠는데 그런 생각을 저에게 가지지 말아 주셧으면 좋겠습니다."
요셉은 벤하르트의 어깨에 손을 올려 놓으면서 나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너밖에 없다."
"저도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웠지요. 인간이 100세에 가까워 지면 다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습니까?"
"뭐 그렇지."
"그래서 배우게 된 교훈은 이겁니다. 정말 아니다 싶은것은 단호하게 말해두어야 한다는 것을요. 안그러면 십중 팔구는 후회 하더이다."
"그건 인간의 얄팍한 생각이다. 이런 말도 있잖냐. 싸우면서 정이 든다. 라고.."
"일방적으로 괴롭힘 당하면서 정이 들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벤하르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요셉이 말했다.
"그거야 말로 인간의 얄팍한 생각이라는 거지.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잖아? 실제로 경험해봐야 그 허실을 깨달을수 있지."
"요셉의 그 이상한 논리 이전에 제 감각과 지성을 믿고 싶습니다. 하지 마세요."
"내가 막무가내로 괴롭히는것 같아도 말이지. 그 안에는 너를 위한 단련과 수련의 계획이 빼곡하게 잡혀 있다고, 나머지 3할은 전부 그것이야. 나를 믿어 주게 벤하르트여. 자네는 수련을 내 팽겨칠 생각인가?"
벤하르트는 요셉의 말투가 점점 바뀌는 것으로 보아 이 상황 조차도 놀림을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가해자가 매우 유리한 경우였기에 딱히 방법이 없었다. 피해자인 벤하르트가 할수 있는것이라고 해봐야 말로 적당히 타이르거나 끊어 두는것 뿐이었지만 그것은 해결책으로서는 너무도 미미한 방책이었다. 결국 가해자쪽에서 해를 가하면 그뿐인 이야기인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요셉과의 관계를 완전하게 끊는것이었지만 성격상 그렇게 하지도 못했고 상황이 그렇게 놔두지를 않으니 벤하르트로서는 어쩔 방도가 없는 셈이었다.
"그냥.. 마음대로 하십시오."
처신을 잘하자고 다짐하며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럼 출발하도록 할까 이곳에 머무른게 4일에.. 이런.. 20일도 채 안남았잖아. 봐라 벤하르트 여유 부릴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냐?"
"왜 제게 따집니까?"
"네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잖냐. 도대체가 똥 싸기 전 마음과 싼 후의 마음이 다르다더니 딱 그꼴이로구만,"
"아 네. 마음대로 말하세요."
"그것보다 벤하르트. 손님이 오는데?"
"손님?"
요셉이 가리킨 방향에서 검은 꽃잎이 흩날렸다. 그 자리에서는 인을 제외하고는 누군지 전부 알아차릴수 있었다.
"이거 놔 나우스 놓으라니까."
"억지 부리지 마. 이미 나는 결정을 했으니까"
"결정이라니 저 애늙은이를 모시기로 한게 진짜 라는거야?"
"당연하다. 그럼 그런 이야기를 거짓말로 할리가 있을까. 진심이었지."
그의 손에는 바둥바둥 거리는 붉은 머리의 소녀 판치스가 있었다.
"여어. 오랜만이네. 애늙은이."
"무슨 일이지? 이제 남남 처럼 살아가자고 처음부터 약속 했잖아. 빨리 사라져."
잠시 동안 나눈 대화였지만 판치스와 나우스의 대화에서 불길한 몇가지 단어를 들은 벤하르트는 과장된 손짓을 취하며 그들을 내보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보다 나우스의 움직임이 아주 조금 더 빨랐다. 나우스는 바로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인뒤 벤하르트에게 말했다.
"저희를 부하로 받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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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대전에 참가하면 선작이 하나씩 떨어집니다. 제 글이 마음에 안드는것이니 이해가 안가는것도 아니지만 역시 조금씩 마음이 깍여 나가는 기분입니다만, 언제가 됬든 엔쿠라스 만은 끝을 보고야 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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