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162화-가렌더 부크(4)
"세상에는 필연과 우연이 있지. 그 둘이 조합되어서 흔히 말하는 운명을 만들어 나가는거야. 사람마다 선택할수 있는 길의 갯수는 얼마나 될까? 하늘의 별을 본적이있어? 그것의 몇억배라고 하면 믿을수 있을까? 어릴때 누군가에게 한대 맞았던일 넘어졌던 일 공부를 했던 일. 누군가를 만났던 일. 그런것으로 인생은 얼마든지 바뀔수 있는거야. 네가 이곳에 온것은 그런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 진 것이지."
그녀의 말에 레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이야기는 벤이 이곳에 온것이 우연으로 만들어진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겠군?"
레니아의 지적에 여황은 흥미롭다는듯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수 있는 문제잖아? 제자를 보낸것도 트레이야가 관련된것도 맨 처음 벤하르트를 구해준것도 내가 만들어낸 필연이지."
"저기 한가지 물어 보고 싶은게 있는데, 대답해주겠어?"
벤하르트가 둘의 대화에 손을 들고 끼어들었다. 그를 내려보며 여황이 대답했다.
"그게 대답할수 있는 질문이라면,"
"야박하군. 대답이야 마음만 먹으면 할수 없을리 없는것이니 우선 약속하자. 대답하는 쪽으로."
그의 말에 여황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나를 상대로 협상이라..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로군.'
"물어 봐도 좋아. 대답해주지."
"참고로 말하면 물어보는게 아니라 확인이야. 그 예지력 완벽하지 않지?"
"....."
대답은 없었다. 침묵은 곧 긍정을 뜻하는 말이었다.
"대답은 됬을거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알아낸것이지? 앞의 대화를 본다면 도저히 알수가 없었을 텐데, 저 신 마저도 깜박 속아 넘어 갈 정도로.."
"머리로 따지면 나는 레니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아무리 우둔한 자라도 오랫동안 궁금한것을 품고 있으면 저절로 생각하게 되거든. 조금 깊게 파고들어 생각했을 뿐이야. 너의 제자인 샬퐁 젠마에게서 들었던 것도 있고 방금의 대화에서 조금 확신을 얻었지. 애초에 모든 미래를 알수 있다면 나의 질문이 효력을 발휘할수 있을리가 없을테니까, 읽어 버리면 그만인 일이겠지?"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박장대소했다.
"하하하. 재미있어. 너라면 나의 무료함을 달래줄수 있을까? 이런 녀석에게서 생각을 읽기가 쉬웠다니 젠마 녀석이 성장한걸까 아니면 네가 성장한걸까?"
'뭐가 그리 재밌다는 거지?'
정말 즐거운듯 웃는 그녀를 보면서 그가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웃음을 줄수 있는 부분은 전무하다 할수 있었다.
"사람마다 즐거움의 기준은 다른거니까,"
마음을 읽혀 흠칫 하고 벤하르트가 놀란다.
"너희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엔쿠라스를 찾기 위해서지?"
"이야기가 빨라 좋군. 그래 엔쿠라스가 있는곳을 알려줬으면 해."
그의 대답에 깔깔 대면서 그녀가 웃어댄다. 자지러지면서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그는 천천히 인상을 찡그렸다.
"뭐가 그렇게 웃겨?"
"나는 여황. 이곳 가렌더 부크의 수장이야. 하기사 이런 세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 남자 하나와 노시엘트에서 벗어나보지도 못한 신이 알수 있을리가 없지만 무언가를 요구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다는걸 모르나보군?"
"굉장히 이해타산적이신데, 원하는게 뭐지?"
레니아는 조금씩 여황에게 경쟁의식을 태우고 있었다. 신이 아니면서도 신보다 더 신처럼 군림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은 부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또하나의 자신 때문에 말투는 절로 날카로웠다.
"잘 말해줬어. 나에게 선물을 지급할수 있는것은 레니아 너뿐이니까, 벤하르트라고 하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보험을 들어 둔것은 이날을 위해서였으니까,"
"???"
"어떻게 하면 엔쿠라스에 도달할수 있을까? 그것을 인간이 알수 있을까? 어떤 신도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런 의심은 집어 치우도록 해. 어떤 신도 알지 못했다고 해서 한사람의 인간이 알지 못하라는 법은 없어. 참고로 말해주지 나는 너희들에게서 미래를 읽었다. 내가 엔쿠라스에 가는 시험을 내리고 너희들이 그것을 실행하는 것을. 그것으로 방법을 알수 있는 거야."
"거짓말이지?"
레니아의 웃음에 맞선 웃음을 띄우며 그녀가 답한다.
"진짜야."
"선과 후가 뒤바뀌는 예언을 할수 있다고? 그건 세상의 이론을 어기는 일이야. 미래를 읽어 미래를 만든다니. 그런게 가능할리가 없어. 만약 내가 너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어 버리는거지?"
"그럴수 있기에 아까 벤하르트의 물음에 답하지 못한거야. 나는 '정해진' 미래를 읽는게 아니니까, 그 경우를 읽는다. 레니아 네가 거절한다면 엔쿠라스로 가는 미래는 생기지 않아. 한없이 낮은 확률이지만 0은 아니지. 본래 대로라면 벤하르트가 이곳에 도착할 경우는 만가지 경우중 하나.. 그것도 능력이 완연히 개화하기 이전에 나는 그의 일생중 하나를 보아 버린거야. 본래는 만나지 못해야할 너와 내가 만난것이 바로 운명이 되어 버리는것처럼 나의 이 능력도 만능은 아니라는 이야기지. 하지만 아마 너는 거절하지 않겠지. 마음이 안정되어 버렸어."
"만드는것은 어렵지 않아. 어때 상상이 됬어?"
레니아의 물음에 그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만드는 장면과 재료를 머릿속에 기억한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절대로 그녀의 약은 만들수 없었다. 기억은 할수 있어도 그 미묘한 마법과도 비슷한 약을 만드는 비법을 아는것은 레니아 본인뿐인 것이다.
"3일 정도 시간을 주면 구할수 있을것 같아. 쉽지는 않지만 이곳은 세계를 잇는 통로 못구하는 재료같은건 존재 하지 않지. 이곳에서 구할수 없다면 어디에서도 구할수 없다는 것을 끝하니까,"
그녀는 갑자기 아 하는 소리를 낸 후 그들에게 말했다.
"우선 그 비약을 만들기 전에 너희들에게 한가지 선택할 길을 주겠어. 쉽게 갈수 있지만 그만한 대가를 치르어야 하는 것. 쉽지는 않지만 대가는 비약 하나. 어느쪽을 선택할래?"
본래 그녀는 이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 굳이 질문을 한것은 갑작스레 경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일상을 살면서도 다반사적으로 운명이 떠오르는 것이다. 많은 변화를 알수 있어 좋을것만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은게 이것. 먼 미래의 일을 미리 알아 버린다거나 겪고 싶지 않은 일을 미리 보게 되는것이 마냥 기쁠수는 없는것이다. 거기에 그녀는 선택을 주지만 그것을 강요하지도 그것으로 얻게될 무엇도 알려주지 않았다. 알려주게 되면 그것으로 유동적인 미래의 싹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목숨을 구하거나 살수 있는것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중요한 자신의 운명이 변화하지 않는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마치 죽어있는 운명을 걷게 되는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설사 그것의 운명이 최악으로 치닫는다고 해도 경고를 할 지언정 내용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것이야 말로 예언자인 그녀에게 있어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규칙인 것이다.
"그건 후자로 선택 해야 겠군. 무엇보다 지불할것도 없고,, 단순히 오는것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했는데 대가를 치른다는것은 정말 힘들겠지."
"그런가.. 후자. 그럼 비약으로 끝이라는 거네?"
그녀의 웃음이 마치 승리자의 미소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엔쿠라스에 갈수 있는거야?"
수백 수천년을 연구해왔던 그녀였다. 여황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는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쉽사리 인정하지 못하는것도 사실이었다. 인간보다 월등히 위에 있는 존재인 신 그 신이 수천년을 걸어도 도달하지 못한 곳을 인간이 제시해 줄수 있다는 말을 한마디로 믿을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완벽한 거짓말일 것이었다.
"의심하지 말지어다. 왜 가기 싫어? 하지만 너희는 더 여행을 해야 해. 엔쿠라스라는 곳은 내가 마음대로 보내줄수 있는곳이 아니니까, 도리어 내가 데려다 주었다가는 난 죽게 될거란 말이지. 나는 그 방향을 제시해 줄 뿐이야. 로쿠라스트의 일종을."
로쿠라스트라는 것은 세계의 마법이라고 불리우는 마법이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마법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마법이었는데 개인적 다수로 사용할수 있는 마법이 있다면
이 마법은 그것들과는 격이 틀린 마법이었다. 무언가의 규칙과 상황에 의해 강제적으로 만들어 지는 마법. 세계가 기본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규칙의 법 마저도 변화 시킬수 있는 이 마법은 설사 신이라 해도 구사할수 없었다. 흔히 기적이라고 불리우는 현상의 마법인 것이다.
"로쿠라스트라. 그런게 정말 있는건가?"
거진 평생을 노시엘트의 산에서 수많은 신들이 남긴 기록만을 보고 경험할수 있는 그녀였지만 개중에는 읽고도 인정하지 않은것이 몇가지 있었다. 로쿠라스트도 그중하나. 신들도 해내지 못하는 법(法)이 있다는 것을 과거의 그녀는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 네가 보고 있는것도 그 기적중 하나 일텐데? 이곳 가렌더 부크야 말로 그 살아있는 증거지. 저장결계로 이루어지는 세계의 이동통로. 그것 말고도 이 근간을 유지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완벽한 기적이야. 너희가 이곳을 찾아온것보다 몇배는 더 대단할 정도로 말이지. 마계 라는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 있어? 이곳이라면 그곳에 가는것도 쉬운 일중 하나지."
생각보다 여황의 위치가 더 대단하다는것을 레니아는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마계라는곳은 지금 존재하는 세계의 이면. 이계이면서도 완벽하게 존재하는 또하나의 세상. 가는 법이 어려운것은 당연했다. 가렌더 부크에 오는것은 단순히 세례를 받으면 되는 곳이지만 마계라는 곳은 그보다 더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 곳으로 자유롭게 보낼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영향력적인 면으로 볼때 신보다 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이다.
"생각보다 더 대단하군."
작게 그녀가 중얼거린다.
"글세. 그렇지도 않지. 변덕에 따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목숨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재밌는것을 알려줄까? 지금 네가 부러워 하고 있는 나의 자리는 말이지. 네가 엔쿠라스를 바라지 않게 되면 1년 안에 사라져 버린다는거야. 정말 재밌지? 모든것을 가질수 있는 위치에 있어도 생명만은 가질수 없다는 말이지."
'생명만은?'
"샬퐁은 이런 인생이 재미 없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너는 영생을 가지고 싶은건가?"
"재밌냐고? 물론 재미 없지. 하지만 나에게는 이 생을 유지 시키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있거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해 줄수 없지만 비슷한 이야기로 조금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지."
싱글벙글 웃던 그녀의 미소가 점점 사라져 간다. 그리고 그녀는 이야기를 꺼냈다.
"전생 이라는것을 알고 있어?"
살면서 한번 정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벤하르트도 레니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레니아는 알고 있겠지만 실제 존재하거든. 나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이로서 9번째 전생에 대한 기억은 전부 내 기억속에 남아 있지. 나이로 따지자면 벤하르트의 수배에 달한다는 이야기지."
다른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미쳤다고 말했을 테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그정도는 되야 이렇게 될수 있겠지. 라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더욱 이해가 안가는데, 그럼 어찌 되었든 영생을 사는것 아냐?"
"기억과 자신은 달라. 8명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전생이라 해도 나 자신은 아닌것처럼 거기에 나는 아직 해야 할 이유가 있어. 하지만 너희가 오지 않았다면 조용히 나의 뒤를 준비 했겠지. 일종의 도박의 승리야. 정말 재밌어. 이 웃음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지."
마지막 문장은 거의 독백에 가까운 작은 소리였다.
"그것보다 너희들 뭔가 잊은건 없어? 아까부터 언제나 나올까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이제 곧 만남의 끝이 다가 올텐데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네? 살아가는데에 기본은 통성명 아닌가? 내가 너희들의 이름을 알고 있어도 너희는 내 이름을 모를테니까,"
"아까.."
레니아가 말하려 하는것을 가로 막고 벤하르트가 물었다.
"아 미안. 그래 이름이 뭐지?"
이미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알고 있다는것도 방금의 태도가 아니라 해도 알수 있는 그녀였지만 그것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마치 그 형식적인 통성명을 즐기려는듯이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에시오르 메리나. 그게 내 이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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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한 설정을 자꾸 만들어 내고 있지만, 어느정도는 머릿속에서 뒹굴리고 있는 것을 쓰게 되었습니다. 근데 쓰면서도 자꾸 숨기려고 몇가지를 넣다 보니 시원하지가 않은게. 과연 그것들도 다 나올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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