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151화-선후(先後)(1)
"으음."
쨍쨍한 푸른 하늘 아래에서 느긋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한 노인이 인상을 찌푸린다.
"무슨 일이십니까? 길리어스님."
한 소녀가 길리어스의 표정 변화에 놀라며 물었다. 어린 소녀에게 이야기 할만한 내용도 아니었고 또 이해하지 못할것임을 알았기에 그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설마하니, 그녀석이?'
그는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얼마전 만났던 인간들을 떠올렸다.
색이라는것은 섞여서 바뀌는것이 기본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섞이기 쉬운 색이 백색이라는 것은 지나가던 어린아이들도 다 알법한 말이었다. 벤하르트와 제네스가 대치하고 있는 공간은 기묘했다. 적색과 백색의 빛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섞일 듯이 섞이지 않는 미묘한 경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네가 이몸을 이기겠다는 거냐?"
"꼭 이기지는 않아도 될것도 같지만, 최대한 마음을 잡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나도 너를 짓 뭉게버리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렇다면 해 보시지. 이 혈기를 감당할수 있다면,"
붉은 기운을 휘감아 그가 벤하르트에게 돌진했다.
'일섬.'
일직선으로 직격하는 섬격 한줄기의 백색 빛은 제네스의 팔을 한차례 꿰뚫었지만 그런 공격에 아랑곳 하지 않고 붉은 기운을 날리며 벤하르트에게 돌진해 왔다. 검과 검이 부딪힌다. 튀어나오는것은 형형색색의 불꽃. 그 안에서 둘은 대치하고 있었다.
제네스가 손을 뻗었다. 순간 움찔 거리며 벤하르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죽어라."
검이 붉은 잔상을 흩날리며 움직인다. 그것을 별다른 무리 없이 벤하르트는 막아 낼수 있었다.
"어떻게?!"
정신 없이 제네스가 검을 휘둘렀다. 본래 제네스는 검을 다루는데에는 별로 대성하지 못했던 터라 움직임에는 매우 빈틈이 많았고 그런 공격을 그가 피하는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역시 브레인이 말한 암시를 한순간에 집중하면 저것을 막을수 있군.'
검술의 실력이 적어도 두수 이상은 벤하르트가 위였지만 승패가 쉽게 갈릴리 없었다. 검술 하나만으로 이기기에 전력의 차이가 원체 나는 까닭인 것이다.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라고 생각할수 있을만큼 모든 능력에서 벤하르트가 떨어진다고 생각할수 있었지만 한가지 벤하르트가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수 있었던 것은 조금 더 나은 검술과 제네스의 신체에 영향을 줄수 있는 검 때문이었으리라.
벤하르트의 움직임에 정석은 없었다. 막무가내로 익힌 검술과 그것을 뒷받혀주는 일섬 그리고 변칙적인 공격에도 반응할수 있는 실전에서 얻은 경험이 전부인 것이다. 대 인간의 싸움에서는 조금이라도 움직임의 낭비가 없는 자세와 행동이 중요했지만 대 마족과의 싸움에서는 벤하르트의 움직임이 훨씬 낫다고 할수 있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싸움은 검하나와 주먹하나가 오가는 그런 일반적인 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스릭"
제네스의 어깨에서 피로 범벅이된 손 하나가 튀어 나와 벤하르트의 어깨를 잡아 챘다. 벤하르트는 급히 잘라 냈지만 피는 그의 몸을 파고 들어가 녹아 들었다.
"혈수 오스릭. 그 피는 씻을수 없는 독이다. 그 피에 닿은 자는 점점 몸이 마비되어간다. 인간이라면 아무리 잘나도 20분을 넘기지 못하지. 즉 너는 이몸을 20분 안에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크윽."
백광을 쏘아 내린다. 마치 정화해 나가듯 빛은 붉은 기운을 걷어 내렸다. 그냥 받아 줄수는 없었기에 제네스는 몸을 날려 그 빛을 피해 내었다.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그 기세에 밀려 몸을 날리는 것으로 피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분노로 화하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벤하르트는 인간이 토끼를 보고 있는것과 같은것. 다만 그 토끼가 사람을 죽일수 있을정도로 무시무시하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것에 문제가 있었지만 마왕에게 침식된 그에게 그것은 견딜수 없는 수치이자 치욕이었다.
"하아아!"
주변이 폭발한다. 과거 마계에서도 포악하기로 소문난 붉은 악마가 재래하듯 그의 압박이 확실하게 벤하르트에게 전해져 왔다. 그 기백에 지금의 벤하르트도 안색이 창백해져왔다. 방금전까지 싸웠던 것과는 우선적으로 몇단계나 상승한 힘을 느낀 것이다. 머리가 제멋대로 상대의 강함을 재어 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샌가 다리를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수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을 나에게 시킨거지? 이런 일이 일어날것이라고 분명히 예지 할수 있는것이 아니었나? 나로서는 도저히 무리라는것을 알지 못했던 건가?'
엔쿠라스를 찾아내기 위해 그녀를 만나기위해 세례를 받기 위해.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시험을 받는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일. 목숨을 거는 것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성공이 거의 전무하다 시피 한 이런 일을 성공하고 돌아오라고 하는 멋대로의 세례. 안하고 넘어갈수만 있다면,, 이라는 생각을 했을때 그는 볼을 탁 하고 쳐냈다.
'약속 하지 않았는가. 같이 가주겠다고, 일이년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터. 누구나 다 도달할수 있었다면 신들이 갈구 할리가 없었겠지. 방법을 찾은것만으로도 기적 이 외의 길이 있었을리 없었을 거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것도.'
[찌릿]
뇌가 저려 온다. 무언가의 충격아닌 충격.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것을 떠올릴것 같은 하지만 떠올릴수 없는 답답함으로 가슴을 짓눌린다. 순간 그의 눈앞에 일그러지듯 제네스의 검의 근처에서 아지랑이처럼 무엇인가가 올라왔다.
'왜 왜 왜 왜 왜? 어째서?'
되뇌이는 것에 대한 해답. 생각하지 않아도 답을 도출해낼 마음이 없어도 그 답을 머리는 도출해내기에 바쁘기 그지 없었다.
"내가 할수 있기 때문이다."
10%던 50%던 70%던 100%던 할수 없는 일을 시키는것에 의미는 없다. 결론된 도출이 절대 불가능한것이라면 누가 시키겠는가. 어떤 유흥으로 어떤 목적으로 그런 일을 시키겠는가. 단 1%의 확률일지라도 가능했기에 그에게 시킨것이다. 문득 그의 머리속에 샬퐁의 얼굴이 떠올랐다. 즉흥적으로 자신의 몸을 내던져 가며 운명에 시험하는 인간. 아마 그녀도 그에 가까운 부류라는 것을 느낀것이다. 도박을 하고 싶어진다는 그의 말. 그녀가 세례에서 거는 쪽은 확률이 극히 낮은 그 자신 곧 벤하르트쪽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수많은 생각 수분은 지나간것 같은데도 지나간 시간은 지극히 찰나의 시간이었다.
"벤 뭐하는거야!"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붉은 적창(赤槍)을 광탄이 막아 낸다.
"죽고 싶어?"
"그러고 보면 살 확률은 10%라고 그녀석이 말했었지."
"무슨 소리야?"
숨가쁜 상황 그런 말이 나올 상황이 아닌것만은 확실했다.
"라크타크"
붉은 섬광이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단순히 뚫는 일격이 아닌 범위를 송두리째 집어 삼키는 일종의 마법을 넘은 마법. 그 일격을 백색의 빛이 휘감아 먹어 버렸다.
"음?"
마족 중에서도 고위 마족이나 다루는 고등의 마법. 다루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해도 인간의 기존 마법의 법칙을 넘어선 고등의 마법을 고작해야 검으로 막아낸것에 제네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네놈은 뭐냐? 신도 다른 이 종족도 아닌 그저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던가?"
"그래. 인간이지. 그중에서도 조금은 특이한 대장장이라고 하면 믿어 주려나."
제네스는 팔을 벤하르트의 바닥에 겨냥했다. 순식간에 흐물흐물해진 땅을 벗어난 벤하르트와 제네스가 다시 맞붙었다. 한합 한합을 겨룰 때마다 점차적으로 벤하르트는 뒤로 밀릴수 밖에 없었다. 숨막힐듯이 물씬 물씬 풍겨오는 혈기는 정신을 날려 버릴 정도였고 다채로운 공격은 지금껏 그가 경험해온 어떤 공격보다도 난해했다. 죽지 않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할수 있을정도로 벤하르트는 그의 맹공을 잘 막아 내어 주었다. 그런 접전을 끊어낸것은 하나의 광탄이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뒤를 돌아본 찰나 한개의 검이 제네스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벤하르트의 장도가 아닌 단도 트레이야가 든 영검은 쉽게 그의 목을 찢어 낼수 있었다.
"좋아!"
"크윽."
"벤! 지금이야!"
기회를 놓치지 않는것은 쉬운 일이었지만 그보다도 이변을 알아챈 벤하르트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목에서 세어 나온 피가 점점 퍼져 나간다. 순식간에 완성된 그의 망토. 붉은 피의 안개를 뿌리는 듯한 그의 행색은 그야말로 왕 그 자체였다.
"이젠 놓치지 않는다."
피의 망토는 순식간에 퍼져 나가 트레이야와 벤하르트 레니아에게 공격을 가했다. 가장 가까운 곳이었지만 제네스와 가장 접전을 많이 치른 까닭에 정신이 날카롭게 살아 있었던 벤하르트는 그 공격을 막아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레니아.. 트레이야.."
처음부터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벤하르트조차 전체를 막아내지 못한 공격을 피해낼수 있을리가 없었던 그들은 각자 치명상이라고 할수 있는 곳을 피의 가지에 당해 있었다.
"그거리에서도 막아낸 것은 칭찬해주지. 싸우면 싸울수록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내 몸을 피로 적셔낼수 있었던 지난날의 추억.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겠지. 여기 있는 이 여자들은 아직은 살아 있다. 이렇게 찔려 있어도 별로 치명상은 아니야. 나에게 생명의 힘을 빼앗기고 있을 뿐이지. 이런 관용은 나에게는 불필요한 행위이지만 너라는 도구는 괜찮게 생각한다. 실제로 나의 힘을 점점 들어 내게 해 주었으니까, 의외로 이놈의 몸뚱이는 정신력이 강해 빼앗기 힘들었는데 네놈덕분에 쉽사리 주도권을 뺏어 올수 있었다. 그 점을 치하 한다고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너도 나의 밑거름이 되겠지."
[슈륵]
"어?"
붉은 가지가 잘려 나갔다. 다시 끝을 메워 공격을 하려 했지만 힘을 잃고 가지는 부서져 나갔다. 의외의 행동이어서 막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의 행동에 반응을 하지 못한것일뿐. 할수 있을지 없을지를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레니아와 트레이야의 배를 지나 갈비뼈 부분에 난 수개의 상처에 벤하르트는 검으로 백색의 빛을 둘러 감싸 안았다.
"제네스!"
카도스라는 입지의 특성 상상할수 있는 범주가 있다면 얼마만큼이던간에 강해질수 있는 정신계는 어떠한것이든지 요인이 될수 있었다. 분노 슬픔 기쁨 등 어떠한 감정으로도 그 의도에 따라 어디까지고 강해질수 있는것이다. 주위가 얼어붙는 듯한 냉기로 뒤덮혔다. 제네스에게 돌격하려는 찰나 그의 머리에 터지는 무언가에 의해 벤하르트는 걸음을 멈추었다.
"뭐지?"
"벤. 뭐하는거야. 자신만만하게 등장해서는 고작해야 한다는것이 그거야? 저녀석을 이기지도 못하고 결국 나와 트레이야가 이렇게 되고 그래서 선택한게 검에 너를 맡기는 그런 행위? 너 말야. 아까 한말을 들었을때 사실은 기뻤어. 그 말을 네가 배신하려는 거야?"
손에 힘이 들어간다. 분노때문에 한껏 차가워진 마음이 아닌 뜨겁게 올라오는 듯한 충만함으로 가득차 올랐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으앗."
벤하르트의 오른손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그는 손을 들어 확인했다. 길리어스에게 받았던 플라닌족의 보물이 세조각으로 나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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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연참대전 4일차 인가. 조금 더 분발 해야 할 터인데, 생각했던 것을 메모해 두던가 해야지 자꾸 이것을 써야지 했는데 잊어 먹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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