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139화-자극(5)
그로부터 5일이 지났다. 벤하르트의 실력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몸의 상처는 여전했지만 이제는 맨손으로도 트레이야와 어느정도 대결할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트레이야가 벤하르트의 성장을 이해 하지 못하는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벤하르트도 자신의 몸에 의아함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 5일 남짓한 시간에 이정도로 성장할수 있다고는 그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최소한도 트레이야와 어느정도 맨손으로 맞대결을 할수 있을 정도로 죽기살기로 강해지려 했을 뿐인데 얻어진 결과는 벤하르트가 생각한 이상이었다.
많은 세월 자신이 경험한것도 많았지만 듣기도 많이 들었고 여행을 하면서 얻은 지식도 많았던 벤하르트는 마음가짐으로 강해진 여러 사례를 듣기도 실제로 경험해보기도 했었지만 지금의 자신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언가의 깨달음으로 인해 한꺼풀 벗어나는것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질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벤하르트가 성장한 강함은 단기간을 수련해서 얻을수 있는 강함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유달리 별이 많이 보이는 밤. 트레이야와 한창 수련을 하고 돌아온 벤하르트는 침상에 들어가는듯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6일 바오윈까지는 4일 정도의 거리인가.'
중간에 작은 마을에서 이틀 정도를 쉬고 출발했기 때문에 실제 그들이 여행을 떠나온 길은 4일 정도로 앞으로 수만 기아는 더 가야만 했다. 벤하르트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한 얼굴로 자고 있는 트레이야와 레니아를 보고 그는 짐을 챙겼다.
'하루 정도면 갈수 있으려나.'
K의 말을 듣고 트레이야와 수련을 할때부터 이미 벤하르트는 레니아와 트레이야 보다 먼저 그곳으로 갈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력으로 친다면 트레이야와 레니아가 없는것보다는 있는게 나은것은 분명했고 또 그녀들도 원하는 사실이었다.
레니아와 트레이야를 보면서 그는 생각보다 자신이 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것을 느끼고 자신을 비웃었다. 레니아와 트레이야가 이런 행동을 질색하는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녀들을 놔두고 가는것에 후회는 들지 않았다.
전날 K에게 힘도 못써보고 당했을때 그는 공포를 느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그보다도 그에게 더한 공포는 레니아와 트레이야가 K에게 당한 그 순간이었다. 움직이고 싶고 지키고 싶은 그 순간에도 도저히 지킬수 없었던 무력했던 그 느낌은 벤하르트에게는 엄청난 공포나 다름 없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고 벤하르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 그 두려움에 그는 그녀들을 도저히 데리고 갈수가 없었다. 설사 그로인해 자신이 불리하게 된다고 해도 차라리 그것을 감수해서 길을 갈 정도로 그는 떨고 있었다. 레니아와 트레이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가 하려는 일이야 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인 것이었을 것이다. 벤하르트가 그녀들을 생각하며 하려는 일을 만약 그녀들이 했다면 분명 반대 했을 터의 일을 벤하르트는 주저없이 실행하려 하고 있었다.
'후우.'
최대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소리 하나도 불지 않는 조용한 길. 레니아와 트레이야의 잠자는 숨소리를 의지해 그는 한 발자국씩 발을 놀렸다.
"어딜.. 가는거야?"
"....."
레니아의 목소리에 벤하르트는 걸음을 멈추었다. 침낭에서 일어나며 레니아가 물어 왔다.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기에 벤하르트는 처음부터 레니아가 자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발각당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레니아."
"어딜 가는거냐고 묻잖아."
"그냥 수련.. 이라고 해도 믿지 않겠지."
레니아의 눈치가 빠르다는것을 잘 알고 있는 벤하르트였다. 평소에 자신과 트레이야가 수련을 하고 나간것도 상처를 입은것도 그녀는 다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모른척 빨리 잠에 드는척 벤하르트의 방심을 유도하면서도 그녀는 마음의 의혹을 지우지 못한채 벤하르트를 감시하고 있었다.
"최근에 벤의 행동은 많이 달랐으니까,"
"네 행동도 많이 달랐었지."
얼마나 여행을 했던가. 서로가 서로에게 위화감을 느꼈다는것은 무언가가 있다는것과 다름 없었다. 그리고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대화 하지 않은채 상황을 짐작해 나갔다.
"세번째 묻겠어. 어딜 가는거야?"
"바오윈으로 가려고 했어."
레니아의 앞에서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당당히 레니아에게 말했다.
"그래. 우리를 놔두고 말이지?"
"맞았어. 그러니 이왕이면 3일 뒤에 와줬으면 좋겠는데,"
"바보 아냐! 그렇게 해줄것 같아? 트레이야와 수련하는것도 눈감아 줬어. 요즘 달라진 구석이 있어도 모른척 해줬어. 하지만 그런 일까지 들어줄 정도로 나는 마음이 넓지 못하거든."
레니아와 벤하르트는 이번 여행길에서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위화감때문이었을까 어느쪽도 쉽사리 말을 걸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피해다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고 예전과는 분명 다른 그런 분위기의 여행이었다.
"벤. 네 생각은 어때? 네가 달라진게 없는것 같아?"
"아니 내가 달라졌다는것은 나 자신도 잘 느끼고 있어. 거기에 레니아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게 거짓일리가 없지."
"그래 이런거. 어째서 예전처럼 실실대지 않는거야? 왜 이렇게 모든 일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해졌어?"
"그건 좋은거잖아."
"난 싫어!"
단호한 레니아의 말에 벤하르트는 움찔 거렸다.
"거기에 왜 우리를 믿지 않는거야? 혼자간다는것을 내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되는데?"
"변명은 하지 않겠어. 하지만 레니아 나는 너를 믿는다. 믿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거야."
"믿는다는 변명 같은건 하지 마. 내가 너를 지키다 죽는다 해도 네가 나를 지키다 죽는다 해도 그것을 결정하는것은 자신의 몫이야. 나에게 간섭하지 말라고,"
"레니아 확실하게 말해줄게. 너는 지금 가는 곳에서는 짐이나 다름 없어."
"벤하르트!"
진작에 일어나 있었지만 일어날 기회를 잡지 못했던 트레이야는 벤하르트의 말에 발끈하며 소리쳤다.
"말이 심하잖아."
"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난 상관 하지 않아. 하지만 여기서 더는 보내지 않겠어. 굳이 지금 가야 겠다면 우리와 함께 가도록 해."
"그건 싫어. 정 나를 막겠다면 힘으로라도 지나갈테니까,"
벤하르트는 검쪽으로 손을 옮겼다.
"벤.."
"벤하르트 무슨 짓을 하는거야?"
"미안 레니아 트레이야. 나는 구제할수 없는 겁쟁이 인것 같아."
그의 발이 움직인다. 벤하르트의 앞을 트레이야가 막아섰지만 백색의 빛이 보이는가 싶더니 그녀들은 정신을 잃었다. 희미해져가는 시야에서 레니아는 입을 움직이며 쓰러졌다.
"베엔.."
4일을 걸어야 할 거리를 벤하르트는 만 하루만에 달려 도착할수 있었다. 온몸이 녹초가 되어 지쳐 있었지만 지친 기색을 내보이지 않은채 벤하르트는 여관방을 잡아 들어갔다. 밤이 되어 어둠이 내리깔린 곳에 보이는 군데군데 연한 등불은 정겹고 아름답다고 할수 있는 도시였지만 지금의 벤하르트에게는 그런 정경은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방을 잡아 들고 벤하르트는 지친 몸을 쉬게 하려 했다.
"그전에 먼저.."
미리 챙겨두었던 마도구를 펼쳐 들었다. 바오윈은 도시라고 불리울 정도의 크기는 되었기 때문에 한시라도 낭비를 할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타리노라는 요정과 관련된 이 일은 그 아오이스라는 조직과도 연관이 되어 있겠지.'
벤하르트는 반쯤 확신에 차 있었다. 작은 마을은 아니었지만 마을이라 불리우는데에 표본이 될것만 같은 바오윈 마을에 아오이스라는 조직이 무언가를 위해 온다고 생각하면 왠지 저도 모르게 납득할수 있었다.
'설사 그게 아니라고 해도 K의 말은 나와 반드시 부딛히게 될 것이라는 듯한 말투였으니,'
K를 생각하자 다시금 몸이 조금 떨렸다. 그리고 길에 기절시켜 놓은 레니아와 트레이야를 생각했다. 죄책감에 쓰린 얼굴을 했지만 벤하르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것으로.. 됐어.'
"키올. 렙트 타리노."
마도구를 설치해두고 벤하르트는 지쳐 있던 몸을 쉬게 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기절해 있던 레니아와 트레이야는 해가 중천에 떠 있을때 일어날수 있었다.
"벤 이녀석 용서 못해! 마을에 가면 한대 날려 주겠어."
"레니아 지금까지 말했던 네 말중 가장 속이 시원한 말인것 같아. 진심으로 그 의견에 동감!"
"그런데 왜 몸을 잘 움직일수가 없는 거야? 으읏"
몸을 비틀면서 레니아가 꿈틀댄다. 마치 밧줄에라 묶여 물웅덩이에 들어가 있는것처럼 몸을 움직이기가 매우 어려웠다. 손과 발에는 백색의 끈과 같은 무언가가 몸을 감고 있었다.
"그러니까 벤하르트와 겨루면서 알게 된건데, 그 검 여러가지의 형질이 있는것 같아. 예를 들어 충격이나 공격을 위한 것과 이렇게 사람의 몸을 구속하기 위한 공격등 여러가지로."
트레이야의 해설에 레니아는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레니아. 너무 무리하지마. 뭘하려고 그래?"
"멋진 기술이지만 그 멋진 기술때문에 우리는 이것에서 빠져 나올수 있게 될거야."
레니아는 꿈틀거리면서 그녀의 가방에 근접했다. 몸을 움직혀 손가락을 이용해 가방의 안에 손을 집어 넣었다. 목적한 것과 달리 그녀의 손에 잡히는것은 그녀가 읽었던 책들이었다.
'잘때도 차고 잘껄 그랬나.'
한참동안 꿈틀대던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가방안에 들어 있었던 영검 치프를 들수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입쪽으로 검을 옮긴 레니아가 트레이야에게 말했다.
"트레이야 이리 와. 풀어 줄테니까,"
"무슨 소리야? 그런 검으로 어떻게?"
"잔말 말고!"
레니아의 말에 트레이야는 잘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비틀며 레니아에게로 기어 갔다. 레니아는 입으로 치프를 물어 뽑아 고개를 돌려 트레이야의 몸에 있는 백색의 빛에 가져갔다.
"합."
"풀렸다!"
"풀렸으면 어서 나도 풀어줘."
트레이야는 검을 들어 레니아의 빛을 제거해 주었다.
"이 검 뭐야?"
"벤하르트가 만든 검이야. 참고로 벤하르트가 사용하는 검도 그가 만든 검. 대장장이로 따지면 그녀석은 진짜 '신'같은 기술을 지니고 있으니까, 우리를 묶어 둘 생각이었다면 영검까지 빼앗았어야 했을텐데 아쉽게 됬군 벤. 너무 실력이 좋아도 때로는 이렇게 자신에게 도움이 안되는 일도 있는것이니까, 아무튼 그녀석 용서 못해."
분한듯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레니아는 짐을 챙겼다. 짐이 꽤 무겁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들어보니 그 느낌은 더했다.
"레니아 내가 들게. 전력으로 벤하르트를 쫓아야 하잖아? 한방 먹이기 위해서."
레니아의 짐을 뺏어 들고 손을 뻗은채 트레이야가 말했다.
"그래."
독한 눈을 하고 그녀가 떠올린것은 자신을 쓸쓸한 눈으로 자신을 겁쟁이라고 말했던 벤하르트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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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화 자체로만 따지면 조금 뒤죽박죽인 글. 앞으로 2~3화 뒤에나 조금 풀리려나 싶습니다만, 한번에 올려 버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게 저라는 인간. (분량도 없거니와..)
남은 연참대전은 두개뿐?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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