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112화-입양
"진짜로 죽을뻔 했어!"
벤하르트는 배의 뒷켠을 보면서 다시한번 놀랐다. 방금전 지나온 아넷테르타와 그가 있는곳의 차이 때문이었다. 바다가 노한듯 술렁이는것을 멀리서 보는것만으로도 뱃구멍에서 무언가가 올라올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동감이야. 이렇게 무서운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어."
벤하르트의 말을 트레이야가 받아 내었다.
"후우 후우."
"하아 하아."
저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듯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배의 밑창을 바라 보았다. 그도 그럴것이 방금전만 해도 요동 쳤던 바다를 다시 한번 바라 볼수 있을만큼 강심장인 사람이 있을리 없었다. 단 하나 레니아만은 계속해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바다를 볼수 있다니.. 어?"
레니아의 얼굴 앞으로 벤하르트는 좌우로 팔을 휘저었다. 그럼에도 레니아는 전혀 미동이 없었다.
"기절한거냐."
그것은 정말이지 다시 상상하는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자신들보다 몇배는 큰 배를 가진 바라톤이 왜 쫓아 오지 않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였다. 술렁이는 물결 하나가 배를 뒤덮기에 충분할 정도였고 시시 각각 덮칠듯한 물결을 고작 이런 작은 배로 헤쳐 나왔다는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바닷물이 눈앞을 덮칠듯 넘어가는 것을 한두번 본것이 아니었다. 얼굴을 스쳐 지나갈때마다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듯 벤하르트는 그자리에서 꼼짝을 할수가 없었다. 아니 그 거대한 바다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자신을 지켜주는 밧줄만을 의지한채 어서 빨리 아넷테르타가 끝나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파도가 그들을 덮치려 들면 노를 한번 휘둘러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그렇게 수십번 어느샌가 그들은 바다를 빠져 나와 있었던 것이었다. 빠져나와 상당히 가라앉은 바다와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아넷테르타는 엄청나게 대조적이었지만 그보다도 묘한 경계를 기점으로 단번에 바뀌었다는게 더욱 신기했다. 아넷테르타의 거센 물살쪽을 쳐다보던 벤하르트는 구역질이 올라오는것을 느꼈다. 상상만으로도 그것은 충분히 충격이었다.
"조금 늙었나. 그렇게 큰 아넷테르타는 아니었는데, 지치는군. 까딱 했으면 정말 죽을뻔 했어."
그런 소동이 있었는데도 게이즈와 르와느는 전혀 끄덕도 안하고 여유롭기만 했다.
"아저씨. 이 아넷테르타는 아무도 건너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장인들은 이미 이전에 사라지고 없을 뿐이지. 못건너는건 아냐. 내가 젊었을때만 해도 빈트닌에서 손을 꼽을 정도는 있었지. 나와 네 아버지 그리고 내 아버지도 그중 하나였어."
"우리 아버지?"
오르칸은 아버지에 대한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집에 자주 돌아오지도 않았고 자신이 철이 들기도 전 오르킨만을 남겨두고 저승으로 떠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르칸은 아버지에대해 상당한 호기심이 있었다.
"엿차 바람도 때마침 곱게 불어 주는군. 이제 노를 젓지 않아도 되겠어."
게이즈는 오르칸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돛을 정리하고는 자리에 앉아 누웠다.
"수고했어요."
평정을 되찾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르와느가 게이즈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게이즈는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대답했다.
"여전히 강심장이야. 정에는 약해도 아넷테르타에는 강한 당신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런 자리에서 고백했던게 생각이 나는군."
"저에게 있어선 최악의 고백이었지만 말이죠."
둘은 그렇게 문답을 주고 받고는 그윽한 시선으로 서로를 쳐다 보았다. 벤하르트는 그런 그들을 보고 순수하게 웃어 주고 싶었지만 마음먹은대로 얼굴은 움직여 주지 않았다.
"조금 쉬어 두게나. 오늘 밤은 무사히 지났지만 또 나타나지 않으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지금 아니면 쉴 기회도 없을게야."
"....."
또 그 지옥같은 구경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그들의 등뒤에서는 식은땀이 맺히고 있었다.
게이즈의 말과는 다르게 그 뒤로는 맑은 하늘이 계속 되었다. 하룻 밤새에 바다의 고요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깨달은 벤하르트는 약간 미묘한 심정으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 끝에 뭐가 있을까 어떻게 될까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니 어느샌가 그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툭툭 누군가 건드리는 느낌에 벤하르트는 잠에서 깨어났다.
"에 압."
'하마터면 침을 흘릴뻔 했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벤하르트에게 게이즈가 말했다.
"드디어 일어났군. 이미 해가 중천이라네. 자."
게이즈가 내민 음식을 벤하르트는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축축히 젖은 음식이었지만 어딘지 엄청나게 지쳐 있었기 때문에 벤하르트는 바로 음식을 입가에 가져갔다.
"그러고 보니 레니아는."
시선을 레니아에게로 돌린것을 그는 바로 후회했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레니아는 바다 건너를 보고 있었는데 전날에 기절한 것을 인간들이 본것에 화가나 있는듯 했다. 그러면서도 음식을 하나 둘씩 입으로 집어 넣는 모습이 모순되는것 같지만 레니아 답다고 벤하르트는 생각했다.
"오늘 밤 정도에 도착할듯 싶군. 이정도를 나왔으면 아넷테르타가 나올리는 없다고 생각되니 이제부터는 천천히 바다를 즐기면서 가보도록 하지."
"아저씨 저 정말 무서웠어요."
오르킨은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은 얼굴로 게이즈에게 말했다.
"잘 참았다. 남자라면 저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거든. 웃으면서도 통과할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남자라고 할수 있지."
"트레이야는 괜찮아?"
"어. 사실 꽤나 무서웠지만 말이지. 지금 생각하면 한번 더 해보고 싶지 않아? 묘하게 두근 거리던걸."
"아니 전혀 해보고 싶지 않아. 전혀. 살면서 그런 경험은 한번이면 족할것 같은데,"
"그래? 뭐 아무렴 어떻냐 만은."
레니아에게도 말을 붙히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벤하르트는 나무에 몸을 기대고 누웠다. 바닷기운을 풍기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니 지난밤의 일이 꿈처럼 풍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바다 위에서 식사를 하는것은 육지에서 하는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동쪽을 봐도 서쪽을 봐도 북쪽을 봐도 남쪽을 봐도 바다 뿐이니 벤하르트는 마치 고립된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반면에 트레이야는 새로운 경험에 신선해 하며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있었고 오르칸과 오르킨은 로터스 강을 건넌 후의 일을 생각했고 게이즈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덤덤했으며 르와느의 얼굴에서는 후련한 표정과 떨떠름한 표정이 오가고 있었다. 두번째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레니아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는지 그녀는 먼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각자가 기분에 도취되어 식사를 끝내는 와중에도 배는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보인다!"
드디어 그들의 눈에 육지가 보였다. 본래 라군델이 있는 곳과 지금 벤하르트가 당도하려는 땅은 하나의 대륙인 어니스에 속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따로 따로 생각하기 일수였다. 로터스 강이라는게 원체 강이라고 말하기가 어색할정도로 거대한 바다나 다름 없었고 결정적으로 남쪽을 이루는곳은 마법이 많이 활성화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내 항해가 정확했다면 저곳은 '파투나'라는 곳이겠지. 젊었을때는 아넷테르타를 건넌답시고 많이 가본적이 있었지. 그 뒤에도 자주 이곳에는 오곤 했었지. 그럼 근처로 노를 저어 볼까?"
무언가 새롭다 라는 느낌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것은 벤하르트에게도 트레이야에게도 해당 되는것이었고 심지어는 레니아 마저도 약간은 기대심에 쌓여 있었다.
"으.."
노를 젓던 게이즈가 살짝 신음성을 내뱉었다.
"아저씨!"
게이즈의 표정을 보고 트레이야는 게이즈의 팔을 걷어보았다. 붉게 달아오른 팔 그 붉은게 게이즈의 살 안에서 터진 피라는것을 그녀는 알아 차릴수 있었다. 한계 이상으로 팔을 휘두르면 생기는 증상중 하나인 것이다. 그녀도 자신의 기술수행 때문에 자주 당해보았던 터라 단번에 알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될때 까지 노를 저었던 거야?"
"10년만 더 젊었어도 이렇게 추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텐데 역시 나도 꽤나 늙었나봐. 이제는 99%의 기록도 지키지 못하겠는걸."
"여보. 팔이."
게이즈의 팔을본 르와느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비단 르와느 뿐만 아니라 벤하르트일행이나 오르칸 형제도 그의 붉어진 팔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어째서 이렇게 되면서 까지 우리를.. 아넷테르타를 아셧다면 며칠 뒤에 출발해도 늦지 않았을텐데 왜 그러셧어요."
오르칸과 오르킨은 둘째 치더라도 오르칸이 사라졌다고 바라톤이 바로 게이즈를 잡아 챌리는 없었다. 시간을 들여 공략한다면 모를까 이미 얼굴이 많이 들어나 있고 선량했던 게이즈를 막무가내로 몰지는 못했을 것이리라. 그렇기에 자신들은 몰라도 게이즈나 르와느는 늦게 결과적으로 빈트닌을 떠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눈치가 빠른 게이즈가 그것을 모를리 없었음에도 그는 굳이 이런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이다.
"기회는 쉽게 오는게 아니다. 이미 너희는 시간이 촉박했으니 이 강을 건너야 했을테지. 하지만 이 강을 건널수 있는 사람은 이제 이세상에 얼마 되지 않아. 그중에서도 내가 건널수 있었다는게 정말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 되도록."
게이즈는 덤덤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에마스가 죽었을때. 르와느와 나는 생각한게 있었다. 바로 너희들을 양자로 받아 들이는 것이었지. 너희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어졌으니까 우리가 부모가 되주자는 생각이었어. 우리는 아이를 가질수 없었거든. 그런데 말이지. 기회라는게 마음대로 잡아 지는건 아니더라고, 너는 너대로 오르킨은 오르킨대로 우리의 손으로 지켜주지 못하게 된거지. 그게 이유다. 이번에도 너희를 외면하면 다시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것 같았기 때문에,,"
"바보같이!"
"대답해다오. 오르칸. 우리들이 네 부모가 되어도 되겠니?"
게이즈가 호통 쳤던일. 꾸짖던 일들이 뇌리에 스치고 지나갔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바로잡아 주기 위한 말이 아니었을까? 하고 오르칸은 생각했다. 근래의 몇년간 자신은 쓰레기와 다름 없었다. 실제로 자신이 자신을 그렇게 몰아 붙힐만큼 그는 타락했었다. 도시에서 자신을 경멸한다는것도 오르킨이 모를리 없었다. 게이즈나 르와느도 필시 그럴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착각이었다. 에마스가 죽고 난후 처음으로 그는 따스함을 느낄수 있었다. 게이즈의 말투는 대체로 투박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따듯하게 느껴진것은 오르칸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제가.. 정말 아버지로 모셔도 될까요?"
오르칸의 말이 살짝 떨린다.
"괜찮아."
흔들림없이 게이즈가 말했다.
"형 울어?"
"울긴 누가 울어. 눈에 뭐가 들어간 모양이지."
자신의 어머니 에마스가 돌아가셧을때 조차 울지 않았던 눈물이 오르칸의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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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대전 종료와 함께 한챕터 마무리네요. 진짜 끝나려면 다음 화에 약간 걸쳐질테지만, 그냥 그러려니 해주세요. 이번편은 개인적으로 조금 마음에 안드는 편이었지만 모순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최대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부족했지만요. 여튼 조금더 열심히 (밝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참대전 Cl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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