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106화-악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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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킨은 꿈을 꾸었다. 자신이 어머니와 있었던 그때의 꿈을. 6살 어린 아이로서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것은 아니다. 책에서 끊임 없이 나오는 무언가의 죽음의 대상이 어머니가 되어 납득 할수 없을뿐. 그것은 지난날의 추억이었다.
"오르킨?"
"네 엄마."
"너는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엄마요."
"하지만 크게 되면 말야.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게 될거야. 이 엄마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사람이 말야."
오르킨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말했다.
"그럴리 없어.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걸."
"고맙다. 그래 엄마가 한가지 이야기를 해줄까?"
"뭔데요?"
"엄마는 말야. 이곳 빈트닌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니야. 나중에 말해 주겠지만 리안그리스 라는 곳에서 살다 왔어. 먼 서쪽에 있는 땅이지."
"리안그리스?"
에마스가 말하는 리안그리스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오르킨은 자연히 알수 있었다. 그녀에게 리안그리스가 굉장히 중요한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리안그리스라는 곳은 하나의 군락과도 비슷한 부족이었다. 세상의 문명은 전부 익히고 배우며 살아가지만 유독 그곳의 풍습과 유래는 중시했던 지금은 굉장히 보기 힘든 부족중 하나였다.
"그래 그런데 오르킨 리안그리스에서는 독특한 풍습이 있단다. 잠시만 기다리렴."
에마스는 서랍을 열고 하나의 함을 들고 나왔다. 아직 어린 오르킨은 함이 있는곳까지 가본적도 없었을 뿐더러 관심도 없었는데 에마스가 그것을 들고 나오자 굉장히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함을 보기 시작했다. 에마스는 함을 열고는 무언가의 한 뭉치를 꺼내들었다.
"이게 뭐게?"
"머리?"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에 뭉쳐 곱게 묶여 있었다.
"이건 말야. 네 아버지의 머리카락이란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만날수 없지만 여전히 너희 아버지는 여기 살아 있는거나 다름 없어. 우리 리안그리스 사람들은 말이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머리카락을 달라고 하는 것으로 고백을 했단다. 엄마도 그중 하나였지."
"그럼 아빠가 이곳에 살아 있는거야?"
"그래. 분명 그럴거라고 난 생각해."
"엄마 엄마 엄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르킨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 꿈 이후로 오르킨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간혹 어떤 여자들에게 머리카락을 달라고 요구 하는 이상한 버릇이..
"나와라 바라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시청안에 울려 퍼졌다.
"누구냐 네놈은!"
"비켜라."
오르칸이 올라가려 하자 그를 막아서는 무리가 있었다. 평소에도 몸을 움직이는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에마스가 죽은 후로는 건달처럼 놀았던 그를 막기에 시청의 직원들은 너무도 역부족이었다. 그들 모두를 눕혀 가며 오르칸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이전 자신의 부모가 있었던 그곳을 향해서..
"바라톤님 큰일 났습니다. 오르칸이라는 녀석이 시청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오르칸? 아아 들여 보내게. 거칠게 다룰것 없이 내 방으로 초대 하도록 하게. 본인도 그것을 원하는것 같으니.
바라톤의 살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바라톤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낄낄 대면서 웃기 시작했다.
"어머니에 이어 자식까지 와서 나의 길을 뚫어 줄 생각인가. 어리석은 녀석."
"바라톤!!"
"시장님이 부르십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바라톤이 나를?"
아마 자신의 난동 소식을 들었을 것인데도 너무도 태연한 비서의 태도에 오르칸은 솟아 오르는 짜증을 겨우 목안으로 집어 넣었다. 사실이던 사실이 아니던 그에게는 바라톤에게 분명히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바라톤님. 오르칸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 들여 보내고 가서 업무 보게나. 듣자하니 오르칸이 말썽을 피운것도 수습해야 될것 같은데 말야."
고작해야 1년이나 지났을까. 처음에 자신이 에마스와 함께 들어왔던 시청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 모습에 빈트닌에 대한 환멸감이 더욱 심해져만 갔다. 세상은 이미 자신의 어머니를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어서 오게. 전 시장의 아들 오르칸 맞지? 이렇게 찾아오다니 뭐 찾아오지 않았어도 내가 부를 생각이었지만 말야."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긴 내가 너를 채용하고 싶다는 이야기지. 듣자하니 전 시장의 곁에서 많은 것을 도와 주었다고 하던데 말야. 그만하면 능력이야 말할것도 없겠지. 어떤가? 물론 대우는 충분히 해줄 생각이네."
바닥을 보고 있던 오르칸의 눈이 서서히 들어 올려 졌다. 그리고 그 눈은 바라톤의 눈과 마주쳤다.
"그 전에 한가지만 묻자.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너 내 어머니를 죽였냐?"
"대답을 하기 전에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뭐지?"
"네가 하고 있는 일의 전부는 우리 어머니가 생각한 것이다. 적어도 현재 까지는 말이지."
바라톤은 여유로운 태도로 한 개피의 굵은 담배를 꺼내 들고 고급 모닥불로 탁하고 불을 내면서 말했다.
"그녀는 전 시장이지 않나. 그런 전 시장의 일을 현 시장이 하는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가. 기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럴리 없다. 어머니는 그것을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 두고 심지어는 아들인 나마저도 그 위치를 찾지 못했다. 아들 마저도 알지 못하던 문서가 들어있는것을 문서가 있다는것조차 몰랐어야 할 현 시장이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 말해라!"
"후후 역시 사자의 뱃속에서 태어나는것은 고양이가 될수는 없는것인가. 아니면 어머니에 대한 지나친 믿음 때문인가. 양쪽 다라고 해도 말이지. 칭찬해 주마. 네 말이 옳다. 네 어미를 죽인 장본인은 바로 나다."
"그럴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신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니까, 의문도 풀렸고 내가 할수 있는 일은 하나 뿐이겠군. 죽어라!"
부들부들 몸이 떨리면서 혼신의 힘을 다한 주먹이 바라톤의 얼굴에 작렬하려는 순간 몸이 둥실 떠오르더니 오르칸의 몸이 고꾸라졌다.
"뭐?"
"나는 말야. 굉장히 용의주도하지. 아니 네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겁쟁이야. 나에게 칼을 들이밀려고 하는 녀석을 상대로 아무 대책도 세워 두지 않았을리 없잖나. 그럼 문제 너는 왜 그렇게 고꾸라지게 된 것일까?"
"누군가 있군."
"딩동댕. 모습을 들어 내도 좋다. 카라신."
바라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 복면의 차림을 한 남자가 오르칸의 옆에서 튀어 나왔다. 발자국 소리가 아니었다면 눈에 띄는 차림새가 아니었다면 나타난줄도 몰랐을 정도로 귀신같은 사람이었다.
"내 몸에 무슨짓을 한거냐!"
"난동을 부리면 곤란 하니까 잠시 묶어 둔것이다. 뭐 내가 하는건 아니고 옆의 이녀석이 하는것이지만 효과는 탁월하겠지."
"왜 왜 어머니를 죽인거냐 왜!"
"왜라.. 그녀는 내가 올라가는데 방해가 됬거든. 그 능력으로 빈트닌의 시장에 취임하고 있는것도 그렇지만 그녀가 계획하고 있는 일의 일부를 보아 버린것이 가장 큰 문제였겠지. 그리고 나는 그녀의 지혜와 생각을 훔치기로 결심한거다. 결과가 이렇게 되서 너에게는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긴 드는군."
하지만 오르칸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눈앞의 남자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연신 자신을 보고 웃고 있었던 것이다. 비웃음보다도 몇단계나 아래의 사람을 보는듯한 그 눈은 타인에게 미안함을 가지는 사죄의 의미를 가지는 태도가 아니었다.
"으 으아아 으아아아아."
[찌직]
"묶어둔 힘을 찢는건가."
그것은 누가봐도 고개를 휙 돌려버릴 만큼 잔혹한 광경이었다. 오르칸의 양 손은 팔꿈치 부터 기괴하게 반댓쪽으로 꺽여 있었다. 그 상태로도 비틀거리면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단한 녀석이군. 역시 너는 나를 도와 줘야 겠다."
"헛소리 하지 마라."
그대로 오르칸은 바라톤의 머리를 받아 버렸다. 찡 하게 울려 퍼지는 머리를 움켜 잡고 바라톤은 카라신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카라신은 그런 그의 시선을 분명히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카라신이 그런 태도를 취하는것은 하루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라톤은 화를 가라 앉혔다. 불성실하게 일하는듯 보여도 정말 자신이 위험했다면 확실하게 지켜줄것이라는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죽여라. 죽여!"
"그것은 안될 말이지. 너는 이제부터 나의 수족이 되어 자금을 조달해 주어야만 하거든. 이미 마을사람에게 신망을 잃을 대로 잃은 너는 어디까지 타락해도 별 상관이 없을거다."
"누가 들어 준다고 하더냐! 너의 말을 들어 주느니 여기서 혀를 깨물고 죽겠다!"
"오르킨 이라고 했었나. 네 동생."
"너..."
오르칸은 움직이지도 않는 팔을 휘둘러 바라톤에게 휘둘렀다. 어지간히 마음 약한 사람들이 보았다면 눈을 감아도 몇번을 감았을법한 잔혹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누더기처럼 된 자신의 팔로 공격했지만 당연히 바라톤에게는 닿지 않았다.
"어디 있는지 몰라도 이곳 마을에 있다는것 정도는 알고 있지. 찾아내는것쯤은 금방이다. 네가 죽는다면 그 아이도 죽는다는것을 명심해라. 도망치려 해도 소용없다. 이 마을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나갈 시도를 보인다면 그때는 카라신이 네가 아닌 네 동생의 목을 날려 줄테니까 말야. 너는 내가 시키는데로 열심히 일을 해주면 그만인 것이다. 노예처럼 말이지. 과거 귀공자처럼 지냈던 네가 할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 광경을 보고 싶어 죽겠다는 듯이 바라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르칸에게 가족이라고는 이제 둘뿐이었다. 어렸을때부터 자신을 잘 따라 주었던 동생. 유일한 혈육을 잃을수는 없었다.
"이것을 아나? 세상을 사는데 얻고 싶은것이 있다면 악하게 굴면 되는것이다. 상대가 어떻게 되든 상관 하지 않으면 되는것이지. 네가 내 밑에서 일하는것이 그리도 싫다면 동생을 저버리면 되는거야.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것들이 꼭 존재하고는 하지 마치 네 어미처럼 말야. 그런 사람들은 조종하기가 쉬워. 그래. 너무나도 쉽지."
"네놈 설마 우리를 미끼로 어머니에게!"
"아들들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더군. 그래서 말해줬지. 네가 하는 사업의 모든것을 넘기고 자살을 한다면 그리 생각해볼수도 있다고 말야. 하긴 내가 그런 약속을 지킬리 없지만,"
바라톤은 입에서 들이켜지는 담배연기의 맛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바라톤에게 있어서의 최상의 안주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너 이자식!!"
"동생을 생각해라. 아니 생각하지 않는것도 재미 있겠군. 그래 차라리 나에게 덤비고 자살을 하는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렇다면 고통을 받게 되는 쪽은 네 동생이 되겠지만 말이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입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절규라고 해도 믿을정도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런 이런. 나중에 어떻게 변명해야 하나."
비명소리에도 눈썹하나 끄떡이지 않고 변명거리를 생각하는 바라톤의 모습이 오르칸에게는 흡사 악마와도 같이 보였다.
"그게 정말이냐?"
"세상에. 바라톤이 에마스를! 아."
사정을 전부 들은 르와느는 순간 정신을 잃고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졌다.
"르와느!"
"괜찮아요. 너무 갑작 스러워서 그만. 하긴 그 에마스가 자살을 할리 없지."
르와느의 머릿속에는 바쁜일 가운데서도 한없이 밝게 웃으며 수다를 떨던 에마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주머니 아저씨 그 사실은 비밀로 해 주십시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제 동생을 받아 주신것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게 바라톤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두분의 신상이 위험해 집니다. 그러니 이렇게 해줄수 있다면 이렇게 해주세요. 그것이 안된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겠습니다. 동생에게는 적당히 설명해주시구요. 만약 해주신다면 진심 어린 연기를 해주어야 합니다."
오르칸이 본 바라톤은 엄청난 악인이었다. 타인이 고통 스러워 하는것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악인. 자신이 그에게서 괴로워 한다 해도 오르킨이 밝게 웃으면서 지낸다면 자신과 관계 없이 오르킨에게 불똥이 떨어질것임은 자명했다. 그렇기에 이웃인 르와느에게는 마치 원수인것마냥 행동하면서 조금씩 도와주도록 하는 방법을 취하도록 해달라는것을 부탁했다.
'그녀석은 아직 오르킨이 어떻게 사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집요하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겠지.'
그렇게 오르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라는 방패가 필요한 것이었다. 오르킨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게 할 일꾼이자 장난감인 자신이.
"그래 그렇게 라면 할수 있겠지. 어린 애한테는 가혹하겠지만 그것이 최선이라면 할수 있는데까지 해보마."
르와느는 내키지 않는 눈치였지만 오르칸을 믿었기에 그렇게 말했다. 오르칸이 동생의 행복을 바라는데도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그것외에 방법이 없다는것도 일리는 있었다. 게이즈가 오르칸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할 셈이냐?"
오르칸은 피식 하고 웃었다. 그것은 이제부터 변하게 될 자신에 대한 자조의 웃음이었다.
"오늘 이후로 저는 제가 아니게 될겁니다. 저에대한 어떤것도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부탁합니다. 욕을 하셔도 질책을 해도 매도를 해도 상관 없습니다. 실제로 저는 그렇게 살아가게 될테니까요. 아주머니와 아저씨에게는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제가 예전의 오르칸으로 있을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어 있다면 아마 오늘 뿐일겁니다."
"오르칸. 바라톤이 뭐라고 한것이냐. 어서 말을 해라."
오르칸이 에마스에 대한 사실을 전부 알고도 무사히 나올수 있었던 것은 바라톤과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것임을 게이즈는 알수 있었다.
"그것을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알게 할수는 없습니다. 손이 더러워 지고 타락하는건 저 혼자로 충분합니다. 아무쪼록 오르킨을 잘 부탁드립니다."
"오르칸 거기 섯거라!"
그 후 항구도시 빈트닌에는 철면 이라고 불리우는 소년이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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