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96화-최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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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잠을 자려고 준비하고 드디어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순간 벤하르트는 낮에 있었던 팔씨름이 생각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늦은밤 겨울에는 들을수 없었던 풀벌레들의 소리가 벤하르트의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남쪽으로 가면 갈수록 따듯해진 까닭과 주변의 환경 때문에 그 주변은 유달리 풀벌레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후우."
벤하르트는 자신의 침낭에 들어있던 검을 들었다. 그렇게 수련을 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난것도 꽤나 오랜만의 일이라는것을 자각하자 입가에는 실없는 미소가 번졌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몇번인가 휘둘렀는데 언제나와 같이 예리한 검성(劍聲)이 들린다. 그 소리 때문일까 아까까지만해도 쉴새없이 들려오던 벌레들의 소리가 멈춘것 같은 기분이 들어 벤하르트는 검을 멈추었다.
"오늘은 이정도만 해둘까."
완전 달밤의 체조 였다는것을 깨닺고 고개를 저으면서 벤하르트는 자리로 돌아왔다. 평상시라면 작은 소리에도 깰 레니아와 트레이야 였지만 주위에 깔린 벌레들의 소리 때문에 벤하르트가 외출했는지도 모른채 고히 자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벤하르트를 만졌고 그에 벤하르트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 봤다.
"레니아?"
은은한 달빛에 반사된 푸르스름한 머릿결에 살짝 멍해져있는 자신을 느끼지 못한채 벤하르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레니아를 쳐다보았다. 풀벌레 소리 때문에 주위를 파악하지 못한것은 되려 벤하르트쪽이었던 것이었다. 당황해하는 벤하르트를 끌고 레니아는 야영하는곳에서 제법 떨어진곳까지 이르렀다.
"어이 레니아 무슨 짓이야?"
"이쯤이면 됬겠지. 벤. 오늘 낮의 일 기억나?"
"낮이라고 하면 트레이야와의 팔씨름?"
살짝 눈을 굴리고는 레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조금 후의 일이야."
"최면에 관한 이야기?"
"그보다는 조금 전."
"트레이야의 요리?"
"그래. 그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 할말이 있는데 말이지."
벤하르트는 어수룩 했지만 결코 바보는 아니었다. 레니아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이야기의 주체만 따져 보아도 간단하게 알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어. 말해."
레니아는 슬쩍 고개를 들고는 벤하르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벤하르트의 배에서부터 통증이 밀려왔다.
"왜?"
"알면서 괜히 묻지 마. 그런 얼굴로 나를 보다니."
어지간히도 벤하르트는 풀린 얼굴로 레니아를 바라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흡사 어린아이의 투정을 들어주는 자상한 어른 같은 얼굴이었으니 전직 신이었던 레니아가 화를 내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러니까 요리를 가르쳐 달라는것 아냐?"
"뭐 그런 셈이지. 오늘 낮에도 일부러 말을 흘려 준거지?"
"그야 네가 요리를 하는것을 본적도 없고 나를 만나기 전에는 요리가 있는줄도 몰랐으니까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배우지도 않은것을 알수 있을리가 없지 않겠어? 그래서 내 요량것 막아 본거지."
"그 점은 잘했어. 어쨋든 적어도 몇가지의 요리는 알아야만 해. 놀림감이 되는건 사양이니까,"
"한 둘쯤은 허점을 보여도 상관 없을것 같은데.."
그 말과 동시에 눈에서 불이 나올것만 같은 레니아의 시선에 압도 당하며 말을 멈추었다.
"그럼 간단하게 몇가지만 알려줄게. 밤중에 이게 왠 난리냐."
"그래봐야 벤만 하겠어?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칼이나 휘두르고 돌아온 주제에 말이지."
"하하 다 보고 있었어? 여튼 잡담은 여기까지 피곤하기도 하니 얼른 끝내도록 하자구."
다음날 아침 늦게 잠을 잔 까닭에 늦게 까지 잠을 자던 벤하르트는 무언가 맛있는 냄새에 잠에서 깨어났다.
"어?"
"오 일어났다 일어났다. 벤하르트 오늘은 레니아가 식사 준비를 했어. 어때 고맙지?"
전날에 가르쳤던 사람이 본인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랄것도 없었지만 벤하르트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진짜? 상당히 맛있는 냄새가 나기는 하는데,"
흐뭇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 벤하르트는 삽시간에 얼굴 표정이 굳어 버렸다.
"레 레니아?"
"어 일어났어?"
묘하게 반짝이는 얼굴로 요리를 선보이는 그녀를 보고 벤하르트는 살짝 웃었다. 간단한 조리법을 알려 주었을 뿐이었건만 가르쳐준것보다 더 화려한 음식이 눈앞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레니아를 가르치려 한다면 다 가르치기도 전에 포기해 버리겠군.'
딱 보아도 맛있어 보일법한 요리는 역시나 맛있었다. 자신이었으면 이렇게 만들수 있었을가 하고 생각해 보고 아직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고개를 까딱 거릴 정도로 실력이 좋은 까닭에 벤하르트는 순수하게 맛있다 라고 좋아할수만은 없었다. 식사를 끝마치고 벤하르트일행은 다시 짐을 꾸려 출발준비를 시작했다.
"허.."
"왜?"
"레 레니아 너 무슨짓을?"
가방의 안에는 아직도 많이 있어야 할 음식들이 상당히 없어져 있었다. 그리고 곧 벤하르트는 사라진 음식들을 발견할수 있었다. 이미 음식물 쓰레기처럼 뒤엉킨 음식들이 봉지에 담겨 있었다.
"아 그거. 처음 만들어 보니까 잘 되지 않아서 말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망작을 내놓을수는 없는 일이잖아? 뭐 앞으로의 여행에 지장은 주겠지만,"
"지장 정도냐. 당장에 오늘 내일 그다음까지 전부 굶는다고 해도 할말이 없다고 이건."
이번 길은 상당히 먼 곳을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번 마을이 나오면 주저 없이 많은 날을 쉬는 레니아 거기에 합세한 트레이야까지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벤하르트가 선택한 길의 단점이라 하면 중간에 마을이 없다는 점이었고 그에 음식을 챙기는 벤하르트의 어깨도 무거웠다. 그때문에 넉넉한 여유분량을 챙길수도 없었던 것이다.
"너 답지 않게 말야. 아니 어찌보면 너 답지만,"
그녀는 똑똑했지만 그 이상으로 자존심이 드세었다. 그것을 버리게 되면 나중에 곤욕을 치르게 되리란것을 알면서도 자존심때문에 망친 요리를 버린것이었다.
"어쩔수 없지."
벤하르트는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는 음식들을 꺼내서 먹을만 한것들을 분리 시키고 나머지는 도로 봉지에 집어 넣었다.
"뭐하는 거야?"
"레니아 나는 네가 신이라는것도 알고 있고 너의 그 자존심도 알고 있고 너의 그 현명함도 알고 있지만 오늘의 일은 분명히 말해서 네 잘못이야. 분명 네가 생각하기에 나는 어리게 보일수도 있지만 지금 만큼은 이 내가 너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야해. 너희들이 말하는 왕처럼 여왕처럼 다소의 억지를 부려서라도 거짓속에서라도 추앙받을수 있어야 한다고,"
"뭐 그것도 이해해. 내가 너와 지낸 시간이 적다고는 할수 없으니까 충부히 이해는 할수 있어. 너라면 그렇게 했을것이라고도 말야. 하지만 잘못이 되었다면 그것을 지적해주는 이는 분명히 필요한 법이라고, 네가 나보다 얼마만큼 위에 있던간에 들어서 고쳐야 할것이 있다면 고쳐야 하는거야."
그의 눈은 진지했고 레니아도 그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었다. 벤하르트가 그녀와의 관계를 신으로라기 보다 친구로서 옳고 그름을 알려주려고 한다는것을 깨닺고나자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그런 그의 심정을 읽지 못했다면 마음으로는 더 편했을것이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벤하르트의 말이 고맙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신에 대해서도 인간에 대해서도 서서히 윤곽을 잡아가는 그녀였다. 자신보다 위도 있는것을 잘 아는 그녀일지라도 일단은 만물에게 숭상받는 신이었던 그녀가 이렇게 질타를 받을 경우는 평생을 걸쳐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던 것이다.
"나도 조금 울컥 했어. 처음 만든게 이런 졸작이었으니까 말야. 그래도 주위에서 천재의 소리를 몇번이나 들었던 내가 말이지."
"이런말 하긴 뭐하지만 충분히 천재라고 너는. 이것도 먹지 못할정도도 아니고 말야. 오히려 겉모습이 나쁜게 더 맛있을때도 있는거라고, 푸르다키아를 잊지는 않았겠지?"
"으음. 그런말보다 이렇게 인정을 하고 나니까 엄청나게 미안해지는군,"
"안그럼 곤란하니까 그게 올바른 사회생활이라는 것이지."
라고 말하며 레니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무시무시한 눈초리에 그는 살짝 뒷걸음질을 했다.
"트레이야에게는?"
"트레이야한테 사실대로 말하면 네 꼴이 뭐가 되겠어? 그 엄청나게 높은 자존심이 밑에서부터 똑 하고 부러지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어딘가의 들짐승이 먹어 치웠다고 해두지 뭐."
"응. 고마워."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것보다 몇배는 더 어려운 말을 레니아에게서 듣자 벤하르트는 음식의 위기감마저도 그 순간 만큼은 날아가 버렸다.
"트레이야 놀라지 말고 들어. 야간에 음식의 습격이 있었던것 같다."
"뭐라고?"
"레니아는 평소에 음식관리를 안해서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가 가진 식량은 얼마 되지 않아. 아마도 들짐승이 훔쳐 먹은 모양이야. 그러므로 여행길의 2일 혹은 3일은 여행하지 못할지도 몰라."
"그럴수가!"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때에도 굶는다는게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접했던 트레이야였기 때문에 어떤것보다도 그것이 두려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아픈듯 하지만 아픈게 아니고 괴로운듯 하지만 괴로운게 아닌 그 느낌을 떠올리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녀가 말했다.
"그럼 어떻하면 되는데?"
"방법은 두가지야 여행도중 하루씩 굶는것. 그리고 한번에 몰아서 굶는것."
"잡는건 어때? 저번처럼 말야."
"하지만 이 근방에서 먹을 만한것을 본적은 없는데, 있다면 풀벌레 정도? 왠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흔한 새조차도 보이지 않으니.. 아마 굶게 될것 같아."
"말도 안되!"
절규 했지만 되돌아오는 벤하르트의 얼굴은 어쩔수 없다는 그것이었다. 트레이야의 절망어린 얼굴에 레니아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자존심이라는 이유 하나로 태연함을 가장하였다.
"좋아. 이건 어때? 빡세게 먹고 그 힘으로 달리는거야. 그만큼 빨리 도착하는 거지."
"네 체력에 우리가 따라갈수 있을지가 염려 되고 그정도로 만만한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가장 좋은건 이거지 중간에 굶는것!"
"안되!!!~ 레니아 뭐라고 말좀 해봐."
"에. 어쩔수 없지 않을까. 나도 트레이야를 따라갈수 있을것 같지도 않고 말이지. 음."
결국 그렇게 다수결의 논리에 따라 트레이야는 울며 겨자먹기로 그들의 의견에 따를수밖에 없었다.
몇일이 지나고 그나마 양호하게 여행을 지속하던 벤하르트일행이었지만 굶는다는 고통이 심한건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었다. 숲에 들어와서 그런지 평소보다 몸이 지칠대로 지쳐 있었고 거기에 하루를 걸러 하루에 식량을 먹을때 되려 공복감이 심해지는 듯한 기분마저 들어 셋의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닺고 있었다. 세명중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아무말없이 걷고 있었고 트레이야만은 연신 '배고프다'를 중얼 거리고 있었다.
"으아 배고파!"
배고프다고 투정하는 트레이야에게 아 하고 생각난듯이 벤하르트가 물었다.
"이럴때는 너의 그 최면을 사용해서 배고픔을 잊는게 어때?"
"그건 무리야. 사실 저번에는 뭐든 가능한것처럼 말했지만 그렇게 만능같은 기술은 아니야 최면은 말이지."
"무슨 소리야?"
금방이라도 배고프다 라고 투정하고 싶다는 듯 짜증스런 얼굴로 레니아가 물었다.
"그러니까 이 기술의 요점은 정신력이라는 거지. 손에 힘을 준다라는 사실도 안아프다고 생각하는것도 결국 머리에서 전달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집중을 할수 없으면 사용할수가 없어. 이 극심한 배고픔은 나의 힘을 원천적으로 봉인하고 있다는 이야기야."
"그래도 조금 노력해보면,"
"너무 고통 스럽다고, 그리고 그 정신력으로 유지하는것도 장난이 아니란 말이지. 힘이라는 개념으로 최면을 걸고 난 후에 내 손이 어떻게 되는줄 알아? 상당히 아프거든 욱신욱신 거린다고나 할까? 정도에 따라서는 뼈가 부러지기도 하더라고 뭐 이건 옛날이야기지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힘을 다룰수 있는 거니까 그만큼의 위험이 있는거지. 그만한 정신을 쏟아 부어서 배고픔을 억제하느니 그냥 배고픈게 낫다는 거야."
"아 그렇구나."
납득했다는듯이 벤하르트가 양손을 부딪혔다.
"잠깐 벤 저게 뭐지?"
숲에서 무언가를 가장 먼저 발견한 레니아가 손으로 불빛을 가리켰다.
"설마!?"
"마을인가!"
트레이야의 외침에 레니아와 트레이야는 벤하르트가 말리기도 전에 동시에 불빛을 향해 달려갔다.
"어이 잠깐. 좀 기다리라고,"
둘의 달리기에 덩달아 조급해진 벤하르트도 둘을 따라 그 불빛을 향해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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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엔터가 안되어 있는지 몰라도 고쳤습니다.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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