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94화-허(虛)와실(實)
가크마에서 벤하르트 일행은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가졌다는것 외에는 작은 마을인지라 원래가 볼것이 별로 없었고 무엇보다 하루가 다르게 나가는 여관비와 식비때문에라도 벤하르트는 그곳에 오래 머물수는 없었던 것이다.
"저번의 교훈도 있고 하니 이번에는 따로가자 라던가 나중에간다. 라던가의 억지따위는 부리지마."
"저기 저기. 나는?"
손을 들면서 천연덕스럽게 트레이야의 물음에 벤하르트는 일언반구로 딱 잘라 말했다.
"당연히 가야지. 거부권은 없다."
지은 죄가 있었기 때문에 레니아와 트레이야는 벤하르트에게 다른 말을 할수가 없었다. 장난으로 치부할 정도가 아닌 실제로 목숨이 나갈정도로 위험해 졌던 것이다. 제로의 도움을 받아 돌아온 날의 저녁 벤하르트와 레니아와 트레이야는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디서 엇갈렸는지 누가 잘못했는지가 확연하게 들어났다. 엄연하게 말하면 레니아의 행동이 잘못은 아니었지만 상황은 그 행동을 잘못으로 몰기에 충분했다.
약간 분한듯이 입술을 깨물고 레니아가 벤하르트의 말에 수긍했다.
"좋아. 그럼 당장 출발 할까?"
"당장?"
"말한 김에 겸사겸사지. 아직 낮이기도 하고 식량도 사 두었겠다 문제는 없잖아? 아니면 뭔가 불만이라도 있는지?"
"알았으니까 그런 말투 쓰지 마. 짜증난다고,"
마치 자신보다 위에 있다는 듯한 벤하르트의 농 섞인 조롱에 레니아는 인상을 구기면서 묵묵히 짐을 챙겼다.
"에휴. 그러게 내가 하지 말자고,,"
"트레이야??"
트레이야 본인이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말이었기에 그녀는 배시시 웃으면서 서둘러 짐을 챙겼다.
일단 출발을 하고 나면 여행은 즐거웠다. 그 시작이 힘들 뿐이지 이미 봄이 지나 서서히 여름으로 접어 드는 와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상쾌한 기분으로 그들은 걸을수 있었다.
"아아 좋다."
트레이야가 양팔을 머리로 올리고 느긋하게 말했다.
"너무 그렇게 좋아할것 없어. 대르나드에서도 똑같이 맛봐왔던 바람이잖아?"
레니아의 말에 트레이야는 쯧쯧 거리면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지금 나는 자유의 몸이잖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 아니겠어? 레니아 너는 어떤데?"
"글세. 나쁘진 않아."
"솔직하게 좋다고 하지 그래?"
"나쁘진 않다고 하잖아."
아웅다웅 하고 있는 레니아와 트레이야를 보면서 벤하르트도 오랜만에 별다른 생각없이 즐겁게 여행길을 걸을수 있었다.
"그래 다음 목적지는 어디야?"
"후후. 여행하기를 꺼려하는 너희들을 위해 단번에 빈트닌으로 향하는 길로 골라왔지."
벤하르트가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고 말했다.
"뭐라고?"
"자 지도를 봐라. 이쪽길로 향하면 마을 댓개 정도를 지나가야 하지만 말야. 이리로 가면 단번에 지나갈수 있다는 말씀. 시간도 단축시킬수 있고 말이지."
벤하르트가 가르킨 지도를 보고 트레이야는 기겁했다. 물론 벤하르트가 선택한 길은 분명 빠르다. 마을과 마을을 건너야 하는 다른길에 비해 가로지르는 길이었기 때문에 선택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그 거리가 문제였던 것이다. 슬쩍 벤하르트가 든 짐을 바라 보았다.
'왠지 평상시보다 더 많은 짐을 챙기더니만,'
들고 있는 벤하르트는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지만 실상 보통 사람이 들려고 하면 엄청나게 애를 써야 할 정도로 무거운 짐이었다.
"벤하르트. 여행이라는건 모름지리 '천천히' 해야 하는거잖아. 이렇게 급하게 갈 필요가 있는거냐고,"
"천천히 해야 한다니. 그런 말은 어디에도 없어. 그리고 트레이야와는 달리 나와 레니아에게는 목적이 있단 말야."
"목적?"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엔쿠라스를 찾기 위한 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레스트나를 찾아 가기 위해서 샬퐁의 말에 따라 바오윈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항구마을인 빈트닌에서 로터스강을 건너야 했던 것이다. 사실 빠르던 늦던 상관은 없었지만 레니아와 트레이야의 태도로 볼때 이렇게 서두르지 않는다면 돈이 금새 떨어져 버릴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래. 나와 레니아는 무작정 놀면서 걷는게 아니라 바오윈이라는 곳에 가야만 해. 그러기 위해서 항구마을인 빈트닌으로 향하고 있는거라구."
"거기가 뭔데?"
"이야기 하자면 긴데 말이지. 요점만 말하자면 레니아와 나는 어떤 곳을 찾고 있거든.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찾아야만 해. 그런데 그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는 바오윈에 있는 어떤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는거지. 이정도 인가?"
"그렇게 말하면 퍽이나 알아 듣겠다."
"하는수 없군. 천천히 말해줄게 그런데 괜찮아 레니아?"
벤하르트는 레니아에게 의견을 물어 보았다.
"뭘 말이야? 이미 트레이야는 내가 신이라는것도 알고 있고 딱히 남이라고 할정도의 사이도 아니니까. 말해도 좋지만 조절은 알아서 하도록 해."
"좋아."
벤하르트는 레니아가 찾는곳 신의 성지 라고 불리우는 엔쿠라스 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해가 지고 있을 무렵 드디어 이야기는 끝이 났다.
"도대체가 나같으면 그런것 안하고 신으로 눌러 살겠다. 낙원이라는건 말이지 원래가 허울 뿐인 것이라구."
"훗."
"뭐가 우스워?"
레니아의 웃음에 트레이야가 발끈하며 물었다.
"그럼 트레이야는 어때? 대르나드에서 나왔을때 다른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즐겁지 않은거야?"
"비교할걸 비교해야지. 대르나드는 그곳에 산다는것만으로도 지옥이라구."
"꼭 나만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말야. 한 곳에 수백 수천년 수만년을 머무는것. 그런 삶이 얼마나 지겹고 외로운것인지 트레이야는 알수 있어?"
"글쎄."
실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생각하기도 싫은듯 난해한 표정으로 트레이야가 말했다.
"신들은 대다수가 그래. 엄청난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누구도 무시할수 없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모든 일은 덧없지. 그것을 즐기는 신도 그것이 싫은 신도 존재하는거야. 뭐 너희들 말로 따지면 인간과도 별반 다를게 없지. 만족하지를 못하니까."
"아아.. 잘못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꼭 내가 나쁜놈이 된것 같아서 말야. 미안 레니아."
트레이야가 양손을 들면서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레니아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인간은 이해하지 못할수도 있겠지. 아니 인간뿐이 아닐거야 그건. 신인 나조차도 이런 기분을 이해할수 없으니까 말야. 확실히 트레이야 네 말대로 이건 바보짓일수도 있어. 안락하고 편안한삶 그것을 버리면서 까지 무언가를 찾는다는건 어떻게 보면 사치스러운 일이니까, 그래도 이렇게 나온것에 아직까지 후회는 들지 않는걸."
"당사자가 좋다면야 뭐. 아무래도 좋다는거지.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갈까? 해도 져가고 있고 말야. 오랜만에 힘좀 써서 요리해주도록 할테니까,"
식사를 끝내고 그들의 중앙에는 작은 모닥불 하나가 피어 올랐다. 형형색색으로 피어오르는 따듯한 불길을 안주삼아 그들은 그렇게 하루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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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오랜만에 올려 봅니다. 올리는것조차 민망할정도 네요. 변명할것도 없이 제 게으름 탓입니다. ㅠㅠ 그래도 써놓은건 있으니 차차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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