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83화-연극(3)
삼일째 되는 날. 축제의 하루를 남겨두고 벤하르트는 아주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과목 마다 넘겨진 숙제를 처리하고 연극을 몇번이나 연습하고 깊은 늦은밤에 잠들고 일어나 수업중의 짬짬한 시간에 조차 부족한 대사를 외우고 연습해야 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는 않았다. 다만 벤하르트는 자신때문에 연극이 망쳐지길을 원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연습한지 고작해야 2일 되는 레니아는 누구보다도 더 주인공의 역할을 잘 맡아내는 데에 비해 벤하르트는 아직도 미흡한점이 있었다.
원작을 한번 보았던 경험이 있는 터라 보통의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벤하르트도 결코 느린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빠르다고 말할수 있었지만 원래 벤하르트가 맡은 역할이 이틀동안 소화해 낼수 있을 만한 분량이 아니었기 때문에 힘들었고 그만큼 그는 더 노력하고 있었다.
"어이 벤하르트 뭐하고 있나? 그러게 내 수업이 마음에 안드는 거냐?"
겔트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벤하르트가 연극의 장면을 생각하면서 표정 연기를 하는것을 들켰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불만이라는 듯이 표정을 찡그리고 있는 이유가 뭐냐."
원래 레시아스라는 역할이 악역이었기 때문에 고운 표정이 나올리가 없었다. 그런 표정을 연기하고 있었으니 겔트가 못마땅해 하는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간 네 성적이 어떤지는 알고 있는거냐? 솔직히 말하자면 열등반 실력이다. 어째서 이곳 유슬딘의 장학생 심사를 보려 했는지가 의문일 정도로 말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제발 수업이나 잘 들어서 수학 실력을 더 쌓아라. 딴 생각이나 하지 말고, 만약 떨어지더라도 일주일간 최소한도의 수학은 배워 나가야 하지 않겠나!"
거기까지 말하고 겔트는 다시 칠판으로 고개를 돌렸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너무 무리하는것 아닙니까?"
수업이 끝나고 전혀 걱정하는것 같지 않은 얼굴로 기란이 말했다.
"그래 좀 무리하고 있는것 같다. 그런데 여긴 왠일이야?"
"무슨 소리 하는겁니까 다음 시간은 체육이라구요.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란의 말에 벤하르트는 다시 기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글리아스를 만난 날부터 글리아스와 벤하르트의 대결은 학교 내로 퍼졌고 이제는 그것을 구경하러 일부러 과목이 다른데도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 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벤하르트는 그런 시선도 싫었고 글리아스를 상대하면서 진을 빼기도 싫었다.
어김없이 벤하르트는 글리아스를 맞이하고 있었다. 건장하다 못해 거인 취급을 받을 정도로 거대한 글리아스와 벤하르트는 마치 어린애와 어른이 서있는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해주었다.
"준비는 되었냐. 앞으로 4일 남았다고 나를 넘지 못하면 장학생은 없어."
'애초에 필요 없다니까.'
라고 면전에 소리쳐 주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아 내었다. 벤하르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항상 선공은 글리아스에게서 시작되었다. 그것을 맞기 싫다면 싫어도 검을 들수 밖에 없어지는 것이었다. 이미 상당히 공격에 익숙해져서 첫날처럼 당하고 있지 만은 않았다. 팔이 저릴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상대했던 리드는 그보다 더 빠르고 난해 했다. 그런 리드의 검에 익숙한 벤하르트였기에 글리아스의 검에 익숙해지는데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은것이었다.
"역시 재밌어. 조금 더 힘을 올려 볼까?"
속도와 함께 묵직한 힘이 느껴져 왔다. 찌릿찌릿 거리며 저려오는 손 간신히 한쪽 손을 검에 가져가 두팔로 간신히 일격을 막아내고 벤하르트는 글리아스의 다리를 공격했다. 큰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민첩하게 글리아스는 그 공격을 피했다.
"어?"
글리아스가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총 세번 벤하르트는 자신의 검을 막기만 할뿐 공격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것이 아쉬워서 억지로라도 끌어 내려 했는데 오늘은 벤하르트 본인이 치고 들어온 것이다. 글리아스는 어지간한 전투광이 아니었다. 한번 공격을 받았을 뿐인데 기쁨을 느끼며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왠일이지? 네가 공격을 다 하고 말야. 나야 즐거워서 좋지만."
글리아스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검이 움직일때마다 벤하르트의 손이 이상하게 퉁겨나갔는데도 불구하고 한번 움직일때마다 어느샌가 벤하르트의 팔은 다시 글리아스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멀리서 글리아스와 벤하르트가 싸우는것을 본 트레인은 눈을 크게 뜨면서 놀랐다.
"저건?"
벤하르트가 글리아스를 공격할때 쓰는 동작은 조금 더 화려하게 보였지만 분명 연극에 쓰이는 동작들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모두가 즐겁게 그 검무를 바라 보았지만 트레인만은 그 검무를 보면서 치를 떨었다. 연극조차 되지 않는 한쌍의 검무가 자신의 연극보다 더 멋지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벤하르트는 연극에 쓰이는 동작만으로 공격을 하고 있었다. 트레인은 그런 벤하르트를 보고 연극때의 검술은 장난이라는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알았기에 더욱 화가 나는 것이었다.
한바탕의 검무가 끝이나고 아이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오늘의 일전은 전의 2일과는 비교가 안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재밌었다. 하지만 다음에는 그렇게 나를 연습상대로 이용하지 마라. 오늘은 넘어가 주겠지만 말야."
글리아스가 윙크를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벤하르트는 아이들에게 검술 지도 편달을 끝내고 잠시 앉아서 쉬고 있는 글리아스에게 다가가 물었다.
"선생님 하나 질문 해도 되겠습니까?"
"뭔데?"
"과거에 무슨 일을 하셧습니까?"
"남의 과거사를 묻는 건 상당히 실례 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냐? 뭔가 떠오른것이라도 있는건가?"
"그냥 궁금해서 물어 봤습니다."
"그럼 역으로 내가 물어도 될까? 그 나이에 어떻게 그정도의 실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말이지. 아마 대답하기가 곤란할걸? 말해봐야 알맹이는 빼놓고 말하겠지."
벤하르트가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겉으로 보기에 벤하르트는 글리아스보다 훨씬 어려 보였지만 실상은 글리아스가 아버지가 할아버지 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나이 였다. 그런 글리아스에게 반격을 당하자 살짝 웃음이 나온것이다.
'당했구만.'
"확실히 실례했습니다."
"오랫동안 검을 다루면 느껴지는게 있어. 나와 싸우고 있는 이 자의 심리나 이런것들이 막연하게 느껴지거든. 심하면 죽은 사람 횟수까지도 알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정도 까지는 아니고 이것 정도는 맞출수 있지. 넌 지금까지 살인을 한적이 없다는 것. 네 검은 사람의 목술을 노리는 살인검이 아니야. 무의식중에도 확실하게 급소는 맞추지 않았으니까.. 너도 나와 겨루며너 추측한 무언가가 있겠지? 확실하게 라고 까지는 못 말하겠지만 아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내가 선생이 되기 전 직업이었을 거야."
벤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이고 글리아스에게서 멀어졌다. 글리아스가 싸우는것은 얼핏 보면 정확하게 라군델의 기본 검술인것 마냥 보였지만 실상은 그와 반대였다. 글리아스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억지로 라군델의 기본검술을 익혔던 것이었다. 군데군데 휘두르는 검술은 분명 정식 검술에서는 전혀 찾아 볼수 없는 실전의 움직임이었다. 거기에 벤하르트와 싸울때도 전혀 전력을 다한것 같지 않은 여유로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검은 리드의 검과 닮아 있었다. 글리아스가 벤하르트의 검이 살인검이 아니라고 말했듯이 아무리 표본적인 검술로 가렸다고 해도 벤하르트는 알수 있었다. 그의 검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것 이라는 것을. 벤하르트가 생각한 과거 글리아스의 모습은 막연했다.
'전쟁과 관련지은 무언가 였을까?'
그것이 용병이던 군인이던 또 다른 무언가던 벤하르트에게 있어 큰 상관은 없었다. 단지 그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싶었던것 뿐이었다.
"중얼 거리는게 꼭 뭔가에 홀린것 같아 그만 하는게 어때?"
수업이 끝나고 외운것을 반복하는 벤하르트에게 레니아가 말했다. 트레이야와 그 외 연극부원은 이미 연극부실로 올라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
"거의 다 됬어. 이번으로 5번 이니까 아마 대사는 완벽하게 외웠을 거야."
"5번이라니?"
"정확하게 내 대사를 외운게 이번으로 5번. 그래도 네 약이 효과가 있긴 있었나봐. 옛날의 나라면 이런 일은 절대 불가능 했을텐데 말이야."
"별로 그런건 아니겠지. 그건 얼마나 벤이 노력을 했느냐에 따라 다를테니까. 실제로 다른 과목에서도 그렇게 특출나게 잘하는건 없었잖아. 별로 내 약 때문이 아닌 단순히 벤의 노력 덕분이겠지. 좀 장한 일을 했네?"
레니아가 발을 들고 벤하르트의 머리를 살짝 쓰다 듬었다.
"레니아 머리 쓰다듬지마."
"대견 해서 한번 해줬더니.. 나라고 머리가 만지고 싶어서 만진줄 알아!?"
"아니 그게 아니고 머리를 쓰다듬으니 왠지 피로가 몰려와서 졸려."
"한심하기는.. 얼마나 무리를 한거야!?"
"한계다. 지금 돌아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만 연기하고 조금만 쉬어야 겠어."
"한심하고 어리석고 미련한놈아! 연극이 장난인줄 알아? 이런 식으로 무리를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연극하는 사람이 자기 몸관리를 못하면 어쩌자는 거냐! 연극 연습을 했다는것이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이런 뭐라고 말을 해야 되는거냐!"
벤하르트가 그토록 노력하는 것을 트레인이 싫어 할리가 없었다. 연극을 하기 위한 체력조차도 없이 무리한것을 탓하면서도 왠지 깊숙히 벤하르트를 미워할수 없는 트레인이었다.
"아 미안하다. 소리좀 그만 질러. 힘이 빠져서 졸려 온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것을 참으면서 트레인은 소품을 갈아 입었다.
"연습하기전에 하나 물어 볼게 있다. 낮에 네가 글리아스 선생님과 겨루는것을 봤어. 그때 분명히 이번 연극에 나와 쓰이는 장면을 사용했지?"
"그래. 용케도 알아 봤군."
"그래서 말인데 내일 그정도의 박력으로 연극을 할수 있을 방법이 없을까."
"트레인. 하루 남았잖아. 내가 이렇게 대사를 외우고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것만 이틀 아직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네가 하려는건 그보다 더 어려운 거라고,"
벤하르트의 말을 듣고 트레인이 제안했다.
"네가 만약 이번 연습에서 실수 하지 않는다면 말야. 나한테 그 방법을 알려줘. 만약 실수한다면 깨끗이 포기하고록 할테니까."
"반대로 된것 아냐?"
"아니. 이래뵈도 내기에는 강해서 말이지. 내가 너와의 내기에 이겨서 트레이야씨를 이곳으로 끌고 올수 있었다는것 잊지는 않았겠지?"
"그래도 말이지."
"잔말은 필요 없어. 정 싫으면 실수하면 되는거야! 그럼 시작하도록 해!"
트레인은 정말 도박에도 내기에도 강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확신이 서 있을때 내기를 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지난 2일 벤하르트가 보여준 노력과 열정에 대해.. 설사 그 확률이 반반이라 할지라도 그는 망설임 없이 실수 없이 해낸다에 걸수 있었다.
반복학습의 성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트레인의 도박사의 자질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우연이었을까 벤하르트는 군더더기 없는 멋진 연기로 연습을 끝마칠수 있었다. 조용하지만 존재감 있는 악역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 할수 있는 명 연기였다.
"최고야. 최고에요. 이렇게만 나가면 아아~"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루나가 중심을 잃었다.
"정신줄 놓치마라. 또 넘어지잖아. 그건 그렇고 벤하르트 약속 지켜라. 방금전 연기는 최고였다."
최고라는 트레인의 말에 순수하게 즐거워 할수만은 없었다. 트레인이 가르쳐 달라고 하는것은 즉 실전에서의 움직임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것과 같았고 그것이 하루만에 되지 않는다는것은 누구보다 벤하르트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벤하르트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약속이 뭔진 몰라도 지금 당장은 무리겠는걸? 저렇게 되어서야."
벤하르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트레인도 그때만큼은 더 말하지 않고 그가 자는 모습을 바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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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지에서 조금 힘든 일을 하고 나니 온몸이 나른합니다. 포기 하고 싶지만 포기할수 없게 만드는 그 무언가.. 연참대전이 있어서 피곤하지만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반정도는 지났죠? 지났겠죠? 지났을 겁니다. (자기 세뇌중) 달력은 안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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