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80화-심사(2)
심사를 받는다는것은 사실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주목받는것도 당연했고 교사들의 관심도 다른 아이들보다 심사를 받는 쪽에게 더 쏠리기 마련인 것이다. 물론 능숙하게 해결 하기만 한다면 그것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쪽은 배로 힘이 들기 마련인 것이다.
오전의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 벤하르트와 레니아 트레이야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학생식당에 앉아 있었다. 소문은 무성하게 돌고 돌아 그저 걷고 있을 뿐인데도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렸다. 상대적으로 남루하고 평범하게 생긴 벤하르트를 보기위해 모인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중 대부분은 심사를 보러 왔던 두명의 미인 그중에서도 겔트를 멋지게 격파했던 레니아를 보러 온 사람이 태반이었다.
식당의 식사는 맛이 좋았다. 적절하게 맛있으면서도 간편하게 먹을수 있는 식사는 벤하르트의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오전 시간에 들었던 수업에서 벤하르트는 일개 학생들 정도의 기량 밖에는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미 주위 사람들 내에서는 '허풍꾼' 으로 자리잡아 있었다. 애초에 벤하르트 본인은 심사를 보러 오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심히 못마땅했다.
"표정에 다 들어 난다구. 좀더 미소를 짓는게 어때?"
"으. 기고만장하기는."
3번째 과목인 음악 영역에서 멋진 음률을 선보여 좋은 평가를 받았던 트레이야는 벤하르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다. 음악 교사도 그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반응도 걸작이었다. 그리고 벤하르트는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것이 있었다. 점심시간 내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불쾌한 레니아의 시선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노시엘트의 산에 있었을때 레니아가 먹였던 수십종류의 약. 그중에는 동서고금을 통틀어도 존재할리가 없는 진귀한 약도 넘쳐 났다. 하지만 그에 비해 벤하르트가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도 한심했다.
'내가 준 약을 먹었다면 보통으로는 안되. 적어도 남들보다 나은 비범함을 보여 줘야 하는데,'
난처한듯이 레니아를 보고 실실 웃는 벤하르트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더욱 화가 치밀어 연신 쏘아 보기만 했다.
"잘 하고 있어요?"
루나와 트레인이 인파를 뚫고 나왔다. 루나의 물음에 레니아가 대답했다.
"뭐 대충은."
"헤. 이녀석은 뭐 말할것도 없이 낙제겠지? 별로 특별할것도 없어 보이니까 말야. 4일 정도는 버티라구."
'어째서 이런녀석한데 이런 무시를 당해야 할까?'
유슬딘에 와서 좋은 일이라고는 겪어 본적이 없었던 벤하르트의 머릿속은 점차 불만으로 가득해져갔다.
'검을 만드는것으로 시험을 치면 여기에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을.'
하지만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도공이 되기 위한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갑자기 벤하르트는 최근 거의 들르지 않았던 대장간을 방문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누구도 무시할수 없는 자신의 성지에 가고 싶은 욕망을 꾸역 꾸역 참아 넘기면서 그는 다음 쪽지를 들고 다음 과목을 쳐다 보았다.
'검술.'
"다음 시간은 체육의 검술인가? 이건 좀 자신 있겠군 그래? 그때 나를 흠씬 두들겨 패준 것만 보여줘도.."
트레인이 주절주절 말을 늘여 놓자 루나가 물었다.
"그건 무슨 말이야?"
루나의 물음에 트레인은 약간 당황해하면서
"어? 아니 별일 아니야. 그냥 사소한 일이 있었어."
라고 대답했다. 평상시라면 그녀의 말을 못들은척 넘어갈 기회를 보겠지만 한창 이야기 도중이었던 지금 기습적인 그녀의 말에 트레인은 도망칠 기회마저 잃어버렸다.
"어쨋든 4일 간은 버텨 주지 않으면 곤란해. 벤하르트나 레니아는 상관 없지만 최소 트레이야씨는 여기에 남아 줘야 한다고."
넓은 운동장. 운동장이라기 보다 그곳은 흡사 공원과도 같았다. 넓은 곳에 파삭 파삭하게 널린 잔디밭까지 유슬딘에는 따로 공원이 있었지만 아마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곳을 공원이라고 부를것만 같은 운동장이었다. 여자는 따로 검술을 배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선택자에 한에서 검술을 배울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원래가 주된 목적을 군사학교로 잡아둔 유슬딘이었기 때문에 남학생들에게 검술이나 각종 무술을 가르치는것은 기본소양과목중 하나였다. 이 과목은 설사 축제라 하더라도 남학생은 빠질수 없는 중요 과목중 하나인 것이다. 레니아와 트레이야는 검술을 희망해서 운동장으로 나올수 있었지만 남자와 여자는 각각 따로 검술을 가르쳤으므로 벤하르트와 같이 수업을 듣지는 않았다.
체육선생인 글리아스 마난테는 중년의 나이로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채 건장한 체격과 함께 밝은 미소를 풍기고 다니는 호걸의 인상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자 오늘의 수업은 검술이다. 그런데 새로온 신입이 있다고 하던데."
학생들의 시선이 자연히 벤하르트에게 모였다.
"오 너냐? 그래 장학생의 심사를 보기 위해 왔다고? 이름은 벤하르트."
"아 네."
고개숙여 말하면서도 왠지 느낌이 낯설었다. 리드나 트레이야 같은 사람들을 대하는것과는 또 달랐다. 같은 존대라도 대등한위치에서 사용하는것과 상대가 자신을 낮게 여기고 있을때 사용하는것의 차이를 그는 몸소 느끼고 있었다.
"듣자 하니 검을 착용한채 학교에 왔다던데 검술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지?"
"그냥 얼마간 다룰줄만 압니다만,"
"에이구 초보자구먼, 그럼 기본적인 자세를 가르쳐줄테니 잘 보고 따라하도록 해."
글리아스는 목검을 들고 이리 저리 휘둘렀다. 그 자세는 라군델의 기본 검술로서 분명 세간에서는 유명하고 가장 잘 알려진 검술이었다. 하지만 검술 자체가 간단한것은 아니었기에 잘 배운 사람은 상당히 이름을 날릴수 있는 검사의 수준에 오를정도로 괜찮은 검술이었다.
"어떠냐. 검술이라는건 결국 상대를 빨리 제압하는것. 목숨을 취하는 행동과 같지. 그 행동을 위해 기본적인것을 수십 수백 수천번을 단련하는것이다. 자신이 대치해 있는 상대보다 더욱 더 빠르게 서로의 목숨을 취할수 있도록 말이지. 말은 이래도 일단 싸움의 기본이란게 있는거야 예를 들자면 어디보자. 만약 말이다. 이렇게 공격해오면 어떻게 막을거냐!"
글리아스는 목검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벤하르트를 향해 휘둘렀다. 벤하르트는 순식간에 검을 뽑아 들고는 그 일격을 막아 내었다.
"어?"
사람은 자신이 상상하고 있던 생각에서 벗어나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글리아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때릴 생각은 아니었고 분명 머리를 앞에 두고 멈추었지만 눈앞의 청년은 아주 간단하게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 버린것이었다.
"너 기본이 되어 있잖아! 재미 있는걸. 어중이 떠중이들과는 달라. 정식으로 대결해보지 않겠냐. 만약 나를 이긴다면 장학생에 적극 추천해두도록 하지. 다른 과목은 필요 없어. 이곳은 원래가 군사학교니까."
"어이 점수 딸 좋은 기회다. 놓치지 마."
벤하르트의 뒤에서 들려오는 트레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벤하르트는 거절했을때의 레니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가 무엇때문에 화가났는지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잘할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그녀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 주어야 하는것이다.
"좋습니다."
"오오.."
"대단한데? 저 글리아스 선생님에게 맞서다니."
"어이 힘내라. 벤하르트."
받아 들이기는 했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나니 약간 후회감이 들기도 했다. 이겨도 문제고 져도 문제인 결투였던 것이다. 거기에 벤하르트의 목검과 글리아스의 목검은 부딪히지 않았다. 정확하게 자신의 머리 앞에서 멈추어선 목검을 보고 벤하르트는 글리아스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막았지만 만약 글리아스가 휘둘렀다면 충격이 전해졌을것이 틀림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 검이 없으니 진심으로 싸운다고 해도 이길수는 없겠구나.'
대부분의 승리는 벤하르트의 진검 덕에 얻어낸 승리 였다. 아무래도 몸을 푸는것으로 보아 글리아스가 약하다던가 하는 만의 하나의 가능성도 없는것이나 다름 없었다. 다부진 몸에 방금전 시범으로 휘둘렀던 검술을 보면 정면 대결에서 벤하르트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이런 학교에 머물러 있으면 실력이 죽기 마련이거든. 그리고 체육교사중 검술을 제대로 알고 있는건 나 하나뿐이니 가르칠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야. 한번씩은 이렇게 몸을 풀어주는게 좋지. 다른 애들은 아직 덜 됬지만 너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하거든. 시작하자."
학생 하나가 셋의 숫자를 세고 둘은 맞붙었다. 글리아스가 가로로 휘두른 검을 벤하르트가 막아 내었다. 그리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벤하르트의 몸은 붕 떠서 날아가 중심을 잡고 착지했다.
"역시 기본중의 기본이 잡혀 있어. 검술이 아닌 전투나 싸움의 경험 같은 것. 괜찮잖아. 이녀석 어떻게 배운지는 몰라도 말이지. 그 사이에 발을 떼서 내 힘을 중화시키다니."
글리아스의 칭찬도 벤하르트의 귀에는 잘 들어 오지 않았다. 고작해야 막았을 뿐인데도 손이 저려왔다. 리드의 정교하고 빠른 검술과는 또 다른 패도의 검술에 벤하르트는 당황해 했다. 속도도 굳이 따지자면 리드보다는 느렸지만 일반수준은 훨씬 넘어선 공격들이었다. 한두어번 피하고 막고를 반복하고 벤하르트는 거리를 벌렸다. 도저히 폭풍우같은 글리아스의 검을 더 받아낼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항복."
"뭐! 어째서야. 왜 항복을 하는거냐고."
"팔이 저려서 더 검을 들고 있을수가 없는데요."
글리아스는 어린애같이 울상을 짓더니 아쉬운듯이 입맛을 다셧다.
"그럼 어쩔수 없군 조금 완급을 조절할걸 잘못했어. 그럼 내일 다시 붙어 보자. 아마 내일 검술 수업이..."
"선생님 내일 검술 수업 없는데요."
학생 하나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뭐라!! 내일 체육 시간에는 뭐가 잡혀 있는데?"
"그러니까 몸 단련을 위한 기초 체조라는.."
학생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중간에 거대한 그림자가 자신을 뒤덮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것보다는 검술이 훨씬 중요해. 내일 과목은 검술이다. 그렇게 알아둬. 그리고 검술때 벤하르트 너는 나와 함께 대련 한번을 해야 한다."
"네? 왜요?"
"여기 장학생이 되고 싶지 않는 거냐?"
"....."
사실대로 네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을 비롯해서 레니아 트레이야 거기에 트레인과 루나까지 사기꾼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연극때문에 어쩔수 없이 지원하게 되었다 라고 어떻게 말할수 있겠는가. 솔직한 심정으로 벤하르트에게 트레인은 어찌되어도 좋았으나 루나나 그외의 사람들에게 까지 피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요."
"그러니까 나와 대련을 하면서 나를 능가해봐. 아니 버티기만 해줘도 되. 내가 절대적으로 추천장을 써주지. 매일 대련 한다고 약속하면 말야. 지금 당장이라도 써줄수 있어."
"아니 그건 좀.."
"하긴 이건 좀 심했다. 좀 비리가 묻어 나오는 말이었군. 그러니까 대련으로 장학생 심사를 넘는게 가장 수월 하다는 말이지."
벤하르트는 눈앞의 대련 중독 교사가 왜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나도 학생이 다칠정도로 심하게 하는건 아니니까. 몸풀이를 하듯이만 하면 되. 딱히 나쁠건 없지."
글리아스의 말에 다른 학생들도 이구동성으로 찬성을 하면서 물고 늘어 졌다. 글리아스의 검술과 그것을 막아내는 벤하르트의 검술을 보는게 생각외로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화려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벌서부터 그것을 흉내내고 있기도 하였다.
"알겠습니다."
"알았다고 하는데! 여기 있는 너희들이 증인이다 알겠지?"
"네!"
"그리고 정면 머리치기 100회씩 시작해라. 언제까지 놀고 있을거냐?"
"에휴.."
수업을 시키는 선생님과 그것에 실망하는 학생들은 어느 과목이나 다 비슷한것을 보면서 벤하르트는 그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생활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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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서 연참대전이 몇일짼가요. 모르겠지만 그냥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참고로 오늘은 한시간만에 써냈네요. 이렇게만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유슬딘편 빨리 쓰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말입니다. 별로 중요한 챕터도 아닌데 시간은 무진장 잡아 먹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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