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76화-유슬딘(2)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각자 목검을 하나씩 사고 트레인을 따라 벤하르트는 마을의 시내를 나섰다. 마을을 나서서 얼마간 지나자 트레인의 학교 유슬딘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려는건데?"
"따라와 보면 알게 되."
유슬딘은 마을과 동떨어져서 작은 숲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나무와 덕지덕지 이루어진 풀로 뒤덮여진 유슬딘은 입구를 제외하면 새하얀 벽으로 녹색의 숲을 막아내고 있었다. 마을에서 통학하는 학생도 여럿 있었지만 기본이 기숙사제도인 까닭이다.
유슬딘의 벽을 따라 이동해 도착한곳은 작은 공간이었다. 인위적으로 풀과 잔나무들을 베어냈다는 티가 풀풀 풍겨나오는 곳이었다.
"이정도면 충분히 할만 하겠지?"
"뭐 그렇군."
트레인은 목검을 털어 내더니 벤하르트를 향해 겨냥했다.
"그럼 시작하자고."
벤하르트도 목검을 들어 내었다. 벤하르트는 트레인과는 달라서 차근히 시간을 들이는것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었던터라 그의 결단성에 약간은 마음이 흔들렸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으로 트레인과 마주했다. 무엇보다 그는 트레인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를 되새김질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벤하르트의 머릿속을 멤돌기 시작한 가운데 트레인은 빠르게 벤하르트를 향해 접근해왔다.
처음 만났을때와 별반 다를바 없는 움직임이었다. 무엇인가가 엉성한 트레인의 일격을 가볍게 받아 넘겼다. 벤하르트와 트레인의 차이는 이미 명백했다. 시작한지 5분여 지났을까. 군데군데에 상처를 입고 트레인은 벤하르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 이제 누가 이겼는지 알겠지?"
"무슨 농담을 아직 나는 졌다 라고 말하지 않았잖아. 안그래?"
그제서야 벤하르트는 왜 트레인이 그런 조건을 내세웠는지 알수 있었다. 처음부터 트레인은 항복을 할 생각없이 자신이 이길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절대 못이기더라도 상대방도 이기지 못한다면 분명 이기는것은 자신이 될것임이 뻔했다.
"너.."
벤하르트가 검을 움직였다. 아직도 기운 팔팔한 트레인이었지만 한방 한방 맞는것에 고통을 느끼는것은 당연했다. 고통에 찡그린 얼굴로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벤하르트를 향해 돌진했다. 하나 둘 연격을 막으면서 다시금 트레인의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목검이어서 눈에 뜨이는 상처는 아니었지만 얼마나 고통이 심할지는 때리는 벤하르트가 느낄 정도였다.
"이제 그만하자. 아무리 연극이 중요하다 해도 자신의 목숨과 저울질 할수는 없는 일이잖아? 더 하다간 정말 죽을지도 몰라."
쓰러져 있는 트레인에게 더 때리지 못하고 벤하르트는 검을 접었다. 기절이라도 시키고 싶었지만 트레인의 눈을 보면 알수 있었다. 설령 어떠한 강력한 타격이 들어간다 해도 트레인이 기절하지 않고 버틸것이라고 벤하르트는 확신했다. 그렇기에 벤하르트는 더 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원래 그는 사람을 죽여 본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물며 이런 일로 사람의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것에 매달릴수는 없는 일이었다.
"검을 접다니.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 분명 말했지? 항복하는..쪽이.. 지는..거라고.. 이건 억지가..아냐 지극히..당연한 것이다.. 나..는 이것..때문에 그런 조건..을 제시..한거니까. 만약 이것..으로 이겼다 라고 칭..한다면 너..의 억지..다."
말도 제대로 이을수 없을 정도로 그는 힘겨워 하고 있었지만 그 눈가의 독기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눈에 현혹이라도 된듯 벤하르트는 검에서 힘을 빼고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문제로군. 설마하니 이렇게 되어 버릴줄이야."
쓰러져 있는 트레인을 두고 벤하르트는 곰곰하게 생각했다. 이대로 트레인에게 졌다고 치부 할경우 그는 약속을 지켜야만 했다. 원래가 약속 같은것을 잘 어기지 못하는데다 트레인을 저 지경까지 만들어 놓고 빠질 정도로 그의 성격은 모질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트레이야가 문제였다. 분명 사연이 있어 보였는데 그것을 자신 때문에 가르쳐 주라고 하기도 뭐했던 것이었다. 거기에 까지 생각이 미치자 벤하르트는 다시 목검을 들고 트레인에게 걸어 갔으나 도저히 그를 내리칠 행동에 까지는 이르지 못했고 그러한것이 한참이나 반복 되었다.
'정말 우유부단한 놈이군.'
방황하는 벤하르트를 보면서 트레인은 조소를 머금었다. 실제 많이 다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더듬을 정도 까지 다친것은 아니었고 눈앞의 벤하르트가 망설이는것을 보니 자신의 생각이 제대로 적중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하리라는 것은 이미 결정된것이나 다름 없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벤하르트같은 사람이 선택할 길은 정해져 있었다.
"좋아. 졌다. 트레이야에게는 내가 말을 해볼게. 그런데 정말 안될수도.."
"안돼. 애초에 처음 약속 했었잖아? 약속을 절대적으로 지키라고 말야. 이겼기에 망정이지 졌다면 나도 얌전히 물러 났을거야. 처음부터 나를 떼어 내기 위해서 내기를 걸었다면 자신도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뤄야지. 무조건이다. 만약 못하겠으면 이건 어때? 이제부터 내 명령에는 전부 복종하면서 지내는 거야. 하인이 되는거지. 요점은 말이지. 실행 하면 되는거야."
"어이. 도대체 뭐야? 아까랑 다르잖아."
"당연하지. 그렇게 연기한거니까. 속은 쪽이 잘못이라고. 아무리 내가 약해도 몽둥이 몇대 맞았다고 그런 꼴이 될것 같아?"
질린 얼굴로 벤하르트는 트레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는 깨달았다. 상대가 더 다쳤다고 해도 분명 지는것은 자신이 될것이라는것을.. 차라리 이정도 선에서 끝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니 되려 마음을 편히 할수 있었다. 하지만 여관의 트레이야를 상상하면 그런 작은 행복 따위는 행복도 아니었다.
"그래도 사정이란게 있을테니까 설득할 시간으로 딱 2일 주겠어. 연습도 해야 되고 이쪽도 바쁘니까 말야. 모레 찾아갈테니까 꼭 성사해 놓으라고.."
그 말을 끝내고 트레인은 유슬딘의 벽쪽을 몇번인가 만졌다. 쿵 하는 약한 소리와 함께 아랫쪽에 비밀 문이 생겼는데 그곳을 기어들어가면서 트레인이 말했다.
"알겠지? 기한은 2일이다. 잊지마."
마치 사형선고 같이 다가오는 그의 말에 벤하르트는 한참이나 그자리에 서 있었다.
"뭣이라고!!! 제정신이야? 정말이지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돌아오면서 수십번 고민한 끝에 벤하르트는 여관에 들어서자 마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미안. 정말 이리 될줄은 몰랐어. 7:3 정도로 이쪽이 이길줄 알았거든."
"설사 절대적으로 이긴 다고 해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받아 들였어야지. 저번에 내가 중요한거라고 분명 이야기 해 줬잖아."
"정말 미안해. 귀찮아 하는것 같아서."
"하아. 설사 선의라고 해도 참 난감하네. 좀더 확실하게 이야기 해 주었어야 하는건가."
"바보로구나 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갔을텐데 괜히 나서서 그런 꼴이 되어 버리다니 말야."
레니아의 말에 꼼짝할수 없이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래서 가르쳐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건데?"
"그게.. 내가 평생 하인이 되어야 한다는데..?"
그 말과 함께 벤하르트는 정신을 잃었다.
"어? 내가 왜 누워있지? 분명히 여관에 와서.."
생각을 떠올리려던 차 오싹하게 등골이 저려온 까닭에 벤하르트는 생각하길 관두었다. 시선을 돌려 보니 레니아와 트레이야가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어쩔수 없지. 가르쳐 주도록 할게. 아 아버지의 유품이 벤하르트때문에 유포되어야 한다니. 정말 괴롭군. 그러니까 쓸데없이 나서지 말란 말야."
"벤 나도 방금전에는 살짝 화가 났거든. 그런 일은 좀 자제해줬으면 좋겠어."
레니아의 말을 듣고 나서야 방금전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벤하르트는 이해할수 있었다. 두 여자의 합격에 단번에 기절해 버린 것이다.
"알았어 자중하도록 할게."
벤하르트가 누군가를 위해서라고는 해도 이렇게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기껏 나서서 욕만 먹고 맞기만 하고 괜시리 손해만 보게 되자 그의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분명 자신이 잘못한일이었기에 반박할수 없는 점이 더욱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말야. 그녀석 배울수 있을지는 의문인데?"
"그건 무슨 말이야?"
다소 퉁명스러운 어조로 벤하르트가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 그때 가서 보면 알아. 그리고 벤하르트 말투좀 고쳐. 그래서야 금새 자신의 생각을 들켜 버린다구."
트레이야의 말에 레니아가 킥킥 거리면서 웃었다. 더욱더 기분이 상해 인상을 쓰고 벤하르트는 돌아 앉아 침묵하기 시작했다.
벤하르트에게 승리를 얻고 나서 트레인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학교안 여학생 기숙사를 향해 걸어갔다.
"어이 루나 있냐?"
"어? 트레인이네. 지금 바쁜데 나중에 와 줄래? 꺄아."
무언가 물건 떨어지는 소리에 트레인은 그녀가 있는 2층으로 재빨리 올라갔다. 루나 라고 불린 소녀는 책에 둘러 쌓여 허우적 대고 있었다. 그녀는 단발머리에 귀여운 외모를 가진 소녀였다.
"나 참. 덜렁 거리기는 바쁘다고 해도 좀 들으라고 드디어 이 내가 그 곡을 손에 넣었다는 말씀이지. 어때 놀랐지?"
"도대체 그 곡이 뭐길래 그렇게 좋아하는 건데?"
"그렇게 나를 못믿겠어? 그야 말로 우리의 연극의 마지막을 장식할만한 최고의 음악이라고. 아 생각만 해도 짜릿하군."
트레인은 눈을감고 잠시 트레이야의 음악을 떠올렸다. 그 사이 그녀는 몸을 일으켜 품새를 단정하게 갈무리 했다.
"어쨋든 들어 보면 알거다. 근데 뭐하고 있었어?"
"주임 선생님의 지시때문에 책을 옮기고 있었는데 네 목소리에 놀라서 넘어져 버렸잖아."
'내 책임은 아닐텐데.'
루나는 학교에서도 덤벙거리는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녀가 넘어진것에 트레인이 부른것도 그 이유중 하나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라면 언제 떨어 뜨려도 이상할것이 없는 것이다.
"뭐 그럼 사죄의 의미로 좀 도와 주도록 하지. 어디 까지 나르면 되는데?"
"여 기숙사 관리실까지 가져다 주면 된다고 했어. 그런데 말야. 여기 여자 기숙사라고. 왜 너는 항상 당당하게 들어 오는건데?"
"뭐야. 지금은 낮이잖아. 밤이라면 몰라도 낮에 용무가 있어 들어오는것도 안되냐?"
"당연히 안되지! 네가 들어오는 바람에 애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퍼지잖아. 피곤하다구. 애초에 내가..."
그녀의 불평은 멀리서 들려오는 트레인의 목소리에 막혔다.
"어이 뭐하냐 얼른 내려오지 않고 네것도 그 옆에 두었으니까 빨리 들고 내려 오라고."
'크으 남의 말 안듣는건 여전하잖아 정말.'
투덜투덜 거리며 불평하면서 그녀는 총총 걸음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
연참대전 참가 했습니다. 한달 동안이나 글을 안올렸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과거의 성실함? 을 되찾고 싶네요. 자 가봅시다. 연참대전의 완주를 향해!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