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72화-출(出)(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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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야와 함께 여행을 재개한지도 이미 5일째 음식은 바닥이 난지 오래였고 셋의 어깨는 늘어져 있었다. 전날 저녁부터 아무런 식사도 하지 못한채 노을지며 사라지는 해를 보며 벤하르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벤 얼마나 더 가야 되는거야?"
"듣지 않는게 좋아."
허기로 인한 짜증과 절망을 다같이 나눅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는 아무렇게나 지도를 꾸겨서 바지에 쑤셔 넣었다.
"아아악 이대로는 못참아. 대르나드에서 조차 굶어 본적은 없었는데 어째서 이런 즐거운 여행길에서 조차 굶어야 하는거야!"
"원래 남의 떡이 커보이는 법이죠. 동경하던 길을 걸어봤는데 알고보니 수라의 길이더라.. 라는 말도 있듯이."
"몰라 그런 어려운 말은. 아 배가 울려온다."
벤하르트는 인정하기 싫은듯 주머니에 손을 가져 갔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표식을 비교해 보고 그는 고개를 젓는데 적어도 2일은 더 가야 하는 거리에 머릿속은 혼잡해져 왔다. 샤이 한국의 지도와 라군델의 지도는 표기 단위가 달랐다. 기초중의 기초였지만 샤이 한의 지도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던 벤하르트의 실수라 하면 실수였다.
'한번 걸었던 길을 잊어버리다니'
수개월전 거진 반년에 가까운 시간의 일이었다지만 노인이었을때의 기억은 그의 머릿속에서 흐릿해져오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 까지 가는데 몇일이 걸리는가? 하는 주제는 쉽게 떠올릴법도 한데 안개의 길을 걷는듯 애매하기만 했다. 분명 걸어 왔다는것을 알면서도 마치 처음걷는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하지만 길을 걸으면서 어딘지 낯설은 느낌이 들어 새삼 그는 자신이 이 길을 걸어 왔다는 사실을 깨닺는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금새 현실앞에 막혀 버렸다. 배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다시금 그의 어깨가 쳐져 왔다.
"여튼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될겁니다 힘내도록 하죠."
때로는 거짓말도 필요한 법이라고 벤하르트는 생각했다.
"저어기~ 벤하르트 조금 이라는건 어떤거야? 몇시간을 걸어도 마을의 마 짜도 보기 힘든게 조금인거야?"
"베엔.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되는거겠지?"
조금이라도 더 기운을 내서 행군 하려고 내뱉은 말은 점점 벤하르트를 조여오고 있었다. 더 이상 거짓말을 했다가는 제 명에 못살것 같아 벤하르트는 지도를 꺼내들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이고, 미 미안. 지도를 잘못 봐버렸네. 그 뭐냐 앞으로 딱 하루 남았어."
"뭐어어!!"
양쪽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맞고 벤하르트는 벌렁 누웠다. 레니아의 손도 매서웠지만 트레이야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힘의 아주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벤하르트는 잘 알고 있었다.
"아 근데 왜 맞아야 하는거야. 난 선의로 그런말을 한거라고,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자는 의미에서.. 흡."
레니아와 트레이야가 손을 만지면서 벤하르트를 쏘아보자 그는 입을 다물었다.
"새를 잡자."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 여행길의 한복판에서 트레이야가 제안했다.
"새라니."
"잘 생각해봐. 지금은 봄. 아니 슬슬 따스함이 더워질정도의 시기 어딜가나 생명은 존재하기 마련이지. 그중에서도 가장 발견하기 쉬운건 단연코 말하건데 새라는 말씀. 저기 봐 날아가는 새가 참 탐스럽게 보이지 않아?"
"그런건 알지만, 어떻게 잡느냐가 문제겠죠."
트레이야는 놀란 얼굴로 벤하르트를 바라 보았다.
"그거야 벤하르트가 잡아야지. 그 검으로 빛을 조절할수 있잖아?"
"아니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요."
"왜?"
레니아도 궁금한듯이 벤하르트에게 물었다.
"어 그러니까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위험할때만 그런 기술을 사용하는건 아니잖아. 보이지 않게 연습을 하긴 하는데, 마침 기회니까 보여줄게. 검으로 낼수 있는 빛은 이게 한계야."
검을 뽑아들자 백색의 빛이 금새 검에 맺히기 시작했다. 그 검을 휘두르자 얼마간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던 빛은 곧 반짝이며 사라졌다. 도저히 높은 공중에 이르게 쏘아 낼수는 없어 보였다.
"알겠지? 저기 저 새를 잡는다는건 불가능하다는거야."
"호오, 근데 벤하르트 그건 어떻게 하는거야?"
"그래 시.. 나도 궁금한데,"
신인 나도 본적이 없다. 라고 말하려던 레니아는 트레이야를 보고 살짝 말을 돌렸다. 막연하게 벤하르트의 기분과 관련 되어 있다는것을 빼고는 그녀로서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녀뿐 아니라 벤하르트도 정확히 기술의 정체를 파악할수 있을리가 없었다.
"나라고 뭐 알겠어. 어느 순간엔가 부터 사용할수 있게 되었다고 밖에는, 뭐 구체적으로 내가 사용하는건 아니지만,"
"벤하르트가 사용하는게 아니면 뭐야?"
"그 빛은 제가 아닌 검이 내는 것이거든요."
그 이야기를 듣고 트레이야는 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나 몇번 휘둘러보고는 전혀 반응하지 않아 금새 포기하고 벤하르트에게 돌려 주었다.
"사실 나는 새를 잡을수 있어."
트레이야는 중요한 고백을 하는듯 고개 숙여 말했다.
"정말?"
"정말입니까?"
레니아와 벤하르트가 동시에 반문하자 그녀는 분홍 머리를 살짝 돌리면서 웃었다.
"운이 좋다면,"
곧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트레이야는 작은 돌 하나를 들고 날아 다니는 새를 향해 힘껏 던졌다. 마치 유성이 떨어지는것을 반대로 보는듯이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돌은 공중으로 올라갔는데 그 방향이 새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아."
그 후로도 몇번인가 더 던졌지만 결과는 같았다. 몇번인가는 전혀 목적한 곳으로 날아가지 않고 다른곳을 향했는데 그런 명중률로 새를 잡는다는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알겠지. 맞기만 하면 새는 그자리에서 다운이지만 맞지를 않아. 심심할때마다 연습했는데도 안되더라구,"
"버티기는 힘들지만 정 뭐하면 하루정도는 굶어서 마을로 강행하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은데."
벤하르트의 말은 아주 조용하고 음습한 기운에 묵살 당했다.
"이대로는 잠도 못자겠어. 무슨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보면 이게 다 벤하르트 때문 아냐?"
벤하르트의 몸이 흠칫 떨렸다. 분명 따지고 보면 그의 잘못일수도 있었다. 벤하르트의 시선이 움직였다. 레니아도 수긍 하는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불만 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말을 꺼낸 트레이야는 말할것도 없었다. 분명 자신의 잘못이기는 했지만 벤하르트는 순간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그 거금을 털어서 트레이야의 빚을 청산해 준것이 본인인데도 매몰차게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억울한 까닭이었다.
"하아.. 차라리 이럴때는 마수가 덮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마수?"
벤하르트는 대르나드에 도착하기전 숲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물론 신에 대한 이야기는 제외했다.
"나도 대르나드로 들어오는 마수의 고기를 몇번인가 맛본적이 있는데 생김새와는 다르게 참 맛이 좋지 마수는."
입을 살짝 벌리고 고인 침을 그녀는 꿀떡 삼켰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오갔다.
"이대로 굶은채로 있을수는 없을테니 최대한 노력이라도 해보도록 하죠."
벤하르트는 뒷춤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네개의 단검을 늘어 뜨리고는 하나하나의 능력을 트레이야에게 설명해 주었다.
"굉장하잖아. 벤하르트 도대체 이런건 어디서 손에 넣은거야?"
"에 그냥 뭐.. 제가 만들었어요."
"만들었다고?"
"지금은 못만들지만, 재료가 없거든요. 뭐 그렇게 알아두세요. 그나저나 옛날에는 여기에 쇠사슬을 걸어 사용했는데 지금은 짐을 줄여 오느라 쇠사슬도 없고 혹시 밧줄 같은거 없을까요?"
그의 눈이 트레이야에서 레니아로 번갈아 움직였지만 둘다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던지면 안되?"
"내려 올때 어떻게 하려구요. 박힐때 좋은 꼴 보기는 힘들텐데, 꼭 필요하지 않을때는 마수같은게 나오더니 필요할때는 절대 안나와주는군."
"한번만 해보자. 이제 시간도 별로 없어 어두워 지면 새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못하게 되니까."
"그래 벤. 빨리 트레이야에게 영검을 건네줘. 믿져야 본전 아냐."
레니아까지 트레이야의 편을 들고 나오자 벤하르트는 바닥에 놓인 염령검을 트레이야에게 건네 주었다.
"검신에 뭔가가 닿으면 폭발하니까 조심하시고 제발 받을수 있게 던져 주세요. 이런 일로 염령검을 잃고 싶지는 않으니까,"
"너무 쫌생이 처럼 말하지 말아줘 나도 그정도는 숙지하고 있다는 말이지."
"쫌생.."
"힘내 트레이야."
"오오."
벤하르트의 중얼거림은 다시 가볍게 무시당했다. 팔을 붕붕 휘두르면서 트레이야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떼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했지만 몇마리의 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검을 불끈 쥐고는 공중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다음에 펼쳐진 광경에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염령검은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공기를 찢으며 불덩이를 흩뿌리면서 날아갔는데 마치 거대한 화염바퀴가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새들이 그것을 피할수 있을리 없었고 찍 하는 소리와 함께 다섯 마리의 새가 떨어졌다.
"좋아. 최고야."
"굶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레니아와 트레이야는 기뻐하고 있었다.
"배부르게는 못먹겠지만 이정도면 한끼 식사정도는 되겠지. 정말 잡을수 있어서 다행이야."
"아니 그보다 염령검은 어디 까지 날아간 겁니까."
기뻐하는것 조차 잊고 염령검이 사라진 공중을 계속해서 응시하던 벤하르트가 말했다.
"어 어라? 멀리 날아가 버린건가?"
"수직으로 날아간것 같았는데 높이 올라가버려서 이미 보이질 않는데요. 응?"
공중에서 뭔가 반짝인듯 싶더니 곧 거대한 불이 아래로 내려오는것을 발견할수 있었다.
"레니아 트레이야씨 피해요!"
그 와중에도 벤하르트의 손은 레니아를 끌어 당기고 있었다. 염령검이 땅에 닿자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구덩이가 생겼다. 지글거리는 화염이 구덩이에서 피어 올랐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유달리 멀쩡해 보이는 염령검이 박혀 있었다. 그 광경에 레니아와 트레이야 심지어 벤하르트 마저 할말을 잃었다.
"앗 뜨뜨."
불에 둘러 쌓여 있었던 까닭에 바로 손에 데일 정도로 검은 뜨거웠다.
"아무래도 조금 기다려야 될것 같은데,"
"아 마침 잘됬네 여기 불에 새를 익혀 먹으면 되겠다. 자 각자 한마리씩 새를 가지고,"
트레이야는 새를 건네 주고는 자신이 든 새를 불에 가져 갔다.
"아니 잠깐만요. 트레이야씨 그 새를 그냥 구워 먹을 생각이에요?"
"그런데 왜?"
"깃털은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 보통은 빼고 먹는다구요,"
"아~ 그렇군. 사실 조금 이상하게는 생각하고 있었지. 이대로 먹어야 하는가 하고 말이야."
손을 살짝 살짝 저으면서 미소짓는 트레이야를 보면서 벤하르트는 그녀가 그대로 구워 먹는것에 의심하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새를 잡고 깃털을 잡아 뜯으려 하는 트레이야에게 벤하르트가 말했다.
"주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트레이야만?"
"레니아 너도."
벤하르트의 앞에 새들이 놓였다. 검은 예리했기 때문에 쉽사리 새의 살을 파고 들었다. 레니아는 불 앞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트레이야는 새를 바르는 벤하르트를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 보았다.
"오 그렇게 하는거구나."
시뻘건 피가 흘러 나오는데도 눈하나 돌리지 않고 그녀는 새를 바라 보았다. 벤하르트는 새를 정리하고 주위에서 나무조각을 몇개 찾아 내어 새의 꽁무니에 박았다. 준비하는동안 식어 있는 염령검을 들어 불을 피우고 새를 익히기 시작했다.
곧 좋은 냄새가 주위로 퍼져 나갔다. 레니아도 책을 덮고 벤하르트의 근처로 와서 익어가는 고기에 눈을 돌렸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그녀라 해도 허기에 맛있는 고기냄새를 억지로 버텨가면서 까지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미 한번 읽었던 책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한것은 당연했다.
고기가 다 익자 벤하르트는 그녀들에게 고기를 건네 주었다. 새의 내장을 다 제거 하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고기를 트레이야는 한입 베어 물었다. 살면서 여러 고기를 먹어 보았고 이런 평범한 새고기 같은것보다 더 좋은 고기도 많이 먹어 보았던 그녀였지만 구덩이에 앉아 먹는 새 맛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왜 그럴까. 단순하게 소금친 고기 밖에 되지 않고 텁텁한데도 엄청나게 맛있는것 같아."
따로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대답하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될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트레이야는 무려 두마리나 순식간에 먹어 치웠고 남은 세마리를 두고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티격태격 했지만 곧 레니아의 새는 레니아의 배로 들어가게 되었다. 식사가 끝나고 나니 어느덧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는데 구덩이는 좋은 휴식터가 되어 주었다.
"여행이란거 상상했던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야."
"그렇겠지."
"힘들고 음식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할수 있는것도 아니고 이렇게 누구처럼 계산을 못하면 굶어야 하고,,"
"윽."
내심 벤하르트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찔끔한 마음에 살짝 탄성을 내질렀다.
"그렇지만 역시 여행이란 나쁘지 않은것 같아."
"후."
레니아는 그녀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 옛날 길고긴 시간동안 반복되는 일상과 연구의 나날들 너무나도 많은 가능성을 보았기에 더 진척되지 않는 연구와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버린 그 옛날의 일은 지금에 와서는 진정으로 옛날의 일이 되어 버렸다. 여행에는 불만도 즐거움도 행복이나 괴로움도 따라 다녔지만 어느 하나 후회는 없을정도로 여행은 좋았다 라고 말할수 있었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트레이야와 신으로서의 삶을 무료하게 생각하고 있던 레니아는 어찌 보면 닮은꼴과 같았다. 타닥 소리를 내는 모닥불과 침낭에 들어선 그들은 구덩이에 등을 기대었다. 유난히 맑은 하늘의 별을 보며 그렇게 그들의 밤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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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가 아주 골을 썩이네요 결국은 (2) 로 넘겨 버렸지만, 20분이나 걸려서 생각했더니 결국은 원점. 때로는 단순한게 더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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