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69화-처음
청년이 사라지고 난 후 잠시 정적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하나 말을 꺼낼 생각도 않고 주위만을 살폈다. 그리고 그 정적을 참다 못한 트레이야가 말을 꺼냈다.
"저기.. 우선 돌아가는게 어때?"
벤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따라 레니아도 걸음을 옮겼다. 온갖 잡념과 함게 그들은 쓰레기장을 뒤로 했다.
여관으로 돌아온 후에도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분위기에 자연히 트레이야도 아랫층에 머물렀다. 묻고 싶은것은 많았지만 침체된 분위기는 그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두근 거리는 감정을 진정시키면서 벤하르트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언제 까지 그렇게 침묵으로 일관할수만은 없던 까닭이었다.
"레니아 몸은 괜찮아?"
"응? 어."
벤하르트가 말을 걸어 오자 그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일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에 화가 났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쓸데없이..'
그가 한 행동이 벤하르트를 도발하려 한 행동이었다는것을 레니아도 알수 있었다. 마치 그 남자의 손에서 놀아난듯한 느낌이 들어서 더더욱 짜증이 났다. 그녀의 기분이 나쁜것에는 벤하르트와의 어색함도 일조를 하고 있었다.
"하여간 어느곳에서도 조용히 지나갈 날이 없군,"
푸념조로 벤하르트가 말했다.
"동감. 이번만큼 불쾌한 적은 처음이야."
"불쾌했구나."
"뭐가 불쾌한건지는 알고 있어?"
"으음. 그 이.. 이 마을?"
입맞춤이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벤하르트는 말을 바꾸었다.
"음. 그거 말고, 아 사실 마을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됐어 거기 까지만 하자. 피차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는 알겠는데 굳이 그걸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거 말인데, 그렇게 내색 하지 말아 주면 안되? 물론 그렇게 마음대로 될일은 아니지만, 보고 있는 내 입장도 생각 해줘. 티 안나게라도 해주던가 해주면 좋은데,"
"그렇게 티가 났나."
'정말 어린애가 따로 없군, 그렇게 들어내다니..'
자책하면서 벤하르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신경 쓰여?"
그렇게 물어오는 레니아에게서 시선을 피하고 벤하르트가 말했다.
"뭐 조금은."
"소설 같은데에 보면 첫키스는 달콤하다. 라던가 뭐 기분이 좋았다 라거나 하잖아. 그런건 다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아주 역겨웠어."
그녀는 아주 질색을 하며 말했다. 그 말에 벤하르트는 충격을 받은듯 굳은 얼굴로 레니아를 쳐다 보았다.
"왜?"
"저.. 첫키스였다고?"
"그런데 왜?"
'괜한걸 들어 버렸군, 그나저나 수천년을 살아왔다는 신이 키스 한번을 안했다는 건가,'
레니아의 말대로 내색하지 않으려 생각을 않하려고 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처음'이라는 말이 오르 내렸다.
벤하르트는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표정을 밝게 바꾸었다. 내면을 숨기는 일 따위 벌써 수십년전부터 익숙해진 일이었다.
"책은 말야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지만 분명 읽은 사람에게는 지식이라는 것을 주게 되지. 책은 허구도 있고 진실도 있지만 어느 하나 자신에게는 경험이 되는거야."
레니아가 뜬금없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벤하르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맞는 말이긴 한데 왜."
"어떤 상황이던지 묵혀 둬서 좋을건 없거든 책을 읽으면서 말이지. 얻은 교훈이 있다면 그거야. 절대 그렇게는 행동하지 말아야지. 하는것. 벤 우리가 같이 다닌 시간이 얼마나 되었지?"
"음 5개월 정도인가?"
살짝 눈을 위로 굴리며 벤하르트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다 보인다는 거야. 너무 서툴러. 평상시와 같은 표정이 아니잖아?"
나름 표정관리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적나라하게 그녀로부터 그런 소리를 듣자 약간 침울해 졌다.
"레니아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 이야기는 이제,, 어?"
시간이 멈춘듯 했다. 바로 몇분전의 일의 재래 한듯 했다. 하지만 그것의 기분은 정 반대였다. 찰나의 순간이 영겁처럼 느껴진듯 하면서도 정신을 차려보니 얼굴을 돌린 레니아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걸로 됬겠지."
"되다니,,"
"이건 나의 의지로 '처음' 한거니까 이제부터 징징 대는 얼굴 하지 마. 앞으로의 여행길에서 한번만 이 일을 꺼낸다거나 침울해 진다면 가만두지 않을테니까,"
들은듯 듣지 못한듯 벤하르트는 멍한 표정으로 레니아를 보고 있었다.
"어이 듣고 있어? 참고로 벤 너한테는 으으,, 여행을 할때 그런 얼굴로 있어서는 안되니까, 에에이! 내가 왜 변명을 해야 하는거야!"
레니아는 머리를 흔들더니 얼굴을 붉히고는 벤하르트를 노려보았다.
"알았어. 별 뜻은 없었다는걸 말하고 싶었던 거지? 알아서 생각할테니까 걱정 하지 마."
묘하게 신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레니아가 얼마나 큰 결심을 한것인지는 두말할것도 없었다. 방방 뛰지 않는것만으로도 신기한 일이었다. 얼굴을 붉힌 그녀의 얼굴을 보자 벤하르트도 얼굴을 숙였다.
"그래 어땠어?"
"뭐?"
레니아는 자신을 몰아붙힌 벤하르트에게 보복이라도 하는듯 물었다.
"어이. 그런걸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해?"
"뭐야. 그 대답은."
눈을 반쯤 내리 깔고 레니아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더는 물러날곳이 없다는 것을 벤하르트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조"
"조?"
"그냥 더듬 대는 것으로도 답은 다 알고 있잖아. 그만좀 괴롭혀."
"그래도 끝까지 듣고 싶어지는게 심리 라는 것이겠지?"
벤하르트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녀가 이미 아는 사실을 말하는 것인데도 차마 입이 쉽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좋았어."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지. 하지만 역시 짜증나."
"그렇게 짜증난거야?"
벤하르트는 자신에게 한 그 입맞춤이 짜증났나고 생각하고 어깨를 늘어 뜨렸다.
"짜증나지. 이 상황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배로 갚아 줘야지."
'뭐야 그쪽이었나?'
"그건 그렇고 레니아 너는 어땠는데? 그 뭐냐 기분이."
멋쩍은듯 턱을 긁적이면서 벤하르트가 물었다.
"나한테 그런걸 묻는거야?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됬는데,"
"아니 그래도 궁금하니까, 아니 아는것도 조금 두렵긴 하지만,"
"글세. 어땠을까."
몸을 돌려 그녀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직도 자는군 뭐 언제나의 광경이지만,'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다른 마을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대르나드는 아침이 조용했다. 반대로 아침을 제외한 시간은 전부 시끌 벅적 했다.
"휴우."
작게 레니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수천년을 살면서 어제와 같은 일이 있을거라고는 생각해본적도 없었는데,'
벤하르트와 겪었던 위기 상황이야 언제든 있을수 있는 일이었다. 오랜 기간동안 그보다 더한 어려움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어제와 같은일은 질이 달랐다. 어느것하나 자신의 주체를 걸고 넘어진일은 없었다. 목숨을 원할지언정 자신을 걸게 되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분명 자신의 의지로 움직였다.
슬쩍 그녀는 벤하르트의 자는 모습을 바라본다. 세상 모르고 자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한심해 보일수가 없었다. 적어도 자는 모습만 따진다면,
"인간 주제에 정말 건방지다니까, 참. 모든것이 내가 바라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건 이런 기분일까. 나도 이래서는 완전히 인간이겠는데."
'그래도 이렇게 살기에 인간세상은 재미 있는 것이겠지.'
여행을 하면서 위험하고 마음먹은대로 일이 풀어지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무료하지는 않았다. 수천년간 맛봐왔던 무료함은 어디서도 찾을수 없었다. 어느쪽이 더 사는것 같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당연 지금의 생활을 선택했을 것이다.
"벤도 조금 빨리 일어 나면 좋을텐데, 한번을 제때에 안일어나는군."
레니아는 불평을 내며 가방안의 책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다시 그들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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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줄창지게 쉬고 왔습니다. 쉬고 나서 다시 키보드를 잡으니 허,, 잘 안써지더군요, 저는 꾸준히 써야 잡히는 사람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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