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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향 님의 서재입니다.

엔쿠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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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향
작품등록일 :
2012.11.05 05:04
최근연재일 :
2017.11.1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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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0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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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엔쿠라스 33화-수도 셰이르(2)

DUMMY

성벽의 문을 넘어 셰이르에 들어서자 거대한 도시가 눈에 들어 왔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쉬르케."


"그래 의심 한건 미안하다. 좋은 여행이 되기를 빌어 주도록 하지."


셰이르의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리면서 레니아가 말했다.


"대단한데. 이게 인간이 만든거란 말야?"


레니아에서 보았던 간단한 벽돌집과는 차원이 틀렸다. 중앙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건축물과 도시의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성은 노시엘트에서만 살아 왔던 레니아에게는 충격이었다. 인간을 경시하는 태도를 버리기로 한 그녀였지만 아직 마음속에는 작게 인간을 낮게 보고 있었던 그녀였지만 샤이 한 국의 수도 셰이르를 보고 난 그녀의 생각에 이미 인간을 경시하는 마음따윈 사라진지 오래였다.


"문명이 이정도나 발전 했었구나.."


수천년 전의 미개한 인간들을 상상하면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 자신의 상상하고 있었던 것 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을 안할래야 인정 안할수가 없었다.

반면 벤하르트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셰이르의 규모에 약간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벤하르트는 샤이 한 국에서 두번째로 큰 제 2수도로 불리웠던 링에 살았던 기억이 있었다. 이미 링에서의 기억은 희미해져 오고 있었지만 그는 샤이 한 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많은 나라를 돌아 다녔었다. 물론 수도이니 만큼 작다고 할수 없었지만 그간 그가 겪어 왔던 경험해 비추어 볼때 크다고 할수도 없었던 것이다.


"어쨋든 피곤하니 방이나 잡으러 가자."


"아 그렇다. 그런데 그전에 뭐좀 먹는게 어때? 어제 이후로 아무것도 못먹었잖아. 수도 니까 음식도 대단하겠지?"


본래 보로스에서 출발할때의 식량도 아슬아슬 했는데 루에인에게 한끼 식사를 주고 거기에 레니아의 후유증때문에 하루 까지 지체해서 마지막 하루는 굶으면서 걸어왔던 그들이었다. 피곤함보다도 더 급하게 허기가 진것은 당연하다 할수 있었다.


"아 배고프다."


"이제 신이고 뭐고 일반인이나 다름 없구만. 추위에 배고픔에 열병에.."


"베엔?"


그녀의 날카로운 음성을 듣고 벤하르트는 말을 멈추었다.


'아무튼 자존심은.'


"푸르다키아?"


한 식당의 팻말을 보고 레니아가 기웃거렷다.


"벤 푸르다키아가 뭐야?"


"글쎄. 이곳의 명물 요리일지도.."


"먹으러 가볼까?"


레니아의 제안에 벤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써 멀쩡한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미 배고픔이 한계에 이르고 있었던 벤하르트였다. 푸르다키아던 뭐던 가게의 이름따윈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가자."


식당의 안으로 들어서자 괴악한 냄새가 벤하르트와 레니아의 코를 찔렀다. 묘한 연기가 주위의 시야를 흐리고 있었고 역한 냄새에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동시에 인상을 구겼다.


"우욱 뭐야 이 냄새는!?"


"손님 저희 푸르다키아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곳 푸르다키아의 사장겸 웨이터인 리드 샤프먼 이라고 합니다. 반응을 보니 처음 오신분들 같군요. 푸르다키아는 타 지역에서는 맛볼수 없고 이곳 샤이 한 국에서도 이곳 셰이르만의 특산음식입니다."


창백해 보이는 인상의 웨이터 리드가 그들을 맞이 했다.


"그런건 상관 없어. 벤 나가자."


"잠깐만요. 나가지 마십시오. 저희 음식의 냄새는 안좋다는것을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식은 맛이 먼저 아닙니까? 한번 맛을 보시는것이 어떠시겠습니까? 주위를 잘 보시면 알수 있듯이 저희 집을 찾아오는 손님은 많습니다. 보아하니 이곳 셰이르에 오신것은 처음이신것 같은데 한번 맛을 보고 나가 주시길 권유 하겠습니다. 맛이 없다면 돈을 안내도 상관 없습니다."


"어이어이. 냄새가 싫어 나가겠다는데 뭘 그렇게 권유 하나 리드 군! 그냥 여기에나 푸르다키아를 하나 더 가져다 주게나!"


한 남자가 리드에게 말하자 리드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거기 자네들. 냄새만 보고 나가면 아마 평생을 후회할걸세. 물론 분명 여기 냄새는 안좋지만 단골이 되면 이 냄새도 정겹게 느껴 지거든."


"어쩌지 레니아?"


"어쩌긴 뭘 어째. 이 냄새에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고? 내 입으로 확인해야 겠어."


벤하르트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요리를 만드는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미묘한 어긋남을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요리 재료에는 냄새가 역겹지만 맛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아마 푸르다키아도 그런 재료로 만들어진것일 것이었다.

상당히 오랫동안 있었던 탓일까 역겨운 냄새도 슬슬 동화 되어 가고 있었다. 여전히 신경을 쓰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냄새였지만 처음 들어왔을때보다는 미미해졌다.


"거기 너!"


"예?"


냄새 때문인지 아직도 험악한 표정으로 레니아는 리드를 째려 보고 있었다.


"만약에 맛이 없다면 우리가 식비를 지불하지 않는 걸로는 부족해. 그 가격의 3배를 물어줘!"


"맛이 있다면 3배를 지불 하시겠습니까?"


리드는 자신있다는 듯이 말했다. 레니아는 슬쩍 벤하르트를 쳐다 보았다. 벤하르트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어깨를 들썩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 나오나 보자."


"각오 하시는게 좋습니다."


한참 뒤 푸르다키아 한 냄비가 레니아와 벤하르트에게 도착했다. 의외로 완성된 음식에서는 역한 냄새보다 맛있는 냄새가 나서 레니아와 벤하르트는 놀랐다. 푸르다키아는 전골류의 요리였다. 숫가락을 들어 한 스푼 국물을 레니아가 입에 가져 갔다.

레니아는 잠시 머뭇 거리더니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역시 맛있지?"


벤하르트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입으로 가져 갔지만 레니아는 납득할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금씩 음식을 덜어 먹었다. 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맛이 있기는 마찬가지 였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거지? 그렇게 역겨운 냄새가 났는데,'


"어떻습니까?"


리드가 레니아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져 졌어. 맛있네."


"음식이라는 것은 일면만을 보면 안되는 것이지요. 물론 냄새를 없애지 못한것은 분명 저희 탓입니다만 불가항력이라고나 할까. 정말 없애기 어렵더군요. 하지만 그 역겨운 냄새 속에서도 이 맛 덕분에 우리 가게가 유지 될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요리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것도 다 푸르다키아의 맛 덕분이지요."


"어쨋든 미안하게 됬어. 약속한대로 3배의 가격을 지불 할게."


"레니아 사과를 할때는 정면에서 하는게 예의야. 적어도 시선은 마주 쳐야지."


레니아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벤하르트의 말에 불만 가득한 눈초리로 리드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함부로 폄하 한것은 미안하게 됬어."


"뭐 괜찮습니다. 자고로 미인은 무슨짓을 해도 용서가 된다고 했으니까요. 사실 당신보다 더한 말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인간이 먹을 음식이 아니다. 라던가 저주 받은 음식이다 라던가. 썩은 음식이다. 라던가 말이죠."


"그런데 정말 대단하네요. 이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다니 말이지요. 그냥 재료가 달라서 그런건 아닌것 같은데요. 요리사 실력도 대단할것 같아요."


"예. 제가 평생을 바쳐서 이룩한 곳이니 요리사도 왠만하면 일류로 쓰고 있습니다. 참고로 오늘 식사비는 그대로 지불 하도록 하세요. 굳이 3배를 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곳에 계시면서 자주 오셔 주신다면 그게 더 감사할 따름이죠."


벤하르트는 안색은 창백했지만 성벽의 문 앞에서 만난 쉬르케와 비슷한 이유로 리드가 마음에 들었다. 남을 자극하지 않고 점잖은 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성벽에서 만난 쉬르케가 사람대 사람으로 만난것이었다면 이곳에서 리드와의 만남은 주인과 손님의 만남이었다. 굳이 내색할 필요는 없는것이었다. 거기에 벤하르트는 본래가 사람과 조우하는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조용히 마음으로만 호감을 가졌다.

식사가 끝나고 레니아와 벤하르트는 푸르다키아에서 나왔다.


"안녕히 가십시오."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리드를 뒤로 하며 그들은 숙박할곳을 찾기 시작했다. 릿떼 라고 불리우는 여관에 방을 잡고 그들은 짐을 풀고 오랜만에 몸을 씻고 단장했다. 이미 어둑해진 밤은 그들을 휴식의 시간으로 몰아 세우고 있었다.


"왠지 분한데."


입술을 지근 깨물면서 하늘거리는 잠옷을 파닥거리며 그녀가 말했다. 그 모습만 본다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녀를 신이라 생각하지 않을것 같았다. 살짝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멍하니 있던 벤하르트는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뭐가?"


"내가 헛똑똑이 였던것 같다는게 말야. 세상을 나와 보니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알것 같아. 냄새가 난다고 맛까지 역겹진 않다는 것도 그렇고 여러가지로.."


"초행이니까. 나도 처음 연철장에서 나왔을때는 많이 혼란 했었어."


레니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벤하르트에게 말했다.


"벤. 지식을 배울수 있는곳은 없어?"


"지식?"


"그래. 최근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경험을 통해서도 알아야 겠지만 우선 기본적인 소양은 가지고 있어야 할것 같아. 놀림감이 되는건 정말 사양하고 싶어."


"글쎄. 이곳에는 분명 중앙 도서관이 있었던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에 가면 여러 가지를 공부 할수 있지 않을까?"


"내일은 그곳에 가보자."


여행을 하느라 피곤해진 심신이 여관에 들어오자 지금껏 팽팽히 늘이고 있던 신경이 끊어지는 듯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축 늘어졌다.


"그런데 항상 생각했는데 벤 너는 왜 항상 아래에서 자는거야?"


"어? 같이 잘수는 없잖아 위에서. 같이 자도 되는거야?"


"될리가 없잖아. 바보야. 그게 아니라 내가 내려가서 잘수도 있는거잖아. 항상 아무 말 없이 아래에서 자길래 나는 침대를 싫어하나 했거든. 침대 싫어해?"


"역시 배움이 필요하겠군. 원래 그런건 남자가 손해를 보는 거랜다."


레니아는 그의 말에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러는데?"


"나도 몰라. 그냥 어디서 주워 들었던가? 그냥 자연스레 일반적인 상식이 되어 버린것 같은데,"


"왠지 기분 나쁜데, 그러니까 지금껏 벤이 나를 봐주고 있었다는 건가?"


"왜 그쪽으로 흘러 가는거야? 신이면 신답게 편하게 지내라고, 나는 익숙해져서 이게 더 편해."


레니아는 이상한쪽으로 자존심이 높은 경향이 있었다. 다급하게 벤하르트가 변명했다. 실제로 레니아를 아래에서 자게 하면 미안한 마음에라도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을것 같았다. 피로가 극한에 이르른 지금은 예외 였지만,


"결국 봐주고 있었던 거야?"


"아니. 그런 생각은 해본적도 없습니다."


"갑자기 왠 존댓말이야?"


레니아가 눈을 치켜 뜨자 그녀의 시선을 피하던 도중 벤하르트는 쓰러졌다.


"벤!"


"아니 피곤해서.. 아무래도 상관 없으니까 제발 좀 자는게 어때? 레니아 안 피곤한거냐?"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지만, 더 캐묻는것도 추한 일이니까 그만 해야지. 그럼 잘자 벤."


"레니아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둘은 깊은 어둠속으로 빠져 들었다.




아침이 되고 벤하르트는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레니아를 보고 잠에서 깨어났다. 푸른 은발에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얼굴은 굳이 물을 붓는다던가 꼬집지 않아도 잠이 확 깨버릴만큼 대단했다.


"일어나. 그 도서관에 가보자."


"아직 아침인데,,"


"게으르기는 피곤한건 나도 마찬가지야. 어서 일어나."


그녀의 등살에 못이겨 벤하르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 나셧수?"


여관 주인 아주머니는 넉살좋게 웃으면서 벤하르트를 맞았다. 벤하르트도 웃으면서 살짝 인사했다. 수도라 그런지 레니아나 보로스에 비해서는 분명 활기차 보였다. 자신이 수십년간 살아 왔던 라프티도 이런 분위기였던것을 상기하면서 벤하르트는 기지개를 펴면서 몸을 단장했다.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찾아간 곳은 도시의 중앙에 있는 중앙도서관 이었다. 말로만 이곳이 샤이 한 국의 수도는 아니었다. 수십만권의 책이 서장되어 있다고 전해지는 셰이르의 중앙도서관에 레니아와 벤하르트는 서 있었다.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네."


"그렇군."


그들은 입구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한 나라의 수도이고 대도시이다 보니 인파가 상당했다. 계단에서도 수십의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매우 지적이게 보였다.

도서관에 들어가자 신선한 향기가 느껴졌다.


"무슨일로 오셧습니까?"


관리자 처럼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그들의 앞으로 다가 오자 벤하르트가 말했다.


"책을 좀 볼까 해서 왔는데요,"


"무슨 책을 보려 오셧습니까?"


"글세요 보려는건 제가 아니고 이쪽인지라,"


벤하르트는 레니아를 보면서 말했다.


"무슨 책을 읽고 싶은건데?"


"음.."


레니아는 관리자를 보고 잠시 머뭇이더니 말했다.


"내가 찾아서 보고 싶은데 꼭 말해야 되는거야?"


"아.. 물론 찾아서 보셔도 됩니다. 따라오세요."


관리자가 앞장서고 레니아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다녀와."


"어? 무슨 소리 하는거야? 벤도 같이 가야지."


"너야 말로 무슨 소리 하는거야. 나는 별로 책을 읽고 싶은게 없다고."


벤하르트는 질겁을 하면서 서둘러 도서관의 출구로 발을 놀렸지만 순간 목이 턱 하니 막혔다. 이미 레니아의 손이 그의 옷깃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가자."


"레니아. 공부라는 것은 말이지.."


"벤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마. 내가 벤을 데려 가는건 혼자 고생하는것이 왠지 손해보는듯한 기분이 들어서니까."


"말도 안돼!"


하지만 벤하르트의 말은 단번에 기각당했다.



중앙 도서관이고 또 수도에 위치한 까닭에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시의 중앙에 거대하게 자리 잡았던 도서관이었기 때문에 웅장함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들어가보니 그 거대함은 외관을 눈으로 보는것보다 더 하다 할수 있었다.


"여기가 인간의 도서관이구나.."


'그러고보니 레니아도 도서관이 하나 있었지. 신의 역사나 약재나 지식에 관한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인간의 도서관이라뇨?"


관리인이 레니아에게 묻자 벤하르트가 끼어 들면서 말했다.


"이 애가 도서관을 처음 봐서요. 그냥 책을 보고 싶다고 하도 난리를 치길래 데리고 왔거든요."


관리인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캐물을수는 없어서 미묘한 표정으로 그들을 안내 했다.


"이곳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책을 읽는 곳이죠. 왠만한 서적들은 이곳에서 전부 구할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벤하르트에게 인자한 웃음을 남기며 관리인은 자리를 떠났다. 레니아는 이곳 저곳을 두리번 거리더니 곧 수십권의 책을 들고 책상에 놓았다. 레니아는 상대적으로 연약해 보였던 탓에 수십권의 책을 드는 모습을 잠시나마 본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유일하게 벤하르트만은 그 모습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수십권의 책을 쌓아 놓은 레니아에 비해 벤하르트의 앞은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본래 책을 읽기 위해 온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딱히 목표를 잡지 못하고 지루한듯이 책상의 한 구석만을 바라 보고 있었다.


"뭐라도 읽는게 어때?"


"글쎄."


"그렇게 심심하면 이걸 읽던지."


레니아가 건넨 책은 하나의 소설책이었다. 그제서야 벤하르트는 그녀가 빌려온 여러가지 책들이 무엇인지 확인 했다. 하나 같이 전부 소설책들이었다.


"레니아. 뭐 지식을 기르겠다고 여기 와서 읽는다는게 고작해야 소설책이었던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미 안 내용은 대충 흝어 봤어. 이런것을 읽어야 주변 머리를 기를수가 있지. 고리 타분하게 적혀있는 책을 읽고 세상을 파악할수 있겠어?"


"흝어 봤다고? 현재 세상과 이 소설의 공통점을 레니아 네가 어떻게 분간하겠어?"


"벤 나는 세상 물정을 모를 뿐이지 바보는 아닌걸 아직도 모르는 거야? 요 사이 2주 간 이미 나는 익힐만큼은 익혔다고, 정 뭐하면 좀 보는게 어때? 네가 생각하는 소설이 아니라면 다른것을 고르면 돼. 아니면 벤 네가 골라주는것도 괜찮을것 같네."


벤하르트는 레니아의 소설중 중앙에 놓여 있는것을 하나 골라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것은 샤이 란 국의 귀족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었다. 레니아에게 도움은 충분히 될것 같은 소설이었다. 그 밖에도 여러 권을 뽑아 들었지만 어느 하나 잘못된 소설은 없었다.


"어때?"


레니아는 의기양양하게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뭐 그렇다 치고 나는 역시 읽을것도 없고 흥미도 없으니까 이제 좀 나가면 안될까?"


레니아는 나가려 하는 벤하르트에게 손가락을 좌우로 저으면서 하나의 책을 들었다.


"이건 어때?"


"'요리의 묘리를 향해?' 뭐야 그 책은?"


"여행을 할때 더욱 즐거운 여행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해보는거야!"


벤하르트는 불만스러운 표정과 어조로 레니아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걸 왜 내가.."


"내가 할수는 없잖아? 한번 읽고 어디 보자.."


레니아는 책을 슥슥 넘겨 보고는 다시 맨 앞 페이지로 돌아 오면서 말했다.


"여기 요리중에 대충 20가지 정도만 익혀 두면 아마 여행을 할때 부족함이 없을거야. 아니 30가지 정도는 되어야 할까?"


"레니아 요리를 만드는게 얼마나 심오한건지 알고 있어? 30가지라니 무리라고, 얼마나 여기에 있을건데?"


레니아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벤하르트에게 말했다.


"내가 세상을 적응할때 까지."




그날 이후 점심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 있는것은 그들의 일과가 되었다. 레니아는 소설 외에도 여러가지 잡다한 방면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역사적인 부류는 즐겨 읽고는 했는데 자신이 노시엘트에 있을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는가 아는것은 타 사람들에게는 모를까 그녀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벤하르트는 이래 저래 독서 삼매경에서 빠지고 싶어할때가 많아서 레니아도 몇시간 정도는 잡고 닥달했지만 나머지 시간은 그가 하고 싶은데로 내버려 두었다. 독서시간을 제외 하고 그들은 식 탐방을 다니곤 했는데 워낙 큰 도시다 보니 먹거리가 풍족하다 못해 너무 많아 선택하기 곤란한 지경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음식 탐방중에도 몇번인가는 푸르다키아에서 식사를 즐기곤 했었다. 악취는 여전했지만 정말 맛 하나 만큼은 일미여서 처음에는 그렇게 닥달을 부렸던 레니아 조차도 자연스레 '푸르다키아나 갈까?' 라고 권유할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약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그녀가 읽은 책만 해도 백여권에 이르렀다. 본래 신일때도 책읽기를 좋아했던 그녀였기 때문에 속독을 하는데에는 도가 텄다 할수 있었다. 적어도 천년 정도는 책으로 지냈던 경험 때문이었다.


'인간 세상이란 정말 난해 하네.'


읽으면 읽을수록 수렁에 빠져 드는것 같았다. 무엇이든지 자신의 마음대로 할수 있었던 신으로써의 생활을 잃게 된 지금 그녀는 인간세상에 적응 할수 밖에 없었다.


"저기 옆에 자리 되겠습니까?"


댄디하게 멋진 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레니아에게 물었다. 예전의 레니아였으면 불쾌한듯한 시선으로 몰아 내었겠지만 책을 읽어 왠만큼 적응한 탓에 그녀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예 괜찮습니다."


벤하르트는 일주일 만에 이미 20여가지 요리법의 훈련을 끝냈기 때문에 그만큼 여유 시간이 많았다. 레니아는 좀더 많이 잡아 둘것을 후회 했지만 너무 잡고 있는것도 왠지 벤하르트가 불쌍했기에 한두시간을 제외하고는 자유로히 그를 내버려 두었다.

댄디 수염의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제 이름은 르날드 피리스 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숙녀분의 이름은 어떻게 되십니까?"


"레니아 라고 해요."


"레니아라 최북부 노시엘트산 아래의 마을이름과 같군요. 그 책은 루이스 칼렛 입니까?"


"아 네."


르날드는 생긴것과 같이 책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그도 도서관에 자주 다니던 사람중 하나였기 때문에 레니아가 현재 보고 있는 책들은 거의 다 섭렵하고 있었다. 거기에 지적이기 까지 하여 책에 대한 이런 저런 사항들을 대화 하자 레니아도 혼자 책만 읽는것보다 훨씬더 즐거운 기분이었다.

그 날도 벤하르트는 이리 저리 마을을 둘러 보고 있었다. 그의 습관중 하나가 새로운 마을에 도착하면 지리부터 파악 해 놓는 습성이었다. 지도에 의지 하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지형을 깨치는 것이었는데 암살자들에게 쫓길 당시 그렇게 사전작업을 해두지 않으면 함정을 설치할곳을 찾지 못해 해매게 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제 암살자들은 없었지만 습관이란것은 무서워서 한번쯤 과거를 회상하자 유비무환이 생각난 까닭에 그는 이곳 저곳을 돌아 다녔다. 일주일 정도를 둘러 보아도 아직 셰이르의 전 지역을 알지는 못했지만 이미 벤하르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도망칠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전부 끝나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고 그는 서글퍼졌다. 이미 추적이 끝난지도 수십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지난날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은 보면 볼수록 한심했다. 약간 처참한 기분으로 그는 레니아를 마중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엇?"


레니아의 옆에는 갈색의 멋진 머리를 날리고 있는 댄디한 수염의 미남자가 있었다. 벤하르트는 오래 살면서 가장 자신있는 분야가 하나 있었다.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자신을 노리는지 살기가 느껴지는지 예민했던 까닭일까. 표층에 느껴지는 기분으로 그는 대략의 성격을 짐작 할수 있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개중에는 벤하르트늬 눈마저도 교묘하게 속이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 벤하르트는 자신의 눈에 상당한 자신이 있었다.

레니아에게 붙어 있는 남자가 악한이라고는 할수는 없었다. 레니아를 노리는것이라는것 쯤은 굳이 벤하르트가 아니라도 충분히 알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책을 읽고도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다니..'


곧 르날드가 자리를 떠나고 레니아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다. 르날드와 레니아가 한참을 즐겁게 이야기 하던 장면이 벤하르트의 머릿속에 지워 지지 않았다. 가슴이 찡해 지기 시작했다.


'뭐냐 이건.'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한듯 보였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면 자신은 할아버지중에서도 고연령 할아버지가 아버지라 부를수 있을정도로 나이를 먹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렇기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질투라는것을 그는 확실하게 인지 할수 있었다. 인정은 할수 없었지만,


'바보같군 나도.'


피식 웃음 짓고 그는 여느때와 다름 없이 미소를 지으며 레니아에게 다가 갔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어딘가 어색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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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틀린 글자가 보이면 바로 지적좀,, 저번에 보니 좀 많이 눈에 보이더군요,, 그런데 고치지는 못했다는,, <- (눈에 뜨이면 뭐하나,, OTL..)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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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쿠라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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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엔쿠라스 68화-인질 +7 08.09.30 3,409 16 17쪽
67 엔쿠라스 67화-무법마을(2) +5 08.09.29 3,140 17 15쪽
66 엔쿠라스 66화-무법마을(1) +6 08.09.27 3,358 21 15쪽
65 엔쿠라스 65화-신수(神獸)의 숲 +7 08.09.26 3,679 17 14쪽
64 엔쿠라스 64화-여정(2) +4 08.09.25 3,908 18 19쪽
63 엔쿠라스 63화-여정(1) +7 08.09.24 3,613 20 14쪽
62 엔쿠라스 62화-예지 +7 08.09.23 3,585 15 12쪽
61 엔쿠라스 61화-보답 +6 08.09.22 3,603 18 13쪽
60 엔쿠라스 60화-사지(死地)(3) +6 08.09.20 3,764 19 17쪽
59 엔쿠라스 59화-사지(死地)(2) +3 08.09.19 3,742 18 12쪽
58 엔쿠라스 58화-사지(死地) +5 08.09.18 3,752 22 15쪽
57 엔쿠라스 57화-희생(3) +3 08.09.17 3,973 21 12쪽
56 엔쿠라스 56화-희생(2) +6 08.09.16 3,983 24 13쪽
55 엔쿠라스 55화-희생(1) +5 08.09.15 4,057 27 13쪽
54 엔쿠라스 54화-선물 +5 08.09.14 4,202 27 16쪽
53 엔쿠라스 53화-백(白)의검(劍) +5 08.09.13 4,719 24 13쪽
52 엔쿠라스 52화-살심 +3 08.09.12 4,321 29 12쪽
51 엔쿠라스 51화-악인 +2 08.09.11 4,376 36 12쪽
50 엔쿠라스 50화-배신 +2 08.09.10 4,753 31 16쪽
49 엔쿠라스 49화-축제(3) +5 08.09.04 4,310 25 8쪽
48 엔쿠라스 48화-축제(2) +5 08.08.31 4,147 29 10쪽
47 엔쿠라스 47화-축제(1) +4 08.08.30 4,384 20 9쪽
46 엔쿠라스 46화-적응 +6 08.08.27 4,658 27 18쪽
45 엔쿠라스 45화-도발(2) +7 08.08.25 4,795 26 19쪽
44 엔쿠라스 44화-도발(1) +8 08.08.22 5,080 32 10쪽
43 엔쿠라스 43화-속죄(2) +7 08.08.20 5,194 30 17쪽
42 엔쿠라스 42화-속죄(1) +8 08.08.18 4,911 30 11쪽
41 엔쿠라스 41화-검도(劍道) +9 08.08.17 5,172 37 11쪽
40 엔쿠라스 40화-백귀(白鬼)(2) +11 08.08.16 5,263 29 12쪽
39 엔쿠라스 39화-백귀(白鬼)(1) +9 08.08.14 5,315 30 11쪽
38 엔쿠라스 38화-동행(3) +4 08.08.13 4,833 25 7쪽
37 엔쿠라스 37화-동행(2) +9 08.08.11 4,993 26 10쪽
36 엔쿠라스 36화-동행(1) +9 08.08.10 5,416 33 15쪽
35 엔쿠라스 35화-무도회(2) +7 08.08.08 5,267 33 25쪽
34 엔쿠라스 34화-무도회(1) +11 08.08.07 5,353 33 14쪽
» 엔쿠라스 33화-수도 셰이르(2) +5 08.08.05 5,745 36 23쪽
32 엔쿠라스 32화-수도 셰이르(1) +5 08.08.04 5,832 45 12쪽
31 엔쿠라스 31화-혈화(血花)의 길(3) +8 08.08.01 6,420 32 23쪽
30 엔쿠라스 30화-혈화(血花)의 길(2) +7 08.07.31 6,707 29 21쪽
29 엔쿠라스 29화-혈화(血花)의 길(1) +12 08.07.29 7,790 36 18쪽
28 엔쿠라스 28화-시작(3) +6 08.07.27 8,196 33 16쪽
27 엔쿠라스 27화-시작(2) +8 08.07.26 8,260 33 13쪽
26 엔쿠라스 26화-시작(1) +4 08.07.25 9,407 37 16쪽
25 엔쿠라스 25화-월야(月夜)의도주(禱走)(2) +7 08.07.23 9,280 43 22쪽
24 엔쿠라스 24화-월야(月夜)의도주(禱走)(1) +3 08.07.21 9,417 43 20쪽
23 엔쿠라스 23화-영검(靈劍) +3 08.07.20 9,339 36 11쪽
22 엔쿠라스 22화-일상(3) +4 08.07.19 9,377 35 19쪽
21 엔쿠라스 21화-일상(2) +4 08.07.17 9,712 29 13쪽
20 엔쿠라스 20화-일상(1) +6 08.07.16 10,463 34 15쪽
19 엔쿠라스 19화-신(神)의성지(聖地) +1 08.07.14 10,987 34 16쪽
18 엔쿠라스 18화-꿈의 끝 +2 08.07.12 10,354 29 15쪽
17 엔쿠라스 17화-균열(4) +5 08.07.11 10,388 30 11쪽
16 엔쿠라스 16화-균열(3) +9 08.07.10 10,349 32 20쪽
15 엔쿠라스 15화-균열(2) +6 08.07.09 10,324 29 19쪽
14 엔쿠라스 14화-균열(1) +2 08.07.07 10,912 35 12쪽
13 엔쿠라스 13화-연마(練磨)(2) +9 08.07.05 11,598 34 17쪽
12 엔쿠라스 12화-연마(練磨)(1) +8 08.07.04 13,252 37 15쪽
11 엔쿠라스 11화-아류(亞流) +5 08.07.03 12,548 33 10쪽
10 엔쿠라스 10화-자질(資質) +5 08.07.03 13,677 37 16쪽
9 엔쿠라스 9화-회상(2) +8 08.07.01 15,176 35 14쪽
8 엔쿠라스 8화-회상(1) +4 08.06.30 16,924 42 12쪽
7 엔쿠라스 7화-게임 +11 08.06.29 19,468 50 10쪽
6 엔쿠라스 6화-신벌(神罰) +49 08.06.28 20,913 46 16쪽
5 엔쿠라스 5화-감금 +10 08.06.28 21,162 46 11쪽
4 엔쿠라스 4화-조우 +7 08.06.28 23,360 47 15쪽
3 엔쿠라스 3화-외출 +14 08.06.27 27,142 63 15쪽
2 엔쿠라스 2화-연(緣) +30 08.06.27 34,473 79 20쪽
1 엔쿠라스 1화-프롤로그 +24 08.06.27 50,630 8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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