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3화-영검(靈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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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직도 그 검을 만들고 있다는거냐?"
"뭐 그렇지."
"벌써 1개월이 지났다고 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건 알고 있어."
"디논. 나는 도공이다. 이것은 기회야. 무엇이든지 간에 후회는 남겨서는 아니되지. 이건 너한테도 적용되는 말이야."
벤하르트와 디논은 선술집에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디논의 앞에는 술컵이 벤하르트의 앞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음료가 마련되어 있었다.
처음 벤하르트가 음료를 시켰을때 디논의 부하들은 그를 비웃었지만 그는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그도 같이 음료를 마시기 시작한것이다.
주위의 눈이 거슬리는지 그는 최근에 들어서는 거대한 술컵에 음료를 담아 마시기 시작했다.
"그건 이미 후회 했을데로 후회 했기 때문인가?"
"....."
벤하르트의 검은 이미 완성의 전 단계에 까지 와 있었다. 하나의 소검 자신 일생의 역작과 비교한다면 어찌 될지는 알수 없었다. 만드는 도중에는 검을 가늠 할수 없는것이다.
검이란 것은 완성된 후에나 평가를 내릴수 있는것. 도중에 판단한다는 것은 도공의 자격이 없다 할수 있었다.
눈앞에 놓인 단검보다는 길지만 장검보다는 짧은 소검을 보면서 벤하르트는 여러 가지 사념에 빠졌다.
그 검은 분명 명검임에 틀림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좋은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 3류 작품이었다. 적어도 벤하르트는 납득 할수 없는 작품이었다.
"뭐하고 있어?"
레니아가 왔다는 것도 깨닺지 못한채 그는 검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가능할줄 알았건만 그것은 그저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준수한 작품일 뿐이었다.
그가 만들고 싶었던 검은 이런검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오 꽤나 그럴사 한데, 작은 검을 만들어 준것은 배려인건가?"
여전히 묵묵 부답인 벤하르트에게 그녀는 약병 하나를 꺼내들고 그의 어깨 위에 떨구었다.
"으아 뜨 뜨 뜨"
어깨에 심한 통증과 함께 화상을 입으면서 벤하르트가 그녀를 무시할수 있을리가 없었다.
"뭡니까? 레니아님."
"벌써 두번이나 말했는데 두번이나 무시한것은 어디의 누군데 그래?"
"아. 잠시 생각에 빠져서 그렇습니다."
벤하르트가 또 침울한 표정을 짓자 레니아가 궁금한듯이 물었다.
"무슨 생각?"
"검이 생각 보다 잘 만들어 지지 않았군요."
"어째서? 저정도로도 충분하잖아."
"글쎄요. 저에게는 그저 좋은 재료로 그저 그런 작품을 만든 셈 입니다. 저것은 재료의 힘이지 제 힘이 들어가지 않은 여느 대장장이라도 만들수 있는 그런 검이죠."
레니아도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에 벤하르트의 심정을 충분히 알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천년에 한번 보기도 힘든 영약이라 해도 레니아는 별 생각 없이 오히려 졸작이란 평을 내릴때도 많았던 것이다.
검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그녀가 명검이라 생각해도 벤하르트는 졸작이라 폄하 하는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그럴때는 평상심이 중요한 법이지."
"평상심?"
"즉 네 말은 이런것이겠지?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었지만 그것은 그저 만들었을뿐 자신의 능력이 가미 되지 않았다 라는거잖아? 신인 나도 그런 경험을 했으니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어. 지난 수백년간,, 아. 어쨋든 그럴때는 평상심을 가지고 자신이 평소에 어떻게 검을 만들었는가 생각하는게 중요하지."
레니아는 자신도 수백년간 그런 경험을 많이 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려 했으나 왠지 자신의 치부를 들어 내는것 같아 차마 입밖에는 낼수 없었다.
"평상심이라.."
벌써 계절이 바귀어 오고 있었다. 아직도 그녀의 검은 미완성인채로 그의 손에 놓여 있었다. 노시엘트의 산에도 아랫쪽 하류에는 슬슬 파릇파릇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레니아로부터의 충고를 들은 이후로 벤하르트는 레니아의 검을 만들지 않았다. 아무 특색없는 수십여개의 검을 눈앞에 놔두고 그는 웃었다.
"그래. 그게 문제였던 거야."
그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아니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감각을 그는 잊고 있었다.
'루크 형님에게 뭐라 할 처지도 아니었군.'
그는 망치를 잡았다. 언제나 깨달음이란 갑작스럽기 마련이다. 그는 이미 오래전 그 깨달음을 얻었었다. 한번 깨달음을 얻게 되면 그 아래에 있는것은 잘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린다. 이른바 눈높이가 높아진것이다. 그리고 한번 그 깨달음을 잊었을때 필요한것은 단련도 연습도 숙련도 아니었다. 생각의 전환과 그 감각을 되찾는것.
자신의 옆에 놓여있는 각 4가지의 영석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잡아 챘다.
불과 검과 돌을 함께 놓고 그는 제련을 시작했다. 손은 온통 화상 투성이가 되었고 돌을 바꿀때마다 점차 벤하르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그간 잊고 있었던 마음가짐.'
마지막 풍령석을 쥐고 검에 밀어 넣는다. 네가지 섞일래야 섞일수 없는 힘들을 그는 하나의 검에 묶어 내려 했다.
'나는 레니아를 위해 이 검을 만든다.'
그의 손은 살이 터지고 뼈가 으스러지고 절단되고 화상을 입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이미 움직일래야 움직일수도 없고 감각 조차 없는 손을 소도(小刀) 에 가져갔다.
'완성했다.'
검은 분명히 그가 생각한대로 완성 되었다. 아무 문양도 특색도 없는 벤하르트 다운 검이었지만 그 날카로움은 쇠를 무처럼 쓸어 버리고 단단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을 정도 였다.
그가 처음 루란을 위해 검을 만들었을때의 이르렀던 경지. 그것은 도공의 시작이자 도공의 끝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으아.. 아프긴 한데 느낌이 묘하군.'
"뭐 뭐야 이 상황은? 벤!!"
그녀가 벤하르트에게 달려갔다. 벤하르트는 그녀가 자신을 부축하는것을 보며 말했다.
"검 완성했습니다."
"바보야. 너 왜 약을 바르지 않았어."
'자신의 몸을 아끼면서 마음을 담을수는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것은 레니아에게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창피한 발언이었다. 그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쪽이 나을것 같아 벤하르트는 침묵했다.
"아무리 나라도 이정도의 상처는 고치기 어렵단 말야."
"다행이네요."
"뭐가!"
"고칠수 있어서요. 솔직히 양 팔을 못 써버리게 될까 두려웠거든요."
"흥. 난 신이라구. 인간 하나의 팔따위 토막토막이 난다 해도 고쳐 낼수 있어. 그것보다 너 도대체 왜 약을 바르지 않았던 거야?"
벤하르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위로 돌리면서 말했다.
"장인 정신 때문이랄까요?"
"그따위것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단 말이지?"
"그 따위것은 아닙니다. 도공에게 있어 장인 정신이 없다면 그것은 도공이 아니겠지요. 덧붙여서 지금의 저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녀는 어디선가 붕대를 꺼내들고 그의 팔에 둘렀다. 붕대는 굳어서 벤하르트는 손하나 까딱 할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으.. 저기 왠지 답답한데요."
"마음대로 몸을 굴렸으니 이번에는 정신 쪽이 고통을 좀 당해야 하지 않겠어?"
"그런.."
레니아의 쌀쌀한 말에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벤하르트가 검을 보면서 말했다.
"검 완성했으니 한번 보세요."
"그럴게."
그녀는 검을 쥐자 마자 소름이 돛았다. 그 현기(賢氣)는 신인 그녀에게도 놀랄 만큼 대단했다. 어디 하나 흠 잡을곳이 없었다. 설사 대장장이의 신이라도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무기를 만들어 줄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신으로서의 자존심에 의해 선뜻 벤하르트에게 찬사를 퍼붓지 못했다.
"그럭 저럭 잘 만들었네."
"그렇습니까."
약간 힘없는 벤하르트의 말투에 레니아는 말을 고치려 했다.
"아 아니.. 으으.."
처음부터 칭찬을 해 주었다면 좋았을텐데 이제와서 말을 고치려니 그녀는 매우 손해를 본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됐습니다. 충분히 알아 들었으니까요."
벤하르트는 젊어 보이기는 했지만 이미 90이상을 살아온 노인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유지하는것 정도는 충분히 숙지 하고 있었다.
요 몇달을 레니아와 지내다 보니 레니아의 성격을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의 검을 엄청나게 마음에 들어 한다는것은 처음 그녀가 자신의 검을 만질때의 눈을 보면 알수 있었다.
"뭐야? 그거 불쾌 하다구. 왠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그 표정."
"아니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루요."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 할건데?"
그녀가 오른손에 진실의 수정을 꺼내 들고 벤하르트를 보고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고작해야 조수 주제에 이 신의 마음을 읽으려 들었다는 거야? 그래 사실 검 마음에 들었다 이제 됬냐?"
벤하르트는 그대로 폭주해버린 레니아와 한동안 씨름했다. 하지만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서도 그에 입가에 걸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검 이름은 뭘로 정하지?"
"이름요?"
이름을 짓자는 레니아의 말을 벤하르트는 이해 할수 없었다.
"검에 어째서 이름이 필요 하죠?"
"그냥 내 검 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아? 아무리 그래도 장인이 만든 명검인데 말야."
"레니아님의 검이라고 부르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 아니야. 그건 재미가 없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레니아가 손바닥을 치면서 벤하르트에게 말했다.
"영검(靈劍)이라고 하고 이름은 벤 네가 만들었으니까 베날드로 할까?"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너의 이름을 따서 짓자고, 어때 고맙지?"
"...... 전혀요."
벤하르트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알았어 그럼 치프 라고 하자."
"치프요?"
"그래 그럼 불만 없지?"
벤하르트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마계에 사는 식물중 벤이라고 불리우는 식물이 있는데 그것의 정식 명칭은 치프 였다. 결국 벤이라는 이름을 따서 검의 이름을 지어 버린것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벤하르트와 아는 레니아의 표정이 상반된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노시엘트의 입구 마을의 대장장이의 공방에서 한 노인의 광소가 들렸다.
한쪽의 손에는 벤하르트의 검과 비슷한 생김새의 장도가 들려 있었다.
"하하하.. 드디어 완성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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