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65화(623화)-
"벤하르트! 결계가 뚫렸다. 어서 그쪽의 일을 마무리 하고 이쪽으로 와!"
전방에 있던 레랄드는 급히 벤하르트에게 달려와 전해주었다.
"벤! 서둘러."
리스의 말에 벤하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마지막에 가겠어. 스팅 리스 먼저 결계쪽으로 가서 기다려."
"하지만,"
"네가 여기에 있으면 곤란한 것은 내쪽이야. 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최대한 빨리 사람들을 대피시켜줘. 부탁할게."
벤하르트의 말을 듣고 리스는 고개를 젓고 말했다.
"아니 나는 여기에 있겠어."
리스는 벤하르트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었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그를 앞에 두고 먼저 대피를 하거나 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있다면 분명 벤하르트는 더 힘든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사태에 그녀가 없다면 벤하르트는 꼼짝 없이 죽어 버리고 말게 틀림 없었다.
벤하르트는 리스의 앞에 검을 휘둘렀다. 백색의 결계는 더욱더 짙게 그들의 사이를 바로 막았다.
"좋아. 그렇다면 같이 가도록 하자고, 단, 너희들의 안전은 보장해야겠어."
"좋아.."
방금의 결계에 쏟아 부은 힘도 상당한 양이라는 것을 리스는 잘 알고 있었다. 평소의 벤하르트라면 모를까 지금의 벤하르트에게 이 상황은 결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닌 굉장한 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리스는 자신의 가슴쪽에 손을 가져가고 비장한 표정으로 벤하르트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여차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다고 할지라도 벤하르트를 지킬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어이 벤하르트! 거의 대부분이 탈출에 성공했다."
허겁지겁 달려와 레랄드가 말했다.
"하아.. 하아.."
벤하르트는 눈앞이 침침해져서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였음에도 망자들에게 단 한번조차 스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경이로울 정도의 움직임이었지만, 그럼에도 너무도 위태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벤! 어서 돌아와."
"아아.. 그래."
벤하르트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크게 검을 휘둘러 망자들을 물렀다. 그리고 돌아가려는 순간 그는 우두커니 그자리에 멈추어 섰다.
"아.."
심장소리가 그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릴 정도로 크게 울렸다.
"벤하르트씨?"
"스팅.. 도망쳐."
"예?"
반문에 대한 답은 없었다.
"크어어어어억. 으아아아악 으허억.."
사람의 비명성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소리를 내지르며 벤하르트는 쓰러졌다.
'서 설마..'
검을 바로 쥐고 벤하르트는 무릎을 꿇고 그는 검을 휘둘렀지만, 그 자랑하는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여유조차도 없었다.
"벤!!"
다급한 리스의 목소리에 벤하르트는 고통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리스.."
그는 검을 다시 쥐어 흐르는 듯이 망자를 피해 휘둘렀다.
"크하악.."
그것은 천륜요란의 반동이었다. 죽음 직전까지 몰렸던 벤하르트의 운명을 타인에게 전가 시킨 그 격통은 벤하르트에게로 고스란히 돌아오는 것이다. 크로세트에게 사용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한 격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참을수가 없을 정도 할 수만 있다면 정신을 놓고 싶었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의지마저 좀먹는 고통을 그는 정신력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지켜야 할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으으으아어으억.."
정신조차 차릴 수 없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있는 것은 휘두르는 팔과 속을 태우고 들어가는 고통뿐.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하나라도 더.. 휘두르고 휘둘러야만 한다.
"어어윽.. 아으으아악.."
보는 사람들조차도 괴롭게 느껴질 정도의 비명에 그자리에 있던 자들은 전부 표정을 굳힐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벤하르트가 저렇게까지 고생하는 것은 다름아니 자신들을 위함이라는 것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단순히 행동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리스의 힘으로 벤하르트가 쳐둔 결계를 부술 힘은 없었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스팅과 레랄드에게 말했다.
"어이 너희들. 어서 이 결계를 나가."
"뭐?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꼬마야. 저런 벤하르트씨를 내버려둔채 어떻게 나갈 수 있겠어!"
"벤은 내가 구한다. 그리고 너희들은 내가 벤하르트를 구하는 것에는 말 그대로 방해야."
스팅은 리스와 눈을 마주치고 섬칫 놀랐다. 도저히 어린애라고는 볼 수 없어 보이는 살기 서린 눈. 단순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그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가.. 이곳에 있다가는 '죽는다고?' 나는 상관 하지 않을거지만, 저녀석을 살리는데에 누군가가 죽어야 된다면, '누구라도 죽여줄테니까'"
입가에 걸린 리스의 미소를 보고 스팅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레랄드 가자!"
"괜찮아?"
"이곳에 조금만 더 있는다면, 우리의 목이 날아갈 것 같은데? 뒤는 맡기는 수밖에."
스팅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리스를 바라보고는 스팅과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출구를 향해 달렸다. 그들이 사라진 것을 보고 리스는 벤하르트를 향해 중얼거리며 말했다.
"이걸로 된거지? 벤. 이제 내가 '죽일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리..스.."
벤하르트는 몽롱한 상태에서도 검을 휘둘러 한차례 망자를 물리쳤다.
"하.. 지마.."
리스는 벤하르트의 앞에까지 다가와 그의 뺨을 만졌다. 그녀가 만지고 있다는 감각 조차도 없이 벤하르트는 다가오는 망자만을 베어넘겼다.
"무의식.. 인건가. 자기 자신이나 걱정 하라구. 바보녀석아."
이미 벤하르트에게 의식은 없었다. 그에게 있는 것은 끊임 없는 고통과 '적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라는 스스로가 새겨둔 본능의 각인뿐이었다. 리스는 자신의 심장에 손을 가져가 부수려고 하는 순간 한차례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비기 열공파(熱空波)"
"음!?"
벤하르트가 만들어둔 결계조차도 깨어버리고 무색의 검기는 망자들을 물리게 만들었다.
"후우.. 늦지 않은건가."
"너는?"
리스는 처음 보는 사내의 얼굴을 보고 의아해 하며 물었다.
"내 이름은 로지닌 그쪽의 남자와의 약속에 따라 뒷처리를 해주러 왔다."
로지닌은 등장하자 마자 정갈한 자세로 망자들의 앞에 섰다. 망자들에게 의지란 없었기에 그대로 로지닌에게 달려 들었지만, 로지닌은 검을 들고 횡으로 베어내며 소리쳤다.
"참!"
거대한 검기가 망자들의 몸을 위아래로 절단해 갈라내 버렸다. 삽시간에 엄청난 수의 망자들이 양단되자 리스 조차도 그의 대단한 실력에 꽤나 놀라했다. 이내 그녀는 나사 풀린듯 쓰러지는 벤하르트를 부축했다. 아직 어린 소녀가 나 큰 성인 남성을 부축하는 광경은 조금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광경이었다. 그녀는 벤하르트를 질질 끌면서 로지닌에게 말했다.
"먼저 가도 되겠지?"
"물론.. 그것을 위해 돌입한 것이니까,"
"고마워."
리스는 그녀 답지 않게 감사를 표하고 움찔 거리면서 고통 스러워 하는 벤하르트를 데리고 세계의 경계. 균열로 향했다.
"저게 소문으로만 듣던 원의 흡혈귀인가.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군. 그나저나.."
그는 편하게 검을 잡고 헛웃음을 지었다.
"엄청난 양이로군. 하나하나의 실력또한 대단한데, 이런 '수'를 상대로 용케도 한사람도 잃지 않고 버텨내었군."
순수하게 벤하르트의 실력에 감탄하며 그는 달려드는 망자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어 어째서?"
결계의 밖으로 나온 리스는 주변을 둘러 보고 혼란해 하고 있었다.
"리스...?"
"이니프.. 네가 여기 있다는 것은 벤하르트도 이곳을 통해서 마굴에 들어왔다는 것이잖아.. 그런데 어째서?"
마굴의 밖으로 나왔을때 리스가 들고 있었던 벤하르트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벤하르트씨는..?"
"모르겠어. 도대체 어디로.. 설마.."
아직 마굴안에 존재하는 건가 싶어 그녀는 마굴로 다시 들어가려 했지만, 그곳에서는 로지닌이 나왔다.
"로지닌.. 이라고 했었지? 안에 벤은 없었어?"
"벤? 벤하르트를 말하는 건가?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 마지막으로 확인까지 했으니 틀림없다."
"아냐.. 내가 확인해야 겠어."
로지닌은 그녀를 잡아 던졌다. 그녀는 공중에서 가까스로 자세를 잡아 착지했다.
"그만둬. 안에는 확실히 없었다. 그리고 그곳은 이미 붕괴를 하고 있었어."
"하지만 벤하르트가 없다고!"
리스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서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벤하르트는 어째서 없는거지?"
"비켜 찾으러 들어가야 해."
"기분은 알겠지만, 그것만은 들어줄 수 없겠군. 이미 그곳의 붕괴는 마지막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서 너를 보내면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 없어."
리스의 독기 서린 눈을 보고도 로지닌은 조금도 물러섬이 없었다.
"분명히 네가 들고 나갔을 벤하르트가 '이곳에' 없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에 그곳을 '확실하게' 확인했지. 그렇다는건 벤하르트는 '이곳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예상해볼수 있겠지."
"뭐?"
"이곳 마굴의 입구는 이곳 뿐만이 아니야. 마계에서만 확인된 것이 몇구역.. 그리고 너희가 존재하고 있었던 세계에서도 몇군데 존재하고 있었지. 그렇다는건 벤하르트는 다른 곳을 통해 나온게 아닐까? 네가 지금 저곳에 들어간다면 분명히 너는 높은 확률로 죽는다. 네가 '원의 흡혈귀'라고 해도 말야. 죽지 않더라도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 만약 벤하르트가 내 가정대로일 경우.. 네가 돌아오지 않았을때 벤하르트는 어떻게 되는거지?"
"크윽."
"한때의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는게 좋을거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서도 들어가고 싶다면 가도 좋다."
리스는 분을 삭히고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혔다. 분명 로지닌의 말은 일리가 있었기에, 그녀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바닥에 손을 가져갔다. 순식간에 주변은 황폐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리스는 어린아이의 몸에서 본래의 자신의 몸을 찾았다.
'읏..'
"그래 확실히 네 말이 맞는것 같네. 하지만, 만약 틀렸을경우에는 말야. 각오라도 해두는게 좋을거야."
그것은 단순한 화풀이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리스에게는 진심이었고 로지닌은 그녀의 살기에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이곳은.."
룬델 샤이 한의 어떤 외딴 숲. 수염을 덮수룩하게 기른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드 드디어 돌아온건가!!"
그는 땅을 차 높이 뛰고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틀림 없어.. 내가 살던 세계다. 아니 아니지 이렇게 먼저 기뻐하기 전에 시간을 살피지 않으면,,"
그는 손목에 차고 있던 물건을 보려 하다가 소리에 놀라 버렸다.
"끄으아아악.. 으윽.."
"뭐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고통의 신음소리에 그는 다가가 보았다. 그곳에는 연신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스러워 하는 남자가 있었다. 수염의 남자는 그에게 다가가 얼굴을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너는.. 데인 데인 하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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