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43화-엔도픽(2)
"그런데 레니아. 아까 들어오기 전에도 말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계속 살기가 느껴지는데 어째서 이곳에 들어온거야?"
"이곳을 제외하면 방이 없다고 하잖아. 혹시 마을까지 와서도 길바닥에서 잘 생각이었어?"
"그런 말이 아니잖냐."
착 가라앉은 말투로 벤하르트가 말했다.
"농담인데, 이 살기에 대해서는 아마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나도 정확하게 확답은 내릴수 없지만, '아마도' 괜찮을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무슨 근거라도 있는거야?"
"근거? 그냥 여자의 감이라고 해둘게."
"미묘하게 신빙성이 있을것 같은데 없을것 같은 비유잖아."
"정 걱정이 되면 네가 망이라도 보고 있으면 되잖아? 여차 하면 이정도 마을에서 달아나는 것 쯤은 할 수 있을 테고, 걱정 할건 없을거야."
레니아는 서서히 뒤로 쓰러져 이불에 몸을 던졌다.
"참 이런 이불 조각 하나에 기뻐할 수 있다는게 놀랍지 뭐야."
이리 저리 몸을 구르며 이불을 돌돌 말아 레니아는 즐겁다는듯 말했다.
"정말 속도 편하구나. 그럼 나도 그놈의 감이라는걸 믿어 보도록 할까."
"너무 그렇게 믿어줘도 곤란한데,"
"그럼 반만 믿도록 할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벤하르트는 레니아가 이곳이 안전하다는 것에 거의 확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처음 위험하다고 말을 꺼냈던게 다름 아닌 레니아였는데, 지금와서 위험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은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레니아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그건 거의 정답이라고 할수 있는 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살기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분명히 살기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벤하르트나 레니아를 노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특정한 목표 없이 발산되는 살기였기에 그는 그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었다.
"그나저나 마수와 공존하며 살아간다니 상당히 놀라운 것 같아."
"인간이란 원래 생각한 것 이상을 추구하는 존재니까, 종착점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출발점이라는 사례야 얼마든지 있고 말야. 덴의 마력석으로 완성되어 있는 에린델의 세계가 꼭 정답이라고는 할수 없었다는 것이겠지. 이런 곳도 존재하는 걸 보면 말야."
"놀랐어. 그건 그렇고 마수 중에는 마음을 읽는 마수도 존재하는 모양인가봐."
"아 처음에 봤던 마수 말야? 내가 보기에는 마음을 읽는 다기 보다 진실의 유무를 판단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왜 있지? 우리가 진실 게임을 했을때의 그 마도구처럼 상대방의 진의여부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그 짧은 사이에 그런걸 다 알아내다니."
"간단한 거잖아. 우리들의 마음을 읽는다면 구태어 그런 질문 따위를 할 이유도 없고, 그런 질문을 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지. 물론 이건 심증일 뿐이고, 사실 질문은 그냥 했었던 걸지도 모르지만, 아마 내가 말한쪽이 확률은 더 높을걸. 질문을 던지고 나서 마수와 시선을 마주쳤던 것도 보면 말야."
레니아의 서술에 벤하르트는 잠시 넋을 잃었다가 말했다.
"점점 빈틈이 없어져 가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건 네가 너무 여유 부리고 있기 때문이야. 참고로 내 기억속에서 네 처음 모습은 이것보다 더 지독하게 의심을 했었단 말이지. 지금은 그게 내 역할로 바뀌었을 뿐이야."
"그런가? 아닌 것 같은데,"
"그래! 네 어중간한 기억을 믿느니 내 확실한 기억을 믿어! 가 아니라 모를리가 없잖아. 고작해야 2년도 안된 이야긴데 자기 모습을 까먹는다는게 말이 돼?"
"넌 잊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거야. 내 입장에서 보면 2년전의 내 모습이라는 것 자체가 객관적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는 이야기란 말이지."
레니아는 벤하르트의 태도를 보고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아. 바보가 되는 약이라도 만들어 봐야지."
"뭐? 왜 그런 약을 만들어?"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나는 한번 본 것은 좀처럼 잊지 않아. 정말 편리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평범함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그래서인지 벤 네 생각에 쉽게 동조하지 못하거든."
"잠깐 그것과 바보가 되는 약이라는게 무슨 관련이 있는건데?"
"한번쯤은 맛보고 싶다는 거야.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는건 뭘까? 하고 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하지 않아?"
벤하르트는 침을 한번 삼키고는 말했다.
"궁금하지."
"아무 생각 안하고 사는데,"
"뭐야 그건!?"
"의외로 별 생각 없이 산다는거야. 오늘은 뭘 먹을까? 같은 쓰잘데기 없는 것에나 관심을 보이곤 한다는 이야기지."
"별로 나와 다를 것도 없잖아."
"글세. 그건 모르지."
레니아는 같은 것을 생각하더라도 그 상상의 범주 자체가 달랐다. 벤하르트가 음식에 대해서 10을 생각한다고 하면 그녀는 동시간대에 1000을 생각한다.
"종종 들리거나 이야기로 나오잖아. 높은 사람 특별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을 동경한다. 라거나.. 평범한 사람은 특별한 사람을 동경한다. 라고, 정말 그래?"
"왜 나한테 묻는거냐 그걸."
"그야.. 평범하잖아? 아.. 실수 평범하지는 않지. 정말 여러가지 이유로."
레니아는 흙 씹은 얼굴로 말했다.
"정정.. 머리가 평범하잖아?"
"정정할 필요가 있었던 거냐고, 대답하자면, 동경하긴 하지. 네가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범위의 생각을 척척 해낼때, 혹은 나는 몇일을 걸쳐 해낸 일을 하루만에 끝낼 때 여러가지 감정이 드는건 사실이야."
"나도 그것과 같아. 하루만에 되는것을 열흘 한달이나 걸리는건 무슨 기분일까? 라는건 말야. 경험하지 못한 자에게 있어서는 아주 신선한 경험이거든. 나는 말야 책을 아주아주 빠르게 읽어. 도서관에서도 나보다 빨리 읽는 사람은 본 적이 없지. 하지만 책을 빠르게 읽는다는 것은 재미를 너무 빠르게 주파해버린다는 거야. 어차피 같은 내용인데 나는 30분의 즐거움만, 다른 사람은 수시간의 즐거움을 얻게 되지. 어느것이 좋냐고 묻는다면 물론 빠르게 읽는 쪽이 낫겠지. 하지만 빠르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느리게 읽는 다면 어떤 기분일까, 자연스레 생각하고 동경하게 되는거야."
"거 참 알기 쉬운 비유구만, 그래서 바보가 되고 싶다는 거냐?"
벤하르트는 기가 차서 비꼬듯 말했다.
"경험이라는 거지 경험. 바꾸자고 하면 누가 그런 평범함과 바꾸겠어? 100만마크닐짜리의 가치의 머리와 1마크닐짜리의 머리를 마꾸는 셈일텐데,"
"실례잖아! 내 머리는 네 버리의 100만분의 1짜리가 아니라고,"
"아니었나? 그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심이라는게 더 무섭구만,'
"뭐 어쨋든 간에 나는 지금의 상황을 좋게 좋게 보고 있어."
"무슨 상황?"
벤하르트는 퉁명스레 물었다.
"네가 나에게 의지하는 이 상황 말야."
레니아는 한자 한자 또박또박 말했다.
"전에는 무슨 어린 아이를 대하는 것 마냥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 취급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건 이제 일절 없지. 이제 남은 건 내가 너를 바보 취급 하는 것으로 복수하는 일밖에는 남지 않았어."
"뭐야. 그때 일을 그렇게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거야? 애초에 내가 괴롭힌 이야기도 아니잖아."
"그렇기야 하지만, 자존심에는 상처를 많이 입었었지. 그 당시에는 신에서 강등당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었기도 했고, 지금은 덤덤하다지만 사실 매일 밤 너를 저주하곤 했어."
"정말?"
"아니. 화가 나기는 했지만,"
"레니아 오늘 미묘하게 기분이 올라 있는 것 같은데,"
"그럴지도? 오랜만의 마을이니까, 어쨋든 농담은 이쯤 해두고, 그 당시의 나는 벤 네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새삼스럽지만 '신의 힘을 잃어 버린 나는 이정도로 무력한 존재였구나..' 하고 느낄 정도였어."
"그랬었지."
수긍하며 끄덕이는 벤하르트의 턱을 레니아는 번개같이 지르면서 말했다.
"실례잖아."
벌러덩 자빠진채로 벤하르트는 어질거리는 머리를 바로잡고 말했다.
"네 이 행동이 훨씬 실례라고 생각한다만! 그나저나 완전히 허를 찔렸네."
"방심했구나 벤. 내 실력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네 빈틈을 노리기 위해서 말이지!"
"거 참 기분나쁜 성장이구나. 내 턱을 때리기 위한 성장이라니.."
"크흠 어쨌든간에 네가 그렇게까지 무방비하게 된 건 나를 믿기 때문이니까, 그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거야. 네가 모든 것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을때 소망했던 것은 언제고 네가 나에게 의지했으면 하는 생각이었거든."
레니아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이야기 했다. 그녀가 멋쩍어 한다는 것을 눈치챈 까닭에 벤하르트도 덩달아 멋쩍어 져서 코를 긁었다. 잠시 생각하고 그는 입을 열었다.
"흐 흠.. 너만한 여행동료는 어딜가도 없을거야."
"저기 그런 이야기를 하면 쑥쓰럽지 않아?"
레니아는 어느새 평상시의 표정으로 돌아가 정색하고 있었다. 자기 혼자만 안정권으로 달아나서 벤하르트를 이상하게 보는 그 놀리는 시선에 벤하르트는 팔딱 넘어가 말했다.
"정말 얄미워 졌구나! 여러가지 의미로 말야."
벤하르트는 답지 않게 홍당무처럼 붉게 해 대답하고는 횡설 수설 했다. 레니아는 낄낄 거리면서 벤하르트와 노닥 거렸다.
엔도픽은 마수를 기르는 마을이었다. 마을의 사람은 보통의 마을보다도 훨씬 적은 수였지만, 마을은 상당히 평화로웠다. 도저히 마수와 공존하는 마을 처럼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수들과 함께 지내야 하기 때문에 마력석은 사용하지 않았고, 때문에 엔도픽은 항상 위험과 함께 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수와 함께 하는 마을이기에, 자연히 마수들도 그들을 도와 주었고,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라면 외부의 마수가 마을로 쳐들어 오거나 시비를 거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본래 마수는 개인적으로 살아가는 동물이었다. 그런 기본적인 본능에서 벗어나 인간에게서 실력을 기르고 군을 이루어 싸우는 마수들에게 시비를 걸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없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무서워 해야 할 마수와 함께 더불어 생활 하기에 마수의 위협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아무래도 재밌는 사례가 아닐 수 없었다.
벤하르트는 엔도픽 마을의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면서 정보를 모았다.
"그래서 말야. 이곳의 마을 사람들은 성년이 되면 마수를 하나 받는 다고 해."
"성년이라고?"
"그래."
레니아는 바로 눈 앞에서 마수와 놀고 있는 꼬마를 바라 보면서 물었다.
"성년이 몇살인데?"
"13살이라고 하더라."
"참 조숙하기도 하겠네."
"그래서 마수와의 교감을 맞추게 되는데, 마수와 인간이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게 되면 그들은 친구로써 묶여 저렇게 같이 살아간다는 거야. 굉장하지?"
"그런데 벤. 굉장히 기뻐 보인다?"
벤하르트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기본적으로는 평화 주의자 니까 말이지."
"그 말은 정정 해야지. 이기주의자가 맞다고 생각해. 평화는 그 뒤에 따라오는 부록 같은 것이고,"
"매번 내가 내세우던 말이라 부정도 못하겠구만,"
에린델에 와서 벤하르트는 인간과 마수가 수도 없이 싸우고 원망하는 모습을 보아 왔다. 그런 그에게 이렇게 두 이종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마수는 인간을 위해 인간은 마수를 위해 살아간다라고 하는게 이 마을이 주장하는 바라고 하더라 멋지지 않아?"
"멋지네."
레니아는 약간은 심드렁하게 말했지만, 벤하르트는 그것을 알아 차리지 못했다. 레니아는 꼬마와 놀고 있는 마수를 빤히 쳐다 보면서 중얼 거렸다.
"참으로 멋져."
- 작가의말
오늘은 기염을 토해서 (?) 조금 일이 많았는데 다 끝내고 나니 11시.. 1시간만에 가능할까? 하면서 초조해 하면서 썼는데, 가능하네요. 혼란하지만 않으면 이미 알고있는 내용이기에 쑥쑥 써지는데 가끔은 막히는 부분을 어떻게 서술해서 지나가야 할지 모를때,, 두시간이 있어도 3500자를 쓰기 번거로울때가 있다는게,
요즘은 알바시작이 7시인 것을 뛰느라 비몽사몽이네요.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야행성이거든요.. 하루가 몽롱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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