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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 Grey의 문화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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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령 마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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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20 09:06
최근연재일 :
2021.04.06 03:11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313
추천수 :
0
글자수 :
77,399

작성
21.03.26 05:36
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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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9쪽

8. 접시닦는 지구의 미소녀(?)

DUMMY

8. 접시닦는 지구의 미소녀(?)



왈도씨는 갑자기 나타났던 것처럼 사라졌다.

내 손에는 그가 남기고 간 거스름돈이 있다. 얼마인지도 모르는 이 금액이 내가 쓸 수 있는 화폐의 전부다.

일단 나는 그릇에 남아있는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었다. 조금 찝찝하긴 해도 왈도씨 그릇에도 손댔다.

난 지금 거진데 이 정도 극복 못하면 안 된다. 더 한 경우라면 벌레도 잡아먹어야 할텐데.

포크로 쿡쿡 찍어먹으면서 나는 이 돈을 밑천 삼아서 사업을 해야 하나 아니면 구걸이나 노동을 해서 돈을 더 모아 사업을 해야 하나 고심했다.

왜 사업이냐면 간단하다. 망해봤자 지금보다 별로 나쁠 게 없잖아.

지구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들은 다 사업가라는 걸 생각해보면, 거지가 꿈꾸기에 사업가 보다 더 나은 게 어디 있겠어?

성냥팔이 소녀도 사업가였는데,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내가 사업을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설마 이 돈으로 성냥 몇 통도 못살까? 아니면 라이터라도. 아니, 껌이 나을까? 여기도 껌이 있다면.


-정보 수집을 권장합니다. 첫번째 미션을 빨리 수행해야 두 번째 미션으로 넘어갑니다.


재키가 메시지를 띄웠다.

나는 신경질을 냈다.

“야. 일단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야. 봐. 여기도 돈 쓰잖아. 돈만 있으면 정보고 뭐고 다 쉽게 할 수 있어. 머리 좀 쓰고 살자.”


-첫 참가자의 미션이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재키가 퉁명스럽고 좀 사가지가 없다. 그래도 말은 맞다.

나는 첫 참가자라서 죽여야 할 놈은 죽이고 죽이지 말아야 할 놈은 죽이지 않아야 하는 기본 미션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우주선에서 그 아나운서 아줌마는 우리한테는 모두 남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잖아. 나도 우리에 속하고, 그러면 나한테도 사람 죽일 능력이 있다는 건데.

이건 실로지즘(syllogism, 삼단논법)에 의한 결론이다. 그런데 어떻게? 나 통역사라서 아무 능력 없잖아.

“재키. 난 어떻게 사람을 죽이지?”


-답을 특정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이것이 갑자기 퇴보한 척하네. 어차피 너한테 큰 기대 안했어.

일단 숙식해결이 우선이다.

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식당 주인한테 두 손을 모아서 베개 베는 시늉을 하고 배도 만지면서 먹을 것과 잘 것이 필요하다는 걸 어필했다.

접시를 닦는 시늉까지 하고 나자 주인은 이해하고 나를 고용했다.

말로 뭐라뭐라 했는데 귀를 쫑긋해도 바람소리처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일단 소리라도 배우려 했는데 쉽지 않다.

주방에서 싱크대에 쌓인 접시를 주인은 손으로 가리켰고, 나는 바로 손을 걷어부치고 접시를 씻었다.

동생이 넷이다. 접시 닦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갈았던 기저귀도 몇 갠지 모른다. 난 다섯살 때부터 막내 동생 기저귀를 갈았으니까.

이 별든 말은 달라도 정말 지구와 비슷하다.

일단 바디랭귀지가 통하는 걸 확인하고, 굶지 않을 뿐 아니라 잘 곳도 해결했다는 생각에 다음 단계를 생각했다.

말을 배워야 한다. 절대 서둘러서는 안된다.

최소한 왕이 다스리는 가장 작은 나라가 어딘지는 알아야하고, 갈 때 고생하지 않도록 준비를 할 거다. 그럴려면 무조건 이 식당에서 기반을 닦아서 사업을 해야 한다.


식당에는 부자재를 들여놓는 작은 방이 있고 주인 아줌마가 거기서 잘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눈만뜨면 접시와 나이프, 포크를 씻고 닦았다. 주방청소도 열심히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하고 나니 식당이 훨씬 쾌적하고 장사가 잘 되는 느낌이었다. 그 사이에 자꾸 귀를 기울이니 바람 소리같던 말들이 조금씩 분간이 되기 시작했다.

나를 부르는 말, 주문하는 말, 계산을 요청하는 말, 또 몇 가지. 그러나 입으로 따라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사용한 방법이 한 마디 들었으면 다른 말을 구분해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그 소리만 입으로 반복했다.

일주일 지나고, 내 팔다리의 알통이나 낯짝도 더 두꺼워졌는데, 주인 아줌마가 야채를 주면서 쓸라고 했다.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손으로 자르는 시늉까지 하면서 말해줬으니까. 칼을 들어보이며 뭐라 했는데, 보나마다 조심하라는 소리였을 거다.

드디어 때가 왔다. 이제 내 검술을 연습할 때다.

주인 아줌마가 나가고 난 뒤에, 나는 아줌마한테 받았던 칼을 살며시 치워버리고 카드를 오른손 손날 아래로 뽑아냈다. 손을 뚫고 나온 모습이 이뻐보이지는 않았다.

모양을 조금 다듬었다. 길이는 좀 길게 뽑고, 끝도 모가 나지 않게 했다. 카드는 탄성공간처럼 그래픽을 다루듯 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생각하면 생각하는대로 모양이 바껴 주니까.

두께를 줄이고 야채 위에 대고 손목을 살살 흔들었다.

쓰익!

야채는 두부보다 더 쉽게 잘렸다. 그런데 아차! 도마까지 잘려버렸다. 이거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하겠는걸.

잘린 도마를 안 보이는 곳에 치우고 다른 도마를 가져다 썼다.

야채를 자른 즉시 도마에 칼(카드)가 닿을 때 날을 두껍게 만들었다. 2밀리미터 정도 두께가 되니까 도마에 손상이 가지 않았다.

섹트 94의 파, 무우, 호박 같은 것을 조심해서 계속 쓸었다. 날 두께를 실시간으로 조절하면서 자르는 건 집중력을 많이 필요로 했다.


-재클린 710을 그런 용도로 쓰면 안 됩니다. 애플리칸트 한, 어떻게 그런 식으로 재클린 710을 사용합니까. 멈추세요.


빨간색으로 재키가 띄운 메시지에 분노가 느껴진다. 아마도 제 몸이라서 화가 난 것일테지.

“안 된다는 규정이나 법 있어?”


-그런 건 없지만,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중단하십시오. 아무도 카드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내 카든데 어떻게 쓰던 내 마음이지. 이게 걸핏하면 선 넘으려 하네. 별 도움도 안 되는 것이. 닥치라고 해준 후에 나는 칼질 연습에 더 집중했다.

또 도마를 하나 날려 먹었다. 모두 재키 때문이다.

도마를 몇 개 더 날릴지 모르겠는데, 설마 이것 때문에 쫓겨나지는 않겠지. 월급에서 까라고 하자. 노동법에 안 걸리려면 최저시급으로는 계산해줄거야.

요리사 아저씨에게 야채를 가져다 주자 잘 잘랐다고 칭찬했다.

이제 칭찬하는 말이 뭔지도 배웠다. 아. 어쩌면 감탄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몇 번 더 들으면서 확인해봐야겠네.

50킬로그램쯤 되는 야채를 다 자르고 나자 녹초가 되어 버렸다.

이거 참 쉽지 않다. 야채를 자르고 도마에 카드가 닿기 전까지는 내 생각에 천분의 1초도 안 될 거다. 그 사이에 카드의 두께를 바꿔야 하니 내 정신이 칼날 같아 지는 기분이다.

나쁜 짓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겁이나서 도마 잘라먹은 걸 고백했다. 주인 아줌마가 놀라는 것 같았지만 꾸지람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었는데, 아무래도 마법사냐는 말이지 싶어서 고개를 도리도리했다.

나쁜 상황에서는 일단 뭐든지 부정하는 게 최고다. 잘했다고 칭찬하는 거면 겸손이 될테고, 책임을 묻는 거면 부인하는 거니까.

귀머거리 3주, 벙어리 3주를 식당에서 보내며 나는 결국 이곳 말의 기본 형태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발음하는 음소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하하.

여기 말도 결국 음소는 많지 않네. 한국어 음소 40개, 영어도 미국 영어는 자음모음 40개, 영국영어는 43개 정돈데, 여기도 40개네. 인간 신체구조로 보면 역시 40개 정도 소리로 다 말하고 있다는 거잖아.

이제 가사에 이 40개 음소 다 들어가 있는 노래 한곡 찾으면 금방 끝낸다 이거. 한곡으로 안 되면 두 서너 곡 이어서 메들리로 부르며 연습해주지.

난 이제 통역사의 직감으로 알 수 있다. 팝송 같은 걸로 영어 공부 하는 거 아니라고. 발음만 하면 끝장 낼 수 있다. 섹터 94 언어 금방 익혀 주지.

이 6주 동안 내 말문만 터인 것은 아니다.

내 카도술도 일취월장했다. 난 이제 손에 물 안묻히고 카드로 접시닦는다.

“아줌마.다 끝났어요. 오늘 좀 일찍 쉬어도 돼요?”

“그러렴. 고생했다.”

내 말을 주인 아줌마도 알아듣고 나도 주인 아줌마 말을 알아 듣는다.

40가지 음소 연습이 끝나고 나면, 이곳 원주민 수준으로 말아주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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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7. 지적인 전사 21.04.06 8 0 8쪽
17 16. 영력상자 - 꼬리치기 21.04.03 14 0 8쪽
16 16. 영력상자 - 추적 21.04.03 12 0 8쪽
15 15. 타임 에디팅 21.03.31 13 0 11쪽
14 14. 거인 숲의 유령 지능 21.03.31 11 0 10쪽
13 13. 애플리칸트 집결 21.03.30 17 0 10쪽
12 12. 비행선 탈취 21.03.29 14 0 19쪽
11 11. 순간이동보다 나은 21.03.28 18 0 10쪽
10 10. 첫 통역이 이상하다. 21.03.27 13 0 10쪽
9 9. 비급 '검술의 창조 원리'를 사버렸다. 21.03.27 15 0 9쪽
» 8. 접시닦는 지구의 미소녀(?) 21.03.26 20 0 9쪽
7 7. 감독관님, 저 돈 좀 주세요. 21.03.25 16 0 14쪽
6 6. 인간들의 별 섹터 94 21.03.24 14 0 8쪽
5 5. 탄성공간의 육체파 미소녀(?) 21.03.24 21 0 9쪽
4 4. 통역사가 되었다. 21.03.23 18 0 5쪽
3 3. 나도 카드 있다. 21.03.22 21 0 8쪽
2 2. 멋진 놈들(?) 21.03.20 24 0 8쪽
1 1. 천공의 환승 공항 21.03.20 4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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