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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 Grey의 문화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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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최근연재일 :
2021.04.08 05:06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767
추천수 :
3
글자수 :
175,307

작성
21.03.20 13:54
조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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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10쪽

5. 도플갱어 위대해지다. - 머리 좀 쓸 수 있겠는 걸.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5. 도플갱어 위대해지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대로 나는 집을 가지고 핑크 코트(Pink Court)로 들어왔다.

다른 우주나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도 고려했지만 이미 나는 지구의 거짓말에 심하게 물이 들었다.

텔레비전과 넷플릭스 드라마, 그리고 영화며 늘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음악이 없는 곳에서 산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성곡 그 거짓말장이를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나는 거짓말을 사랑하는 존재가 된지 오래다. 그 놈을 미워하지는 못한다.

핑크 코트는 내가 지구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아프리카의 프레미어 광산에서 찾아 직접 가공했던 것이다.

용도는 우주선이었다.

몇 개의 차원을 안정적으로 넘고 공간을 도약하기에는 다이아몬드 같은 순수한 원소의 결정체만한 소재가 없다.

크기는 이 정도면 아주 좋다. 작정하고 실으면 뉴욕시 전체를 실을 수 있을 정도고, 사람이 천만 명 이상 들어가도 별 문제가 없다.

핑크 코트 이전에 내가 탔던 우주 전투선인 블랙벨(Black bell)은 새끼 손톱만해서 많이 갑갑했었다.


텔레비전으로 넷플릭스가 나오는지부터 확인했다.

지구의 문명 사회는 이미 인터넷으로 덮여 있다.

케이블이 없어도 핑크 코트의 전파 분석 기능을 이용한 무선으로 넷플릭스 연결이 순조롭게 되었다.

이거면 됐다.

나는 다시 평화를 찾았고, 이제는 인간(지구인) 성곡의 가능성을 시험해 볼 때다.

성곡은 위험하겠지만 그 정도 위험은 당연히 극복해야 하는 거다. 실패한다면, 조금 안타까운 일일 뿐이다.

지구 나이로 사백 년 이상 살면서 내가 만난 사람과 존재는 많다.

그들 중에 나와 가까웠고, 나와 사랑했고, 미워했고, 떠나고, 죽었던 사람이나 존재가 한 둘이 아니었다.

성곡도 살아남지 못하면 그들 중의 하나가 된다.

오래 살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이 우주의 '섭리'라는 것이 그렇다.

어떤 감정이든, 시간이 지나면 하찮아지게 되는데, 감정이 없는 사실과 기억은 그저 낙엽 같은 감상만 잠시 불러일으킬 뿐이다.

나도 언젠가는 우주의 먼지가 될 것이고, 그 이전에 누군가의 손에 죽음을 맞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단지 그뿐이다. 특별할 게 없다.

머릿속에서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해버리면 어떤 감정이든, 그게 근심이든 두려움이든 뭐든 다 금방 색이 바라지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우주에는 한 번 존재했던 것은 영원히 존재한다. 지나간 영화 스크린의 한 장면이 영원히 그 모습이듯이.

나를 습격했던 도플갱어는 늙었고, 아주 하찮은 놈이었다. 대부분 도플갱어가 그렇듯이, 하이잭커 밑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던 놈이었는데, 내 일부를 복제하고는 반쯤 미쳐 버렸다.

지금 그 놈은 정신이 붕괴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나를 복제하기 전에 성곡을 복제했고, 그 복제가 피상적일망정 정신세계가 해괴하고 별난 성곡의 사고방식에 그놈은 점차 혼란을 느끼지 않을리 없다.

그 위에 내 일부가 얹혔으면 자멸은 시간 문제다.

나는 하이잭커의 기억을 아주 조금밖에 읽지 못했다. 성곡에게 남은 흔적이 너무 적었다.

그러나 지구에 숨어있는 하이잭커가 여럿 이라는 사실은 알았다. 약간 궁금했다. 그들은 이 세계, 지구의 진실을 얼마나 알까?

이성적인 결론은 '전혀 모른다'가 된다.

그들이 진실을 안다면 거대한 조직을 만들고 암중에 세상을 움직이는 짓을 감히 하지 못한다. 겨우 하이잭커 따위가.

나는 지구의 일에 관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순수한 내 의지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지구의 거대한 거짓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진실이 웅크린 곳이다.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짜 괴물이 여기에 있다.


"거짓! 거짓! 거짓!"

베모는 코네티컷 해변을 따라 북으로 달리면서 소리쳤다.

한 걸음마다 발밑에서 바닷물이 부서져서 둥근 물방울을 비산시켰다.

스펙트 빌리를 사용하는 중이라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베모가 외치는 소리도 지구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바람소리처럼 들린다.

도플갱어 베모는 사피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몰골로는 도저히 멋장이 사피로라고 할 수 없을 상태였다.

눈은 충혈되어 광인 같았고 머리카락은 베토벤처럼 제멋대로 흩날렸다.

고함치던 베모는 엎드려서 바닷물을 들이키다가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해초들 사이로 너울대며 떨어지는 베모의 눈동자는 이제 죽은 사람처럼 동공이 풀려 버렸다. 그러나 입을 히죽이면서 물속에서 중얼거렸다.


"총통각하, 위대한 총통각하. 히히. 다시 한 번 불러봐 이 천한 도플갱어 놈아. 예. 예. 그래야지요. 위대한 총통각하. 엿 같은 총통각하. 히히. 제 정신이 총통각하에 녹아드는군요. 엿 같이. 아. 물론 당연히 거짓말이지요. 거짓말이고 말고요. 키키. 총통각하, 겁먹지 마십시오. 엿 같이 위대한 총통각하한테 무서운 게 어디 있습니까. 아무렴 없고 말고요. 에...... 이것도 거짓말아니라는 거짓말이지만 이게 거짓말이라는 둥. 그런데 우리 엄마는 어땠어요? 꺼져. 다 꺼져."


베모가 두 손가락으로 군대식 경례를 하는 시늉을 하자 바닷속에서 물이자리를 비키면서 물로 만든 거대한 궁전이 생겨났다.

베모는 비틀거리며 걸어가서 황제가 앉을 것 같이 보이는 물로된 큰 의자에 앉았다.

수중에 갑자기 생겨난 공동 밖에는 영문을 알지 못한 물고기떼가 우왕좌왕하며 맴돌았다.

베모는 의자에서 고개를 늘어뜨린 채 엄숙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내게 강요하지 마라. 나는 제왕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 누구냐? 내가 총통이냐?”


그러나 이내 경박한 어투로 마구 지끄렸다.


“이거....... 사실이냐? 꿈이냐? 아니, 판타지냐? 기분 나쁘게 하찮은 하이잭커 새끼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해? 다 죽여버리겠어. 죽이려면, 그래, 죽이려면 기술이 있어야지. 하이잭커 새끼, 어떤 기술로 죽여야 하지?”


그러다 입을 다물고, 뜻없는 소리들을 다시 지끄리던 베모는 문득,

“아! 거기! 총통각하 거기가면 되겠습니다요.”

하면서 히죽히죽 웃었다.

베모는 도플갱어로 나이가 180살 정도였다.

도플갱어의 평균 수명이 170살이니 베모도 늙은 편에 속했다. 그 나이가 되는 동안 적지 않은 임무를 수행했고, 인간과 다른 존재들을 복사하였던 횟수도 많았다.

도플갱어의 임무 중 열에 아홉은 암살이었다.

암살 대상과 가까운 사람을 복제하여 다가가고 원래의 암살기술 또는 복제한 대상이 괜찮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그 기술을 사용하여 살해했다.

거의 모든 도플갱어들이 자기의 특성을 이용하여 이런 방식으로 일하고, 임무를 완수하고 나면 복제를 풀기 이전에 괜찮은 지식이나 기술을 별도로 저장하여 놓는다.

또한 남을 복제하는 것을 특기로 삼는 도플갱어는 특히 늙으면 원래의 정체성을 점차로 잃게 되기 때문에, 그들은 주기적으로 이전에 자기를 복제해서 저장해 놓았던 것을 재 복제하여 입는다.

베모는 자기 저장소로 자기 일족의 저장소 일부를 할당 받아 사용하고 있었다. 사피로의 거대한 정신에 녹아들어가면서 베모는 소멸의 위기 속에서 저장소를 떠올렸고, 저장소만이 자기를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을 가졌다.

베모 일족의 저장소는 매사추세츠주의 난타스켓 비치 인근에 있었다.

베모는 수중 궁궐을 흐물고 상어 한 마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 당기며 히죽 웃었다.

"총통각하. 각하를 상어한테 좀 대접해야겠습니다. 히히. 덩어리가 너무 커서 제 입에 다 들어가지가 않습니다요."

베모에게 끌려온 상어가 발버둥치면서 베모를 덮치려했다. 그러나 베모가 상어의 코를 주먹으로 치는 순간, 베모는 순식간에 큰 상어로 변해버렸다.

끌려왔던 상어가 놀라며 몸을 돌리자 상어로 변한 베모는 달아나는 상어를 쫓아가 배를 물어 뜯어 죽였다. 그런 후에 난타스켓 비치를 향해서 질주했다.

상어를 복제하면서 사피로를 복제했던 것의 반 이상을 잃어버렸지만, 늙은 도플갱어의 지혜로 베모는 자기의 정체가 사피로에게 녹아드는 것을 일단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사피로에게 녹아든 자신의 일부마저 잃어버린 것은 매우 애석했다.

베모는 밤 늦은 시간에 난타스켓 비치의 저장소에 도착했다.

복제를 풀고 자기의 모습으로 돌아갔을 때, 베모는 자기가 백 년 전보다 더 젊어지고 강해졌으며, 무엇보다 지혜로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 느낌. 찰스 레즈니코프의 사무실에서 젊은 변호사를 복제했을 때부터 조금은 있었던 그 느낌이었다.

중간에 사고가 생겼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변호사 놈을 찾으라는 지시가 왔을 때 바로 총통의 집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도 원래 자기보다 좀 더 똑똑해졌기 때문이었다.

그 집에서 총통을 죽이고 기다려서 변호사 놈이 오면 죽이려 했던 것이 순간적으로 떠올렸던 원래 계획이었다.

보통 상대를 복제한다고 해서 상대처럼 똑똑해지거나 멍청해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똑똑해졌다는 것은 대상이 그만큼 특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오늘 두 개의 잭팟을 연이어 터뜨렸다.

베모는 자기의 기록들을 만지려다가 점점 더 똑똑해지는 자기를 느끼면서,

"호. 이것 봐라. 내가 똑똑해졌단 말이지. 그럼 머리 좀 쓸 수 있겠는걸. 자꾸 더 똑똑해지는 걸."

하고 중얼거렸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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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도플갱어 위대해지다. - 머리 좀 쓸 수 있겠는 걸. 21.03.20 18 0 10쪽
8 4. 비밀은 다이아몬드 속으로 - 살아남는 시험 21.03.20 18 0 7쪽
7 4. 비밀은 다이아몬드 손으로 - 합리적인 보통 사람들은 21.03.20 16 0 7쪽
6 3. 육체와 통제의 강탈자 - 사냥꾼과 곰의 협상 21.03.19 19 0 9쪽
5 3. 육체와 통제의 강탈자 - 환상세계 21.03.19 17 0 8쪽
4 2. 이상한 능력과 아프리카 빨간 집 - 준비된 몸 21.03.18 20 0 9쪽
3 2. 이상한 능력과 아프리카 빨간 집 - 깊고 긴 함정 +2 21.03.18 27 1 7쪽
2 1. 평화와 낭만의 종말 - 무슨 짓했어? +1 21.03.18 28 1 8쪽
1 1. 평화와 낭만의 종말 - 거짓말장이 성곡 +2 21.03.18 66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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