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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 Grey의 문화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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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최근연재일 :
2021.04.08 05:06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763
추천수 :
3
글자수 :
175,307

작성
21.03.19 10:11
조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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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3. 육체와 통제의 강탈자 - 사냥꾼과 곰의 협상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휘익! 빌딩 사이에서 한 번씩 이는 도시의 돌풍은 성곡을 아찔하게 했다.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바람이 몸을 흔들면 온 몸에 전기가 이는 듯이 졸아들었다.

성곡은 발발 떨면서 일 미터 정도 더 내려와서 겨우 발 디딜만한 곳을 찾아 쉴 수 있었다.

성곡은 숨을 몰아 쉬면서 쪼그려 앉아 밑을 내려다 보았다.

순간적으로 아찔해져서 벽을 꽉 붙잡았다. 시각이 주는 두려움이 촉각(바람)이 몸을 흔들 때보다 더하다.

벌써 세 시간 째다. 벽에 붙어서 마구 오르내리는 건 원래 하는 사람이나 멋지게 하는 일이지,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이는 변호사질 하며 벽에 포스트잇이나 붙이던 인간이 할 만한 게 아니다.

팔도 다리도, 심지어 심장도 자기 게 아닌 것처럼 낮설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이만큼 지치기 전에 유리나 벽을 뚫고 들어가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느낌일망정 빌딩 안으로 들어가는 건 그냥 자살 행위다.

언제부터 이 세상이 판타지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어쩌면 처음부터 일지도), 자기를 찾아서 혈안이 되어 있는 이상한 놈들이 도처에 있을 것이고, 지금도 느껴지는빌딩 안에서 힘의 움직임에 성곡은 자신이 그들의 시선을 계속 피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둔 셀폰이 간절하게 눈에 어른거렸다.

셀폰만 가져왔어도 사피로 선생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받을 수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매니징 파트너한테 불려가면서 셀폰을 가져가지는 못한다.

녹음을 하는지 의심을 받을 수도 있고 파트너와 대화 중에 전화가 오기라도 하면 이만저만 실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곡은 알고 있었다. 자기로 변신했던 놈이 전화기나 다른 소지품들도 가지고 갔을 거라는 것을. 품에 아직 지갑과 신분증이 있는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판타지다.

성곡은 다시 한 번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정황은 확연히 알았다. 세상은 판타지고 라탐앤 왓킨슨은 괴물들의 소굴이다.

성곡이 멋지게 해결했다고 생각했던 일곱 건의 큰 케이스는 성곡을 시험했던 것이고, 그 시험은 괴물 하이잭커가 성곡의 몸을 강탈하여 가지려는 육체적 지적 조건에 대한 시험이었다.

성곡으로 변신한 도플갱어가 케이프타운에 가서 알리바이를 만드는 동안에, 매니징 파트너인 찰스 레즈니코프씨는 성곡의 몸을 강탈하려는 음모가 있었다.

'사냥꾼과 곰'

성곡은 피식 웃었다.

하나도 재미없는 진부한 농담은 상황이 받쳐주지 않으면 끝까지 듣기도 힘들다.

성곡은 진짜 찰스 레즈니코프씨 역시 이런 방식으로 하이잭커에게 몸을 빼앗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성곡이 몸을 강탈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어쨌든 전적으로 사피로 덕이었다.

하이재커는 상대방의 몸을 강탈하기 위해서 먼저 그 상대방의 몸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때 하이재커가 가진 힘도 함께 들어간다.

성곡은 그 전에는 별 힘이 없었지만 몸속에 들어온 하이재커의 힘을 쓸 수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하이재커는 오히려 힘의 일부를 빼앗기고 자기 본체는 찢긴 채로 죽었다.

어쨌든 거의 적수가 없고 강해서 지배자에 속하는 그 하이잭커는 죽었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채로 죽었다는 문제를 남기면서.

성곡 때문에 죽었다고는 할 수 있어도 성곡이 죽였다고 하면 억울하다.

성곡은 살인의 고의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원인 제공 또는 촉발(rovocation)의 책임은 레즈니코프씨 또는 그 하이잭커에게 있다.

성곡은 법률의 여러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프랙티스했다. (의사나 변호사가 밥벌어 먹는 것을 고상하게 practice라고 한다.).

원래 대부분 큰 로펌에 들어가면 한 가지 분야만 하게 되는데 성곡은 특이하게도 계약법, 형사법, 행정법, 심지어 상속과 파산법에 이르기까지 사건을 할당받아 프랙스했다.

그 중에서 유독 많기는 형사법 사건들이었다..

날마다 보는 서류들에는 총맞아 죽고 칼에 찔려 죽은 피해자와, 약먹이고 토막쳐서 죽인 범죄자의 정황으로 가득했다.

로펌에서 범죄자를 부르는 멋진 말은 고객(client)이다. 이제 성곡도 자기 자신의 고객이 되어버렸다.

성곡은 쪼그려 앉은 채 습관적으로 자기의 살인을 대체 법정에서 어떻게 변호해야 할까 생각해보았다.

큰 범주에서 이건 정당방위다.

덥쳐서 몸 뺏으려는 놈한테 저항해서 손가락질했는데 그놈이 죽어버렸으니 여러가지 논점이 터져 나온다.

몸을 뺏으려고 했으니 이건 강간의 의도가 있었다고 해야 하나 절도, 아니 눈 앞에서, 폭력을, 신체에 직접 사용하여, 강탈하려 했으니까 강도의 의도가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에 대해서 저항한 건 자기의 재산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정당방위인데, 이게 몹시 애매하다.

레즈니코프는 성적으로 자기를 강간하려는 의도도 없고, 분명히 살해하거나 상해하려는 의도도 없었다. 그냥 몸을 차지하려고 했을 뿐이다.

타인의 몸을 손상하지하고 차지하여 지배하는 행위는 미국의 보통법(common law, 관습법) 이나 모범형법전(model penal code)에도 죄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죄로 규정되지 않은 행동에 대한 방어로 상대방을 죽인 것은 매우 과한 방어가 된다.

어쨌거나 객관적으로 인간의 합리적이고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레즈니코프는 단지 성곡의 손을 잡아서, 성곡이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을 한 것이니 기껏해야 배터리(Battery, 폭행) 정도다.

법으로 가면 불리하다.

성곡은 머리를 저었다. 이런 경우에는 사실 관계의 입증 기반을 붕괴(undermine) 시켜야 한다.

정당방위의 구성요건을 일일이 거론하지도 말고, 무엇보다도 손가락질 했는데 얼굴에 주먹만한 구멍이 뻥 뚫려서 죽었다면 범행 도구의 지정에서 일반적이지 않다.

합리적인 배심원들이라면 검사가 범행 수단으로 제시하는 성곡의 손가락이 레즈니코프의 얼굴에 구멍을 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검사는 성곡의 손가락과 레즈니코프의 사망이라는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고 성곡은 증거불충분에 기인한 무죄가 될 것이다.

어쩌면 대배심(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심리)에서 불기소 결정이 먼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대배심은 증거법에 대해서도 느슨하고 어느 정도 적당하면 일단 기소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

검사는 밝혀내지 못할 거고 성곡은 잡혔다 했도 무죄로 법정에서 걸어나올 것이다.

한 번 돌아가기 시작한 성곡의 머리는 조금 더 돌아갔다. 플랜 B가 습관적으로 준비되었다.

만약 위의 방법을 사용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도플갱어 놈의 알리바이를 이용하거나 도플갱어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울 수 있다.

자기 모습을 했던 그 도플갱어는 이미 회사를 나갔을 것이고 곳곳에 푸티지(footage, 흔적, 특히 감시카메라 흔적)를 잘 남겨 놓았을 것이다.

그 놈의 역할이 처음부터 자기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었을 테니까 더 철저히 했을 것이다.

성곡은 자기가 도플갱어였다고 주장하거나 도플갱어가 자기였다고 주장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어느 쪽이나 법적으로는 한쪽을 범죄자로 일방적으로 특정하지 못하고, 기소기간의 도과로 이 사건은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법은 자세히 알면 알수록 많이 무르다. 하지만 법이 문제가 아니라 레즈니코프씨가 죽고나서 발생한 일, 또는 그와 한 패거리일 괴물들(아마도 부하들이겠지만)이 문제다.

경호원을 고용해야 할 판인데 돈도 아깝지만 괴물들로부터 자기를 지켜줄 수 있는 경호원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성곡의 심사가 다시 복잡해졌다.

레즈니코프를 죽인 후, 공간이 뒤틀리며 변형되는 중에 뛰어 들어온 델모어양을 몸으로 튕겨내기 전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성곡이 본 델모어양 몸과 얼굴은 뒤틀리는 공간에서 함께 뒤틀려 뭉크의 그림 '절규'를 연상시켰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뒤틀린 델모어양은 그 나름대로 섹시하고 아름다웠다.

상황이 극단적이었기 때문인지 델모어의 인상도 더 강렬했다.

그러다가 성곡은 자기가 이런 상황에서조차 여자 생각한며 자괴감에 빠졌지만 이내 그 여자는 또 어떤 괴물일까? 생각을 하면서, 여자가 아닌 괴물을 생각하다고 자기 자책을 멈췄다.

성곡은 조금 더 그 자리에 머물렀다.

여자 생각이 다 사그라지고 나자 이제는 어떻게 여기를 순조롭게 빠져나가 괴물들의 손에서 벗어나야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괴물들이 어머니한테 가는 것은 아닐지, 등등이 뒤를 이었다.

그때 성곡의 코 앞에서 공간이 벌어지면서 손이 불쑥 튀어 나왔다.

성곡은 피할 틈도 없었다. 손은 성곡의 목을 끌어당겨서 토끼굴처럼 작은 공간의 구멍으로 끌고 들어가 버렸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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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6. 접시들의 위원회 - 신의 자취 21.03.21 1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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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4. 비밀은 다이아몬드 손으로 - 합리적인 보통 사람들은 21.03.20 16 0 7쪽
» 3. 육체와 통제의 강탈자 - 사냥꾼과 곰의 협상 21.03.19 19 0 9쪽
5 3. 육체와 통제의 강탈자 - 환상세계 21.03.19 16 0 8쪽
4 2. 이상한 능력과 아프리카 빨간 집 - 준비된 몸 21.03.18 19 0 9쪽
3 2. 이상한 능력과 아프리카 빨간 집 - 깊고 긴 함정 +2 21.03.18 27 1 7쪽
2 1. 평화와 낭만의 종말 - 무슨 짓했어? +1 21.03.18 28 1 8쪽
1 1. 평화와 낭만의 종말 - 거짓말장이 성곡 +2 21.03.18 6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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