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퀵바

Earl Grey의 문화랩

표지

현세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최근연재일 :
2021.04.08 05:06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824
추천수 :
3
글자수 :
175,307

작성
21.04.05 10:32
조회
17
추천
0
글자
11쪽

22. 우주의 철옹성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22. 우주의 철옹성




핑크 코트는 소행성대를 넘어서 목성 공각(공간의 껍질)을 지났다.

태양으로 꽉 차있는 별난 태양계는 다른 항성계에 비해서 공각이 촘촘했다.

공각은 행성의 타원형 궤도를 입체로 만들었을 때 나타나는 연꽃 같은 형태를 지닌다. 태양을 돌고 있는 이러한 행성들로 인해 태양은 겹겹의 연꽃 같은 공각을 두르고 있다.

이 공각들의 모습과 현재 각 행성들의 위치를 알고 있으면 별들 간의 인력을 이용해서 적은 힘으로도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고, 모르고 무작정 벗어나려면 수 만 배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

인공위성이나 우주 발사체들이 타원을 그리며 나가는 것도 지구 인력이나마 최대한 이용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또한 태양의 중력권에서 천천히 벗어나는 데는 적당하고 꾸준한 에너지가 있으면 가능하지만,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태양계를 탈출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급행비로 지불해야 한다.

태양계로 진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급하게 진입하자면 급행비를 지불해야 하고, 급행비를 감당할 수 없으면 갑자기 강대해진 공각의 반발력에 의해서 우주먼지가 되어버린다.

나는 우주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알고 있는 항성계도 많지만 지구가 있는 태양계 같이 이상한 곳은 보지 못했다. 스스로의 위엄을 갖춰 우주의 소란을 거부한다.

목성 같이 큰 행성조차 태양계에서 공각들 사이에 허가 되지 않은 길로 진입한다면 부서져서 또 하나의 소행성대가 생길 것이다.

지구에 있는 동안 지구인들의 조급증이 만들어낸 기우를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심한 것 하나는 거대한 운석에 대한 해괴한 집착이다.

만약에 지름 얼마만한 운석이 지구에 떨어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지구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아무 데이터 없이 물리량 만으로 계산해서 공포 선전을 한다.

그런데 지구인들은 또 그런 소리를 듣고 자기가 그날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의 1조분지 1도 안되는 말에 멸망의 기대와 두려움을 '즐긴다'.

이 기묘한 현상은 그들이 '즐긴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다른 공포 사업과 마찬가지로 알리는 것을 즐기고 듣는 것을 즐기며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거다.

나는 이에는 인간이 좋아하는 거대 담론과 그런 것을 하며 아는 척하여 자기가 대단한 것인양 구는 성질이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공포 사업이나 뉴스 장사는 아마 대부분 여기에 의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칠십 억(인간의 숫자만큼)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는 자기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당장 해야할 일을 미뤄서 획득 가능했던 가치가 만분지 일로 줄어들거나, 인간관계를 소홀히하여 자기에게 열려 있던 길들이 수없이 닫히더라도, 그들이 늘 하고 있는 먹고 싸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기만 한다.

그러다가 결과가 자기를 둘러싸면 그때 자기 인생을 한탄하고 남을 원망하며, 심지어 부모에게 왜 자기를 낳았느냐고 하는 경우마저 나온다.

그런 자식 안 낳는 방법을 알았으면 부모가 먼저 알고 조치해서 안 낳았을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나는 바보고 멍청이 올시다'하고 자기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행동이다.

내가 인간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다양성과 인간 행동의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가능성이 그런 것도 다반사로 만들어 낸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큰 운석이 지구에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내가 태양을 겹겹이 에워싼 공각들을 알기 때문이고, 덩치가 큰 혜성은 이 공각들로 인해서 길에서 벗어날 수 없고, 흩어진 조각이나 운석들은 지구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소멸하기 시작한다.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룩,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 빠르게 소멸한다. 태양의 공각과 지구의 대기, 반 알렌대, 이런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지구의 방패다.

고대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공룡이 멸망했다거나, 큰 운석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주장들은 일견 타당해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 보면 그저,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거나 믿고 싶어 하는구나 생각해도 될 만큼 허술하다.

산맥을 만들고 대륙을 옮기고 바다를 가르는 지각의 힘은 대체 어떻게 설명하려고 무모한 주장을 하는가 싶다.

맨틀 상부의 무게가 조금만 차이나도 질색하면서 지진으로 갈아엎어 버리는 지구가 거대한 운석이 만든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과학이 아니라 미신이다.

그토록 거대한 운석이 대기권을 돌파하면서도 타지 않고 지표에 충돌했다면, 그때 파괴된 운석 또는 파괴되지 않은 운석들은 어디로 가고 지구상에는 주먹만한 운석조차 구하기가 어렵단 말인가?

산만한 운석은 어렵다해도 집채만한 것쯤은 운석이 떨어졌던 근처에 가득 늘려 있어야 하지 않은가?

태양과 행성이 만든 공각들 사이로 래프팅을 하듯이 흐르는 핑크 큐브의 속도는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토성 공각에서 발생한 인력의 영향이다.

이대로 가면 며칠 후에 천왕성과 해왕성 공각을 지날 것이고, 그런 후에 외곽에서 다발 폭탄처럼 광포하게 움직이며 태양계에 접근 금지 신호를 보내는 명왕성과 그 위성들이 만들어낸 공각 파도를 넘어가게 된다. 이 지역은 지구인들이 카이퍼벨트(Kuiper belt)라고 부르는 곳이다.

태양계의 행성들 중에서 태양에서 가까운 순서로 수성, 금성, 지구, 그리고 화성은 고리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다음에 있는 소행성대를 넘어가면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모두 토성 같은 고리를 가진다. 그리고 카이퍼벨트는 고전 카이퍼 벨트와 공명 카이퍼 벨트로 나뉘어 숱한 왜행성들이 태양계를 거대한 성벽으로 보호한다.

그래서 태양계에 있는 지구는 살그머니 올 수는 있는 곳이지만 (불법 이민), 침략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더구나 카이퍼벨트 안팎을 오가는 혜성들의 공격성을 생각하면 카이퍼벨트에서 전쟁도 불가능에 가깝다.

누가 태양계를 만들었을까?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 이 우주를 만든 신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다른 항성계에 비해서 지나치게 이질적이다. 즉, 작위적이다. 공들여서 만든 흔적이 너무 심하게 난다.

처음에 지구로 올 때 나는 달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노골적으로 지구를 방어하는 방패를 저리 버젓이 만들어 놓아도 되나 싶었다.

세상에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일치하고, 지구상에서 관찰되는 크기가 태양과 똑 같이 보이도록 위치와 크기를 조절하고, 그 크기에 의해서 지구의 구조가 뒤틀리지 않도록 물로 바다를 만들어 달의 인력을 완충시켰다. 하물며 행성보다 나이가 많은 거대 호위 위성이라니.

태양계와 지구를 보면 우주 종말 전쟁이나 차원 전쟁이라도 대비해서 만들어진 철옹성이라 해야 할 것이다.

순간 핑크 코트를 통해서 음성이 들렸다.

“이게... 이게 누군신가? 위대한 독재자께서 기침하셨군 그래. 숨을 데가 없어서 쓰레기장에 숨어 있었군.”

내가 싫어하는 호칭 중에 네 번째가 바로 저 '독재자'라는 소리다. 저놈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호칭을 알고 있었다면 그걸 썼을 것이다.

발 빠르다와 손 빠르다를 수식어처럼 듣던 나를 저놈은 더 빨리 찾아냈다. 저놈은 눈이 빠른 건가 귀가 빠른 건가? 못 본 사이에 더 빨라진 건가?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아득한 우주 한 구석을 향해서 그가 들을 수 있도록 핑크 코트에 지시했다.

“여기서 대기한다.”

“그래야지. 벌써 우리 애들이 거기 갔거든. 금방 도착할 거야. 위대한 독재자. 넌 거기서 죽는 거야.”

조롱하는 듯한 저 음성에 대항해서 나는

“굿”

하며 엄지를 추켜 올리며 칭찬부터 해주고 말했다.

“가만 있을테니 한 번 해봐.”

하고 나서야 엄지가 아닌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아직 지구에 완전 적응하지는 못했다는 증거다.

핑크 코트는 주파수 변조 방식으로 속도를 늦추고 카이퍼벨트대의 우주 공간에 멈추었다.

나는 거실에서 걸어가 정문을 열었다.

사막 한가운데서 밤하늘을 올려보는 듯한 풍경에 왜행성이 보인다. 크고 작은 수많은 유성들이 탁구대 위에 오가는 공처럼 달린다.

“호오라. 순순히 항복하는가? 숨어 살기에 지칠 때도 됐지. 활달한 독재자 성미에 말이야.”

그러나 저놈은 내 손과 발이 빠르다는 걸 잊고 있다.

음성과 함께 우주 공간에 동심원의 파동이 생기더니 열세 척의 거대전함이 나타났다. 길이가 각각 2킬로미터에서 12킬로미터 정도인 파괴자들이었다. 열세 척의 크고 작은 파괴자들이 형성한 공간 파괴 진식이 발동되었다.

공간 파괴 진식은 적이 있는 공간을 소멸시켜 존재의 과거 시간까지 없애버리는 공격이다.

핑크 코트의 자율 전투 본능을 달래며 기다렸다.

역시다.

이런 규모의 전투를 태양계에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멸 공간이 다 정의되기도 전에 파괴자들의 진영이 흔들렸다.

어떤 힘이 그들을 둘러쌓고, 그들은 애드벌룬이 탁구공 크기로 압축되는 것 같은 비율로 조용히 뭉쳐져서는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혜성 하나가 먹구름처럼 흩어지는 가루들 가운데로 지나가며 꼬리에 흡수해버렸고 우주 공간은 언제 열세 척의 파괴자가 존재했느냐는 듯이 고요해졌다.

태양계를 만든 누군가가 경찰 역할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나도 놀랐다.

태양계라는 작은 우주의 의지가 노골적으로 발현하는 방식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주 저편에서도 침묵이 흘렀다.

“앞으로.”

하고 말하며 나는 거실로 돌아갔다.

핑크 코트는 다시 항해를 시작했고 음성이 들렸다.

“이시모(Issimo).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이시모'라는 말은 예의없이 나를 부르는 말이다. 독재자란 말과 뜻이 같다.

“아무 것도.”

하고 내가 대답하는 순간에 분노에 찬 음성이 들렸다.

“이시모!”

“답례야.”

우주 저편에서 그 놈이 보낸 함대가 구멍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엄지손가락으로 집어 넣은 불씨가 그놈의 모든 것을 태우는 중이었다.

그놈은 전쟁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놈이지만 나는 300년 훨씬 이전부터 내가 선 공간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어느 곳에 서야 그림이 좋은지를 알고 있다.

전쟁도 재미가 영 없는 것은 아니다.

뻔한 것 같아도 창의적인 전술들이 등장하여 전세를 뒤엎곤 하는 재미가 있으니까.

품위없는 욕을 뿜어내는 그놈뿐만 아니라 우주와 차원의 모든 채널을 열고 말했다.

“기다려. 나, 이시모가 간다.”

이제 음악을 내 보낼 차례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현세 전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26. 블랙메일 from 도플갱어 21.04.08 17 0 12쪽
39 25. 권력의 빛 또는 그림자 - 인간으로 살다가 인간으로 죽게 21.04.07 22 0 14쪽
38 24. 수영장의 접시들 - 지구를 지키는 괴물들 21.04.06 17 0 10쪽
37 23. 시인의 이름 - 두 명의 신을 죽인자 21.04.06 16 0 10쪽
36 23. 시인의 이름 - 더 야해 21.04.05 15 0 8쪽
» 22. 우주의 철옹성 21.04.05 18 0 11쪽
34 21. 아이러니에 종속되다 - 사랑 혹은 혼란 21.04.04 15 0 9쪽
33 21. 아이러니에 종속되다 - 이자벨 존속살인 21.04.04 16 0 10쪽
32 20. 헤드 헌팅 21.04.02 20 0 14쪽
31 19. Some woman Oscar Crane. 어떤 여자 오스카 크레인 21.04.02 17 0 17쪽
30 18. 천천히 폭주하다 - 수영장 21.04.02 18 0 7쪽
29 18. 천천히 폭주하다 - 테이블 밑에서 21.04.02 15 0 7쪽
28 17. 시험의 종소리 - 델모어의 수작 21.04.01 24 0 7쪽
27 17. 시험의 종소리 - 괴물 속의 평온 21.04.01 18 0 8쪽
26 16. 블랙벨과 초상화 21.03.31 19 0 12쪽
25 15. 자기만의 괴물 - 선택받는 강함 21.03.30 22 0 9쪽
24 15. 자기만의 괴물 - 세균과 박테리아 21.03.30 20 0 9쪽
23 14. 반신의 거동 21.03.29 23 0 13쪽
22 13. 생명 창조의 화요일 밤 - 탐색 21.03.28 24 0 15쪽
21 12. 메이요의 표본 수집가 - 동행하는 적 21.03.27 18 0 9쪽
20 12. 메이요의 표본 수집가 - 골렘 지배 21.03.27 18 0 9쪽
19 11. 너 내꺼 - 확인사살 21.03.26 20 0 10쪽
18 11. 너 내꺼 - 캐캐묵은 소리 21.03.26 18 0 11쪽
17 8. 늑대들의 기법전수 - 거짓말까지 잘 배웠다. 21.03.25 19 0 8쪽
16 10. 늑대들의 기법 전수 - 죽을까? 그럴리가 있나. 21.03.25 18 0 8쪽
15 9. 흑백 오셀로 21.03.24 21 0 10쪽
14 8. 침대 회담 - 변호사 본능 21.03.23 23 0 11쪽
13 8. 침대 회담 - 드라이아드 21.03.23 21 0 10쪽
12 7. 옛날 옛적에 어느 변호사가 - 역습 21.03.22 23 0 10쪽
11 7. 옛날 옛적 어느 변호사가 - 거울 잠궈 21.03.22 20 0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EarlGrey'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