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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 Grey의 문화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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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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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최근연재일 :
2021.04.08 05:06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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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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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175,307

작성
21.04.0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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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7. 시험의 종소리 - 괴물 속의 평온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17. 시험의 종소리




이른 아침인데도 회사에는 괴물들의 기척이 많다.

주말인데도 출근하여 할당된 청구가능시간을 채우려는 변호사들 중에는 괴물들도 더러 있었다.

박테리아 같은 것들. 성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감지되는 그들 하나를 느끼며 실제 그들이 누구일지를 생각했다.

괴물을 감지할 수 있기 전에 알던 얼굴들과 지금 인지하는 괴물들의 느낌으로는 인물을 특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인사왔던 파트너들은 알 수 있었다.

성곡은 막 매니징 파트너가 되었지만 인수인계 외에 부산하게 할 것이 없었다.

델모어가 주는대로 서류를 검토하고 결재하면 되었다. 일이 많아도 모두 눈으로 훑어보고 결정하고 서명하는 일이었다.

메모랜덤을 쓰거나 브리프(법원에 제출하는 변호사의 법률적 견해를 담은 서류, 주로 상급법원의 항소심에 필요함)를 작성할 일도 없었다.

다만 성곡은 회사가 움직이는 전체 내용을 살펴봐야 했다.

사건의 수임내역과 담당 변호사, 그 변호사가 과연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를 검토했다.

변호사가 고객으로부터 직접 수임한 사건이 아니라면 배정하는 대로 사건을 받고, 사건을 배정하는 케이스 매니저가 적절히 처리하겠지만 그래도 지켜보는 것이 관리자의 역할이다.

큰 고객들을 확인하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이나 물밑에서 움직이더라도 덩치가 큰 사건들에는 언제든지 손을 뻗을 수 있도록 연고가 있는 변호사를 준비하는 것도 그 중 한 가지였다.

이런 업무는 델모어가 기가막힐 정도로 잘 처리하고 있었다.

십 여 명 이상이 맡아도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그녀 혼자 아무렇지 않게 즉석에서 금방 해냈다.

왜 그녀가 법대 중에서도 탑 14 또는 티어1 (teir 1)에 속하는 노스웨스턴 법대를 졸업하고도 (심지어 괴물이면서) 변호사가 아닌 비서로서 레즈니코프를 보좌했는지 절로 수긍 되었다.

“괴물이라서 그런가....”

하며 성곡이 중얼거리자 델모어가 생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멀티태스킹. 종족 특성이예요. 하지만 심층연산은 보스처럼 못해요.”

집에서 보았던, 한번 쳐다봐 달라는 듯이 병신처럼 울던 그 얼굴들과 똑 같은 얼굴이 요염하게 웃는다.

성곡은 결제서류로 델모어를 밀쳐 내는 시늉을 하여 거리를 두게 했다.

성곡은 몇 개 서류에 더 서명해서 델모어를 내보냈다.


회사에 출근한 사람은 전체 인원의 팔분지 일 정도였다.

패러리갈(paralegal, 법률보조원)을 포함한 스탭 중에서는 특별히 변호사의 요청에 따라 나왔거나 자기 보스가 출근했기 때문에 나온 비서들 뿐이고 대부분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다.

그 중에는 월요일에 레즈니코프의 호출을 받았을 때 축하해주던 동료도 있다.

성곡은 컴퓨터를 통해서 가까운 사람부터 인사파일을 훑어보았다.

권한에 아무 제한없이 무엇이나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개인들의 연봉은 물론 내년 연봉 협상의 범위까지 벌써 표기되어 있었다.

이에는 인컴 파트너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괴물들도 마치 사람과 똑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회사에서 허술하게 일하는 변호사는 없다. 그러면 괴물들도 사람들처럼 소송 하나에 혼을 다 쏟으면서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영화나 만화에서 단지 위장을 위해서 인간들 속에 숨어있는 괴물들과는 다르다. 성곡은 괴물들이 위장이 아닌 생활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자기가 괴물인 것을 숨기는 것은 다만 불법체류자(위선적이게도 불법체류자라 하지 않고 서류미비자(Undocumented alien이나 person) 같은 말로 부르게 되어 있다. 미국의 '정치적 예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던 홍길동의 조선시대를 이미 넘어섰다.)들이 체류신분을 숨기거나 위조서류를 제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성곡은 엄마와 함께 불법체류자 될 번한 적도 있었기에 불법체류와 서류미비자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다.

그러나 괴물들은 그 기준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레즈니코프에게 몸을 빼앗길 번 한 것을 불법체류자한테 강도 당하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묘했다.

그때와 지금 서 있는 위치와 가진 힘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성곡은 인사파일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호가니 장식의 웅장하다고도 할 수 있는 집무실, 낮게 즈즈 거리는 에어컨 소리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고요했다.

마구 부셨어도 말끔하게 고쳐진 밝은 창문과 벽들은 흔적하나 없다. (괴물들 중에는 부서진 것을 복원하는 능력을 가진 것도 있는 게 분명하다.). 어제만 해도 벽속을 뛰어 다니던 그림자 원숭이들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창밖은 높아서 텃새들도 보이지 않는다. 토요일 오전, 초여름 하늘의 푸르름을 솜털 같은 구름들이 천천히 흘러간다.

이렇게 눈을 좁히고 보면 세상은 이토록 평화롭다.

같은 건물안에 괴물이 득시걸거리고 아무리 씻어내도 손등에는 세균과 박테리아가 버글버글하고, 혈관 속에서는 백혈구가 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을지라도.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좋은 것뿐이다.

매니징 파트너로서 새로 개설한 회사의 이메일에는 세계 각처에 있는 라탐앤 왓킨슨 사무실의 헤더들이 보낸 아첨 가까운 말들이 가득하다.

멤버쉽을 제안하는 고급 사교클럽의 메일들도 계속해서 쌓이고 있고, 자동차와 비행기 회사에서도 팜플렛을 인삿말과 함께 먼저 보냈다.

(라탐앤 왓킨슨은 항공기의 리스와 파이낸싱은 물론 항공 사고에서 비행기 제작사나 항공사를 방어하는 일도 한다). 마치 세상이 새로운 왕에게 스스로 머리를 조아리는 것 같다.

그냥 이대로 왕처럼 살아도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스쳤다.

그게 원래의 목표였기도 하였다. 하지만 성곡은 이제 알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연금으로 살면서 평온하게 병원 약만 받아먹고 사는 노인들이 이후에 받게 될 것은 관짝이라는 것을. 시야를 넓게 해서 본다면 인간은, 어쩌면 모든 생명체는 쉴 새없이 달리고 또 달려야 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성곡은 왼손에 있는 블랙벨을 만지작 거리며 연결을 시도했다.

눈은 구름을 쫓고 마음은 블랙벨에 있을 가닥을 더듬으며 뻗어갔다. 이미 열어놓은 오리진에서 뻗어나간 의식은 암흑의 우주를 유영하다가 마침내 블랙벨을 찾았다.

길이 220미터짜리 거대한 블랙벨은 종모양 보다는 석기시대 뗀석기로 만든 긴 원추형 돌도끼 같았다.

빛마저 흡수할 듯 검어서 가까이 가지 않고는 발견하기도 어려웠다.

성곡은 오리진에서 의식으로 끌어온 길을 블랙벨에 연결시켰다.

순간 성곡의 심혼과 몸을 모두 울리는 거대한 종소리가 들렸다.

가슴에서 피가 끓어오르게 하면서도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무장해제를 명령하는 울림이었다.

성곡에게는 해제할 무장도 없었다. 종소리는 여러 가지 진동과 충격으로 성공의 몸과 정신을 테스트한 후 블랙벨 사용한계를 설정하고 심상으로 성곡에게 통보해주었다.

운전실력에 따른 속도제한 비슷한 기능이었다.

창가에 서있는 중에 성곡은 자기 몸이 스폰지가 된 것처럼 공허감을 느꼈다. 시간은 정오 전 12분이었다.

자리로 돌아가 앉는데 델모어가 들어와 물었다.

“점심 어떻게 하실래요? 보스. 로버트(Robert NYC, 맨하탄의 유명 식당) 갈래요?”

일반 회사 생활과 다른 게 없다.

로버트는 지금 성곡이 살기 시작한 아파트 근처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성곡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을 손에 들었다. 아침에 들고 나올 때 그대로고 열지도 않았다.

“바로 퇴근하는 게 낫겠죠?”

하며 델모어가 생긋 웃는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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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26. 블랙메일 from 도플갱어 21.04.08 12 0 12쪽
39 25. 권력의 빛 또는 그림자 - 인간으로 살다가 인간으로 죽게 21.04.07 1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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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3. 시인의 이름 - 더 야해 21.04.05 10 0 8쪽
35 22. 우주의 철옹성 21.04.05 12 0 11쪽
34 21. 아이러니에 종속되다 - 사랑 혹은 혼란 21.04.04 11 0 9쪽
33 21. 아이러니에 종속되다 - 이자벨 존속살인 21.04.04 12 0 10쪽
32 20. 헤드 헌팅 21.04.02 12 0 14쪽
31 19. Some woman Oscar Crane. 어떤 여자 오스카 크레인 21.04.02 12 0 17쪽
30 18. 천천히 폭주하다 - 수영장 21.04.02 14 0 7쪽
29 18. 천천히 폭주하다 - 테이블 밑에서 21.04.02 13 0 7쪽
28 17. 시험의 종소리 - 델모어의 수작 21.04.01 15 0 7쪽
» 17. 시험의 종소리 - 괴물 속의 평온 21.04.01 14 0 8쪽
26 16. 블랙벨과 초상화 21.03.31 14 0 12쪽
25 15. 자기만의 괴물 - 선택받는 강함 21.03.30 18 0 9쪽
24 15. 자기만의 괴물 - 세균과 박테리아 21.03.30 16 0 9쪽
23 14. 반신의 거동 21.03.29 17 0 13쪽
22 13. 생명 창조의 화요일 밤 - 탐색 21.03.28 17 0 15쪽
21 12. 메이요의 표본 수집가 - 동행하는 적 21.03.27 14 0 9쪽
20 12. 메이요의 표본 수집가 - 골렘 지배 21.03.27 12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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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1. 너 내꺼 - 캐캐묵은 소리 21.03.26 12 0 11쪽
17 8. 늑대들의 기법전수 - 거짓말까지 잘 배웠다. 21.03.25 15 0 8쪽
16 10. 늑대들의 기법 전수 - 죽을까? 그럴리가 있나. 21.03.25 13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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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7. 옛날 옛적 어느 변호사가 - 거울 잠궈 21.03.22 14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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