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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 Grey의 문화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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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최근연재일 :
2021.04.0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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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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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30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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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5. 자기만의 괴물 - 선택받는 강함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사피로가 싱긋 웃었다.

“넌 그것들이 인간보다 우월하거나 강한 거 같지?”

“아닙니까?”

하고 성곡이 물었다.

사피로는 잔을 흔들어 디캔트하며 포도주의 향을 즐겼다.

“살펴보니 지구에 와서 톱밥처럼 갈려 나간 것들도 많아. 지들이 우월한 줄 알았다가 영문도 모르게 멸종한 것들이 수두룩하지.”

성곡이 의아한 눈으로 사피로를 보았다.

사피로가 말을 이었다.

“나는 가끔 인간이 개미에서 진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어도 어느 단계에서는 개미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거라고는 확신하지.”

“미싱 링크가 개미인가요? 유전적으로 가깝다는 돼지도 아니고?”

성곡은 조금이라도 사피로가 말을 오래, 많이 하기를 바랐다.

사피로가 말했다.

“인간들이 말하는 보편성, 네가 툭하면 들먹이는 '합리적인 보통' 사람의 보통은 평균에 가깝겠지만 인간 의식 내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은 마치 개미의 집단의식처럼 활동하지. 용어가 '집단 무의식'이든 뭐든. 개인이 느끼지 못하는 이 집단 의식이 인류 자체에 면역 작용을 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함부로 끼어들어 인류에 해를 끼치는 존재는 어느 순간부터 이 집단 의식에 의해 소멸되어 버려. 인간은 개별적으로 개미처럼 약하지만, 인류는 무자비할 정도로 강하지.”

“정말 그런 게 있습니까?”

성곡이 물었다.

사피로가 대답했다.

“벌이나 개미처럼 가족이나 동족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게 인간이지. 죽으면 끝인데도 말이야. 그런게 단순히 교육이나 세뇌, 최면 같은 걸로 가능할 것 같으냐? 오히려 세뇌되어 자살 폭탄을 안고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것도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동료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이 내재하기 때문이라 해석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지.”

“그럼 제가 괴물들로부터 세상을 걱정할 필요는 없군요. 닥터 스트레인지나 마블 히어로들도 쓸데없는 짓을 하는거고.”

성곡은 시컨둥하게 말했다.

“조금 정정할까? 마피아나 갱단 같다고.”

하며 사피로가 웃었다.

성곡이 물었다.

“그들은 왜 지구에 왔습니까?”

“'섭리'가 있었겠지.”

“또 '섭리'.....”

하며 성곡이 투덜거렸다.

사피로가 웃었다.

“모르지, 돈 벌러 왔는지. 외국인 노동자 잖아.”

이 수준이 사피로의 농담이다. 맹세코 다른 사람을 웃기지는 못하고 자기만 웃길 수 있는 농담이다.

성곡은 피식! 했다.

사피로가 말했다.

“모든 생명의 본성은 투쟁이다. 평화와 번영이라는 말은 이에 비춰본다면 모두 거짓의 모래성이지. 그래서 평화 속에 번성하는 문명은 반드시 멸망하게 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생명은, 다시 하나로 돌아가길 원한다. 먹고, 먹히고, 또 다른 생명에게 먹히지. 이것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면 어느 종(species)이 멸종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몹시 자연스러운 일이지. '섭리'에 따른 거니까.”

”그럼 생물 다양성을 위해서 멸종 위기 동식물을 보호하는 건 '섭리'에 어긋나는군요.”

“그렇지. 기원으로 회귀하는 것을 지연시키니까. 생명은 자기가 먹히는 순간까지 먹고 번식하는 것이 의무야.”

성곡은 오싹함을 느꼈다.

“약육강식이 바로 '섭리'입니까?”

“빙고.”

하면서 사피로가 잔을 들어 올렸다.

“종들이 서로 먹고 또 먹으면서 진화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인간도 없지. 지금 인간이 편식하거나 인조 고기, 식량 대체품 개발 어쩌고 하면서 먹고 먹히는 과정에서 이탈한다면 '섭리'는 인간에게 미래를 허용하지 않아. 집단의식으로 이처럼 강대한 인간도 어느 존재의 먹잇감으로 전락해서 멸종되고 말겠지. 모든 생명체의 진화는 포식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거니까.”

성곡은 사피로가 해주는 말들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장난처럼 스펙터 빌리나 진주구슬 같은 것들을 가르쳐줬던 것처럼 지금 말하는 것들도 언젠가 자기가 꼭 알아야 하거나 알아야 살 수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옛날 배울 때처럼 대충 들을 수 없다. 조금이라도 의문점이 있으면 물어봐서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기회가 두 번은 오지 않을 것이다.

성곡은 진중하게 물었다.

“강하다는 건 포식자라는 의미입니까?”

사피로가 말했다.

“강하다는 건..... 그렇지. 하지만 강하다는 건 모든 생명이 가지는 개성에 더 가까워. 안타깝게도 이 섭리의 우주에는 보석의 경도를 측정하는 것 같은 강함의 기준이 없으니까. 달리 말하면 그 무엇이든 가장 강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거야. 개미든 코끼리든, 다람쥐든. 그래서 강함을 비교하는 투쟁이 꼭 필요해지는 거야. 자기의 강함이 선택받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고, ”

무엇이든 가장 강한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성곡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제 오늘 성곡이 느끼고 있는 어떤 것에 부합하는 말이었다.

“이건.... 괴물들이 옆에 살고 있는 것과는 아주 다른 문제 같습니다.”

성곡은 입안이 바싹 타올랐다.

사피로가 말했다.

“이전부터 그랬다. 네가 알기 전에도.”

“사피로 선생님, 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성곡이 물었다.

사피로가

“손을 깨끗이 씻어야지.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옷도 깨끗하게 입고 집도 청결하게 하고. 음식도.”

하고 말했다.

늘 사피로가 평소에 하던 거였다.

성곡이 원망스러운 듯이 쳐다보자 사피로가 덧붙였다.

“외계나 이계에서 온 것들은 동화나 전설, 신화 같은 이야기나 마찬가지야. 인간은 어릴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면역을 길러왔다. 심지어..... 어떤 괴물은 자기가 인간인 줄 알지. 죽을 때까지 제 정체도 모르고 살다가 죽는 것도 많아.”

“부모님 말 잘 듣고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손 깨끗이 씻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군요.”

하고 성곡이 어이없어하면서도 진지하게 말했다.

사피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본능적으로 괴물을 피하는 방법이야. 인류가 가진 유산이기도 하고.”

성곡은 또 느껴지는 게 있어서 물었다.

“법과 정의도 그런 겁니까?”

사피로가 성곡의 눈을 빤히 보면서 말했다.

“네 스스로 오리진을 열었으니 이제 점차 '섭리'에 다가서겠지. 법은 인간이 가진 '섭리'의 가닥이다. 레이저 광선 같은. 빛을 줄 세워 강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레이저 광선처럼 인간의 힘을 결집 시켜. 정의는 조금 다른 문제다. 빛이 나아갈 길을 조준하는 거 같은 건데, 같은 길이라는 것이 서 있는 위치마다 다르게 보이고, 서로 다른 데 서있으면 서로 다른 길도 보이니까. 마찰과 충돌이 있을 때 서로 파괴하거나 잡아먹는 것을 피하게 하는 인간의 집단의식이 고안한 발명품이야.”

“황당하게 들립니다.”

“현실은 판타지잖아. 배율이 다른 렌즈를 끼우면 늘 다른 게 보이지.”

하면서 사피로가 웃었다.

성곡이 중얼거렸다.

“이제 전 정말 혼자가 되는군요.”

“다 가진다는 게 원래 그렇지. 길을 잃어 버릴 수도 있고.”

사피로가 잔을 내밀었다. 성곡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병의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빙빙돌며 차오르는 붉은 포도주를 함께 보면서 사피로가 말했다.

“'섭리'는 이렇게 축배의 잔 속에서 꿈틀거리며 이야기하는 거야. '이게 네 길이다. 이걸 해라'하면서.”

“제게 주어진 '섭리'는 뭡니까?”

“오리진을 가진 인간이 되어버렸으니, 아마 전쟁에 나서야겠지. 괴물과 괴물이 서로 먹고 먹히는 종의 전쟁.”

“제가 괴물이라는 말로 들립니다.”

성곡은 떫뜨름한 표정을 지었다.

사피로는 잔을 들어 올렸다.

“원래 괴물이었어. 인류 자체가 거대하고 강대한 괴물이야. 너는 공감받을 수 없는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며 살아가야 하는 거고. 공감 받지 못하는 이야기는.....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지.”

성곡은 입을 다물었다. 유리창에 비친 사피로의 얼굴이 성곡보다 더 무거워 보였다.

“너는...... 너만의 괴물이 되는 거야. 여태까지 네가 보지 못했던 세상에 들어서서 말이야.”

성곡이 물었다.

“사피로 선생님도 그렇습니까?”

사피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 내가 젊었을 때 같다고 했잖나. 너도 안 죽고 살다보니 신이 되겠지.”

성곡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신? 선생님은 '신'?”

사피로가 손사래쳤다.

“그만, 여기까지다. 더 말해봤자 지금 네가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야.”

성곡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사피로는 섭리에 대해서 더 말할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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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자기만의 괴물 - 선택받는 강함 21.03.30 1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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