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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 Grey의 문화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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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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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최근연재일 :
2021.04.08 05:0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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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5,307

작성
21.03.27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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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메이요의 표본 수집가 - 골렘 지배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12. 메이요의 표본 수집가



성곡은 관 속에 누워 눈을 감았다.

관속의 보존액에는 신체조직을 활성화시키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지 손목의 통증은 점점 사라졌다.

미슥거리는 속도 조금 편해졌다. 하지만 입만 열면 토할 것 같은 느낌은 계속 남아서 입을 꾹 다물었다.

몸속에서는 정리되지 않은 레즈니코프의 힘과 토막난 의식 조각들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성곡도 그 의식과 힘들을 추적하며 조금씩 수습해나가야 했다.

어제 순수하게 힘을 받아들이고 쓸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할 수도 없는 양의 정신 노동이었다.

레즈니코프의 의식을 읽는 것은 갈갈이 찢어버린 편지를 읽는 것과 비슷하고, 힘을 수습하는 것은 좁쌀에 퍼부운 모래를 바늘로 골라내는 것 같았다.

결국 자기를 지켜냈다는 것 외에, 막상 레즈니코프의 힘과 지식은 거의 쓸모가 없다.

모래에서 좁쌀을 가려내도 그 시간이면 좁쌀이 썩어서 없어질 거고,(써먹기도 전에 힘은 소멸해버릴 것이고),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고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는지도 모를 레즈니코프의 지식을 다 수습하기에는 성곡의 인생이 짧다.

“오셀로. 젠장.”

하고 성곡은 중얼거렸다.

오셀로 게임이 체스처럼 가로세로 8칸밖에 없는 게 이제 이해가 된다.

칸이 많았다면 게임을 하다가 토하거나 쓰러지는 사람이 속출했을 것이다. 칸 많은 바둑에서는 피를 토했다는 전설도 있으니까.

성곡은 힘을 골라서 연결하는 것을 포기해버리고 레즈니코프의 의식 조각을 빠르게 훑어보면서 자기에게 도움이 될 성 싶은 게 아니라면 중요도를 가리지 않고 삭제했다.

성곡의 경험상,(그 경험이 한 번밖에 없었지만), 좋은 회사에 입사했다고 처음부터 멋진 새 노트북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업무상 보안이 중요하니 HP사의 업무용 랩탑인 엘리트를 받았는데, 업무용 노트북의 정점에 있고 시중에서는 보기도 어려운 거였다. 그러나 누가 먼저 사용하던 것이었다.

원래는 IT팀에서 새로 포맷하여 모든 정보를 다 삭제한 후에 지급하는 것이었나 성곡이 입사했던 해에는 바빠서 그런지 성곡에게 배당된 노트북은 고스란히 이전 사용자의 자료가 다 남아있었다.

IT팀 직원이 대략 훑어보고 나서,

“개인 정보는 없어요. 회사 컴퓨터니까. 그러니 대충 지우고 사용하세요. 그 중 쓸만한 게 있을 수도 있어요.”

하며 그냥 내주었다.

성곡은 그 당시 빼곡한 파일들을 어떤 것은 열어보고 어떤 것은 제목만 보고 지웠다.

나중에는 그냥 눈에 보이는대로 다 지웠다. 노트북 속에서 좋은 자료 찾느니 회사에서 돈 잘내고 있는 렉시스 넥시스나 웨스트로(둘 다 대표적인 법률 데이터베이스. 이 외에 블룸버그도 있으며 현재는 구글 검색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음)에서 찾는 게 더 빨랐다. 그래도 그 컴퓨터에서 건진 게 하나는 있는데, 퇴사한 변호사가 사용한 각 지역별 고급 레스토랑 리스트였다.(법과는 아무 상관없었다.)

성곡은 레즈니코프의 의식 속에서도 레스토랑 리스트 말고는 별 필요없을 거라 생각하고 지워나갔다.

한편으로는 자기가 만든 오셀로 게임을 업그레이드했다.

게임의 칸 역할을 하는 변수의 갯수를 더 늘리고, 각 변수들을 오직 흑과 백으로만 한정할 수 있는 이진법 체계로 구성했다.

흑과 백으로만 하는 것과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0과 1의 숫자로 대신하는 순간 시각적 연산만이 아닌 수치적 연산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몇 가지 해석원칙과 결합 원칙을 정하고 나면 아주 큰 오셀로 게임을 무리없이 할 수 있다.

레즈니코프에 대항해서도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워낙 급하게 떠올린 방법이라 질서정연하지 못했고, 계산도 순수하게 수치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급하게 하다 보니까 흑과 백이 절로 0과 1처럼 활용된 부분이 있을 뿐이었다.

“죽은 척하든가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세요. 곧 그들이 도착해요.”

레즈니코프 관의 보존용액을 교체한 델모어가 성곡이 있는 관의 뚜껑을 닫을 준비를 하면서 말했다.

“알겠죠? 그들이 스캔을 시작할 때까지만 참으면 돼요. 저를 믿어요. 저한테도 이 번 일은 아주 중요하니까요.”

'뻑! 이나'

입을 열 수 없어 속으로 대꾸하고 성곡은 눈을 감았다.

이 스캔한다고 하는 것이 마지막 고비가 될 가능성이 컸다.

그 이후에 고비가 될 수 있다면 바로 앤 델모어 자체다.

이 여자는 어수룩해보일 때가 있고 실제로도 어수룩한 데가 많으면서도 단순하지 않다.

성곡은 자기 몸이 시체와 비슷하게 보이도록 스펙터 빌리를 사용했다.

몸은 보존액에 담기고 코만 동동 떴다. 이 코마저 조금 후에는 보존액 속에 넣거나 넣은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 머리가 복잡하고 피곤한 지금으로서는 매우 성가신 방식이었다.

그러나 자기의 정보를 스캔한 것으로 자기의 가짜를 만들 수 있다니 매우 놀라웠다. 인간 배아나 체세포 복제를 통한 복제인간이 이 세상 어딘가에 만들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세상에 공개되지는 않았다.

도플갱어 같은 괴물은 도마뱀이 변색하는 것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그건 그대로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지금 델모어는 성곡의 정보를 스캔해서 새 생명을 창조하겠다는 것이었다.

신이 아닌 존재가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가? 답을 꼭 알아야 하거나 증거를 눈으로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곡은 자연계의 질서 밖에서 이루어지는 생명 창조를 보고 싶기는 하였다.

조금 후 성곡은 그것도 관음증의 일종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가 숨겨진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관음증 환자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 혹시 사생활 침해, 스토킹, 혹은 음란물 관련 소송을 맡게 된다면 이런 식의 주장을 해서 논점을 흐리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내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델모어 외에 네 명이 더 있었다. 델모어가 말한 표본 수집가(분석팀)라는 자들이다.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의 메이요 클리닉에서 날아온 박사 네 사람은 델모어와 잘 아는 사이였다.

그들은 쓸모있는 말과 없는 말을 두서없이 주고 받으면서 은색 알미늄 가방 속에 넣어온 장비들을 표본실의 장비들에 이어 붙여서 설치했다.

10분 이상 걸리는 작업을 하는 동안에 델모어는 그들과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며, 살갑고 풋풋하며 나긋나긋한 태도를 보였다.

“아시죠? 여기서 하는 일은 다 비밀이라는 거. 다른 데 절대 알리면 안돼요.”

그들 중 프레노 박사는 사람이 말했다.

“미스 델모어, 우리는 전문가입니다. 거래하는 고객이 많아도 절대 고객정보를 다른 고객한테 흘리지 않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더 철저한 직업윤리를 가진 데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늘에 있기는 하지만 메이요입니다.”

메이요 클리닉' 출신이나 거기서 일하는 연구원들의 자부심은 매우 대단하다. 메디칼 닥터가 아닌 박사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델모어는 예쁘게 웃으며 대단하다는 듯이 그들을 추켜세웠다.

그들이 성곡이 있는 관 뚜껑을 열고 그 위에도 장치를 설치하고 나자 델모어는,

“다 됐으면 시작해주세요.”

하고 말했다.

“잠깐만, 미스 델모어. 요청한 대로 스캔하겠지만 이 방식은 우리도 처음이라서 튠업을 하고도 조금 지켜봐야 합니다.”

델모어는 코를 찡그려 웃으며 한쪽 눈도 찡긋했다.

“걱정할 것없어요. 그대로만 해주세요. 전문가들이잖아요.”

“그럼 문제가 생겨도 저희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문제 생길게 뭐있겠어요. 금방 끝날 일인데.”

하고 델모어가 천역덕스럽게 말했다.

그들이 가져온 네 대의 기계에는 각각 인체의 뼈모양을 한 홈이 하나씩 있었다. 네 사람의 테크니션들은 사운드 믹스 같은 조절레버들을 모두 최대로 맞추었다.

박사들은 호흡을 맞추는 것처럼 서로 눈빛을 맞추더니, 각자 몸에서 황금색 뼈를 하나씩 뽑아서 기계의 비어있는 곳에 놓았다.

분명 생체임에도 그들은 마치 로봇 같았다.

“조금 물러서 주세요. 시작합니다.”

하고 프레노 박사가 말했다.

델모어가 옆으로 비켜섰고, 기계에 올려진 뼈들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뼈가 그물처럼 펼쳐지면서 기계를 감쌌다.

성곡의 위에 설치되어 있는 기계들에서 빛이 생성되어 청색을 띠었다.

순간 델모어가 넌지시 손을 뻗었고, 델모어의 손에서 나온 보이지 않는 힘이 뼈들에 닿았다.

“미스 델모어. 지금 뭐하는 겁니까?”

패트릭 박사란 사람이 소리쳤다.

델모어가 기쁨이 가득한 표정으로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지배요.”

“우린 그런 관계가 아니었잖습니까! 우리는”

하다가 패트릭 박사는 픽 고꾸라졌다. 서둘러 기계를 정지시켜려던 다른 박사 세 사람도 잇달아 쓰러졌다.

“이제는 그래요.”

하며 델모어가 웃었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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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메이요의 표본 수집가 - 골렘 지배 21.03.27 1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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