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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 Grey의 문화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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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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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최근연재일 :
2021.04.08 05:06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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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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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6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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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 너 내꺼 - 캐캐묵은 소리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11. 너 내꺼



뉴욕장로병원은 영국의 국왕 조지 3세가 미국 식민지에 세웠다.

당시 이름은 그냥 뉴욕병원이었고 미국이 영국으로 독립하기 불과 몇 해 전이었다.

이후 많은 변천과 확장을 거쳐서 뉴욕장로병원이라는 거대한 병원조직이 되었다. 직원이 만 명이 훨씬 넘고 총 병상 숫자는 수 천 개다.

흔히 역사는 구비친다고 표현하지만 착각이다.

역사는 트롯트다. 갑자기 대 격변이 일어나고 폴짝폴짝 뛰면서 이리저리 꺾이는 게 역사다.

미국의 독립도 트롯트였고 뉴욕장로병원도 폭스트로트(foxtrot, 여우걸음)였다. 모두 갑자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곤 했으니까.

어느 누가 군대도 없어서 민병대를 주축으로 한 미국이 세계 최강 영국을 이기고 독립할 거라 예상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오랫동안 지배당하면서 영국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상태에. 그런데도 그런 사건이 가능한 것이 역사다.

오후 세 시,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성곡은 병원 앞에서 델모어가 도착하는 것을 보고 함께 걸었다.

“안 보인다고 방심하지 말아요.”

하고 델모어가 말했다.

성곡은 호텔에서 나오기 전에 거울 앞에서 스펙터 빌리에 어느 정도 힘을 사용했을 때 자기가 보이지 않는지를 시험했었다.

스펙터 빌리에 단계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지 않는 정도에서 소리까지 없앨 수 있는 것까지 성곡은 사용할 수 있었다.

냄새를 제거하는 건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다.

막상 보통 사람이 보이지 않는 정도, 예민한 사람에게는 희미하거나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정도까지 스펙터 빌리를 사용하는 건 힘의 소모가 적었다.

보였다 안 보였다 하더라도 주의를 끌지 않게 만드니까, 어쩌면 주의를 끌지 않게 하고 보이면서도 인식을 못하는 정도로 사용하거나 보이게 하면서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는 것이 경제적일수도 있었다.

성곡이 대꾸했다.

“얼굴 좋아 보이네. 내가 옆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대?”

델모어가 작게 코웃음쳤다.

“그냥 예쁘다고 해요. 내 오리진을 뺏어갔는데 그걸 못느낄까.”

“자신감도 강해진 것 같네.”

“익숙해진 거지.“

하고 델모어가 맞받았다.

델모어가 달라진 것을 눈치챈 성곡이 집요하게 물었다.

“뭘 좀 챙긴 거 같은데. 포인트 밀리언(억수로)?”

“뭐가 중요한지나 생각하시죠.”

하며 델모어가 차갑게 응수했다.

“듣고 싶으면 말해줄 순 있어요. 대신 우리 계약에 누설금지조항과 비밀공유조항을 포함해야겠지만.”

“그건 조금 매력적으로 들리네.”

하고 성곡이 진지하게 말했다.

주변에서 스치는 사람들은 델모어를 힐끔 보기는 했지만 그녀의 미모에 주목하고 혼잣말도 이어폰을 끼고 통화하는 것 정도로 여겼다.

이곳에는 일반 환자가 없다.

뉴욕장로병원이 사무실로 쓰는 곳이기 때문에 대부분 병원 직원들이다.

델모어는 비상구에 숨겨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연구소로 내려갔다.

넓은 공간은 응급실처럼 커턴으로 구분된 곳이 몇 개 보이고 나머지는 터여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기구를 조작하거나 분주하게 움직였다.

델모어가 속삭였다.

“입 다물고 있어요. 여긴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니까. 또, 다들 예민해요.”

“불가능한 소리를 하는군.”

델모어는 화가 났지만 참았다.

변호사인 성곡한테 입다물란 소리를 하면 죽어라는 소리로 받아들이거나 더 떠들어대면서 수정헌법 제 1조 언론의 자유를 들먹일 판이었다.

“알아서 조심해요! 다된 밥이 코 빠뜨리지 말고.”

성곡은 대꾸하지 않았다. 델모어를 대하는 연구원들의 태도는 근접할 수 없는 상사를 맞는 것 같았다.

델모어는 곧장 걸어가 끝에 있는 표본실 중 하나로 성곡을 이끌었다.

그곳에는 두 개의 유리관이 놓여있었는데, 각각 성곡이 죽인 레즈니코프와 성곡이 만든 가짜 시체가 누워있었다.

창문의 블라인더를 모두 내리며 델모어가 말했다.

“잘 들어요. 당신이 짠 계획에서 큰 변동은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레즈니코프씨로 변장하지 않아요. 레즈니코프씨가 가짜로 부활하지도 않아요. 당신 모습 그대로 매니징 파트너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때문에 적지 않은 공을 들였으니까 기억해 놓아요. 우리가 여기서 한 시간 안에 끝내야 할 건, 당신이 레즈니코프씨의 사체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다 얻어내는 거예요. 그리고 저 가짜 시체를 치우고 당신이 들어가서 눕는 거죠.”

성곡은 스펙터 빌리를 풀어 모습을 드러내며 피식 웃었다.

“그냥 나를 잡아먹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델모어가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공격할 거 같았으면 아까 했어요. 내 힘이 회복된 거 알았잖아요. 지금은 내가 더 강하다는 거 알고 있죠? 더구나 난 당신이 내 오리진을 품고 있는 한 위치를 알 수 있어요.”

성곡이 말했다.

“봐준 걸로 생각하면 곤란해. 난 오기 전에 홈디포(homedpot, 목재, 공구, 꽃, 농약 등 가정에 필요한 것들을 취급하는 곳)에 들렀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죠?”

“제초제를 샀다는 말이지.”

성곡의 말에 델모어가 어디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한테 그게 통할 거라 생각해요?”

“아니. 그래서 다른 곳도 들렸지. 차이나타운. 걔들은 파라콰트(paraquat, 그라목손, 맹독성 제초제)도 가져와서 팔아.”

델모어가 성곡이 있는 곳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두 걸음이나 물러섰다.

식물계에 속하는 드라이아드인 그녀에게 파라콰트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서운 점은 당하기 전까지는 감지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색깔도 없고 냄새도 없다. 맛은.... 맛보면 죽는다.

주로 농약으로 사용하지만 화학적으로 합성한 생명체 대항 전자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파라콰트다.

지구에 파라콰트 사용이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에 질겁해서 전 세계적으로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는 중이기도 하다.

델모어가 분개하며 말했다.

“내가 얼마나 애쓰는지 안 보여요. 그 딴 수작을 부리다니.”

“준비하고, 대비하고, 계획하는 건 현명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다 하는 거지. 꼭 사용하지 않더라도.”

성곡의 태연자약한 말에 델모어는 숨을 씩씩거렸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성곡의 가짜 시체가 들어 있는 유리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코크, 당신이 저기 들어가도 안죽어요. 안죽인다고요. 그냥 죽은 척하고 있으면 메이요에서 온 분석팀이 스캔할 거고, 그러면 그걸로 내가 당신 진짜 가짜를 하나 만들어요. 저 진짜 가짜 말고. 살아있는 진짜 가짜요.”

가짜와 진짜라는 말을 함부로 섞어쓰면 어떤 경우에는 거짓의 거짓은 참이라는 명제가 깨어지는 것 같은 현상을 보게 된다. 대상을 특정하는 단어가 혼란스러우면 모든 게 혼란스럽다.

“당신이 할 일은 그냥 가만히 죽은 척하는 것 뿐이라고요.”

성곡이 머리를 저었다.

“뭘 스캔하는지 모르겠지만 죽은 척하는 것도 모를 정도면 할 필요가 없잖아. 죽은 척하는 걸 알 수 있으면 죽은 척할 필요가 없고.”

델모어가 폴폴 뛰면서 말했다.

“제발 말 좀 들어요. 시간이 없다고. 일단 스캔 시작하기만 하면 내가 그 사람들 다 지배할 수 있으니까 그때는 아무 상관 없어.”

“시작하기 전부터 지배하지 왜?”

“그게 안 되니까 그렇지. 이 자씩아.”

델모어가 고함을 질렀다.

“그것들 지배하기가 쉬운 줄 알아? 방심할 때 하지 않으면 나도 못한다고.”

성곡이 말했다.

“그러니까, 나를 이용해서 가짜를 만들고, 가짜가 매니징 파트너하는 것처럼 해서 내가 가짜의 가짜가 되어 매니징 파트너한다는 거지? 진짜 가짜는 없애버리든 치우든 하고. 맞아?”

“그래!”

하고 화가 풀리지 않은 델모어가 소리쳤다.

성곡이 말했다.

“좀 조용히 하지. 바깥에 있는 괴물들은 신경 안쓰겠지만 내 귀가 아프니까.”

델모어는 몸을 바르르 떨며 주먹을 꽉 쥐었다.

성곡은 레즈니코프의 관으로 가며 말했다.

“이미 결정된 것부터 해보자. 가짜 진짜는 그 후에 생각해보고.”

델모어가 이마를 짚으로 알아서 해보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톡 쏘았다.

“조심하는 게 좋을거예요. 어쨌든 그는 대단했던 사람이니까. 난 책임없어요. 미리 말해줬으니까.”

성곡은 관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확인하고 눌렀다.

“알았어.”

관이 열리고 보존용액 속에 있던 레즈니코프의 망가진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성곡이 델모어에게 물었다.

“하이잭커의 오리진은 어디에 있지?”

델모어가 코웃음쳤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나를 만졌듯이 다 만져보든가. 레즈니코프씨는 죽어서 안 알려주려나?”

성곡은 진주구슬을 손 끝에 맺어서 정말 델모어를 만졌던 것처럼 하려했다. 진주구슬은 약하게 사용할 때 인체 깊숙이 침투하여 신경까지 자극할 수 있다.

성곡의 손 끝에 맨힌 진주구슬을 보면서 델모어가 작게 중얼거렸다.

“사이코 변태 새끼, 정말 저걸로.....”

진주구슬이 몸속을 헤집으며 감각의 극한으로 치닫게 순간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성곡은 형사 사건을 맡아서 변호한 경우도 많지만 직접 범죄현장에서 시체들을 본 적은 없었다.

대체로 경찰과 검찰에서 제공하는 범죄현장의 사진만 보았다.

실제 시체를 직접 본 것은 자기가 죽인 레즈니코프가 처음이었다. 이후 마구잡이 난사로 그림자 원숭이 외에 또 어떤 괴물을 죽였는지 알 수 없지만 눈여기 보지 않았다.

레즈니코프의 시신은 얼굴에 야구공만한 구멍이 뚫렸고 가슴에도 비슷한 크기의 구멍이 뚫렸는데, 마치 석상을 조각한 것처럼 깨끗했다.


성곡이 사진으로 보던 증거자료들처럼 뭉개지고 짓이긴 고깃덩이 같은 모습은 없었다. 진주구슬이 가진 특성 때문이었다. 그래도 남아 있는 왼쪽 눈을 까뒤집고 있는 레즈니코프를 보는 건 섬득했다.

성곡은 얼굴을 반쯤 돌리고 레즈니코프의 머리에 손을 댔다.

순간 레즈니코프의 뒤집혔던 눈에 초점이 잡히고 스르르 움직여 성곡을 향했다.

델모어가 소스라치게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하지만 너무 놀라 입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얼굴을 반쯤 돌린 성곡은 고개만 갸웃거렸다.

“죽은 놈한테 남은 게 있나. 유산이면 모를까.”

그때 레즈니코프의 손이 성곡의 손을 잡았다.

키가 큰 서양 여자들은 손도 크다.

”왜?”

델모어가 자기 손을 잡았다고 생각한 성곡은 레즈니코프를 지나 델모어를 향해 얼굴을 돌리며 짜증을 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레즈니코프와 눈이 마주쳤다.

레즈니코프가 구멍 뚫린 얼굴로 웃고 있었다.

“A criminal arrives on the scene of crime twice. (범인은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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