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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 Grey의 문화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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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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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최근연재일 :
2021.04.08 05:06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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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17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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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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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8. 침대 회담 - 드라이아드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7. 침대 회담





비교와 대조와 유추가 없다면 답을 찾아가는 길은 눈 감고 사막을 헤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종종 답으로 이르는 길은 모순만 피해가다보면 저절로 이르는 경우가 많고, 의외로 출발점에서 가깝기도 하다. 진리를 찾는 사람이 실패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그 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경치를 보면서 그게 뭔가 하다가 길마저 잃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성곡은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비교와 대조, 유추를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사용할 줄 안다. 그렇기에 본질에 대한 집중과 정확한 해법을 통한 돌파는 성곡이 가진 가장 큰 무기였다.

십 분 정도 쉬면서 흥분과 긴장을 가라앉힌 성곡은 고개를 돌렸다. 옆에는 델모어의 얼굴이 코를 부딪힐 듯 가깝게 있었다. 그렇게나 머리를 책상에 찍었는데도 이마가 말짱했다.

성곡은 손가락을 델모어의 미간에 대고 눈, 코와 입을 포함하는 작은 타원을 그리며 작게 말했다.

“거울 열어(Mirror open).”

미러 락과 오픈은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지만 성곡은 기술에 염원을 담아보면 좀 나아지는 게 있지 않을까 해서 주문을 외우듯 말로 했다.

델모어가 겁에 질린 듯이 물었다.

“코크, 절 강간할 건가요?”

이 순간에 델모어는 영어로 하는 그 말이야말로 얼마나 외설적인지 모른다.

“하는 걸 봐가면서.”

성곡이 지친 음성으로 말했다.

델모어가 움찔하면서 말했다.

“코크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요.”

“코크라며.”

성곡이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델모어가 움찔했다.

“안 그런 남자가 세상에 있기나 하나. 책임이 얼마나 행동을 구속하느냐 문제일 뿐이지. 아니, 젠장. 한 사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성곡은 사피로를 떠올리며 약간 역정을 냈다.

그동안 사피로를 친아버지라고 속여왔던 게 들켰고 그 때문에 뺨을 맞기도 했다. 사피로가 친아버지라고 거짓말하면서 늘 가슴 한 편으로는 그게 진짜 아버지였으면 하고 바랐다. 큰 키와 성곡의 약간 흰 피부색을 감안하면 피가 섞였다고 해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사피로가 아버지라는 생각 또는 거짓말로도 뿌듯했던 성곡은 자기를 지탱하던 기둥 중 하나를 잃은 기분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성곡은 이름 외에 다른 일로는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를 원망한 적이 없음에도 또 엄마를 원망했다. 숱한 남자들과 잤으면서 사피로하고는 왜 한 번도 안 잤나 하고. 자기라도 했으면 어쨌든 연결고리는 있지 않나 싶다가도 그러면 엄마와 잔 많은 남자들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즉시 사고의 진행 방향을 바꿨다.

'설마.... 엄마가 일부러 피했나?'

엄마가 사람 볼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거... 거짓말이죠?”

하며 델모어가 불안한 음성으로 물었다. 델모어는 그렇다고 억지로라도 믿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평소 성곡이 자기 가슴과 다리를 곁눈질하던 것을 알고 있기에 절망하고 있었다. 인간들은 음탕해서 틈만 나면 그 생각하고 기회만 생기면 그 짓을 한다. 그게 델모어가 알고 있는 인간들이었다.

말할 때마다 델모어의 입김이 성곡의 얼굴에 닿았다.

성곡은 피식거리며 손가락을 델모어의 눈 앞에서 돌렸다.

“이걸로 거기 대고 미러 오픈하면 간단할 거 같은데.”

델모어의 겁먹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여자의 눈물은 질색이다. 성곡은 고개를 휙 돌려 천장을 보면서 말했다.

“넌 무슨 괴물이야? 너도 하이잭컨가? 연약한 척하는 건 특성이고?”

어느 경우나 정중하고 예의 바른 말을 하는 것이 변호사의 수칙 중 하나였지만 성곡은 델모어에게 어떤 존중도 보이지 않았다. 사피로에게 들은 괴물들은 모두가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말하는 과정에서 과장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어느 괴물이나 인간을 이렇게, 저렇고, 또 그렇게 하는 흉악한 존재들에 지나지 않았다. 소나 닭한테 정중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델모어를 대했다.

델모어가 울먹이며 말했다.

“우린 괴물 아니예요.”

“그럼 인간이야? 사람 몸 빼앗아 가고 둔갑하여 죽이고 하는 것들이 괴물 아니면 뭐야?”

델모어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내뱉었다.

“지구인은 아니예요. 하지만 우리도 사람이라구요. 우리가 하는 건...... 채식주의자나 육식주의자처럼 좀 구분되는 것일 뿐이고. 지구인들도 하는 짓보면 만만치 않던데요. 우리보다 더 하면 더 했지. 우리는 최소한 필요없으면 남을 해치진 않아요.”

“필요하면 거리낌없이 해치고?”

“그건 우리 탓이 아니지요. '섭리'에 의해서 그렇게 살도록 생겨난 것뿐이지요.”

델모어는 섭리라는 말을 하고 자기도 깜짝 놀랐다.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왜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

하고 성곡이 물었다.

델모어가 말했다.

“이제는 제가 라탐앤 왓킨슨을 이끌어요.”

성곡이 진심이냐는 눈으로 델모어를 보았다. 변호사가 아니면 로펌의 대표가 될 수 없다.

“정말 변호사 자격이 있는 거였어?”

“노스 웨스턴 법대. 2015 년 졸업.”

하고 델모어가 말했다.

성곡은 가짢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젠장, 요즘은 개나 소나 다 변호사야.”

델모어가 발끈했다.

“전 개인비서였어요.”

“새파란 핫칙(hot chick, 섹시한 젊은 여자)가 거대 로펌을 이끄는 총수라면 세상이 다 웃겠군. 인간도 아닌 것이.”

성곡은 벨이 꼬였다. 자기가 평생의 목표로 잡고 있던 자리를 고작 개인비서하던 여자가 냉큼 차지하다니.

“나이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요.”

하고 델모어가 근엄하게 말했다.

성곡은 아마 그 말이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 사람도 먹어?”

“나는 안 먹어요. 베지테리안(채식주의자)라서.”

딴 놈들은 먹는다는 소리였다. 혹은 먹는 놈도 있다는 소리다.

델모어가 재빨리 보충했다.

“다른 사람들도 점점 인간은 안 먹는 추세예요. 비슷하게 생겼으니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많고. 인간도 원숭이 안 먹잖아요. 인간을 반려자로 삼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니까요.”

“어째 인간을 애완 동물처럼 보는 거 같다.”

델모어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저 강간하지 마세요. 저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하고 말했다.

성곡은 짜증을 냈다.

“머릿속에 그 생각밖에 없나.....”

델모어도 약간 화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모텔이잖아요.”

성곡은 대꾸하지 않았다.

이 괴물들은 좀 이상하다. 이상한 능력들만 아니라면 인간과 구분이 거의 되지 않는다. 사고방식도 마치 외국인, 그 중에서도 원시부족 사람들과 현대인을 뒤섞어 놓은 것과 비슷한 정도다. 그러나 그들보다 훨씬 위험하다.

“그래서 넌 무슨 괴물인데?”

하자 델모어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드라이아드(Dryad. 나무의 정령). 전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아요.”

드라이아드는 사람을 싫어하는 나무의 정령이라고 하지만 정령이 아니다. 고대에 그들이 정령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나무의 정령이 가졌다고 전해지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들일 뿐이다. 사피로가 말한 괴물들 중에서는 하이잭커만큼이나 높은 지배력을 가진 괴물이다. 한 번에 6천 명을 대량 학살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이 순진한 시골처녀 같이 구는 드라이아드다.

“회사에 도플갱어는 얼마나 돼?”

하고 성곡이 물었다.

델모어가 대답했다.

“직원 중에는 없어요. 도플갱어는 머리가 나빠요. 그래서 필요할 때만 불러서 써요. 용병 비슷하게.”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플갱어가 머리까지 좋다면 정말 위험할 거 같았다.

“쉴만큼 쉬었고, 이제 시간이 없군.”

하면서 성곡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하려고.”

델모어가 화들짝 놀라는데 성곡은 델모어가 입은 블라우스의 칼라부분을 잡고 찢어버렸다. 쫘악 소리와 함께 델모어가 혼절하듯이 눈동자가 돌아갔고, 레이스가 달린 브레지어를 한 두 가슴이 노출되었다.

성곡은 두 손을 델모어의 가슴 위에 놓았다. 열 손가락 끝에서 진주구슬이 맺히더니 델모어의 가슴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금새 정신을 차린 델모어가 떨면서 말했다.

“뭐.... 뭐하는 거예요?”

“보물찾기.”

성곡은 무표정하게 델모어의 몸을 뒤집었다. 델모어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모텔에서 그 정도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사람은 없다.

성곡은 손바닥으로 델모어의 머리를 눌렀다. 델모어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성곡은 델모어의 등뒤도 옷도 찢어버리고 손을 댔다. 진주구슬이 머리에 이어 등으로도 스며들었지만 그 뿐이었다. 델모어의 몸에 구멍은 뚫리지 않았고 손이 간 근처의 잔 근육들이 바르르 떨렸다.

성곡의 손이 등에서 더 밑으로 내려갔다.

델모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멈춰요. 멈춰. 거기가 아니예요. 발, 전 발에 있어요. 드라이아드 잖아요.”

“성감대 찾는 거 아니야.”

하고 성곡이 콧웃음쳤다.

델모어가 입을 다물지 못하며 급게 말했다.

“코크, 잠깐, 잠깐만. 제발, 잠깐만. 당신 오리진(origin) 찾는 거 맞죠? 제 오리진은 발에 있어요. 발에 있다니까요.”

성곡은 델모어의 하이일을 벗겨서 던져 버리고 뒷꿈치를 잡았다. 하이일은 방문을 둔탁하게 두드렸다. 동시에 옆방에서 벽을 치며 항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델모어가 또 소리쳤다.

“우리. 협상해요. 협상. 코크, 지금 힘빠지고 있는 중이지요? 당신 원래는 이런 힘이 없었어요. 레즈니코프씨 힘이 당신한테 들어가면서 생겼잖아요. 이런다고, 이런다고, 아~.”

델모어가 가쁜 소리를 내다가 마침내 신음을 내고 말았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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