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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 Grey의 문화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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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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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최근연재일 :
2021.04.08 05:06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774
추천수 :
3
글자수 :
175,307

작성
21.04.05 23:48
조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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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23. 시인의 이름 - 더 야해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23. 시인의 이름



아는 사람은 내 이름이 익숙해서 '어디서 들어봤는데'했을 수 있다.

지구에서 내가 썼던 이름인 칼 사피로는 미국의 저명 시인의 이름을 훔친 것이었다. (그 시인의 이름은 발음부터 시적이었다.)

내가 로맨틱하다는 것에는 여성에 대한 낭만적 기호만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와 음악은 항상 내 정신의 자양분이었다.

지구인들에게는 아직 알려지지도 않은 내 고향에서, 아홉살 무렵에 시를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몸이 약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았다.

무심코 떠밀려 넘어져도 분노했고, 팔이나 다리가 다쳤다. 누군가 의도하고 한 행동이 아니었고 누가 그랬는지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냥 길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지는 것과 똑 같은 일들이 날마다 반복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를 돌보던 요정 누이가 속상해하며 울고 나서 나를 달래줬다.

우연히 시를 보게 된 것은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너를 볼 때마다 내 가슴에서는 가시가 돋는다.

사랑한다 말할지라도 내 목을 만지지 말아라.

네 얼굴 앞에서 하지 못하고 삼킨 말들이 가시가 되어 네 손을 찌를까 두렵다.


너도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옛날에

나에게 한 가닥의 용기가 있었더라면

너는 아마도 두 줄기 눈물을 흘리지 않았도 되었을 것이다.

....


시인이 누구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시가 주는 강렬한 느낌에 매몰되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시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우아한 울음이고 고상한 미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로 나는 억울하지 않았다. 분노에 사로잡히지도 않았고 공포에 주도권을 빼앗기지도 않았다.

시는 나에게 허용된 무한한 창고였다. 숨을 수 있고 숨길 수 있고, 저장할 수 있고 꺼낼 수 있고 정리할 수 있는 창고였다.

감정을 시로 다스릴 수 있게 된 이후에 나에게 두려운 것이 없어졌다.

아무리 복잡한 감정도 시로 표현하고 나면 지혜가 샘물처럼 차올랐다.

숱한 전투와 전쟁 속에서 시는 나를 용감하게 했고 현명한 지휘관이 되게 만들었으며, 내가 독재의 길을 걸을 때도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넘어지지 않게 하였다.

나에게 시는 미인과 함께 마시는 칵테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내 적들에게 보내는 내 시는 언제나 벼락 같은 선전포고이고 재앙이었다.

핑크 코트의 자아가 물었다.

“총독 각하, 선포문 작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송출.”

하고 명령했다.

“음악과 함께.”

핑크 코트가 나를 상징하는 음악 '환희의 행진'과 함께 선포문을 우주로 방송했다.

내 전장의 선포였다.

들을 수 있는 자들 중에 내 적들이 있고, 내 적들은 모두 이 선포문을 듣게 될 것이다. 그들이 있는 모든 곳이 내 전장이다.

나는 카이퍼벨트를 벗어남과 동시에 핑크 코트로 우주를 관통했다.



일요일 밤 늦게까지 작업했던 성곡은 월요일 아침에 매니징 파트너 메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직원들에게 인사 발표문을 통지했다.

인사 대상자들에게는 영전이든 좌천이든 무조건 축하한다는 카드 메시지가 꽃바구니와 함께 배달되었다.

스위스에 가있는 것으로 한 레즈니코프의 축하메시지도 전달되었다.

성곡의 이전 비서였던 제니 샌드버그는 매니징 파트너의 개인비서가 되었고, 이전 시니어였던 애드윈 로빈슨은 로스앤젤레스로 발령이 났다.

초 대규모 인사이동이라 회사의 중역들 대부분이 교체되거나 자리를 옮겼다.

라탐앤 왓킨스는 새로운 인물들로 재편 되었다.

인컴 파트너 중에서 중역이 된 사람도 있고, 파트너가 아닌 시니어 변호사 중에서 중역으로 뛰어오른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외부에서 영입된 젊은 여자가 최고운영책임자가 되었다.

인사이동이 있으면 어느 정도 혼란이 있기는 마련이지만 이번 인사는 혼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컨트롤이 바뀌었으니 인사가 예정은 되어있었고, 새로운 MP가 자기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 행하는 이 인사에 제동을 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MP와 싸워서 쫓아낼 수 있는 사람만 제동을 걸 수 있다.

레즈니코프가 있을 때 보이지 않던 절대 실세였던 앤 델모어는 아침에 잠시 회사에 나왔다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회사 근처에 있는 자기 아파트를 정리하고 빅토리아즈 시크릿에 들렀다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성곡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아침에 델모어가 집을 나설 때 둘째가,

“저거 그냥 보내도 괜찮을까?”

했었다.

첫째는,

“죽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하겠지. 갈 데 있으면 가는 것도 나쁘지 않고.”

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첫째 말대로 였다.

델모어는 갈 곳이 없었다. 성곡의 집이 가장 안전한 곳이고 성곡만이 자기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알던 괴물들조차 그녀가 끈떨어진 연일뿐아니라 해고까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말을 걸지 않았다.

이 생계형 괴물들은 외국인 근무자와 다를 바가 없다.

한순간의 낙마는 기수를 죽음에 이를 수도 있고 평생 병신으로 만들기도 한다.

델모어는 자기의 경솔함이 죽고싶을만큼 미웠지만 이미 쏟아버린 우유였다.

델모어가 잘 할 일이었지만 대규모 인사이동을 준비하면서 성곡은 자기에게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고 지시하지도 않았었다. 완전히 배제되어 버린 것이다.

작은 거실에서는 셋째와 넷째가 울고 있었다.

까칠한 첫째와 음침한 둘째는 나 몰라라 하고 각자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델모어는 자기와 똑 같이 생긴 셋째와 넷째를 화장실로 데려가 기저귀를 갈고 씻겼다. 아침 이후로 한 번도 갈지 않아 노란 물뭉치가 되어 있는 기저귀는 부풀어서 뭉치니 공만큼했다.

성곡의 집에는 델모어가 극복해야 할 모든 것이 다 모여있었다.

셋째와 넷째라는 순서를 이름으로 가진 자기의 두 복제인간이 주는 존재의 두려움이 그 하나고, 성곡의 불신 또는 증오가 다른 하나며, 나머지 하나는 그녀 자신의 성에 대한 결백의식이었다.

델모어는 성곡이 오스카와 통화할 때 오스카 역시 자기와 마찬가지의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오스카는 성곡과 관계를 가졌고 성곡은 그녀를 괴물과 다른 감정으로 대하고 있었다.

델모어는 셋째와 넷째의 옷을 갈아입히고 식사 준비를 하러 부억으로 갔다.

먼저 나와 식탁에 앉아있던 첫째와 둘째가 델모어를 힐끗 보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했다.

“아예 벗고 다니라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둘째가 말했다.

첫째가 말했다.

“놔둬. 지금이 더 야해. 보기 좋잖아.”

델모어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그들을 향해 생긋 싱그러운 웃음을 보였다.

“웃는데.”

“웃으라 그래. 제 얼굴로 웃는 걸 말릴래?”

“저 정도면 넘어가 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하고 둘째가 말하자 첫째가 쏘아보며 말했다.

“너, 저거 왜 저 꼴이 됐는지 모르지?”

“몰라. 잘못한 게 있겠지.”

첫째가 말했다.

“딱 하나야. 하지 말라고 한 짓을 했어.”

둘째가 입을 다물었다.

첫째가 말했다.

“건드리지 말라는 소리 들었잖아. 그래도 건드리고 싶어?”

“죽기 싫어.”

둘째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델모어는 속으로 이를 악다물었다.

그녀에게는 성곡이 저들을 죽이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저들도 좋고, 성곡이면 더 좋다. 아무 놈이나 제발 걸려다오 하는 심정뿐이었다.

어쨌든 이 상황에서 돌파구는 될 수 있을 테니까. 빅토리아즈 시크릿에서 산 연두색 속옷이 마법 같은 힘을 발해주기를 바랐다.

성곡은 그 시간에 오스카와 함께 레스토랑에 있었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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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21. 아이러니에 종속되다 - 이자벨 존속살인 21.04.04 15 0 10쪽
32 20. 헤드 헌팅 21.04.02 18 0 14쪽
31 19. Some woman Oscar Crane. 어떤 여자 오스카 크레인 21.04.02 16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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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18. 천천히 폭주하다 - 테이블 밑에서 21.04.02 13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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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7. 시험의 종소리 - 괴물 속의 평온 21.04.01 1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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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5. 자기만의 괴물 - 세균과 박테리아 21.03.30 1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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