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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 Grey의 문화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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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EarlGrey
작품등록일 :
2021.03.17 17:43
최근연재일 :
2021.04.08 05:06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745
추천수 :
3
글자수 :
175,307

작성
21.04.04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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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1. 아이러니에 종속되다 - 이자벨 존속살인

모든 내용은 순수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회사나 단체, 학교와 아무 연관없습니다.

이 소설은 Earl Grey의 '문화 소설'입니다.




DUMMY

21. 아이러니에 종속되다



만족하고 사는 사람에게는 더 좋은 것이 필요없는 기간이 있다.

그런 중에 눈에 띄이는 좋은 것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경계심을 가지고 거리를 두게 된다. 좋다는 것은 만족을 깨뜨려도 괜찮다는 것이 아님을 무의식적으로 아는 까닭이다.

공부나 훈련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늘 어느 수준을 유지하고, 그렇게만 가만 목표 달성에 무난한데 어느 순간에 갑자기 혼란이 발생하는 순간이 온다. 늘 익숙하던 것이 다르게 보여 혼동도 한다.

매일 보던 어떤 단어가 이게 그 단어였나 싶을 만큼 낯설게 보여 몇 번이나 확인하는가 하면, 늘 하는 행동마저 매우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져 당황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은 더 나빠진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한동안 우왕좌왕하다가 서서히 회복해서 세월이 지난 만큼 약간 나은 이전상태로 돌아간다.

슬럼프라고도 불리는 여기에 빠져들면 바보가 되어버리고, 이 상태에서 상처를 입으면 영영 회복하지 못하고 좌절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하던 일이 공부거나, 운동선수처럼 자기 생활의 주된 수단으로 장래가 달린 일인 경우에 더욱 심각하다.

“너는 어째 점점 더 못해지나?”

이 소리는 여자 운동선수들에게 점점 더 못 생겨진다는 소리보다 더 큰 상처가 된다.


이자벨 윌리스는 고교 육상선수로 단거리가 주종목인데 멀리 뛰기도 했다.

학교 정책상 수업을 다 받았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SAT(대학입학시험) 성적보다 대회 성적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지난 해부터 정체되었던 기록은 퇴보하는 상태였다. 아직 어느 대학에서도 데려가려 하지 않았다.

같은 팀의 아이들 중 시니어들은 대부분 한 두군데에서 입학 제의를 받았다. 이자벨의 학교 플로라 고등학교는 육상으로 유명했다.

이자벨은 자기가 어디로 가든 그 순간부터 주변에 수군거림이 시작된다는 사실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학생들도 선수들도, 심지어 선생들도 이자벨을 보면 그때부터 기억났다는 듯이 이자벨에 대해서 목소리를 낮춰서 숙덕거렸다.

간혹 위해주는 척, 자기 말이 우연히 해결책이 되기를 바라며 아무 것도 모르고 충고랍시고 하는 것들이 있었고, 그때 마다 이자벨은 살인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늦었지만 공부를 할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수학만 어떻게 해결하면 그럭저럭 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더구나 지금은 기록이 떨어졌지만 각종 수상 경력은 과외활동으로 크게 인정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달리기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그냥 좀 잘하니까, 잘한다고 하니까 계속했던 거다. 이렇게 생각하며 SAT 수학 교제를 손에 쥐었는데, 열 문제도 풀기 전에 오르지 못할 산을 만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건 쉽고, 어떤 걸 알 것 같은데 답과는 거리가 멀고, 어떤 건 무엇을 묻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학급에서 똘랑똘랑하던 친구들이 그런 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자벨은 공부에 스스로 선을 긋고 육상으로 마음을 되돌렸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다는 사실은 이자벨을 더욱 위축시키고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일탈을 해버리고 싶었지만 주위의 시선이 무서웠다.

망가진 육상선수로서, 남들의 뒷이야깃거리가 되어 손가락질 받는 상황을 이자벨은 견뎌 낼 수 없었다.

죽고 싶다는 머릿속을 채웠다.

집에 가는 것도 싫었다. 이자벨의 재능에 주목하여 기대를 걸고 있던 부모는 기대를 접고 이자벨을 천덕꾸러기 보듯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2학년 여름 방학을 코 앞에 두고 한 가출이었다. (망쳐 버린 트랙 시즌도 끝났다)

이자벨은 코치 야간버스를 타고 뉴욕으로 왔다.

포트 오소리티(맨하탄의 버스 터미널) 근처에 내렸을 때는 새벽이었고, 이자벨의 열 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지갑에는 엄마의 사진이 박혀있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신용카드 한장과 133 달러의 현금이 있었다.

이른 새벽이지만 벌써 분주한 맨하탄 거리를 걸어서 타임스퀘어를 보았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 빌딩의 전광판들은 기괴하게 보였다.

여행자센터에서 조금 떨어진 델리 가게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서 먹자니 모든 게 막막했다.

팔메토 스테이트(The palmetto state,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별명, 팔메토는 야자나무의 일종)의 주도인 콜롬비아에서 나고 자란 이자벨은 대회 출전을 위해서만 고향을 떠났었다.

시골에서 온 것을 누가 알아챌까 겁도 났고, 가출한 사실을 알까봐도 무작정 겁이났다.

그러나 뉴욕에 오는 누구나 그렇듯이 이자벨은 여기서 어떤 새 길이 열릴 것만 같았다.

막연한 미래가 선사하는 막연한 희망이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모토는 라틴어로 Dum spiro spero 라고 하는데 (라틴어를 멋있다고 생각하는지 이런 데는 꼭 라틴어가 들어간다) 의미는 '숨쉬고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이다.

주를 대표하는 시합에서도 달렸던 이자벨에게 코치가 가르쳐 주었던 말이었다.

그 코치가 했던 말 중에 쓸 만한 것은 이 말 밖에 없었다. (그는 무능했고 아무 쓸모 없었으며 가장 먼저 이자벨을 포기하여 이자벨이 절망에 이르게 한 사람이었다.)

여행자가 많은 맨하탄에서 이자벨에게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행자를 대상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은 돈 있어보이는 사람만 찾는 레이더 눈을 가지고 있다.

이자벨은 잘 넘어가지 않는 샌드위치를 더 천천히 먹었다. 델리가게 밖을 나가기가 망설여졌다.

전화기도 조용했다.

아직 집에서는 이자벨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거 같았다. 보기 싫어하고 일부러 관심을 멀리 두니 방에서 자는지 사라졌는지도 알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자벨은 연락할 사람도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자벨은 트랙을 달리는 운동 선수였고 모든 사람에게 이자벨은 운동선수였다.

망가진 지금, 운동 선수가 아닌 한 명의 여자 아이로 자기를 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열 여덟살이었다. 독립된 어른으로 살 각오를 했고 그 시작을 뉴욕에서 하기 위해서 왔다.

하지만 이자벨은 샌드위치를 다 먹기도 전에 조용히 다가온 연방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자벨 윌리스,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콜롬비아에서 왔죠?”

하고 양복입은 사람이 물었을 때, 이자벨은 순진하게도 뉴욕에서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 놀라면서도 반가워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출신이라 육상선수인 자기를 알아본 줄 알았다. 이자벨이 기다리던 희망이 행운으로 다가온 순간인 줄 알았다.

“예. 맞아요.”

했다가 펏득 드는 생각에 물었다.

“엄마 아빠가 보냈어요?”

아무리 그래도 부모니까 걱정이 됐을 거라는, 그것도 희망이었다.

그러나 양복입은 남자는

“비슷합니다.”

하면서 이자벨의 오른 손목을 잡더니 수갑을 채웠다.

이자벨이 ”앗”소리를 지르는데 그 양복 남자가 말했다.

“이자벨 윌리스, 존비속살해 용의자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당신은 침묵할 권리가 있으며, 당신이 하는 진술은 법정에서 당시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우리가 묻는 어떤 질문에 대해서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변호인이 대신 대답하게 할 수 있으며, 변호인을 선임할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당신의 원할 경우 당신을 위한 변호인이 심문이 이루어지기 전에 지정될 것입니다. 지금 변호인 없이 대답하고 싶으면 할 수 있고,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습니다. 이 권리들이 있음을 인지했습니까?”

미란다 워닝(Miranda warning, 심문이전에 통지하는 형사 용의자에 대한 권리통지)이었다.

존비속살해를 의미하는 단어 'parricide'를 이자벨은 몰랐다.

“뭐? 뭐라구요?”

하고 이자벨은 반항하며 소리쳤다. 육상으로 단련된 이자벨의 힘이 양복 한 사람을 뿌리쳤지만 동시에 두 사람이 달려들어 이자벨의 팔을 뒤로 꺾어 바닥에 엎어서 두 손에 수갑을 채웠다.

“왜? 이유가 뭐예요?”

하고 소리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바깥에는 경찰차가 와있었고, 이자벨은 뉴욕 경찰의 협조를 받은 두 양복에 의해 끌려갔다. 차안에서 이자벨은 엄마 아빠가 모두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FBI는 이자벨의 몸과 가방을 수색했다.

5년 전 일이고, 성곡이 이자벨에게 들었던 사건의 전말이었다.

“전, 아침에 집에서 나왔어요. 샬럿(Charlotte,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가장 큰 도시)에서 시합이 끝나자 마자 집으로 가지 않고 떠났어요. 전, 정말 엄마 아빠를 죽이지 않았어요. 왜 제가 엄마 아빠를 죽여요?”

이자벨은 성곡 앞에서 소리치며 울었고, 성곡은 이자벨의 이야기를 더 듣지 않고 멈췄는데, 경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요즘 애들은 대단하죠. 전부 배우 뺨칠 정도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편한 대로 상상해서 몰입해버리죠. 무섭습니다. 변호사님도 그럴지 모르지만, 전 쟤들이 괴물 같아요. 사람 죽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요.”

이 사건이 성곡이 라탐앤 왓킨슨에 들어가 2년 차 변호사가 되었을 때 맡았던 '윌리스' 사건이었다.

'Parricide'는 원래 아버지 살해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아버지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족을 살해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읽을만하면 추천해주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격려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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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1. 아이러니에 종속되다 - 사랑 혹은 혼란 21.04.04 14 0 9쪽
» 21. 아이러니에 종속되다 - 이자벨 존속살인 21.04.04 1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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