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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군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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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2화. 천형(天刑)

2. 천형(天刑)

 

1.

 

길이 보이지 않는다.

눈앞은 점점 더 가물가물 해져 오며, 몸은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 읖조리고 있다.

짧은 생애였지만,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지난 보름간을 쫓기며 치열하게 걸어왔다.

어찌 눈앞에 배신자를 두고도 몰랐을까?

둘째를 낳았다며 그렇게 즐겁게 너털웃음을 짓던 그가 아닌가.

허허, 지금 와서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작은 농가의 막대 아들로 태어나 허허로운 삶을 살다

노을처럼 조용히 생을 마감할 수 있었더라면 더 없이 행복했을 터인데...’

 

* * *

 

여기 핏자국이 보입니다.”

 

사지 중 한 두개는 잘라도 되니, 서둘러 가야한다.

지니고 있는 지도만 빼앗으면 모든 것이 해결 될 것이다.”

혹시 다른 곳으로 빼돌렸을 수도 있으니 회혼술을 위해 머리는 남겨두어야 한다. 모두 서둘러라.”

 

서둘 필요가 있습니까? 고충님이 알아서 잘 처리할 텐데요.”

 

시간을 끌다가 죽은 동료가 10명이 넘는다. 이러다 우리 비호단이 해체될 수도 있다. 고충만을 믿다가는 득보다는 실이 너무 클 것이다.”

 

으득, 이놈 지도를 구하지 못했으면 고충 네놈부터 죽일 것이다. 아무리 태자를 속이기 위한 것이라지만 팔다리도 아니고 벌써 수하들 열을 베다니...’

 

* * *

 

태어나 천형(天刑)으로 앓아오던 병을 고칠 수 있는 천화(天花)’와 관련된 고서적을 찾은 것은 기연(奇緣)이자, 비극의 시작이었다.

 

천화는 천상계에 핀다는 영묘한 꽃으로, 효능은 호흡이 끊어진 시신이라도 일다경(一茶頃)안에만 복용하면 살아날 수 있고, 일반인이 복용한다면 평생을 무병장수하며, 가장 젊은 시절의 활력을 되찾고 그 수명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하물며,

무림인이 먹는다면 어떤 효능을 보일 것인가?

일순간에 육갑자의 내용을 지니게 되고, 절정고수만 되어도 한 번에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기연을 얻게 되는 영물 중의 영물이다. 또한 진기가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태생부터 지니고 있는 원기가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년설삼, 공청석유, 만년하수오 보다 한 단계, 아니 두단계는 높은 급으로 취급되는 신화속의 영물이라고 할 수 있다.

 

천화(天花)’를 통해 그 동안 꿈꾸어 오던 삶을 살아보려 했는데...

모든 것이 덧없음이 느껴진다.

황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언제나 관심 속에서 살아왔지만, 태생적으로 타고난 지병으로 인해 모두의 관심 속에서 멀어졌다.

15살이 되도록 언제나 황궁서고에서 책읽기만을 여흥으로 지금까지 지내오다

우연히 발견한 낡은 고서적 속에 묻혀있던 천화(天花)’에 얽힌 전설.

 

나를 젖먹이 때부터 기르며 온갖 정성을 쏟은 묘화에게 부탁하여 은밀히 천화에 대해 수소문 하였고, 천상의 꽃인 천화가 피는 지형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하늘의 정기가 모이는 천산의 열두 봉우리 중 태두로 불리는 상천봉의 심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천화(天花)’.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하였다. 셋째의 귀에 들어간 것은...

평소 왕성한 정치의욕을 드러내며 다음 대, 황위를 노리는 무룡

소리장도(笑裏藏刀)를 연상케하는 외모와 지극히 차가운 말투.

어린 시절 벌모세수를 받아 15세에 절정의 경지에 올랐고, 오래지않아 황궁의 10대 고수를 능가하게 될 것이란 소문이 있는 셋째.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있다면 무엇도 가리지 않고 쟁취하고 마는 무서운 성정(性情)을 지니고 있다.

 

* * *

 

 

 

 

2.

 

형님,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아우가 도울 일이 있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하늘이 내린 형님의 병을 고쳐드리겠습니다.”

 

아니다. 나의 병은 고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내 몸은 밑 빠진 독이다.

황궁비고에 있는 영약이란 영약은 모두 먹어본 내가 무슨 방법으로 지금의 병을 고칠 수 있단 말이냐?”

 

세상에 고치지 못할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그 병을 고칠 방법이 아니라 재물과 능력이 부족해 포기하는 것이지요.”

 

도통 아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오랜만에 왔으니 좋은 차 한 잔 하거라.”

 

, 그러하지요.”

 

참으로 고약하구나, 어찌 알고 왔단 말인가?’

 

형님 세상을 속여도 저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무룡의 야망은 내가 천화의 장소를 수소문한지 백일이 되지 않아 시작되었다.

 

천산으로 보낸 무수한 약초꾼과 사냥꾼, 풍수지리에 도통한 이 모두가 한줌 핏줄로 변하거나, 다시는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나도록 단 한명도 천화(天花)’에 대한 소식을 알려오지 않았다.

이는 분명 내가 모르는 변고(變故)가 있음이 틀림없다.

 

더 이상은 방관할 수 없음을 깨닫고, 수신호위 12명만을 대동하고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요양을 간다하고 출발한 천산행.

처음 6개월간 천산자락의 마을 언저리에서 요양하며 은밀하게 상천봉을 이잡듯이 뒤졌지만 돌아오는 건... 허탈함.

 

몸도 마음도 지쳐갈 무렵, 시작된 뜬소문.

천화가 있는 곳의 위치가 적힌 지도가 완성되었다.’

밤마다 찾아오는 은밀한 자객의 활보

12명의 수신호위는 어느새 4명으로 줄었고, 보호를 위해 궁에 올려 보낸 파발꾼의 답신도 끊어진지 오래다.

짐을 꾸려 궁으로 돌아가려 해도 신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극구 말리는 호위장의 권유로 하루하루를 좌불안석(坐不安席)하며 지낸지 어언 두 달.

전하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역적의 무리가 수신호위들을 모두 죽이고 이곳으로 들이닥칠 겁니다.”

피투성이가 된 묘화가 붉어진 눈시울로 문을 열었다.

순간, 삐죽이 삐져나온 검 한 자루, 어느새 묘화를 가슴을 뚫고 솟아있었다.

 

지독한 계집이구나, 온몸이 칼에 난자당하고도 이곳까지 기어오다니.. 클클...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것을 어쩌겠느냐?”

아이고, 귀하신 도련님께서 많이 놀라신 모양입니다.”

 

경황이 없었지만,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숨이 잦아드는 묘화의 안타까운 모습을...

품속에 넣어둔 화린산을 은밀히 손에 쥐었다.

 

이놈들, 모두 썩 물러가라. 나는 너희와 같은 소인잡배들이 함부로 할 위인이 아니다.”

 

,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귀족행세를 한다 이거지.”

어디부터 싹둥싹둥 잘라줄까? 목만 남기고 하나씩 자를까?”

크아악...”

 

피에 젖은 수신호위장 고충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 틈을 주지 않고 화린산을 뿌렸다.

 

이런 젠장, 막아라

 

전하, 뒤쪽 무이봉에 활로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서둘러 나가시지요.”

 

그렇게 시작된 낮밤 없는 추적...

 

3.

 

이곳이 천상봉의 두 번째로 높은 곳이 옵니다.”

 

, 수고했네, 겨우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나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희망을 잃지 마시옵소서! 전하가 찾으시는 것이 분명 이곳에 있을 것입니다.”

 

고충, 지금와서 찾으면 무얼 하겠는가? 채취할 방법도 섭취할 시간도 없을 것을...”

 

가지고 계신 지도를 저에게 줘 보십시오. 무례인 줄은 아오나 제가 먼저 수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허, 지도가 없다 하지 않았나?”

 

아직도 저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시간이 별로 없사옵니다. 저를 믿고 지도를 보여주시면 전하가 피신해 있는 동안 채취해서 가져오겠습니다.”

 

이것은 최후의 보루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직접 천화에 가야한다. 하늘이 내린 영물은 본인이 아니면 취할 수 없다 하였다.

아니다.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호위장을 믿고 먼저 채취를 마치고 조용한 곳에서 이를 취해도 될 것이다.’

 

, 여기있네.

이것은 지도라기보다는 천화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4곳을 추려놓은 것이네.

이곳에서 멀지 않은 2곳과 묘화봉의 2곳이네.

나는 조금 전 지나온 동굴에 은신 할테니 서둘러 다녀와 주게.”

 

네 전하!”

 

쉬이익

지도를 품에 갈무리하자마자, 날아든 호위장의 칼날.

 

믿을 수 없게도 나의 심장 한가운데를 찌르며 들어왔다.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이 내 두 동공에 맺혔다.

천애절벽을 두둥실 날아가는 나의 몸.

 

호위장... ? 자네가 왜?”

그렇게 믿었는데...

괜한 미련만 가득하구나. 괜한 욕심만 부렸구나.’

덧없음을... 덧없음을... 덧없음을..’

내세에 태어나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살 것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그렇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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