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장. 예상치 못한 링크-01
경계를 넘는 자들! 타키온
2장. 예상치 못한 링크
휘이익!
강렬한 돌개바람이 한차례 초원을 쓸고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인간의 눈으로는 그 끝을 볼 수 없는 거대한 들판이 하늘아래 놓여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지 뒤로 지평선이 아득하다.
산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평지로 이어지는 거대한 들판이 존재할 뿐이다.
어디가 끝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거대한 들판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하늘과의 경계만 보일 뿐이다.
마치 세상을 둘로 나눈 듯 그야말로 보는 이로 하여금 아득함을 느끼게 한다.
품안에 있다면 인간에게 자연의 위대함을 저절로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장엄함을 가지고 있는 초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거대한 들판에 붙여진 이름을 안다.
‘베르카 대평원!’
어떻게 아는지는 나도 모른다.
한 낮의 춘몽(春夢) 중에 대평원 안에 내가 있다니 정말이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경외의 세계를 갔다 온 여파이리라.
끝이 아련한 들판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정보가 물밀 듯이 몰려온다.
정신이 아득할 정도다.
‘크으, 또 다른 링크가 시작된 것인가?’
이것이 무슨 현상인지는 비슷한 상황을 두 번이나 겪어 봤기에 안다.
경외의 세계를 경험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링크 현상이 분명하다.
난 지금 경외의 세계와 링크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는데 갑자기 링크가 되다니 어리둥절하다.
더울 놀라운 것은 레폰드나 브로신과의 링크할 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지금의 나는 사람이 아닌 이 세계 자체와 링크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정보로 인해 혼란스럽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의식을 집중하자 내게 주입되고 있는 정보가 체계를 갖추며 온전하게 인식되고 있다.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머리가 정리되는 것 같다.
‘약간 어지럽군. 세계와 링크가 된다는 것이 쉽지 많은 않은 일이군. 그나저나 이곳이 그곳인가? 나와 끈이 닿아 있는 존재의 근원이 생긴 곳이.’
내가 서 있는 공간은 베르카 대평원이다.
나와 이 세상을 연결하는 끈이 시작된 곳이다.
‘대단하군.’
베르카 대평원은 이곳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신성시 되는 곳이다.
수많은 전설과 신화가 시작된 곳이자, 신의 위대함을 찬미함과 아울러 인간 스스로 자신의 나약함을 절절히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어진 곳이다.
아로카스 대륙의 남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대평원이다.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있지만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농사를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다.
사시사철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 인해 이삭이 잘 영글지 않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는 광활한 초지가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평원을 가득 메우며 초지를 만들어낸 것은 벨루스라는 식물이다.
벨루스는 특이하게도 열매로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로 번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로인해 생식하는데 있어 베르카 대평원에서 부는 바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대평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벨루스는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야 말로 축복이자, 신의 선물이다.
벨루스가 그들에게 축복이자 신의 선물인 이유는 가축들이 먹기에 아주 좋은 풀이기 때문이다.
줄기나 잎 자체가 매우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영양도 많아 벨루스를 먹여 키운 가축들은 언제나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덕분에 베르카 대평원은 목축을 하기에는 대륙에서도 최적지로 꼽히는 곳이다.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소비하고 있는 고기 중 대부분의 양을 이곳에서 길러내고 있을 만큼 축복받은 대지 중 하나다.
‘밑동 부분이 두툼한 것을 보니 이제 우기가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군.’
벨루스의 상태를 보니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이다.
건기를 대비하기 위해 물을 잔뜩 머금고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아로카스가 어디 있을 텐데…….’
언제나 이맘때쯤이면 대평원에는 큰 강이 흐른다.
평상시에는 흐르지 않다가 우기가 시작되면 엄청나게 쏟아지는 빗물로 인해 갑자기 강이 만들어 진다.
바로 아로카스라 이름 붙여진 강이 바로 그것이다.
아로카스강은 일명 떠돌이 강이라 불린다.
일정한 지역을 흐르는 강이 아니라 우기가 시작되어 비가 내리면 빗물로 인해 갑자기 커다란 강이 생긴다.
그리고 낮은 지형을 따라 흐르다 초원 속으로 스며들어 생을 마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스스스…….
생각이 미치자 시야가 흐려졌다.
초원의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고 초원을 가로지르는 푸른 물줄기가 보였다.
‘아로카스 강을 생각하자 바로 이동하는 군. 그런데 우기가 끝난 지 꽤 되었나 보구나.’
베르카 대평원을 비옥하게 만드는 아로카스 강의 수위가 아주 낮아 보였다.
30여 미터의 폭에 깊이는 사람의 무릎 밖에는 차지 않는 것 같다.
강우량이 많아지면 강폭이 최대 10킬로미터까지 커지는 강이고 보면 이제 본격적인 여름인 것 같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자신의 생이 끝남을 아는 것인지 아로카스 강은 서서히 생애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어째서 사람들이 없는 것이지?’
평상시 아로카스가 생기면 그 주변은 언제나 목동과 가축들로 붐빈다.
베르카 대평원에 자리한 오아시스가 얼마 되지 않기에 건기가 시작되기 전에 가축들의 살을 찌우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강변에는 가축은 물론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스스스스…….
갑자기 시야가 흐려진다.
다시 공간을 이동하는 모양이다.
다시 아로카스가 나타났지만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강의 하구라서 그런지 강폭이 무척이나 넓다.
그리고 강변의 작은 둔덕을 따라 가축을 돌보아야할 목동들이 보이지 않는다.
목동들의 작은 천막들 대신 살기가 번득이는 군영의 군막들만이 줄지어 서 있다.
‘으음, 전쟁이 시작된 것인가? 대단한 군기다.’
베르카 대평원은 난데없는 이방인들로 인해 숨을 죽이며 몸살을 앓고 있었다.
정렬 된 군막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베르카대평원의 광활함을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로카스 강변을 메우고 있는 것은 군막뿐만이 아니었다.
군막들 뒤로는 한눈에 보기에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많은 수의 군마들이 우리에 갇혀 풀을 뜯고 있었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들과는 달리 열과 오를 맞추어 줄지어선 군막들 주변에서 살벌한 기운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병사들이 흘리는 군기였다.
‘싸늘하군.’
군막들 사이로는 분주히 자신의 일에 몰두 하는 병사들이 보였다.
병사들은 무척이나 바빴다.
갑주를 챙겨 입고 자신의 무기를 손질하거나, 자신이 믿는 신을 위해 기도하는 등 전투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병영 안은 긴장된 모습과 함께 무척이나 살벌했다.
일촉즉발 팽팽한 기운의 강도로 보아 훈련을 위해 나선 것이 아니라 분명 전쟁을 위해 나선 것이 틀림없었다.
‘적이 누구인데 이렇게 많은 병사들이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각자 자신의 일들을 하고는 있었지만 병사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굳은 안색인 것은 물론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 같이 긴장하고 있었다.
아마도 적에 대한 긴장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상당하군.’
병사들이 머물고 있는 군막은 어림잡아도 수 천여 채는 되어보였다.
상대하려는 적의 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군막 하나에 십여 명 이라고 칠 때 이정도 병영의 규모라면 적어도 수만은 되어 보이는 군세다.
‘이정도 군세에, 이런 긴장감이라면 상대가 정말 만만치 않다는 뜻인데…….’
대단한 군세임이 분명한데도 이상하게 병영 안의 군사들은 모두들 긴장하고 있는 빛이 역력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마치 죽음으로 향해가는 자들처럼 비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미 패배를 예감한 자들의 모습은 아니었다.
옥쇄를 각오한 것처럼 병영 안은 그야말로 숨쉬기조차 힘든 군기가 팽배해 있었다.
‘정말 비장하군. 죽음을 각오한 이들처럼 말이야.’
병사들의 모습은 마치 성전을 치르러 가기 위한 순교자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정제된 군기와 함께 고요하고 차분하게 전투 준비를 해 나가고 있었다.
‘저곳에 지휘부가 있겠군.’
병영의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군막하나가 홀로 우뚝하니 서있는 것이 보였다.
다른 군막의 두세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로 외관도 그 모양새나 형태가 병사들의 것과는 달랐다.
크기나 규모로 보아 베르카 대평원의 중심부를 가득 메운 군단을 지휘하는 수뇌부가 머무는 곳이 분명했다.
아무런 문양이 없는 하얀색의 일변도의 병사들의 군막과는 달랐다.
거대한 군막에는 날개 짓을 하고 있는 커다란 새의 문양이 외장 전체에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어떻게?’
아는 문양이다.
신화의 새이자 태양의 새라는 삼족오가 분명했다.
경외의 세계에서 어떻게 현상계에 있는 삼족오 문양을 쓰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뭔가 일어나고 있는 건가?’
군막 주변에는 경계가 삼엄했다.
자신들의 수장을 보호하려는 듯 군막 바깥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정기가 가득한 병사들이 원을 둘러 지키고 있다.
휘이익!
베르카 대평원을 휘도는 한줄기 바람이 병영으로 흘러들며 커다란 군막 주변을 스쳐지나갔다.
디리링!
바람의 영향 탓인지 군막 주변에서 심신을 말게 하는 청아한 소리가 퍼져 나갔다.
소리의 근원지는 군막의 입구였다.
푸른 구슬로 엮은 주렴들이 길게 걸려있었다.
도로롱!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서로 부딪치며 영혼을 울리는 맑은 소리를 연신 토해내고 있었다.
‘안은 어떤지 보자.’
이 세계에서는 전지적 시점을 가지고 있는 나다. 의지만 있으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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