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끝없는 도주-02
경계를 넘는 자들! 타키온
파파파팟!
준비가 끝나자 사나이와 일행은 빠르게 화전민촌을 벗어나 숲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대단한 자들이다.
처음 마을로 들이닥쳐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던 자들과는 완연히 다른 이들이다.
서슴없는 칼부림에 죽음을 도외시한 과감한 공격을 보면 고도의 훈련을 거친 자들이 분명하다.
사실 마을에 쳐들어와 광기에 젖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학살하던 자들은 어딘지 이상했다.
물과 기름 같은 것이 마치 다른 조직을 합쳐놓은 것처럼 융화되지 않은 느낌이 무척 강했다.
반면 나중에 기습을 한 이들은 아니었다.
목숨을 도외시한 채 공격을 하면서도 서로 연계하며 움직였다.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동료에게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 점이 두 집단 간의 승패를 갈랐다. 조직력의 차이로 인해 한쪽이 전멸 했으니 말이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개개인의 전투력이 많이 떨어짐에도 나중에 나타난 이들은 조직력으로 승부를 봤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전이 아니었다.
나타난 이들 중 가장 강했던 자에게 내가 도움을 주었다고는 하지만 이정도로 빨리 승부를 볼 줄은 몰랐을 정도다.
그나저나 이제 이동을 하는 것 같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해가 될 것은 없을 것 같다.
해가 될 것 같았으면 벌써 이승을 하직했을 테니까.
* * *
빠른 속도로 숲길을 빠져 나와 관도로 나온 것은 동이 터올 무렵이었다.
다섯 군데로 갈라지는 길가에 말두마리가 이끄는 마차 다섯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자 마부로 보이는 이들이 검을 들고 경계하고 있었다.
“이상은?”
“없습니다.”
마부 중 하나가 재빨리 대답을 했다.
“모두 옷을 갈아입고 나누어 마차에 탄다. 그리고 각자 맡겨진 방향을 향해 달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쉬지 말고 달려야 할 것이다.”
다들 지쳐 있었지만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적에게 추적을 당하기에 사나이는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계획을 철저하게 숙지하고 있는 듯 사나이의 수하들이 옷을 벗고 준비 된 새 옷으로 빠르게 갈아입었다. 검을 제외하고 피에 절은 옷들과 무구들이 한곳으로 모여졌다.
준비가 끝나자 사나이는 주머니에서 스크롤 하나를 꺼내 찢었다.
번쩍!
섬광과 함께 모아진 물건들에 백색의 광채가 어리더니 점차 희미해 졌다. 재조차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이 사라졌다.
‘마나의 유동이 없으니 좋군. 그렇지 않았다면 놈들에게 바로 들켰을 텐데.’
사나이가 찢은 것은 마법스크롤이 아니었다.
그가 주군으로 모시는 사람에게서 받은 것으로 일종의 주술이 담겨 있는 스크롤이었다. 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법과는 달라 혼란을 줄 테니 시간을 벌 수 있을 터였다.
“모두 무운을 빈다. 지옥에서 보자.”
사나이는 수하들에게 한마디 던진 후 곧장 자신이 맡은 마차에 올라탔다. 그가 탄 마차 안에는 어느새 옷이 갈아 입혀진 아이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이랴!!”
두두두두두!
마차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달리기 시작했다.
마차 안에는 화전민촌에서 데려온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잠들어 있었다.
* * *
쾅!!
원목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책상이 상단을 때린 주먹으로 인해 들썩였다.
여파가 남아 있는 듯 부르르 떨리는 것이 내려친 공작의 분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공작은 보고를 마친 제3기사단장을 불같은 눈으로 쏘아 보았다.
“모두 빼앗겼다는 말인가?”
“연락이 없어 수하들을 다시 보냈지만 누군가에 당한 것인지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나섰는지는 밝혀냈나?”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누가 나섰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싸움이 벌어진 형태로 볼 때 단일 조직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합니다.”
유라시스의 질문에 두려운 듯 대답하는 레폰드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가? 마스터가 무려 열 넷이 동원이 된 일이야. 그리고 익스퍼트 최상상급에 이르는 검사가 사십 명이 따라 붙었어. 자네는 그런 전력을 모두 죽이고 아이들을 탈취할 만 한 세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으음.”
유라시스 공작의 말이 맞는 소리였다.
그만한 전력이라면 왕국들이 가지고 있는 기사단 전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왕국들이 나설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아무리 마왕의 아이들이라고는 아이들을 품는다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 수도 있으니까. 그나마 그런 전력을 가진 곳은…….’
왕국들을 제외하고 파견된 이들을 남김없이 죽일 수 있는 전력을 가진 곳은 제국의 공작가들 정도 밖에는 없다.
정체를 밝히지 않으려고 모두 죽일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암혈이라 불리는 것이 바로 세그남이다. 세그남에게 비밀은 없다는 것을 그들이 모를 리 없다.’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어쌔신 길드의 정점에 선 가문에게 비밀이란 그저 밝히기 어려운 일에 불과할 뿐이니 공작가를 제외 했다.
같이 멸문하고자 할 생각이 아니라면 다른 공작가에서 파견된 기사단을 전멸시키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레폰드는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만 한 세력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이번 일에 개입을 했는지 저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레폰드는 솔직히 시인했다. 아는 척하는 것이 공작의 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화를 많이 가라앉힌 유라시스 공작은 곤혹으로 물들은 레폰드의 눈동자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다른 공작가문들은 아니다. 그들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았고, 그들도 우리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을 테니까.”
“그럴 겁니다.”
다른 공작가문에 대한 경계는 언제나 특급으로 이루어져 왔다. 유라시스 공작이 다른 가문을 살피고 있었음을 짐작한 레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일 조직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몇 개의 조직이 연합해 일을 벌인 것이 분명하다. 내 짐작이 맞는다면 현장에 뭔가 단서가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가지고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한다. 황실의 눈치도 보지마라. 이일은 가문의 존망이 걸린 일이다. 알아들었나?”
“아, 알겠습니다.”
레폰드 유라시스의 불같은 외침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실시된 작전은 그가 입안하고 계획을 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레폰드 백작!”
“예, 각하!”
“실수를 했으면 책임을 져라. 아이들을 찾지 못하면 돌아올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레폰드 백작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곧바로 집무실을 나섰다.
털썩!
레폰드가 나가자 유라시스는 의자에 힘없이 앉았다.
“제기랄! 이번 일로 본가의 전력 중 반이 날아갔다. 만약 그 아이들을 찾지 못한다면 본가는 다른 가문에 눌려 지낼 수밖에는 없다. 마법전력이 부족한 것이 원통할 뿐이로군.”
마법전력보다는 기사단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왔던 것이 실착이었다.
마법전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공작가에 비해서는 처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해서 가문의 비기를 전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기사단을 양성했는데 그중 반수가 이번 작전에서 허무하게 사라져갔다.
카밀의 검에 협조하는 대가로 제국의 사대기둥이라는 공작가중 하나인 세그남의 전력이 확실히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피네올과 연합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도약을 위해 계획을 했던 작전이 가문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려고 하고 있었다.
세그남 공작가의 가주인 유라시스 폰 세그남은 앞으로의 일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힘이 약해지는 순간 고블린처럼 끈질기게 달라붙어 뜯어 먹으려는 정적들을 막아야만 했다.
유라시스 공작의 명령을 받은 레폰드 폰 벨리백작은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보고를 하러 공작의 집무실로 들어가기 전 미리 기사들을 대기시켜놓았던 것이다.
연무장으로 들어서자 100여명의 기사들이 완전무장을 찬 채 긴장된 얼굴로 도열해 있었다. 레폰드가 나타나자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마법사들의 말로는 놈들은 그 어떤 마법도 이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워프로 현장에 도착하고 나면 즉시 추적에 나선다. 페리온 길드에서 나온 어쌔신들이 그대들을 도울 것이다. 그대들의 동료들을 학살한 자들이다. 용서하지 말도록.”
“충! 세그남에 영광을!!”
엄숙한 레폰드 백작의 말에 기사들이 일제히 자신의 오른 손을 들어 가슴에 올리는 군례를 올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결의가 가득했다. 레폰드 백작과 마찬가지로 동료들을 잃은 기사들의 눈에도 분노의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가자!”
백작의 명령에 기사들은 마법사들이 만들어 놓은 워프게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일곱 군데로 나누어 흩어졌다. 레폰드 또한 워프게이트에 올라섰다.
번쩍!
눈을 아리게 하는 번쩍이는 빛과 함께 세그남 공작가의 남아 있는 전력이 워프를 통해 영주성를 벗어났다.
스스스스…….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 기사들이 떠나자마자 기이한 기운이 공작성을 감싸기 시작했다.
눈에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기이한 기운으로 인해 공작성 곳곳에 숨겨진 인물들은 뭔가 일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작 관저 곳곳에 희미한 장막이 쳐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적의 침습에 대비하기 위해 세그남에 숨겨진 비밀들이 장막을 친 것이다.
* * *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 작가의말
중요한 사업에 대한 분석보고가 있어서
며칠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_ _)
몇 편 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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