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장.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04
경계를 넘는 자들! 타키온
“마, 마스터. 어떻게 하시려고 하십니까? 그렇게 보고했다가는 뒷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벨리에의 음성이 떨렸다. 루만의 명령이 그로서는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본가의 원로들은 그리 만만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암중에서 유리메스공작가와 제국을 지배하는 존재들이 바로 원로들이다.
그런 그들을 속이려하다가는 8클래스에 도달한 루만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기에 벨리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숨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니까. 실험성과에 어찌 되었는지는 때가 되면 내가 직접 보고할 것이다.”
“직접 보고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 그리고 이번 실험결과에 대해 그리 보고하라고 시키는 것은 수자를 늘릴 경우 원로들의 조급증이 심해질 것을 우려해서 그러는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라.”
“아, 알겠습니다.”
원로들이 이번 실험결과에 대해 무척이나 고대한다는 것을 벨리에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루만이 말한 것처럼 유리메스공작가의 원로들은 실험결과에 대해 조급증을 내고 있었다.
오랜 세월 짓눌려 온 마음의 응어리와 가문의 수치를 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실험의 끝자락에 다다른 요즈음 채근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로들은 오직 이번 실험을 위해 한평생을 다 바친 사람들이다. 그들의 피와 땀이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실험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완성이 먼 상태인데 원로들이 채근하기 시작한다면 실험에 지장을 줄 것이 분명 했다.
그를 대비해 때가 되면 보고를 한다고 하니 벨리에는 어느 정도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벨리에, 중심세포의 증식이 끝나는 대로 최대한 빨리 실험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라. 세상의 흐름이 변하기 시작했다.”
“시작된 것입니까?”
“아직 거기까지 간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머지않아 제국에 큰 폭풍이 불 것이 분명하다. 우리도 그에 맞추어 대비를 해야 하니 최대한 실험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베리에, 저 것들을 빨리 완성하면 할수록 우리들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본가가 세상에 우뚝 서는 기반임을 명심하고 이번 일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루만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기에 벨리에는 경직된 어조로 대답을 했다.
“이만 가도록 하자. 다음 실험을 위해서 준비할 것이 많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분간 실험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말한 대로 비밀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유리메스공작가의 부활을 위해 루만 또한 노력을 경주해 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벨리에는 그의 마법스승인 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근원지를 벗어난 루만의 발걸음이 영주관저까지 이어졌다.
벨리에도 뒤를 따르고 있지만 루만과 그를 따르는 이들은 공식적으로 사라진 존재이기에 어느 누구도 두 사람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영주관저 한 쪽에는 게이트 룸이었다.
유리메스공작령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와는 다른 곳이다.
영주관저에 만들어진 게이트는 최고위층만이 사용할 수 있는 워프게이트로 초장거리 이동이 가능했다.
“타라!”
게이트 룸 안으로 들어온 루만이 입을 열었다.
“저, 저도 말입니까?”
“그럼 혼자 갈까?”
“아, 아닙니다.”
먹이를 노려보는 사자 같은 루만의 눈빛이 벨리에가 황급히 대답했다.
베리아는 루만을 따라 게이트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텔레포트와는 다르니 절대 마나를 끌어올리지 마라.”
“알고 있습니다.”
베리에에게 주의를 준 루만은 마법진에 마나를 주입했다.
황금으로 만들어 마법진 위에 그려진 문양들이 일제히 빛을 발했다. 푸른 기운과 붉은 기운이 주변을 휘돌고 마법진 전체를 감쌌다.
번쩍!
팟!
강렬한 섬광이 주변을 휩쓸고 잠시 뒤 게이트 룸 안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나폭풍이 게이트 룸 안을 휘감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나타났다.
‘가셨군.’
유리메스공작가의 현 주인이자 루만의 잉그만은 마나가 남긴 잔향을 느끼며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시구나.’
태어난 후 누군가의 손길이 두려운 듯 감춰져 길러졌던 자신이 아버지란 존재를 처음 본 것은 여섯 살 때였다.
아버지를 보는 순간 잉그만은 경이로운 느꼈다. 인간이 도달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경지에 이른 존재의 격을 느낄 수 있었다.
명석한 두뇌와 자질을 가진 잉그만이었다. 그것은 그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철저한 검증을 통해 선택 받은 여인들이 루만의 씨를 받았다. 그렇게 태어난 다섯 형제 들 중 후계자로 선택을 받은 것은 잉그만이었다. 가장 어린 나이에 격을 가진 존재를 느낄 수 있었던 탓이었다.
다른 형제들에 우선해 유리메스공작가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지만 그것이 다였다. 아버지라는 존재로부터 그 어떤 애정도 받지 못한 채 처절하기 그지없는 수련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가문의 원로들이 원하는 대로 경지에 이르자 공작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려움 없이 공작가의 주인이 되었지만 사실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의 애정은 애초에 받은 적도 없었고, 가문의 진정한 실권은 아버지와 원로들이 가지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다른 공작가의 시선을 돌리기 위하 얼굴마담이었을 뿐이다.
공작이 된 후 너무 힘들었다.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삶이었기에 자살까지 염두에 두었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주었기에 자신을 낳자마자 세상을 등진 어머니, 세상을 얻기 위해 자식마저 이용하는 아버지. 세상에 기댈 곳이 없었다.
그나마 사랑하는 딸은 얻었다는 것이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원하는 것을 얻으십시오. 저 또한 원하는 것을 얻을 테니 말입니다.’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도, 후계자도 아니다. 지금 아버지가 하고 있는 실험처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찾고 싶었다. 자신의 존재를 그리고 꿈을!
실험이 성공한 이상 새로운 국면이 시작될 것이었기에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들을 얻어야 한다. 경계를 넘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들을 말이다. 황가와 공작가들은 환란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진짜는 오직 그들뿐이니까.’
비록 황가와 공작가가 제국이라는 우산 아래에 서열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가문들이다. 그들이 벌이는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힘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자신들이 가진 힘을 키우기 위해 맹목적인 괴물이 되어 버린 존재들을 응징하기 위해서는 인과율을 거슬러 태어난 마왕의 아이들을 반드시 얻어야 했다.
‘베르카는 전 가문의 견제를 받고 있는 상태인데 황가나 다른 공작가의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마왕의 아이들을 끝까지 품고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엄청난 자원이 투자 되어야 원하는 대로 키울 수 있다.
하나에서 열까지 감시를 받고 있는 베르카로서는 아직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레고리가 움직이고 있으니 더 이상 베르카의 색깔에 물들기 전에 아이들을 찾는다.’
마왕의 아이들이 베르카의 품에 있다는 단서는 찾았다. 이제 데려 오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황가나 다른 공작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회가 생길 것이다. 한 명 한 명이 마왕에 필적하는 자질을 지닌 만큼 위험을 낮추려 할 테니 아이들을 따로 키우려 할 것이다. 그 때 아무도 모르게 데려오면 된다.’
아이들을 한꺼번에 건사할 수는 없다.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베르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때 자신도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시아니온이라는 아이의 행방이 궁금하군. 그레고리가 직접 데리고 간 것을 보면 그 아이에 대한 안배도 있다는 뜻인데,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군.’
그레고리와 시아니온의 최종 목적지가 카모르라는 것은 밝혀졌다. 황가에서 마지막까지 추적했던 곳이 그곳이었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카모르를 수색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내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브리턴인 그 누구도 카모르에서는 제 힘을 온전히 발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자를 이용해 볼까? 으음, 아니다. 그자는 마왕의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데 쓰여야 한다. 섣불리 움직이게 했다가는 아무것도 안 된다.’
시아니온을 찾기 위해 태어난 순간부터 베르카 후작령에 심어진 존재를 움직인다는 것은 낭비였다.
사탄의 눈물을 복용한 이상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기에 잉그만은 백년첩자를 움직이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그는 중요한 일에 쓰일 자였다.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움직였으니 나도 슬슬 움직여야 한다. 아주 슬슬 말이다.’
잉그만은 게이트 안에 머물며 생각을 완전히 정리했다. 마지막 남은 아버지와의 미련도 털어 버렸고 이제는 스스로가 정한 행보를 걸어야 했다.
잉그만은 게이트 룸을 나와 집무실로 향했다.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집무실로 온 잉그만은 주변을 살폈다.
‘침입한 흔적은 없군.’
감시의 눈길이 있음을 알기에 집무실에 올 때면 항상 점검부터 했다. 자신을 지켜보고 잇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잉그 만은 카페트를 걷었다.
툭!
붉디붉은 선혈 한방울이 잉그만의 검지 손가락에 맺히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르르르!
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그마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자신이 오래 전에 만들어 놓은 텔포트 게이트에 올랐다.
팟!
그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난 뒤 집무실에 누군가 나타났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한 치도 틀림없이 잉그만을 닮은 존재였다.
게이트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잉그만이 만들어 낸 마법의 마리오네트다.
자신을 창조한 존재에 대하여 끝없는 충성심을 가지고 있으며, 영혼만 전이 시킨다면 원래의 육체와 다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존재다.
잉그만이 만들어 낸 마리오네트는 어마어마한 재원이 투입되어도 성공가능성이 채 일할도 되지 않는다. 영혼의 일부를 떼어 마리오네트에 안착시켜야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동안 잉그만에 의해 비밀리에 만들어진 마리오네트는 오늘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아, 이제 시작인가? 나를 부르신 것을 보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실 모양이군.’
잉그만의 마리오네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집무실을 둘러봤다. 그의 모습은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사라진 잉그만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웃는 모습은 물론이고, 은은히 풍겨 나오는 기세는 영락없는 잉그만이었다.
‘마스터의 아버지가 되는 그 사람이 나란 존재가 있다는 것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후후후!’
잉그만의 아버지인 루만이 그토록 만들어내고자 했으나 실패해 왔던 일이 바로 자신과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임을 마리오네트도 잘 알고 있었다.
루만의 연구를 도용해 독자적으로 마스터인 잉그만이 만들어낸 존재가 자신이었다. 영혼의 일부를 이어 받았기에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마스터의 행보가 알려져서는 곤란하니 말이야.’
마리오네트가 집무실을 나섰다.
그는 잉그만을 대신해 유리메스공작가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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