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장. 기사의 죽음-02
경계를 넘는 자들! 타키온
푹
“헉! 헉!”
주변에 있던 원숭이들을 쓸어버린 레폰드가 검을 바닥에 꽂은 채 숨을 헐떡였다.
‘이제 한계로구나.’
우두머리를 끌어들여 제거하려 했지만 실패였다.
벌써 30여 마리가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느긋하게 자신이 지치기만을 기다리는 우두머리의 눈에는 조소와 함께 여유가 넘쳤다.
‘결국에는 다가오지 않는군. 영악한 놈이다.’
자신의 생각을 알고 있는 듯 눈빛에 레폰드는 온몸에 힘이 다 빠졌다.
“크으윽, 끝이지만 네놈들의 먹이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검을 휘두를 힘도 없었다. 하찮은 마물에게 목숨을 맡기고 싶지도 않았고, 먹이로 전락하고 싶지도 않았다.
“크크크, 그래!! 다 같이 가자! 이 빌어먹을 놈들아!!”
푹!
괴소와 함께 레폰드는 악에 바친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검으로 심장을 찔렀다.
스스로 자살을 하다니 생각지도 않은 행동이었다.
털썩!!
레폰드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원숭이들 중 한 마리가 레폰드의 죽음을 확인하려는 듯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툭! 툭!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몸을 몇 번 건드려 봤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끽! 끽!”
원숭이가 소리를 질렀다.
죽었다는 신호에 원숭이들 사이에 퍼져 있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뾰족한 쇠꼬챙이로 동료들을 단번에 죽이는 괴물이 사라진 것이다.
“꽤괴괴괴괙!”
“꽤괙!!”
원숭이들이 흥분해 괴성을 질러댔다.
먹잇감을 사냥한 것에 대한 자축의 괴성이었다.
원숭이들이 이내 괴성을 멈추고는 쓰러진 레폰드를 향해 다가왔다.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신선한 선혈의 냄새가 그들을 유혹한 것이다.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먼저 움직여야 되지만 신선한 인간의 피 냄새를 맡은 원숭이들은 이미 흥분상태였다.
떨어져나가 바닥에 널브러진 살점부터 조금씩 먹어 치우더니 서서히 레폰드의 사체로 다가왔다.
“꽥!!”
우두머리가 뭔가를 느꼈는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경고성에 원숭이들이 두려움에 떨며 멈췄다.
콰콰쾅!!
우두머리의 경고가 끝나기 무섭게 레폰드의 사체가 폭발을 일으켰다.
슈슈슈슈슛!
산산이 비상하는 육편은 가공할 속도로 주변에 있던 원숭이들을 덮쳤다.
퍼퍼퍼퍼퍼퍽!
콰지지직!
“꽤애액!”
“꽥!”
온 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원숭이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폭발의 여파에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콰콰콰콰쾅!!!!
콰드드드드드득!
비산한 육편이 화염을 일으키며 일제히 폭발했고, 엄청난 폭풍이 일어나 거대한 나무들이 연달아 쓰러졌다.
쿵!
콰직!
나무들이 쓰러지며 원숭이들을 짓눌렀다.
밟힌 토마토처럼 짓이겨진 동료들을 뒤로하고 원숭이들 사방으로 흩어졌다.
반경 50여 미터의 공간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 버렸다.
“크아아아악!!”
뜻밖의 사태에 우두머리 원숭이가 고함을 질렀다. 조금 전과는 달리 우두머리의 몸에 녹색의 빛이 서려 있었다.
* * *
컥!
감전이 된 것 같이 전신에 전율이 인다.
레폰드가 산화하는 순간 동화율이 갑작스럽게 100%가 넘어 발생한 현상이다.
대수장과는 달리 그의 기억과 능력들이 물밀 듯이 흘러들어 온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가 흡수한 것처럼 말이다.
처절할 만큼 인내로 점철된 인생을 산 레폰드였다.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그였지만 실패한 인생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음으로서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했으니 불쌍한 인생이다.
그렇지만 대단한 능력을 가진 자다.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다. 마나의 유동현상이 심한 카모르가 아니었다면 레폰드는 아마도 살아남아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을 것이다.
그랜드 마스터라는 운명의 칭호를 말이다.
동화율이 빠르게 떨어진다.
더욱 집중해야 한다.
레폰드와의 동화율이 떨어지는 만큼 브로신과의 동화율이 높아져 가니 말이다.
높아지는 만큼 그의 기억과 능력을 볼 수 있게 됐다. 브로신은 레폰드와 마찬가지로 비밀을 간직한 자다.
어째서 이런 자가 일급 어쌔신으로만 알려졌는지 의문이다.
브로신은 세 가지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 칭하는 마나라는 것에 대한 특별한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 본능적으로 자연과 소통하고 자연이 내뿜는 마나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두 번째는 체술이다.
피스트 마스터가 거의 드문 이쪽 세계이지만 그는 체술만으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다. 특이한 마나 친화력이 밑바탕이 되었기는 하지만 그가 익힌 체술도 아주 특별한 것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 번째는 비검을 다루는 것이다.
손가락 정도의 크기의 표창 같은 작은 단검을 날리는 그의 비검술은 가히 전광석화를 방불케 한다. 그가 가진 매직 아이템은 그저 아이들 장난일 정도로 그의 비검술은 독보적이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는 절대 남 앞에서 본신의 힘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자신을 쫓고 있는 적의 정체가 밝혀질 때까지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순간을 노리는 어쌔신이니까 말이다.
* * *
콰콰쾅!
콰지지지직!
‘크으윽, 스스로 마나를 폭발시켜 산화하셨구나.’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과 나무들이 부셔지며 내는 굉음에 브로신은 레폰드가 생명의 마나를 사용해 원숭이들과 최후를 같이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님!’
주르르르륵!
브로신의 얼굴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크으, 실망하실까봐 말씀을 드리지는 않았지만 세그남 공작가 놈들은 아버님을 버린 겁니다.’
고아로 버려져 죽어가던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해 구원해 준 이가 레폰드 백작이었다.
자신의 자질을 높이 사 검술과 마나운용법을 전수해 주고 친아들처럼 돌봐 주었다.
어쌔신 길드에는 스스로 들어간 후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지만 은혜를 갚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은인을 넘어서 아버지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레폰드가 죽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한 것이지만 레폰드의 죽음은 정말로 허무했다.
길드의 수뇌부에 들어 알게 된 정보에 따르면 레폰드는 세그남 공작가에서 버려진 사람이었다.
그를 살리고자 했으면 비밀리에 간직하고 있는 전력을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카모르라고 해도 세그남 공작가의 비밀전력이라면 무사히 임무를 마쳤을 테니까.
‘크흐흑, 아버님. 부탁을 하셨으니 이곳의 상황은 세그남 공작가에 알릴 겁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알리지 않으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면의 진실은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비록 꼬리만 잡았지만 대륙 곳곳에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세력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레폰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세그남의 유라시스 공작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작은 주군으로서는 실격인 자였다.
‘아버님, 죄송하지만 이제야 아들로 인정받은 아버님의 죽음이 너무 억울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일단은 살아야 남아야겠습니다. 저는 유라시스 공작에게 복수를 할 것입니다. 무참하게 버려지고, 당신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버린 것에 대해서 대가를 받아내야 하니 말입니다. ’
타다다다!
브로신은 울음을 애써 참으며 살기위해 전력을 다해 경계를 향해 달렸다.
휘이익!
빠른 속도로 뭔가가 나타났다. 녹색원숭이였다.
슉!
“꽥!”
대거가 번개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가 녹색원숭이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크흐, 반드시 살아서 돌아간다.”
파팟!
브로신은 본능적으로 경계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쫓아오고 있는 녹색원숭들의 공격은 정말로 무서웠다.
경계선까지 달려오며 아이스애로우를 발사할 수 있는 매직아이템으로 여러 번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녹색원숭이들도 피해가 커지자 그가 가진 매직아이템의 위력을 알고는 도주하는 방향을 앞질러 가서는 숨어 있다가 매복해 있다가 공격을 해 왔다.
오랜 세월 암살을 위해 훈련으로 키워온 능력이 아니었으면 벌써 당했을 만큼 무척이나 교활한 공격들이었다.
“헉! 헉! 아직도 멀었구나.”
원숭이들을 상대하며 매직아이템의 아이스 애로우는 겨우 한 발만 남았다.
품속에 빼곡하게 숨겨 두었던 비검들도 이제 열 자루 밖에는 남지 않았지만 경계까지는 적어도 반나절은 더 가야 했다.
“꽥!”
“꽤괙!!”
“헉! 헉! 지독한 놈들!”
뒤에서는 연신 끽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숭이들도 경계가 가까워 옴을 느낀 듯 더욱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헉! 헉!”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거대한 나무들이었지만 경계가 멀지 않았음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타타타탁!
출혈이 많아 어지러웠지만 브로신은 달리는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자신에게 찾아 올 것은 죽음뿐이기에 멈출 수가 없었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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