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마지막한자 님의 서재입니다.

표지

독점 엘프를 수확하는 법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마지막한자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19 20:0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73,608
추천수 :
6,024
글자수 :
170,277

작성
20.05.11 10:03
조회
8,806
추천
239
글자
11쪽

숲의 주인이 되다

DUMMY

먹는다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지금 상황에서 달가운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재호가 욕과 도주 사이에서 고민했다.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게냐? 내가 바라는 건 네가 숲의 정수를 취하는 것이다.”

“숲의 정수?”

“이 늙은 몸에 들어있는 신의 기적이지. 특수 인자를 지녔으나 능력 발현이 되지 않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


노파가 힘겹게 몸을 세웠다.

그녀의 깡마른 가슴 언저리에 녹색으로 빛나는 구체가 하나가 박혀 있었다.


“그걸 나에게 준다는 겁니까? 왜요?”

“이유야 단순하다. 나는 곧 죽고, 주변에 이 힘을 이어받을 사람은 너뿐이니까.”

“이어받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겁니까?”

“그렇지. 널 잡아 온 아이를 포함해서 이 숲의 모든 아이들이 죽는다. 네가 받을 이 힘이 신에서 숲으로. 그리고 모든 아이들로 이어지는 뿌리니까.”

“······”


와 닿지 않는 말이었다.

당장 게이트를 넘고 노예 취급받아 팔아 넘겨진 것이 몇 시간 전이다.

이젠 또 신의 정수를 받으라 강권하니 상큼하게 납득이 될 리가 없다.

표정을 읽었는지 노파가 다시 말을 이었다.


“쉽게 말하마. 정수를 받으면 능력이 생긴다. 그리고 숲의 아이들 역시 널 따르게 되지.”

“······속물적으로 접근을 하네요.”

“그편이 더 낫지 않겠느냐? 어차피 앞뒤 상황도 모르는 너에게 사명감 따위가 있을 리 없고. 차라리 속물적인 속셈이라도 힘을 이어받아 아이들을 구해준다면 다행일 따름이다.”


노파의 말은 정확했다.

복잡한 얘기보다는 속물적인 이해타산이 가슴에 확 와 닿았다.

말마따나 능력 없다고 쫓겨난 것이 몇 시간 전.

정수를 받으면 능력과 세력이 생긴다니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후우. 시간이 없다. 정수를 받겠느냐, 말겠느냐?”

“한 가지.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만약 내가 정수를 받고 이곳에서 도망치면 어찌 되는 겁니까?”

“뿌리 없는 식물이 어찌 될까? 결국, 마르고 죽게 되겠지.”

“······”

“의심할 필요 없다. 그런 불확실한 것에 기대야 할 만큼 절박하다는 거니까. 그저 바랄 뿐이다. 적어도 네가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만큼의 마음이 있기를.”


노파가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눈을 했다.

재호는 입술을 씹으며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 역시 절박하기로는 못지않다.

결과가 어찌 되든.


“어찌하면 됩니까?”


도전해볼 뿐이다.


#


과정은 간단했고 결과는 더 간단했다.

노파의 가슴팍의 결정을 손으로 만졌을 때.

그녀가 지니고 있던 정수가 재호에게도 넘어갔다.

변한 건 많지 않았다.

노파가 지니고 있던 생전의 기억 조금과 묘한 감각이 전부였다.

머리를 털며 나무 구멍에서 나왔다.


“왔다. 왔다.”


재호를 납치했던 소녀가 입구에서 귀를 쫑긋거렸다.

이해되지 않던 언어는 이미 익숙하게 치환되었다.

넘겨받은 기억 중 일부였다.


“네가······몽. 이름이 맞나?”

“응. 내 이름은 몽. 수호자가 붙여준 이름이야.”

“수호자라면 그 노파를 말하는 거지?”

“맞아. 숲의 수호자. 그녀는······죽었어?”


죽었어, 라며 묻는 몽의 눈은 조금 슬펐다.

재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마도 노파가 평소에 그리했을 것이다.

몽이 조금 놀란 듯 보다 머리를 비비며 응석 부렸다.


“그럼, 이제 난 뭘 해야 하는 거지?”


그러기를 수 분여.

재호가 충분하다 생각하고 몽을 떼어냈다.


“수호자는 얼마나 알고 있어?”

“재호. 재호라고 불러.”

“응. 재호는 숲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

“전혀.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어.”

“그럼 보여주는 편이 빠르겠다.”


몽이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그러자 숲속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속속 나타났다.

몽과 외모는 비슷하나 체구가 좀 더 작고 호리호리했다.


“이들은?”

“숲의 아이들. 우리 언어로는 늼. 밖에서 말하기로는 엘프라고 해. 재호는 밖에서 왔으니까 엘프가 편한가?”

“게이트 넘어온 놈들이 마음대로 붙였구만. 하긴, 뭐 엘프가 더 입에 붙기는 하네.”

“그럼 그렇게 해. 재호가 수호자니까.”


딱히 명칭에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재호가 구석 나무 둥치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주변에는 수십의 엘프가 모여 있었다.

수백이 한 번에 바라보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엘프는 기본적으로 식물과 같아. 세계수가 양분을 머금고 열매를 맺으면 그게 엘프야.”

“······응?”

“사과나무에 사과가 대롱대롱 달리잖아. 우리는 세계수에 대롱대롱 달려.”

“파격적인 설정이네. 그럼 여기 있는 모두가?”

“응. 전에는 수천이었는데 숲이 파괴되고 세계수가 말라가며 백 안쪽으로 줄었어.”

“환경파괴가 문제인 건 저기나 여기나 마찬가지군.”


수천이 백 안쪽으로 줄었다면 멸종 직전이다.

노파가 넘겨준 짐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 세계수는 지금 어디에 있어?”

“지금 재호가 깔고 앉아 있네.”

“······이거? 나무 둥치가 세계수라고?”


엉덩이를 떼고 물어보니 몽이 끄덕였다.


“세계수는 결단을 내렸어. 이전 수호자가 병들고 숲이 점차 약해지고 있었으니까. 자기 몸을 힘으로 바꾸어 결정에 심었어.”

“세계수가 있어야 번식을 한다며?”

“이제 재호가 대신해.”

“······”


무거운 수준의 짐이 아니었다.

아예 종의 운명을 덜컥 떼어서 넘긴 수준.

이걸 그렇게 운에 맡겨도 되는 거였을까.

재호는 죽고 없는 노파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노파는 없고 재호는 이곳에 있다.

머리를 긁적이며 몽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수를 늘릴 수 있지?”

“그건 재호가 알아내야 해. 숲의 정수는 신의 힘. 그 발현은 수호자마다 모두 달라. 재호가 어떤 힘을 발현했냐에 따라서 우리의 생존 방식도 달라지는 거야.”

“차라리 로또를 사지 그랬냐.”


대책 없는 종 같으니.

재호가 투덜거리며 ‘다른 점’을 찾기 위해 집중했다.

사실 정수를 받고 난 이후부터 간질거리는 느낌은 있었다.

정수로 넘겨받은 힘이라면 이것밖에 없을 터.

어떤 방식으로 써야 하는 걸까.

고민에 눈썹이 씰룩거렸다.


“······어?”


그러다 문뜩.

묘한 반짝임 따위가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난 풀, 홀로 솟은 나무, 저 멀리 나는 새.

그리고 주변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엘프들.

모두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재호가 가까운 곳에 있는 엘프에게 손을 뻗다 멈칫하고 몽에게 물었다.


“잠깐, 손 좀 대봐도 될까?”

“괜찮아. 엘프들은 재호라면 뭐든지 허락할 거야.”

“뭐든지라니. 부담스럽네.”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엘프를 손으로 가볍게 만졌다.

반짝이던 빛무리가 손을 통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어떤 ‘길’이 연결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뭐야, 이거?”

“씨앗이네?”

“······”


손으로 만진 엘프가 사라지고.

재호 손에는 씨앗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이해는 쉬웠다.

엘프는 식물.

식물은 씨앗부터 성장하는 법이다.

말하자면 사과 하나를 먹고 씨앗을 땅에 심는 원리.


“······쉽기는 개뿔.”


재호가 덩그러니 놓인 씨앗을 보며 중얼거렸다.

식물이라 말은 하지만 멀쩡히 걷던 모습을 보지 않았는가.

기분이 뒤숭숭할 수밖에 없었다.


“신기해. 이게 재호 능력?”

“그런 거 같다. 이걸 땅에 심으면 엘프가 무럭무럭 자란다는 얘기겠지?”

“씨앗 하나에서 엘프 여럿이 자라?”

“보통의 과일나무를 고려해 보자면 아마도. 세계수 하나에서 엘프를 키우는 것보다는 이편이 더 빠를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정수가 이런 힘을 준 걸까.

재호가 씨앗을 움켜쥐고 주변을 둘러봤다.

씨앗은 하나였고 자리를 정하는 일은 중요했다.


“······흠. 저기가 좋아 보이는데?”


눈에 쏙 들어온 자리가 하나 있다.

왠지 주변보다 밝아 보이는 땅이었다.


“어? 이거 마나 버섯.”


그렇게 자리를 옮기자 몽이 바닥에서 버섯 하나를 뽑았다.

보라색 버섯이었다.


“마나 버섯은 토지에 마나가 많으면 자생해. 이 땅이 그런가 봐. 재호의 눈에는 그게 보여?”

“글쎄다. 그냥 좋아 보이기에 고른 건데. 이것도 정수의 능력인가 보지.”

“좋다, 그거.”

“거의 뭐 농부네.”


대충 땅을 파고 씨앗을 심었다.

혹시 오가다 밟을까 봐 나뭇가지로 푯말도 세웠다.

이 안에 조금 전까지 숨 쉬던 엘프가 씨앗으로 묻혔어요, 라는 글은 쓰지 않았다.


“재호, 재호.”

“응? 왜?”

“이왕 하는 거 많이 심자.”

“많이 심자고? 엘프를 씨앗으로 해서?”

“응. 많이 심으면 많이 나오잖아. 그럼 힘닿는 데까지 심는 게 좋지 않아?”

“······묘하게 남녀가 바뀐 대화 같긴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니 몽의 말이 옳았다.

기분의 꺼림칙함은 둘째 치고 씨앗은 한 번에 많이 뿌려두는 편이 확률상 좋았다.

이 많은 엘프 중에 누구를 골라야 하는 걸까.

재호가 엘프들 쪽을 바라봤다.


“······워. 뭐야, 얘네.”


수십의 엘프가 한 번에 재호 쪽으로 몸을 비볐다.

체형이 체형인지라 별다른 느낌은 없었지만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엘프는 전체를 위해서 살아. 씨앗이 되고 또 다른 엘프를 낳을 수 있다면 즐거움. 그래서 다들 씨앗이 되고 싶어해.”

“마르크스가 들었으면 좋아했겠다.”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자꾸 비비지 말고 줄 서. 차례대로 해서 심어줄 테니까.”


말은 잘 듣는다.

엘프들이 쪼르륵 이동해서는 줄지어 섰다.

재호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엘프들을 하나씩 씨앗으로 바꾸었다.

꺼림칙함도 하나 둘이지.

계속 하다 보니 기계적으로 됐다.


“······어?”


그렇게 일곱 번째 엘프를 씨앗으로 변환했을 때.

재호가 탈력감을 받으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긴 달리기를 끝낸 뒤의 느낌이었다.


“정수의 힘. 회복이 필요해.”

“엠피 딸리는 건가? 마나물약 없냐?”

“응? 응?”

“······좀 쉰다고.”

“아. 그럼 잘 수 있게 도와줄게.”

“잠깐만. 죽은 노파의 방은 좀 그런데.”

“걱정 마. 나랑 같이 자면 돼.”

“응?”


몽은 그래도 굴곡이 조금 있는 몸.

재호가 살짝 주저하며 의문을 표했다.


“엘프는 항상 마나로 숨을 쉬어. 같이 몸 부대끼면서 자면 회복도 빨라.”

“······그러냐?”

“응. 수호자는 숲을 위하니까 우리도 수호자를 위해서 살아. 내가 수호자 힘내게 해 줄게.”

“어, 어.”


몽이 입고 있던 옷을 집어 던졌다.

재호는 만류와 방치의 갈림길 속에서 머뭇거리다 힘껏 당기는 몽의 손에 그냥 끌려갔다.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작가의말

퇴근하고 8시에 한편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엘프를 수확하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요정 +4 20.05.20 4,693 146 9쪽
11 돈 더 줘 +3 20.05.19 4,744 158 10쪽
10 돈 줘 +5 20.05.18 4,872 167 11쪽
9 목공 엘프 +13 20.05.17 5,265 174 9쪽
8 엘프 아미 +8 20.05.16 5,467 194 9쪽
7 피 묻은 오두막 +6 20.05.15 5,539 198 9쪽
6 울프 라이더 +13 20.05.14 5,855 194 10쪽
5 흰 늑대 +6 20.05.13 6,161 193 10쪽
4 급속성장 +7 20.05.12 6,433 216 8쪽
3 그렇다. 비료다 +10 20.05.11 7,631 203 8쪽
» 숲의 주인이 되다 +14 20.05.11 8,807 239 11쪽
1 동네 인심 한번 야박하네 +26 20.05.11 10,387 289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마지막한자'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