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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한자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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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엘프를 수확하는 법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마지막한자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19 20:0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72,992
추천수 :
6,024
글자수 :
170,277

작성
20.05.26 20:00
조회
4,458
추천
153
글자
9쪽

엘프 진화

DUMMY

엘프의 이름은 하이나였다.

그녀는 야덴 해안가 작은 숲에서 살았다.

세계수는 크지 않았고, 숲의 엘프도 고작 오십에 불과했다.

삶은 지루할 정도로 순탄했었다.

숲은 평화로웠고 위협적인 적은 없었으니까.

어느 귀족이 숲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귀족이라.”

“발푸르 가문이라고 했어요. 별장 터를 잡는다고 닥치는 대로 숲을 베어내기 시작했죠.”

“너희는 저항했고?”

“네. 전력으로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어요. 인간들은 너무 많고 강했어요. 숲이 불타고 대부분 그 자리에서 배가 갈린 채 죽었죠.”

“······잔인한 이야기로군.”


그 뒤는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죽음을 택하지 않은 소수의 엘프는 가지고 놀기 좋은 노예가 되는 것이다.

패자의 결말이라는 건 언제나 참혹했다.


“그런 걸 겪었음에도 다시 숲의 엘프가 되겠다는 거냐?”

“······네. 죽음은 두려워요. 여전히 불타던 숲을 떠올리면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아요. 하지만 지독한 후회도 남아 있어요.”

“그래. 그게 네 선택이라면.”


재호가 단검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시드는 하이나를 단번에 씨앗으로 만들 만큼의 역량은 없다.

엘과 마찬가지로 생명력을 끌어내려야 했다.


“각오 됐어요.”


끄덕이는 하이나를 보며 재호가 단검을 쥐었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복부를 깊이 찌르고 생명력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고통과 신음.

일그러지는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자 시드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음.”


잠시 후, 손바닥에 씨앗 하나가 떨어졌다.

밭에 새로운 품종이 하나 추가되었다.


#


요정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비료는 넉넉하게 비축되어 있었다.

재호는 이 중 두 포대를 꺼냈다.

이젠 밭일도 제법 익숙해졌다고 종족 값 최대치를 뽑아낼 비료양도 한 번에 감이 왔다.

땅을 팍팍 파 씨앗을 묻고 비료를 쏟았다.


“으우으.”

“왜? 아직도 불만이야?”

“응. 흥. 배신자는 싫어.”


몽이 싹이 트는 밭을 보며 비죽였다.

반대는 안 해도 불만은 어쩔 수 없었다.

괜히 돌멩이만 발로 툭툭 차서 밭에 올렸다.


“잘 대해 줘. 대륙에 하이나 같은 엘프가 어디 하나둘이겠어? 생존한 엘프들을 수습해서 능력을 키우려면 어쩔 수 없어. 그때마다 반발할 거야?”

“알긴 알지만······”

“난 수호자잖아. 살기 위해 떠났던 엘프도 지켜줘야 하는 것이 수호자야.”

“익! 왜 그렇게 멋있게 말하는데?”


몽이 발을 쿵쿵 구르고는 달려와서 안겼다.

풋내나는 행동에 재호가 가볍게 웃었다.


“저기, 싹 나.”


그 몽글거림을 제지한 건 소니아였다.

재호의 옷자락을 쿡쿡 당기며 밭을 가리켰다.

한 움큼 자라있던 싹이 불쑥불쑥 커지고 있었다.

모습은 전형적인 엘프식 나무였다.


“역시 열매는 하나인가.”


그러기를 십여 분 정도가 흐르자 열매가 맺혔다.

온전한 엘프와는 다르게 단 하나였다.


“접촉할 테니까, 주변에서 잘 잡아줘.”

“응.”


이미 소니아를 통해서 겪은 바가 있다.

재호가 떨어진 열매의 피막을 걷어내고 하이나를 꺼냈다.

손끝을 통해서 느낌이 전해졌다.


“음······”


이번에는 소니아 때와는 뭔가 달랐다.

당시에는 세계수를 잃은 엘프와의 연결.

뿌리 내릴 터를 새로 잡는 과정에서 생긴 불협화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터가 하이나를 거부했다.

노파에게서 받은 세계수의 힘이었다.

이 세계수가 단절된 엘프의 편입을 거부하고 있었다.


“피······! 피를 흘려!”

“이거 위험하다.”


하이나는 덜컥덜컥 흔들리며 피를 토했다.

열매는 맺었으나, 세계수가 거부하면 결국 단절된 엘프일 뿐이다.

다시 한번 죽음과 삶의 선택지를 맞이할지 모른다.


“거, 치사하게 굴지 맙시다.”


재호가 흐르는 피를 손으로 닦으며 말했다.

흐릿하게 느껴지는 세계수를 향한 말이었다.


“죽기 싫어서 잠시 끊었답니다. 이게 치욕인 건 알지만 그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싫다면 그런 일이 안 생기게 잘 지켜주던가. 그것도 아니면서 이제 와서 애를 집 밖으로 밀어내는 겁니까?”


푸르르르.

숲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세계수.

그리고 지탱하는 신의 반응이었다.

숲의 모든 엘프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바닥에 박았다.


“왜요? 이제는 나도 쳐낼 겁니까? 그러고 싶으면 그래 보든가. 힘 있고 능력 있으면 인간들 사이에서 재주껏 생존해 보시죠.”


재호는 겁먹지 않았다.

애초에 그게 되는 자들이었다면 엘프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

수호자 같은 체계도 그 한계를 알려준다.

처지는 궁한 주제에 고결한 척 고집만 부리는 꼴이다.


“구하고 싶다면 내 방식을 따르세요. 옹졸하게 굴지도 말고. 알았습니까?”


숲의 흔들림은 차츰 잦아들었다.

재호의 말에 수긍한 듯.

아니면 별다른 방법이 없는 듯.

재호는 굳이 그걸 구별하지 않았다.


“너도 이제 숲의 엘프다.”


늘어진 하이나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녀를 관통해서 숲 너머로 이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뜯겨 나갔던 뿌리가 이어지고 세계수에 또 다른 가지가 솟구쳤다.

풍성해지는 기분이었다.


#


레벨업 했습니다.

빠바밤 하는 노랫소리와 함께 상태창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재호는 그냥 본능적으로 이해를 했다.

나무가 풍성해지는 건 뿌리가 튼튼하고 가지가 빽빽하게 뻗어 나갈 때.

다른 환경의 엘프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딱 이렇다.

새로운 경험과 기억 등은 세계수를 살찌웠다.


“엘프의 진화 루트가 나타났어.”

“헤······?”


정리를 위해서는 남에게 설명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바닥의 흙을 슥슥 걷어내고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봐봐. 여기 엘프 2.0까지가 내 한계였어.”

“응. 전에 그랬잖아.”

“근데, 이번에 하이나를 품으면서 영역이 확대됐다, 이거야.”

“그런 거면 그냥 숫자가 늘어나는 거 아니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아니야.”


2.0이라고 새겨진 숫자 위로 선을 죽죽 그었다.


“여기 가운데에 있는 엘프는······다음 단계. 그러니까 엘프 3.0이라고 보면 돼. 정석적으로 모든 능력이 한 단계 오른 엘프야.”

“나머지는?”

“특화 계열이야. 여기 왼쪽은 승마와 궁술에 높은 타입. 즉, 기병쪽이라고 보면 돼.”

“오른쪽은? 보병이야?”

“응. 달리기와 궁술이 높아. 하이나를 얻을 때 새롭게 편입된 특성이 달리기거든.”


재호는 이를 특성이라 정의했다.

각각의 엘프는 세계수의 환경에 따른 성장과 특성 수급이 다르다.

숲의 엘프는 [궁술]과 [승마], [채집]을.

소니아는 [목공]과 [투창]을.

하이나는 [달리기]를 가지고 왔다.

이 특성이 조합되기 시작한 것이다.


“차이가 있어?”

“차이는 결국 분배야. 이건 정해진 수치의 분배라고 보면 돼. 셋 모두 평균 능력치는 같은 거지. 다만 승마냐 달리기냐. 어느 쪽에 힘을 주냐에 따라서 갈리는 거야.”

“아. 이해했어. 하지만 몽은 그런 게 없는데?”

“아마 루트를 타다 보면 등장하지 않을까? 소니아나 하이나도 비슷할 거야. 당장은 평균치가 높으니 티가 안 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아직 언락되지 않은 유닛을 얻었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이 표현도 완벽한 건 아니다.

엘프의 진화 방식이 세계수마다 같은 것도 아니니까.

각기 다른 파츠를 얻어서 새롭게 조립하는 과정이라 보는 것이 옳다.


“재호 그럼 목공도 그런 게 있어?”

“목공뿐이겠어? 채집이나 투창도 전부 조합이 가능해. 내가 분배를 어떤 식으로 하냐에 따라서 전부 다른 엘프가 나오는 거야.”

“와. 이러면 마치 전설속의 세계수 같잖아.”

“전설? 세계수는 다 세계수 아니야?”

“아니야. 예전에는 딱 하나의 세계수만 존재했었다고 해. 그 세계수에서 모든 엘프가 태어났던 거래.”

“단 하나의 세계수라.”


재호가 문뜩 거대한 나무 한 그루를 떠올렸다.

그 높이가 하늘에 닿고 너비는 지평선에 맞물릴 정도였다.

아득하지만 그리운, 그런 느낌이었다.


“재호?”

“아. 아무것도 아니야.”


어쩌면 이게 세계수일지도.잠시 그 모습을 곱씹다, 가볍게 웃고 말았다.

아직 코앞이 석 자인데 너무 먼 길을 보고 있다.


“비료 아직 많이 남았지?”

“응.”

“농사지으러 가자.”


지금은 씨 뿌리고 거두는 일에만 집중할 때.

재호가 농부의 얼굴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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