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소녀와 소녀. 그리고
페어리는 대를 이어 여왕이 그 무리를 이끈다. 어머니가 여왕이었다면, 그 딸은 공주의 직분으로 지내다, 시간이 흘러가면 여왕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처럼 반정이 일어나거나, 제2 권력자가 왕위를 수습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페어리에게 여왕의 존재는 그들의 삶과 직결되는 것. 교체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고로, 장래 여왕의 자리가 내정 된 공주는 페어리들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무리가 전멸을 하는 한이 있어도 구출을 해야 하는. 자신의 목숨 보다 앞에 놓이게 된다.
“크아악! 공주님! 빠져나가세요!”
“론!!”
“네이놈! 공주님에게는 접근하지 못한다!!”
난전. 페어리들은 란스톨의 가루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으나, 불같은 투지로 사람들을 밀어붙였다. 지켜야 할 대상. 공주가 바로 뒤에 있는 이상 그들에게 후퇴란 있을 수 없었다. 팔 다리가 잘리고, 목이 반 쯤 날아갔음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지겨운 것들!”
“전부 다 죽여 없애! 필요한 건 페이리 공주뿐이다!”
창고로 난입한 이들의 실력은 녹록치 않았다.
지역 경비대가 성국에 있는 무력부대 중 가장 최하위에 속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상한 노릇이다. 그들에게 지급되는 장비나, 무법 등이 시중에 떠도는 건달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까.
“공주님 제 뒤로 오세요!”
머리가 하얗게 샌 페어리 하나가 공주의 앞으로 나섰다.
재빨리 입을 막은 덕에 란스톨의 가루를 많이 마시지 않을 수 있었다. 날개를 파르르 떨더니, 손앞으로 새파란 물방울을 만들었다.
“페어리 매직(Fairy-Magic)이다!”
“죽어라, 인간!”
쿠르릉. 푸른 물방울은 삽시간에 크기를 불려 거대한 망치가 되었다. 이는 막아서는 적의 검을 분쇄하고, 입고 있던 갑옷을 찢어 발겼다. 어찌나 빠르고 강맹하던지, 이를 미리 알고 피한 이들까지 충격에 휘말려 피해를 입었을 정도였다.
“쿨럭……!”
하지만 강대한 힘에는 그 만큼의 대가가 필요 한 법.
힘을 사역한 페어리가 붉은 피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적게 마셨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란스톨의 가루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란스톨의 가루는 페어리가 사는 곳 주변에 자생하는 기생 식물의 뿌리에서 추출하는 물질이다. 가루를 내든, 물에 타든 어떤 식으로도 페어리에게는 치명적이다. 강인한 전사 계급이라 해도, 한 모급을 넘긴다면 보통의 인간보다 약해진다.
“센!”
“도망……치십시오. 그리고 알려야 합니다. 생츄어리에 배신자가 있습니다.”
“배신자!”
란스톨의 경우 주변에 분포하는 잡초 등의 모습으로 위장하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은 찾아 낼 수도, 정제 할 수도 없다.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페어리. 그 천적을 정확하게 알아서 구해왔다는 것 자체가 사전에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지금 이들이 몸을 숨긴 곳은 사전에 준비해 둔 장소. 이렇게 이른 시간에 발각됐다는 것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공주님, 이쪽으로!”
“잡아라!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
페어리 공주가 무너진 벽 틈으로 달라기 시작했다.
난입한 무리의 리더가 칼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페어리를 잡는 건 소용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페어리 공주를 잡는 일. 놓친다면, 모두 허사가 되는 것이다.
“공주님, 어서!”
“인!”
“저는 두고, 커억!”
공주를 호위하던 페이러의 가슴 앞쪽으로 칼날이 튀어나왔다.
어느새 일단의 무리가 지척까지 쫒아왔다. 공주가 하얗게 질려서는 몇 걸음을 더 도망가다 바닥에 풀썩 넘어지고 말았다.
공주는 페이리-퀸 이 되기 전까지는 일반 페어리와 비슷한 신체 능력을 가진다. 몇 차례 싸움을 겪으며 이미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줘 일어나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날개가 애처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후. 정말 귀찮게 하는군.”
뒤따라온 남자가 검에 묻은 혈흔을 닦아냈다.
창고 안에 남은 페어리는 거의 다 정리되어 가는 중. 남은 건 페어리 공주만 제압해서 데려가면 된다. 스쳐가는 길에 누군가 봤을까도 싶지만, 이곳은 브론즈 스트리트. 남의 일에 크게 관심가지는 사람은 없다.
“아……아아. 인간. 저주받은 인간!”
“뭐라고 떠드는 거냐? 하여튼 이 페어리들 언어는 이해하기가 힘들다니까.”
“켁켁 거리는 소리로 들리는 데 말이지. 그럼, 고문을 할 때도 사실은 다 말을 하고 있었다는 걸까?”
“하하. 그건 또 나름대로 궁금한데?”
다 잡은 물고기라는 걸까.
페어리 공주를 둘러 싼 이들이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예부터 말하기를, 시작보다 중요한 것이 마무리라 하였다. 그들이 시시덕거리며 낭비한 잠시의 시간은, 한 사람이 등장하는 텀을 벌어다 주었다.
“대범한 놈들이군. 대로변에서 일을 치르다니.”
“누구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시간.
반쯤 허물어진 건물의 옆면을 스치며 일남 이녀가 걸어 나왔다. 아니, 정확하게 하자면 일남 삼녀. 한 명은 남자의 머리맡에 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날개. 페어리였다.
“캬아아!!”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페어리가 허공을 격해 무리 진 이들에게 돌진했다. 공주를 감싸고 있던 이들은 다가오는 것이 페어리 하나임을 확인하고는, 낮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화악. 붉은 가루가 허공에 분사되었다. 앞서 나왔던 란스톨 가루. 상대가 페어리라면 당할 수밖에 없다.
위윙.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착각.
허공을 격하고 날아간 페어리는 어린아이 팔뚝 만 한 나뭇가지를 허공에서 강하게 휘둘렀다. 이는 거대한 바람을 만들었고, 분사된 가루를 한 번에 모아서 날려 보냈다.
“뭐!?”
외마디 탄성.
동시에 페이리가 무리 중 한 남성의 앞에 당도했다. 작은 나뭇가지가 물 흐르듯 움직였다. 남자의 이마부터 어깨. 안마라도 하는 듯 가벼운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커억……!”
남자가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이마부터 어깨까지가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놀랍군. 저것이 페어리의 전투 기교인가?’ 뒤에서 남자, 운페이가 읊조렸다. 말로만 들었던 페어리의 전투법. 생각했던 것 보다 놀라웠다.
“조심해라! 보통 페어리가 아니다!”
“남은 가루를 전부 뿌려!”
남은 무리가 품안에서 가루를 꺼내 허공에 마구 분사했다.
불같이 날뛰던 페어리가, 또 다시 나뭇가지를 휘둘러 이를 걷어내려 했다. 하지만 앞서 했던 것처럼 쉽지는 않았다. 워낙 양이 많아서 걷어낼 때 마다, 또 다시 가루가 들이찼기 때문이다.
“도와주지. 물러나라.”
운페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몸 상태가 딱히 좋지는 않았지만, 약점을 껴안고 움직이는 페어리 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비올레가 그를 만류했다.
“무리하지 마. 괜히 앓아누우면 나만 심란해져.”
“그럼 도와주겠어?”
“진짜……이건 오늘 밤에 받아 낼 거야. 각오하라고.”
“만전을 기할게.”
비올레가 입을 비죽이며 몸을 날렸다.
그녀의 보라색 드레스 끝단이 안개마냥 일그러졌다. ‘적……!?’ 페어리와 싸우던 무리가 판단하지 못해 어물쩍 하는 사이, 그녀가 앞에 당도했다. 뿌옇게 날리는 가루는 그녀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결국 너희 때문이잖아.”
“다가오지 마라! 이건, 너희가 끼어 들 일이……”
퍼석!
가장 앞서 말을 늘이던 남자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핏빛 가루. 뿌옇게 내리는 라스톨 가루와 뒤섞여 바닥을 어지럽혔다. ‘뭐, 뭐야!?’ 뒤에 선 무리들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검을 맞은 것도, 마법 등에 당한 것도 아니다. 사람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가루가 되다니. 상식선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 화났네. 권능까지 쓰고 있잖아.”
“권……능?”
“아차. 넌 이런 거 보면 못써. 눈 가려야지.”
운페이가 세세이의 눈을 가렸다.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안 되다보니, 그녀와 동행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건 조금 그렇다. ‘조심해야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하나. 둘. 셋.”
퍼석. 퍼석. 퍼석.
비올레의 손끝이 향하는 위치마다, 붉은 가루가 생겨났다. 페어리 공주를 포위하던 남자는 전부 여섯. 그 중 절반 이상이 이미 산 자가 아니게 되었다. 아직 창고 안에는 많은 지원군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에게 더 이상의 전의를 찾기는 무리가 있었다. 싸워서 투쟁 할 수 있는 마음은 가늠 할 수 있는 존재에 국한되는 게 보통. 비올레의 권능 앞에서 그들의 전의는 너무나 쉽게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나머지 둘.”
파사삭.
뒷걸음치던, 두 남자가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수고했어.”
“흥! 어디까지나, 남편 몸이 안 좋아서 해 주는 일이라고.”
“알고 있어. 역시 내 마누라 밖에는 없다니까?”
입을 비죽이던 비올레는 운페이가 다가와 살갑게 굴어주자, 얼굴을 폈다. 상관도 없는 일에 힘을 쓰는 건 귀찮기 짝이 없었지만, 그의 달콤한 한 마디는 그 노력을 가치 있게 만들어줬다. 밤에 있을 그 일은 따로 생각하고도 말이다.
“캬아아.”
운페이와 함께 왔던 페어리는 어느새 공주의 옆에 다가가 있었다. 저들끼리의 언어로 무언가를 얘기했다. 높은 억양, 빠른 말. 다급함은 숨길 수 없었다. 운페이가 슬쩍 세세이를 돌아보자, 그녀가 한 쪽을 가리키며 통역을 해 주었다.
“저 창고에 아직 페어리가 남아 있다고 해요.”
“캬아아!!”
세세이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페어리가 허공을 날아 창고 쪽으로 향했다. 빠르게도 해라. 운페이가 잠시 생각을 하다, 비올레를 보며 입을 열었다.
“비올레. 가서 몇 사람만 살려서 데리고 와 주겠어? 다 죽이면 뒤에 누가 있는지를 알기가 어려워.”
“흐으응.”
“휴. 자유이용권 3일.”
“약속 한 거다.”
“약속.”
파츳-!
비올레의 몸이 검붉은 연기를 남기며 사라졌다.
‘자유이용권이 뭐에요?’ 옆에서 세세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어린아이는 몰라도 돼.’ 운페이가 뒷머리를 긁으며 답했다.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세세이가 너무 어렸다.
- 작가의말
페어리 매직! 문 크리스탈~~!
* 오타수정 및 다른 조언을 해 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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