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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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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903

작성
22.09.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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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0장. 메타2기지로 가는 길.(4)

DUMMY

나보다 먼저 로봇을 발견한 컴퓨터가 정지 코멘트와 함께 브레이크를 잡았다. 나도 운전대를 꽉 잡으며 속도를 줄였다. 로봇과 가까워지자 모습이 뚜렷해졌다. 처음 보는 2족 보행로봇으로 높이는 2미터가 훌쩍 넘었다. 유선형의 머리와 몸통이 날렵했고 검회색의 금속질이 하얀 얼음과 뚜렷이 구별되었다.


로봇은 멀리서부터 우릴 지켜보다 궤도차가 가까워지자 몸을 돌려 긴 다리로 앞장서 뛰기 시작했다. 로봇이 공동 주파수로 음성을 보냈다.


“여기서 부터는 재단의 관할 구역입니다.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앨런이 이상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유로파에 재단 관할 구역이 있다고?”


나는 신디케이트와 재단 사이에 맺어진 협약의 세부 사항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책상머리에서 보급품을 챙기는 앨런도 놀라는 걸 보아 협약 내용에 그런 조항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통신기로 로봇에게 물었다.


“재단 관할 구역은 무슨 의미야?”


“재단의 로봇이 관리하는 영역을 의미입니다.”


“누가 그것을 결정했지?”


“편의를 위해 재단이 임의로 정했습니다. 내부 규정으로 외적인 법적, 경제적 권한은 없습니다.”


법적 권한이 없는 임의 설정 영역이라 하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찜찜했다. 거기에다 로봇이 가는 방향이 메타2기지을 표시하는 방향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상했지만 일단 로봇을 따르기로 했다. 재단이 일부러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궤도차 앞에서 뛰어가는 로봇은 상당히 빨랐다. 두 다리를 성큼성큼 교대로 내밀며 뛰는 모습이 타조를 연상케 했다. 발바닥이 타조처럼 넓게 갈라져 있어 더욱 그랬을 것이다. 뛰는 모양은 우스울 수는 있어도 미끄럽고 고르지 못한 얼음 위를 다니기에는 상당히 효율적이었다. 그런 효율감에 우르인간이 나타나면 로봇이 효과적으로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생겼다.


동시에 로봇의 목적이 무엇인지 몰라 불안감도 커졌다. 로봇 규약을 어기고 인간을 공격했던 로봇개를 본 뒤라 의구심은 더 컸다. 차라리 감정을 짐작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마음은 안정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온다는 건 어떻게 알았나?”


“지구의 재단에서 신디케이트 조사단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메타2 기지는 전부 파괴되었다고 들었는데 용케 남아있군.”


“전 메타2의 피해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메타3기지에서 왔습니다.”


“메타3기지에서 왔다고? 그럼 휴먼세븐은?”


“휴먼세븐도 와있습니다.”


휴먼세븐이 왔다는 말을 듣자 괜히 마음이 즐거워졌다. 인간도 아닌 안드로이드에게 왜 흥미를 느끼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기술’이라는 것에 대한 흥미일 것이다. 영원한 생명의 우르와 죽음이라는 단어가 무의미한 로봇! 괴기스럽기조차 한 이 얼음의 세계에서, 신묘한 색깔로 하늘을 지배하는 목성아래서, 그 둘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 묘하고도 의미심장했다.


얼음바위가 무더기로 쌓인 평원을 30분 정도를 달리자 로봇이 뜀박질을 멈췄다. 나도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로봇이 갑자기 선 이유가 있었다. 우리 쪽으로 휴먼세븐이 우아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전에 봤을 때와 같은 복장이었다. 뒤로 늘어진 금발의 머리카락과 몸에 달라붙은 옷이 마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운전석 앞 창 너머를 보고 있던 앨런과 제인의 입에서 ‘어’하는 경탄의 소리가 나왔다. 휴먼세븐은 곧 궤도차 앞에 섰다.


“조사단으로 오신 분이 김영하 박사님이시이죠?”


통신기에서 부드럽고 달콤한 휴먼세븐의 소리가 나왔다.


“그래. 내가 왔어. 그런데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나보지.”


“제임스 기지로 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만, 재단의 자체 계산에서도 김철수 이사님과 박사님은 분명 조사단에 있을 걸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박사님 혼자 올 확률이 52%로 나왔어요.”


그들의 계산 결과가 섬뜩했다. 문건한처럼 재단 또한 김철수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나에 대해서도 그럴 것이다. 나는 괜히 시비를 걸었다.


“52%라면 높은 확률은 아닌 것 같은데?”


휴먼세븐이 가볍게 대답했다.


“절반은 넘었지 않아요?”


“재단이 허튼 조직은 아니잖아? 겨우 절반을 근거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아.”


휴먼세븐이 빙그레 웃었다. 이 진공과 극한의 세상에서 어떤 보호 장치의 방해도 없는 아름다운 웃음을 보는 게 신비롭기만 했다.


“물론 저희의 알고리즘은 다른 자료도 참조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요소는 인간의 욕망이죠.”


“욕망?”


휴먼세븐이 배시시 웃으며 주제를 바꾸었다.


“일단 여기서 우르인간이 처음으로 나왔던 리네아를 먼저 조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왜 리네아를 조사해야 하지?”


“재단과 신디케이트가 우르인간의 동선에 동의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입니다.”


재단의 기지는 리네아와 떨어진 곳에 만든다고 들었다. 이곳에서 메타2기지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걱정이 들었다.


“리네아는 여기서 먼가?”


“걸어서 100미터 정도입니다.”


“그럼 메타2기지까지는?”


“아직 100km는 가야합니다.”


죽자 사자 열심히 운전해 온 거리가 겨우 300km정도였던가? 나는 힘이 빠졌다. 휴먼세븐이 다시 우릴 재촉했다. 리네아를 조사하는 게 우르인간의 동선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우리는 산소통을 교체했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극한의 환경에 서있는 로봇을 보자 산소통 교체 같은 작업이 괜히 짜증스러워졌다. 궤도차 밖으로 나온 앨런은 휴먼세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고 제인도 마찬가지였다.


“하, 정말 대단하군요. 정말 사람 같습니다.”


앨런이 연신 감탄했다. 제인은 감탄과 걱정을 섞은 투로 말했다.


“사람과 구별되지 않아요. 지구에서는 왜 이런 안드로이드가 금지인지 알 것 같네요.”


휴먼세븐은 두 사람의 말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다정스레 말했다.


“이분은 앨런이고 이쪽은 제인이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가 끝나자 휴먼세븐은 우리가 왔던 길옆의 얼음 바위 무더기를 가리켰다.


“저 너머에 하르모니아 리네아가 있습니다. 그 바닥에서 우르인간이 올라왔을 거라 추정됩니다. 거기로 가 볼까요?”


우리는 휴먼세븐과 이족보행 로봇을 따라 얼음 바위를 넘었다. 깊이가 50미터는 되어 보이는, 좁은 리네아가 발아래 나타났다. 휴먼세븐과 이족보행 로봇은 거침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여기서 우르인간이 올라왔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휴먼세븐은 내려가기를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우르가 이곳에서 올라왔다는 건 추측입니다. 이 하르모니아 리네아가 메타2기지와 가장 가까우니까 그랬을 거라 하는 거예요. 메타2기지가 습격 받던 그날 이 지역에 지진도 있었고요. 하지만 우르인간이 이 리네아를 통해 바다 속으로 들어간 건 확실합니다.”


“어째서?”


“로봇과 설비 부품 조각 몇 개가 이 리네아의 분출공 주위에 떨어져 있었거든요.”


“설비의 조각?”


“와셔 2개와 스프링 하나, 설비에 묻어있다 떨어진 금속 부스러기라고 할 수 있는 것 몇 개 정도에요.”


“그것들이 떨어져 나왔을 정도라면 기계들을 완전히 부수었을 것 같은데···?”


“기지의 문 앞에서 R5형 사족로봇 한 대를 얼음바위로 내리쳐 파괴시켰습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와 메타2 기지를 닥치는 대로 부수었죠. 파괴할 수 있는 건 다 파괴하고 그 잔해들을 가지고 갔어요.”


휴먼세븐의 말을 들으며 캬티냐 기지의 풀 뒤쪽에 쌓여있던 노획물들이 떠올랐다. 그것을 어디다 쓰려는 것일까? 왜 자꾸 가져가는가? 기억의 단편과 함께 살아남은 약탈의 본능인가···!


나는 캬티냐 기지에서 내가 본 것을 말하지 않았다. 재단의 로봇개가 캬티냐 기지를 조사했다. 그렇다면 우르인간이 가져다 놓은 노획물들을 로봇개가 보았을지도 모르고 휴먼세븐이 그것을 알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짐짓 물었다.


“우르인간이 그것을 어디로 가져가는지는 알고 있어?”


휴먼세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 모른다가 아니라 대답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이니까···! 휴먼세븐은 재단의 로봇개가 캬티냐 기지에 갔었다는 증거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인간에게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한 프로그램과 진실 사이에서 무응답이 적절한 지점이었다. 휴먼세븐은 어디까지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것인가? 혹시나 인간의 두뇌를 그대로 이식했나!


나는 맑게 반짝이는 휴먼세븐의 눈을 보며 전율과 아련함을 동시에 느꼈다. 왜 아련한 감정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휴먼세븐이 너무 인간 같았기에 그 곤혹한 처지에 잠시 공감되었던 것 같다. 휴먼세븐이 손을 들어 아래를 가리켰다.


“저 분출공이에요.”


우리는 송곳처럼 끝이 날카롭고 낮은 얼음기둥들을 비집고 20미터 정도를 더 내려갔다. 경사가 가파르고 바닥의 얼음이 온통 날카로운 요철이라 걷기 힘들었지만 미끄러지기도 어려운 지형이었다.


분출공 앞에 서자 이곳저곳에서 금속에 긁힌 흔적과 번득이는 유기물을 자취가 있었다. 거친 얼음 바위들이 주위에 나뒹굴고 급속하게 얼어붙어 절리를 이룬 기둥들이 곳곳에 있었다. 분출공은 폭이 30미터 정도로 우르에게는 좁겠지만 우르인간이라면 몇 십 명이라도 나올 넓이였다. 휴먼 세븐은 앞으로 바싹 다가가 언 분출공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금속물과 우르인간의 체액으로 보이는 유기물을 발견했어요. 재단은 그 장면을 촬영했고 추후에 필요하다면 신디케이트도 이 장소가 맞는지 비교할 수 있을 겁니다.”


재단이 이렇게 우르인간의 동선을 꼼꼼히 확인시키는 이유는 모든 책임을 신디케이트에 씌울 근거를 마련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했다.


촬영이란 말에 앨런이 자신의 임무를 떠올렸는지 우주복 주머니에서 소형 카메라를 꺼내 이곳저곳을 찍었다. 우주복에 장착된 카메라만으로는 해상도와 각도 등에 아쉬운 부분이 많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나는 분출공을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다른 리네아와 분출공에 비해 특별한 점은 없었다. 모두가 생성되는 원리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분출공에서 시선을 돌리자 휴먼세븐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조사를 마쳤으면 이제 메타2기지로 가죠.”


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분출공에서 떨어져 몇 걸음 올랐을 때 몸이 조금 흔들렸다. 휴먼세븐이 짤막하게 말했다.


“지진이에요.”


“리네아 바닥의 얼음이 깨지며 물이 분출 될지도 몰라. 빨리 위로 올라가자.”


나는 긴장했지만 휴먼세븐은 침착했다.


“지진의 강도가 그 정도로 세지는 않습니다.”


“무슨 소리야. 이곳에서 우르인간이 물속으로 들어갔다면 그만큼 얼음이 얕다는 의미야. 여진이 오면 얼음이 깨어진다고!”


“서둘지 않아도 됩니다. 10분 이내에 지진이 오지 않을 확률이 92%에요.”


“어떻게 그걸 자신하지?”


“재단은 유로파에서 어떤 생물도 채집하거나 추출할 순 없어요. 그래서 오직 지진과 지형 연구에만 몰두해 왔죠. 더구나 이 리네아는 우리 관할이에요. 우리가 잘 알죠.”


나는 휴먼세븐의 말을 들으며 부지런히 리네아의 경사면 올랐다. 앨런과 제인은 나보다 더 서둘렀다. 인간인 우리는 분출공에서 터져 나올지도 모를 물을, 곧 죽음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죽음이 없는 휴먼세븐과 이족보행 로봇은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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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에필로그 +12 23.05.21 233 28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1 14 16쪽
168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5 11 12쪽
167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27 16 12쪽
166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6 14 11쪽
165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5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49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1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1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7 11 13쪽
160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70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3 13 13쪽
158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58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5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88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50 15 10쪽
154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4) 23.03.24 145 19 13쪽
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5 16 12쪽
152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2) +1 23.03.17 161 15 14쪽
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50 15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61 14 14쪽
149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9) 23.03.06 183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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