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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케이투 님의 서재입니다.

배반의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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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19.12.26 14:55
최근연재일 :
2020.01.20 12:00
연재수 :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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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79

작성
19.12.2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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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글자
12쪽

1장. 이주자들 (1)

DUMMY

1.

동면은 시간을 연소시키는 행위였다.

5년 동안 케이는 꿈도 꾸지 않았다.

신체의 노화도 없었다. 그냥 5살만 더해졌을 뿐이었다.

프로포폴 주사를 맞고 몇 십 분 동안 잠을 잔 것 같았다.

케이는 동면 캡슐에서 꺼내져 회복실로 옮겨졌다.

수면과 자각의 경계에서 정신은 멍했고 몸은 힘없이 늘어졌다.

안드로이드 승무원이 케이의 몸에 수액을 투여했다.

고단위 영양제, 근육 강화제, 전해질과 항생제에 ‘뉴 파라다이스’에서 발견된 몇 종류의 바이러스에 대항할 백신이 혼합된 액체가 케이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3시간이 지나자 팔에 수액이 꽂힌 채로 케이는 휠체어에 앉았다. 안드로이드 승무원은 케이의 생체 신호가 정상이라며 우주선 로비에 데려놓았다.

로비는 회색 금속 벽으로 둘러싸인 넓은 공간으로 100여 명의 이주민이 휠체어에 앉아 수액을 맞고 있었다. 케이는 틈틈이 힘들게 머리를 들어 수액 봉지를 확인했다. 수액 봉지는 비워지고 있었지만 정신은 여전히 흐릿했고 감각 없는 몸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길이 1Km에 높이 200m인 우주선을 타고 공간을 넘는 동안 몸에 이상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불안감이 온 몸으로 퍼졌다. 호흡이 가빠지고 몸이 떨렸다. 휠체어에 달린 경보기가 삑삑거리는 소리를 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 되는 안드로이드가 달려와 휠체어에 달린 심박동계와 계기들을 살폈다.


“심리 불안에 심박동수가 높아져 경보음이 울린 겁니다.

긴장을 푸시고 숨을 크게 쉬세요.”


안드로이드는 부드럽고 낮은 여자 소리로 말했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안정감과 거부감을 동시에 들게 했다.

그 부조화한 목소리는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안드로이드를 향한 멸시와 인간과 닮았다는 이유로 투정하고 의존하려는 심리를 처음부터 차단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케이가 서너 차례 깊은 숨을 쉬며 마음을 안정시키자 경보음이 바로 가라앉았다.


“이제 정상입니다.”


안드로이드가 온 틈을 이용해 케이는 정중히 물었다.


“우주선은 ‘뉴 파라다이스’에 도착했는가?”


“그렇습니다. ‘뉴 파라다이스’에서 10만㎞ 떨어진 상공입니다.”


“그럼 지금 몇 년이지?”


“지구 표준시로 2147년입니다. 우주선은 계획대로 순항했습니다. 지구에서 점핑 포인트까지 2년, 점핑하여 공간을 넘은 후 ‘뉴 파라다이스’까지 다시 3년을 날아왔습니다.”


“‘뉴 파라다이스’로 내려가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지?”


“3390번님은 34차 셔틀 탑승예정입니다. 셔틀은 17대가 교대로 운행 중입니다. 생체 신호가 정상으로 돌아온 승객들이 현재 25차 셔틀에 탑승하고 있습니다. 34차 셔틀 탑승시까지 신체가 회복 되지 않으면 셔틀 탑승은 순연됩니다.”


차근차근 알려주는 안드로이드는 거대한 성간 우주선이 행성에 내려앉고 다시 이륙하기에는 너무나 막대한 에너지가 든다는 사실을 은연중 가르치는 듯했다.


“왜 우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지?”


“‘뉴 파라다이스’에는 우주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있지 않습니다.”


안드로이드는 명료하게 답하고 다른 휠체어로 갔다. 케이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옆 휠체어의 사람이 말했다.


“친절하군요. 지구에서 의사 노릇을 하던 나보다 더 친절해요.”


케이는 옆을 돌아보았다. 수액주사와 생체 진단기를 단 젊은 백인 남자가 멍한 얼굴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난 로닉이라 합니다. 미국인으로 의료로봇에 밀려 쓸모없어졌지만 의사죠. 당신은 한국인이나 일본인 같은데요?”


“난 케이라 합니다. 이름은 한국식이 아니지만, 몸은 한국인이에요. 어머니가 세계에서 활약하려면 부르기 쉬워야 한다고 그렇게 지어주셨죠. 30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희망이었죠. 세계가 아니라 다른 행성에서 살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로닉은 직군이 산업경비대군요.”


케이는 로닉의 유니폼 왼편 가슴에 그어진 빨간색 줄을 보며 말했다.


“그래요. 산업경비대로 왔죠. 빨리 지구를 떠나고 싶은데 자리가 거기밖에 없다더군요.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뉴 파라다이스’에는 로봇 의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상담원은 결국 의사 일을 하게 될 거라고 하더군요.”


로닉은 케이의 가슴을 힐끔 보았다.


“그런데 당신도 산업 경비대군요?”


케이의 왼쪽 가슴에도 빨간 줄이 있었다.


“예, 나도 산업경비대입니다. 통신 직군이죠.”


“그럼 지구에서는 IT 쪽을 전공했겠군요.”


“예, 인공지능에 쓸모가 없어졌지만 통신 관련 프로그래밍과 시스템을 공부 했어요.”


인간과의 대화 덕분일까. 케이는 자신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음을 느꼈다. 로닉이 나직이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죠? 이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산업경비대에 속해있어요. 나도 떠나기 일주일 전 일반 의사 자리가 다 차 경비대 소속으로 임의변경 되었다더군요. ‘뉴 파라다이스’에서 개업의로 살 꿈을 꾸며 모든 걸 다 처분했는데 임의변경을 통보받았어도 어쩔 수 없었죠.”


그런 임의적인 변경은 케이도 마찬가지였다. 떠나기 일주일 전 일반 통신직에서 경비대 소속 통신직으로 자동 변경되었다고 연락받은 것이다. 기본 소득을 포기하고, 노후 연금을 해지하고, 원룸 보증금을 빼 우주선 탑승비에 보탠 뒤였다.


“내 경우도 똑 같습니다. 이 행성에서 경비대라는 용어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방적인 변경에도 항의조차 못했죠.”


“탱크와 자주포에 미사일을 실어갔다는 소문도 있어요.”


“그건 그냥 악의적인 가짜뉴스 아닙니까? 인간이 ‘뉴 파라다이스’로 이주하는 걸 절대 반대하는 단체나 종교집단도 많으니까요. ‘뉴 파라다이스’에 괴물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려 이주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체포되는 일도 있었죠.”


케이의 말에 로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우린 이제 돌아가려도 돌아갈 수 없으니까 가짜 뉴스길 바라야죠.”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로닉의 말이 케이의 가슴에 서글프게 꽂혔다. 케이 앞으로 지구에 있는 부모와 친구의 얼굴이 하나씩 지나갔다. 정부는 ‘뉴 파라다이스’까지의 비용을 편도만 지원했다. 평범한 개인이 100년 넘게 벌어야 하는 금액이었다. 지구로 귀환하는 지원금은 없었다.

로닉과 이야기 하는 동안 케이의 휠체어에 녹색불이 들어왔다. 곧 안드로이드가 와 케이에게서 수액 바늘을 빼고 전선들을 떼어내었다.


“3390번님, 일어서 보십시오.”


케이는 안드로이드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일어섰다.


“이제 내게서 손을 떼고 걸어보십시오.”


안드로이드의 말에 혼자 서서 다리를 내밀자 구름 속에 떠 있는 것 같은 몸에서 다리가 앞으로 나갔다. 케이는 처음 걸음을 걷는 아이처럼 서툴게 몇 걸음을 걸었다.


“축하합니다.”


뒤에서 로닉이 외치는 소리가 지구에서 전해 오는 것처럼 아련하게 들렸다. 케이는 어색한 걸음걸이로 안드로이드가 이끄는 금속 문을 지나 셔틀 탑승 대기실로 들어갔다.



2.

100명도 훨씬 넘는 사람들이 셔틀 대기실에 있었다. 금속의자에 앉아 셔틀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묘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흘렀다.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우주를 건넜지만,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기쁨과 희망이 그들에게서 없었다. 케이는 이 심각한 분위기가 안드로이드가 내는 기계의 차가움이 때문이라 생각했다. 320광년의 공간을 넘어온 사람들을 맞은 것은 진정한 따스함과 반가움이 아닌 프로그램 된 기계였다는 것이 케이는 못내 아쉬웠다. 케이는 맨 끝 열 구석에서 빈자리를 발견하고 앉았다. 20대 후반의 금발 여자가 옆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얼굴이 밝았지만 야위었고 초췌했다. 야무지게 다문 입가에는 가볍지 않은 지성과 기다림의 무료함이 혼재되어 있었다. 여자가 입고 있는 유니폼에는 아무런 선도 없었다. 기술 특기를 가지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케이는 기술 특기도 없이 우주선을 탈 수 있었던 여자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마침 여자가 지겹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케이는 여자의 한숨을 기회로 말을 걸었다.


“셔틀이 늦나 보죠?”


여자는 케이를 보지 않고 자신에게 대답하듯 작게 대답했다.


“아뇨, 셔틀은 제대로 오고 있어요. 경비대 소속을 먼저 태울 뿐이죠. 우리 같은 일반 이주민은 네 시간째 기다리고 있어요. 여기도 합리적이지 못한 세계인가 봐요. 물론 완벽한 세계는 있을 수 없겠죠. 그런데 지구에는 설치한 우주 엘리베이터를 여기에는 왜 만들지 않은 걸까요?”


여자의 목소리에는 조용한 분노가 들어가 있었다.


“설치 못한 이유가 있겠죠. 우주 엘리베이터를 세우기 최적지라는 적도는 너무 덥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완벽한 세상을 찾아왔나요?"


여자가 비로소 얼굴을 돌려 케이를 보았다. 여자는 케이의 질문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구나 그런 희망을 품고 오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아니라도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다고 믿기에 지구에서 가졌던 걸 버리고 오지 않았을까요?"


여자의 반문에서 케이는 대기실에 차 있는 묘한 긴장과 침묵이 상상했던 세상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임을 알았다. 우주를 건너 새 세상을 찾는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앞두고, 새 행성이 왠지 상상한 것과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케이는 여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겠죠. 그 희망 때문에 320광년이라는 거리를 넘어왔죠.”


여자는 빙긋 웃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5년 만에 보는 여자의 미소는 케이의 마음에 그대로 닿아 어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여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안온한 느낌을 받았다. 케이는 그 느낌을 지속하고 싶어 계속 말을 걸었다.


“‘뉴 파라다이스’에서 무엇을 할 생각입니까?”


여자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먼저 언니를 찾을 생각이에요. 언니는 6년 전에 ‘뉴 파라다이스’에 왔거든요. 언니는 잘 도착했고 잘 정착했다며 아름다운 화원을 배경으로 동영상 편지를 보냈어요. 그 화원에 마음이 끌렸죠. 언니도 내가 오길 원한다고 했어요.”


여자의 이야기가 끝나자 대기실의 한쪽 벽에 있는 문이 열렸다. 안드로이드가 바쁘게 움직이고 그 중 하나가 손에 든 테블릿 PC를 보았다. 사람들이 안드로이드를 주시했다.


“셔틀 탑승 번호입니다. 경비대 3350번부터입니다. 호명되는 번호는 셔틀에 탑승하십시오.”


“나는 또 아니군요.”


여자가 짜증 섞인 한숨을 길게 뱉었다. 다른 쪽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언제 ‘뉴 파라다이스’로 내려가는 거야?”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안드로이드는 무표정한 얼굴을 술렁이는 사람들 쪽으로 돌려 사무적으로 말했다.


“셔틀의 정원은 100명입니다. 경비대원이 우선입니다.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


안드로이드는 사람들의 동요에도 관계없이 번호를 부르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의 호출이 끝날 때쯤 케이의 번호가 나왔다.


“가야겠군요. 오래 기다리지 않기를 빕니다. 내 이름은 케이입니다. 인연 있으면 다시 보겠죠.”


케이가 아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자가 작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저는 앤이에요. 인연 있으면 보겠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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