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68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68
“영감탱이, 조건이 있으면 말해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일초는 계속 허풍을 떤다.
“됐다. 네놈들이나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라.”
“좋다. 그럼 밖으로 나가자.”
이렇게 해서 양측은 주루의 뒤쪽 공터로 나간다.
곤일의 상대로 청의인이 나섰다. 덩치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상당히 날카롭게 생겼다. 얼굴도 갸름하고 눈이 찢어져 기본적으로 풍기는 기운이 날카롭다. 주루에선 내력을 감추고 있었지만, 밖으로 나오자 자연스럽게 발산한다.
“영감탱이, 내 동생이 어리다고 처음부터 기죽이는 거야? 나잇값을 좀 해라.”
“이제 겨우 스물밖에 안 된 애를 상대로 기선제압을 하다니... 쯧쯧, 실망입니다. 실망!”
일초에 이어 태운까지 나서서 청의인을 자극한다.
“내가 이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한 때는 고금제일인의 뒤를 이을 거란 평가까지 받던 사람들이 너무 한 거 아니오?”
주춤! 태민의 말에 청의인이 동작을 멈춘다. 뿐만 아니라 뒤로 몸을 날려 세 사람이 같이 선다.
“비무는 취소다. 네놈들 정체부터 밝혀라.”
고금제일인이란 말에 그들은 극도로 긴장한다.
“상대가 취소한다면 할 수 없지. 근데 그만큼 당신들 명성에 흠집이 생긴다는 건 알겠지? 그럼 우린 돌아간다. 잘 먹고 잘 살아라.”
일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행은 몸을 돌린다. 하지만 길이 막힌다.
“멈춰라!”
세 사람이 몸을 날려서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뭐하는 짓이야?”
“후후후, 이유야 뻔 하죠. 정체가 드러났다는 이유로 살인멸구를 하겠다는 거지 뭐.”
“그 말은 개싸움을 하자는 건데... 낄낄낄!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가자!”
일초의 명령에 따라서 형제들은 모두 세 사람을 향해 몸을 날린다. 형제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마치 이번 일을 위해 연습이라도 한 듯이 일심동체가 돼서 세 사람을 집중 공격한다. 더구나 모두 평소 잘 사용하지 않던 검을 들고 있다.
까까까깡깡!
“우우욱!”
세 중년인들은 뒤로 다섯 걸음이나 밀려난다.
“어..어떻게 이런 일이?”
그들은 모두 돌부처처럼 몸이 굳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무림 출도 이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당연히 혼자서도 그랬다. 심지어 당대의 천하제일고수라는 무림 맹주나 소림의 장문인 등도 이들과 1:1로 싸우면 채 십초를 견디지 못했다. 근데 이들이 어린 꼬마들에게 밀린 것이다.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어깨에 힘주고 지랄이야.”
“내가 말했잖아? 태양장이라고 거들먹거리지만 개뿔도 아니라고.”
“영감탱이들, 아직도 우리가 누군지 궁금해?”
“어떻게 한 거냐?”
“뭘?”
“아무리 우리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지만, 일반 무공으론 우리 셋을 밀어낼 수 없다.”
“그럼 일반 무공이 아닌 모양이지.”
“그게 뭐냐?”
“궁금해? 그럼 오백 냥이다.”
일초가 손을 내민다.
“싸다. 싸! 오백 냥에 무림 최고의 무공을 안다고 생각해봐. 공짜나 마찬가지지.”
곤일까지 나서서 약을 올린다.
“자연무예냐?”
백의인이 뭔가 감을 잡은 모양이다. 일초와 형제들은 검으로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여 세 사람을 공격한 것이다.
“후후후, 제법이네. 자연무예도 알아보고.”
“저..정말이냐?”
“애들아, 영감탱이들이 못 믿겠단다.”
“그럼 확실하게 보여줘야죠. 저부터 갑니다. 타핫!”
이번에는 곤일이 먼저 나선다. 그는 맨손으로 청의인을 향해 몸을 날린다. 청의인은 황급히 내력을 끌어올려서 맞대응을 한다.
콰콰콰쾅!
곤일은 처음부터 청의인의 내력을 받아들인다.
“우욱!”
청의인은 당황한 나머지 한꺼번에 전력을 다했다. 그래서 많은 기운을 빼앗긴 것이다.
“바..반로환동입니까?”
“반로환동(返老還童)이라... 글쎄?”
“그럼 아예 늙지 않았다는 겁니까?”
“마음대로 생각해.”
“으음!”
“원하는 게 뭡니까?”
“원하는 거? 아까 말했잖아? 싸우는 거라고.”
“우릴 죽이시려고요?”
“네놈은 진천왕부를 어떻게 할 생각이었냐?”
곤일은 아예 반로환동의 경지에 오른 전대고수 흉내를 낸다.
“그..그건....”
“실망이다. 그 동안 니들 입으로 고금제일인의 후계자를 자처했지?”
“으음! 그건 사실입니다.”
청의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한다.
“그런 놈들이 겨우 그를 배신한 놈의 명령을 들어?”
“그..그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마..말도 안 돼.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맞습니다. 설사 황룡 어른이 살아온다고 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아냐는 말이겠지?”
“그거야 우리가 네놈들을 지옥으로 끌고 갈 저승사자라서 그렇지.”
“허억!”
“저..정말입니까?”
“니 생각은 어떠냐? 아닌 것 같니?”
“그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도 지금 고민이 많다. 네놈들을 죽일지 아니면 조금은 더 살려둘지 말이다.”
“우..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후후후! 그렇게 살고도 아직도 미련이 남았어?”
“하긴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더 욕심을 부리는 법이지.”
“그래도 난 아직 믿지 못하겠소.”
이번에는 백의인이 나선다. 자기들끼리 검제(劍帝)라고 부른 인물이다. 그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린 네놈더러 뭘 믿으라 한 적 없다. 뭐든지 궁금하면 해결해야 한다는 게 우리 지론이지. 네놈은 내가 상대해주마.”
이번에는 태민이 나선다.
“좋소.”
백의인은 검을 빼들고 앞으로 나선다.
“그런데 말이다. 꼬맹이들은 언제까지 저렇게 둘 거냐?”
“꼬맹이라면....”
“이 새끼들이 누굴 피라미로 아나? 운아!”
“예, 형님!”
“가서 모조리 쓸어버려라.”
“알겠소. 대신 이놈은 내 몫이요.”
태운은 손가락으로 흑의인, 즉 도제(刀帝)를 가리킨다.
“알았다.”
태민의 동의하자 그는 즉시 뒤쪽 주택가를 향해 몸을 돌린다. 순간 중년인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른다.
“자..잠깐만 요!”
“뒤로 물리겠습니다.”
“무..물렸습니다.”
아마 주택가에 태양장의 무사들을 숨겨둔 모양이다.
“멍청한 놈들아, 인간세상이 그렇게 만만하더냐? 세상을 그만큼 살았으면 깨닫는 게 있어야지.”
“무슨 말씀이신지?”
“그놈이 세상을 지배하면 태양장과 네놈들을 그냥 둘 것 같아?”
“.....?”
중년인들은 아무 말도 못한다. 조금만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놈의 욕심이 화근이지. 화근!”
“그렇소. 처음엔 태양장만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근데 엉뚱한 놈이 나타나서 태양장은 물론이고, 세심각이며 군부를, 아니 세외오천까지 제압하니 앗! 뜨거워했겠지. 이젠 무림지배는 고사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그놈에게 충성을 해야 할 처지가 된 거지. 멍청한 것들. 어라! 잔머리까지?”
일초는 말을 하다 말고는 태양장 무사들이 숨어 있던 곳을 쳐다본다. 그때부터 희미하게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그 참, 이상하네. 분명히 뒤로 물렸다고 했는데 어떻게 해서 비명소리가 들려올까?”
“어...어떻게 된 거야?”
백의인이 흑의인을 추궁한다.
“부..분명히 물러나라 했는데....”
“후후후, 어디에나 골통들은 있기 마련이지. 그 덕분에 하나뿐인 목숨을 잃게 되겠지만.”
“이거 오늘은 본의 아니게 바빠지게 생겼네.”
“여기도 빨리 정리하고 갑시다. 인간들의 똥물 튀기는 꼬라지를 더 이상 보기 싫소.”
태민의 말에 모두 자세를 잡는다. 당장이라도 중년인들을 공격할 기세다.
“자..잠시만 요.”
“이 자식들이 누굴 호구로 아나?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아..아닙니다. 조금 전의 그건 절대로 우리 뜻이 아닙니다. 전 분명히 철수하라고 했지만 현장에 있던 놈들이....”
“그래서 니들 잘못이 아니니까 한 번만 더 믿어 달라?”
“그..그렇습니다.”
“우린 그렇게 관대한 사람들이 아니다.”
“제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죽는 일만 아니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흐흐흐, 그 새끼들 더럽게 목숨에 집착하네.”
“형님, 이거 참 곤란하게 됐습니다.”
“뭐가?”
태운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한다.
“오늘 할당량을 초과해서 더 이상은 받기가 곤란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놈들과 타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난 싫은데?”
“저기 있는 놈들을 살려주는 한이 있더라도 이놈들은 데려가야겠다.”
일초는 주택가를 가리키며 말한다.
“제..제발, 살려주십시오. 뭐든지 다하겠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심스럽다던 청의인이 이젠 가장 적극적으로 목숨을 구걸한다.
“뭐든지 다한다고? 그럼 죽으면 되겠네.”
“그..그것만은.... 제발!”
“야, 그 제발이란 말 좀 안 쓰면 안 되겠니? 그것 때문에 내가 더 돌아버리겠다.”
“아..알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아..아닙니다.”
“지랄도 유행이라더니 가지가지 한다.”
“형님!”
이 때 태민이 나선다.
“왜, 좋은 방안이라도 있냐?”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두 가지 방법 중에 선택하게 하는 겁니다.”
“두 가지?”
“예. 한 가지는 저놈들로 하여금 초일 그놈을 찾아내서 처단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전을 파괴하고 완전히 무림에서 은퇴하는 것입니다.”
“야,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저놈들 실력으로 초일 그 놈을 찾기나 하겠어? 근데 무슨 처단을 한단 말이냐?”
“그럼 두 번째로 할까요?”
“너도 참 답답하다. 너무 식상하지 않냐? 저놈들 정도면 단전 정도는 몇 년 안에 완전하진 않아도 일부는 회복할 수 있다. 그런 하나마나한 일을 왜 하냐?”
“후후후, 그래서 제가 한 가지 보완책을 마련했지요.”
“보완책?”
“예. 몇 군데 혈도를 제압하고, 한 군데의 신경을 차단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효과가 있는데?”
“혈도는 다신 단전을 회복하지 못하게 할 테고, 신경은 무공을 익히지 못하게 할 겁니다.”
“그래? 그런 방법이라면 앞으로 종종 써먹어야겠다.”
“동의하시는 겁니까?”
“그건 저놈들의 뜻에 달렸지.”
“저..저희들은 좋습니다.”
“가..감사합니다.”
“크윽! 전 단전을 파괴했습니다.”
청의인은 스스로 단전을 파괴한다. 그 정도로 그들은 목숨에 연연하고 있다.
“멍청한 놈들. 나머진 니가 처리해라.”
“예. 형님!”
일초는 그렇게 말하곤 사라진다. 잠시 후 중년인들은 피를 흘리며 간신히 걸어서 공터를 떠난다. 이들은 더 이상 무공을 익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얼마 살지도 못할 것이다. 내공이 사라진 이상 그들의 생명을 지탱해줄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르고 살아남았다는 데 만족하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그들은 그 동안 쌓아온 부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