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66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66
“개망나니 새끼, 주둥이를 찢어주마! 이얍!”
귀화의 몸은 마치 화살처럼 운고를 향해 날아온다. 피하지 못하면 그대로 충돌할 상황이다.
“이크!”
펑! 펑! 펑! ...
귀화는 날아오면서 양손으로 장공을 펼친다. 근데 운고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는다.
“크악!”
그는 연속으로 세 번의 공격을 받고 다시 방안으로 튕겨 들어온다.
“왕야!”
그는 들어오면서 진천왕을 부르고, 진천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손을 옆으로 내민다.
“타핫!”
운고는 진천왕의 손바닥을 발로 차며 반발력을 이용해서 다시 되돌아간다.
“쯧쯧, 하필이면 발이냐? 머리로 하면 어때서?”
진천왕이 투덜대는 사이 다시 충돌이 생긴다.
퍼엉!
근데 소리가 그다지 크지 않다. 귀화의 장공이 운고의 가슴을 정통으로 가격했는데도 말이다.
“발로 하면 혼난다.”
그가 다시 날아오자 진천왕이 소리친다.
“그게 제 마음대로 됩니까?”
“이..이런. 씨발!”
이번에도 운고의 발이 진천왕의 손을 치고 되돌아간다.
“왕야, 품위를 지키옵소서.”
“씨부랄! 품위는 무슨?”
이렇게 열 번을 반복해서 귀화와 운고는 공방을 벌인다. 문제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당하는 운고보다 공격하는 귀화가 더 뒤로 밀린다는 것이다.
“니미! 영감탱이가 끝까지 꼬장을 부리네. 타핫!”
열한 번째에는 진천왕도 같이 몸을 날린다. 유정도 같이 공격을 했기 때문이다.
“크아악!”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귀화와 부딪힌 운고는 자연스럽게 이층 지붕 위에 내려서지만, 진천왕은 충격으로 벽을 뚫고 들어간다. 귀화보다 유정의 공력이 더 커서 그런 걸까?
“씨발! 난 왜 안 되는 거야?”
진천왕은 일어서면서 투덜댄다.
“왕야의 입이 거칠어져서 그런 겁니다. 십 원짜리 욕을 많이 쓰면 망태할배가 잡아간다는 슬픈 얘기도 모르세요?”
“그러니까 망태할배가 날 이렇게 만들었단 거야?”
“망태할배 잘못은 아니죠. 욕쟁이를 혼내라는 상제 어른의 명을 따랐을 뿐이니까요. 참, 방금 망태할배가 전음으로 말하길 수련이 부족하면서 불평하는 사람도 혼내라는 상제의 명이 있었답니다.”
“야, 두 시진씩 잠자며 매일 새벽까지 수련했는데 뭐가 부족하다는 거야?”
“죄송하지만 누구네 형제들은 하루에 한 시진도 못 잔다고 좀 전해달랍니다.”
“끄응!”
진천왕은 더 이상 대꾸를 못한다. 아마 진천왕도 요즘 자연무예를 배우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운고와 같이 유정의 공격을 흡수하고 자연 상태로 내보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은 것이다.
“껄껄껄! 우리도 미쳤다는 소릴 자주 듣지만 네놈들도 만만찮구나.”
유정은 그제야 냉정을 되찾는다.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진천왕과 운고는 2층 지붕에 서 있고, 유정 부부는 공중에 떠 있다.
“영감탱이, 이렇게 만나게 돼 유감이야. 그래도 한 땐 내 우상이었는데, 할망구도 마찬가지고.”
“우상은 무슨? 밉상이었겠지.”
운고는 잠시도 쉬지 않고 두 사람을 자극한다.
“꼬맹아, 대체 네놈은 어디서 튀어나왔니?”
“내가 왜 꼬맹이야? 아무리 봐도 키는 내가 더 큰데. 그리고 니 새끼들은 낳을 때부터 튀어나왔어?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다리를 못 쓴다고 태어나자마자 죽여 버릴 정도로 못된 어미니까.”
부르르르르....!
드디어 귀화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다. 소문에 의하면 귀화는 아들을 여럿 낳았는데 그 중 막내가 소아마비로 태어났다. 그리고 불과 일 년을 못 견디고 세상을 떠났다. 당시 온갖 말들이 퍼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귀화가 화가 나서 죽였다는 소문이다. 그걸 운고가 거론했으니 천하의 귀화가 참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개자식! 아가리를 갈가리 찢어주마.”
“잠깐!”
귀화가 공격을 하려고 움직이자 유정이 말린다. 근데 어찌된 일인지 귀화가 두 말하지 않고 물러난다.
“호오! 역시 계집에겐 거시기가 중요하단 말씀이야. 서방님의 한 마디에 꼼짝을 못하네. 영감탱이 정말 부러워.”
운고의 입은 멈출 줄을 모른다.
“니들은 우리가 나올 줄을 알고 있었느냐?”
“글쎄? 그건 모르겠고, 니들을 유인한 건 사실이야.”
“헐헐헐! 우리를 유인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자신은 있지만 승패는 알 수 없지. 잘못하면 내 목이 바닥을 뒹굴 수도 있고, 운 좋으면 니들 몸에 상처 정도는 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도 감히 우릴 불러냈다?”
“우린 수많은 무림인들이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는 걸 두고 볼 정도로 양심이 없진 않거든.”
“그러다 죽으면 너만 손해일 텐데?”
“영감탱이, 뭔 착각을 그렇게 심하게 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지, 언제 죽는다고 했어?”
“.....?”
운고의 말에 유정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직도 준비한 게 남았어?”
“영감이 우리 입장이면 이 정도 준비로 시작하겠니?”
유정은 운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귀화의 손을 잡고 뒤로 물러난다. 순간 운고가 소리친다.
“지금이다!”
동시에 땅바닥이 열리며 수직으로 수백 발의 화살이 솟아오른다.
“커억!”
“아악!”
유정 부부는 전력을 다해서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화살을 완전히 피하진 못했다. 유정은 왼쪽 발바닥에, 귀화는 양쪽 발바닥에 화살이 하나씩 박힌 채 바닥으로 떨어진다. 보통 유정 부부와 같은 절대고수들은 이런 싸움에선 몸을 강기로 보호하기 때문에 화살 정도는 그대로 튕겨낸다.
하지만 발바닥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 발은 지면을 딛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보호하지 않는다. 그걸 이용해서 운고가 준비한 것이다. 모든 것이 그의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진 것이다.
“하..할머니, 할아버지!”
이 공자가 황급히 달려가서 부하들과 함께 두 사람을 뒤로 데려간다. 동시에 열 명의 노인들이 그 앞을 막는다.
“호오! 이제야 태양장의 정예가 나타나셨군.”
진천왕은 그들을 아는 눈치다.
“쯧쯧, 왕야께선 아직 태양장에 대해서 잘 모르시군요.”
“뭐라고? 그럼 저들이 정예가 아니란 거야?”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세요.”
“니미,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영감탱이, 니들도 들었지? 괜히 시간 끌지 말고 한꺼번에 나오라고 해. 그리고 정예도 아니면서 눈에 힘주지 마라. 건방진 새끼들!”
진천왕은 너무 세게 나간다.
“왕야, 그렇다고 만만히 볼 수 있는 자들은 아닙니다.”
“그럼 어때? 자네가 다 처리해줄 텐데.”
“예에? 아이고, 이러다 정말 죽게 생겼네. 저들이 누군지 아세요?”
운고는 갑자기 우는 소리를 한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누군데?”
“유정이보다 한 세대 전의 장로들입니다.”
“뭐라고? 그럼 저 영감탱이보다 더 나이가 많겠네?”
“나이만 많겠어요? 무공도 더 강하겠죠.”
“그런 놈들이 열 명이라면.... 아이고 이.. 이 일을 어쩌누?”
덩달아 진천왕도 두려움에 떤다.
“아이들아, 이제 다 떠들었니?”
“다 놀았으면?”
“그럼 같이 놀아보자.”
“지랄도 홍수네. 우리가 니들 하고 놀 군번이냐?”
“아직도 준비한 게 남았니?”
“무슨 말씀? 난 밑천이 떨어졌어.”
“그런데?”
“쯧쯧, 나이는 못 속이는군. 무공이 강해지면 뭐해?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못 알아보고.”
운고는 눈으로 진천왕을 가리킨다.
“야, 왜 날 쳐다 봐?”
“그럼 나만 밑천을 드러내란 말입니까?”
“아직 준비한 게 많다며?”
“그렇다고 왕야는 계속 남의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실 겁니까?”
“그러니깐 내 패도 까라?”
“당연하죠. 1:1은 아니라도 5:1 정도는 돼야 할 거 아닙니까?”
“대체 누가 왕이고, 누가 총관인지 모르겠네. 그럴 바엔 네놈이 왕 해라.”
“못 할 것도 없죠. 이번 일이 마무리 되면 양위하시겠습니까?”
“에라이, 미친놈아!”
진천왕은 주먹을 들고 운고를 향해 달려간다. 이런 모습을 보고 태양장의 전대 장로들은 어이가 없는지 물끄러미 쳐다본다.
“진천왕이 저런 놈이었어?”
“전혀! 누구보다 진지하고, 위엄이 있다고 소문났어.”
“그럼... 물러나! 어서!”
갑자기 장로들 중 한 명이 소리치며 뒤로 몸을 날린다. 동시에 사방에서 둥근 물체가 날아온다.
콰콰콰콰쾅쾅!
화탄이다. 이 공자가 준비한 걸 진천왕부의 무사들이 빼앗아 던진 것이다.
“대단한데요?”
“당연하지. 자네 계획까지 다 염두에 두고 준비한 거야.”
“왕야가 아니고, 저 영감탱이들 말입니다.”
“에잉? 그게 아니었어?”
“보세요. 삼십여 발의 화탄을 맞고도 두 놈만 부상당하고 나머진 멀쩡하잖아요?”
내상으로 피를 토하는 장로 두 명은 부하들이 황급히 뒤로 데리고 간다.
“정말 그러네. 대체 태양장엔 어떤 불로불사의 영물들이 있기에 늙어 죽지도 않는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태양장에 들어가는 건데.”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제가 추천해 드릴게요.”
“됐네. 이 사람아. 근데 저건 뭐야?”
“흠! 아무래도 우릴 요절 낼 모양입니다.”
장로들은 한 줄로 서서 격체전공을 펼칠 준비를 한다. 1:1로도 견줄 상대가 없는 강한 고수들이 여덟 명이나 뭉쳐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과연 세상에 그 누가 견딜 수 있을까?
“왕야라면 안 그러겠어요? 제가 놈들이라면 모든 걸 쏟아 부울 겁니다.”
“뭐야? 또 나더러 나서라는 거야?”
“그럼 요?”
“이 사람아, 난 방금 했잖아?”
“보세요. 영감탱이들이 모두 왕야를 노리고 있답니다.”
“치사한 놈! 두고 보자.”
진천왕은 투덜대면서도 왼팔을 들어올린다. 그러자 멀리서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온다. 하지만 그 정도 화살로는 내공을 극도로 끌어올린 장로들을 옷깃도 건드리기 어렵다. 그 때문인지 그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근데 화살이 가까이 오자 선두에 선 자가 소리치며 황급히 몸을 날린다.
“화살폭탄이다!”
화살 끝부분에 달린 심지가 불이 붙은 채로 날아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제아무리 내력이 뛰어나도 가까이에서 화탄이 터지면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선두의 장로를 시작으로 여덟 명 모두 사방으로 몸을 날린다.
“크으윽!”
이들은 폭탄은 피했지만 내력을 운용하는 도중에 급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기운이 역류해서 모두 내상을 입는다. 근데 정작 화살이 떨어진 곳은 멀쩡하다.
“어..어떻게 된 거야? 크으윽!”
“다..당했다. 당했어. 우욱!”
분명히 화살촉 부분은 화살폭탄과 똑 같이 생겼다. 하지만 그 안은 비어 있다. 화약이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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