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54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54
파라라라랑!
반면에 열 명의 초능력자들은 옷만 남기고 모두 먼지로 사라졌다. 이때 소방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으하하하하! 꼴좋다. 설마 이런 날이 올 줄 몰랐겠지? 번개가 무서워 숨어 지낸 겁쟁이 주제에 큰소리는?”
소개는 바위 뒤에 숨어 있는 소장주 유현을 조롱한다.
“뭐라고?”
“못 들었니? 겁쟁아!”
“오냐. 이제 끝장을 내자. 쏴라!”
소장주는 말로는 당할 재간이 없다는 걸 알고는 공격 명령을 내린다.
쉬쉬쉬쉬쉬쉿...!
순간 수백 발의 화살이 사방에서 날아온다.
“이런!”
소개는 혼자의 힘으로 태양장의 무사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특히 번개를 맞은 이후로 더 강해져 쉽게 이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방주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크윽!”
사부를 안고 바닥을 구르며 화살을 피하지만 그 중 하나가 그의 왼쪽 어깨에 꽂힌다. 게다가 이젠 불화살까지 날아온다.
“주..주방으로 가자!”
방주가 정신을 차렸다. 그는 곧바로 상황 판단을 하고는 소리친다.
“알겠습니다.”
소개는 즉시 그를 안고 주방으로 몸을 날린다.
“지..지하!”
“그만 말하세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주방에는 커다란 지하공간이 있다. 제법 큰 주루라 물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이다. 소개는 즉시 뚜껑을 열고 그 안으로 뛰어든다. 그 전에 천정에 매달려 있는 끈을 잡아당긴다. 이때는 태양장 무사들이 모두 객잔 안으로 들어온 상태이다.
콰콰콰콰쾅쾅!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객잔 전체가 산산이 부셔지며 태양장의 무사들이 모두 죽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백 명 넘는 고수들이 한 번의 폭발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생존자는 소장주가 유일하다. 그는 늦게 들어오다 튕겨나가 도로 위를 뒹군다.
소장주도 무사하진 못하다. 왼쪽 다리가 무릎까지 잘려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멀리서 주위를 살피던 부하들이 달려와 혈도를 막긴 했지만 계속해서 피가 흐른다.
“크으으윽! 노..놈이 오기 전에 가자. 어서!”
소장주의 독려로 부하들이 그를 업고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개가 먼저 길을 막고 있다. 그의 등에도 방주가 업혀 있다.
“네 놈들도 죽고 싶냐?”
“아..아닙니다.”
“꺼져!”
부하들은 소장주를 내려놓고 곧바로 도주한다.
“아..안 돼! 나도 데려가야지! 살려줘!”
유현이 소리쳐보지만 부하들은 금방 시야에서 사라진다.
“쯧쯧, 그러게 평소에 잘 하지. 니가 부하들을 개, 돼지 취급하는데 저들이 널 살려주겠냐?
“사..살려다오! 사..살려주세요. 형님! 소방주님!”
소장주는 소개의 다리를 잡고 애원한다.
“으하하하하! 그래. 그게 바로 그거야. 그게 네 본 모습이지. 그 동안 네놈은 살려 달라 애원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니? 말해봐. 내가 그대로 해줄 테니까.”
“자..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소방주님, 다시는 안 그럴 게요. 정말입니다.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게요. 제발!”
“더러운 새끼, 그래도 다행이다. 가증스런 모습을 보니까 마음 편하게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지옥 가서도 그 동안 저지른 악행은 말하지 마라. 거기서도 쫓겨날지 모르니까. 잘 가라!”
소개는 소방주의 목을 꺾기 위해 머리에 손을 올린다. 이제 돌리기만 하면 끝이다.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막내야, 안 된다!”
호란이다. 그녀는 황급히 달려와 소개의 손을 잡는다.
“소개야, 그 아이는 안 된다.”
“누님, 이놈은 백 번, 천 번 찢어 죽여도 시원찮습니다. 낙양 분타 천여 명의 식솔이 저 놈 손에 모두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그 중에는 어린 아이와 여자들이 이백 명이 넘습니다. 이백 명!”
“그걸 왜 모르겠니? 하지만 이 아인 가려 언니의 후손이란다. 만약 네가 그 아이를 죽이면 정랑의 입장이 어떻게 되겠니?”
한 걸음 물러 서 있는 무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크흐흐흑!”
소개는 무진과 낙양분타 형제들의 죽음 사이에서 고민한다.
“제..제자야, 저놈은 죽일 가치조차 없는 놈이다. 우욱! 콜록! 콜록!”
방주는 바닥에 앉아서 작은 목소리라 말한다. 그는 내상 때문에 영춘왕부에서 당한 독이 재발해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린다.
“하지만 사부... 자꾸만 불에 탄 아이들 생각이... 크흐흐흐흑!”
“나라고 왜 저 놈을 찢어죽이고 싶지 않겠니?”
“사부!”
소개는 사부의 품에 안겨서 눈물을 흘린다.
“란! 소개의 뜻대로 하게 하시오. 나의 체면과 수백의 목숨과 비교할 순 없는 일이오.”
“하지만 가려 언니를 생각하면.....”
“란아! 난 괜찮단다. 저 놈은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해쳤다. 근데 나의 후손이라 해서 봐준다면 어찌 되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가려까지 나서자 호란은 할 수 없이 뒤로 물러난다. 반면에 눈물을 그친 소개도 여러 상황을 판단해서 한 발 물러선다.
“죄송합니다. 제 입장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보내기엔 동생들의 죽음이 너무 억울합니다.”
“소개야!”
“예, 누님.”
“목숨만 살려다오.”
“예. 누님.”
“퍼억!”
“크아악!”
“다시는 태양장 밖으로 나오지 마라. 개방의 눈에 뜨이는 순간 네 놈은 다신 세상을 보진 못할 것이다.”
소개는 소장주의 단전을 파괴하곤, 태양장의 무사들에게 던져버린다.
“미안하구나.”
호란이 다가가 그를 안아준다.
“아니에요. 누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으음!”
호란은 소개의 고통을 느끼곤 신음소릴 낸다.
“대형! 제가 모시겠습니다. 사부의 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그래. 조용한 곳으로 가자.”
방주는 벌써 태민의 등에 업혀 있다.
“어서 가자. 방주의 호흡이 고르지 못하다.”
“예, 이쪽입니다.”
이렇게 무진 일행은 소개를 따라 이동한다. 이들은 일주일 전에 금곡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 쌍마와 적마대군은 분타주와 함께 당분간 그곳에서 수련하기로 하고, 자혜선사는 아미파로 돌아갔다. 자미는 곤일의 손을 잡고 일행의 뒤를 따르고 있다.
낙양의 개방 비밀 숙소.
안전상의 문제로 분타와는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지금 지하 밀실에선 방주가 치료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약을 먹이거나 침을 놓는 건 아니다. 무진이 기를 통해서 몸속의 독기를 모두 빨아들이고 있다. 그렇게만 해도 처음 들어왔을 때에 비해 혈색도 좋아졌고, 맥박도 안정되었다. 지금은 편안하게 잠들어 있다.
“대형, 사부는 어떻습니까?”
“방주가 큰 기연을 얻었구나.”
“예. 자연무예로 번개를 받아들였습니다.”
번개를 맞았다는 말에 형제들이 모두 관심을 보인다.
“그랬구나. 번개의 강한 기운에 통로는 커졌지만, 반대로 잠복해 있던 독기가 발작했다. 독이 심장까지 퍼져 조금만 늦었어도 목숨을 잃을 뻔했다.”
“대형이 주신 해독약이 아니었으면 다시는 뵙지 못 할 뻔했습니다. 대형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쯧쯧, 형제간에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더냐?”
“죄..죄송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태민이 나선다. 그간의 일에 대해 궁금했던 모양이다.
“영춘왕부에 들어갔다가 봐서는 안 될 걸 보았습니다.”
“봐서는 안 될 거라니?”
“아무래도 태양장과 세심각, 그리고 영춘왕부의 관계가 수상합니다.”
“어떻게 말이냐?”
“세심각은 태양장에 의해서 조종되는 것 같고, 영춘왕부와 태양장도 한 사람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두 세력보다 더 강한 조직이 있다는 거야?”
“설마 구룡단은 아닐 테고, 그런 세력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형제들이 모두 나서 한 마디씩 한다.
“당시에 영춘왕부에는 동창을 포함해서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세력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세심각과 적마교, 그리고 구룡단도 태양장이 장악했으니 무림은 그렇게 정리되고, 황실은 영춘왕부가 동창과 군부를 장악했으니 명실상부 중원은 그들의 세상이군요.”
“문제는 그들을 조종하는 세력이 있고, 정체는 아직 오리무중이라는 거야.”
“영춘왕이나 태양장주를 잡아서 족치면 안 될까요?”
“그건 전면전을 의미한다. 만약 그렇게 해서 배후의 인물을 찾아서 제거할 수 있다면 좋지만, 알아내지도 못하고 놈이 숨어 버리면 그 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된다.”
“대형께선 처음부터 그 자가 숨을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아니, 배후의 인물이 그자일거란 건 어떻게 자신하십니까? 그 자가 살아 있다면 대형과 나이가 비슷할 텐데 말입니다.”
“으음! 나도 그 문제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먼저 배후의 인물이 초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영리하고, 치밀하며, 끈질긴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살아 있을 거라 믿는 이유는 당시에도 그는 나와 비교해서 실력이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 직접 해보진 않았지만 당시 우리가 상대를 죽이려 했다면 일주일은 싸워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놈은 음모를 꾸며서 날 해친 것이고.”
“그럼 대형을 해치고도 전면에 나서지 않은 이유는 뭔가요? 혹시 대형이 살아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라고 봐야 하나요?”
“그렇기도 하지만 지금도 중원을 지배하고 있으니 굳이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겠지.”
“으음!”
무진의 설명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굳이 그 놈을 찾으려 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놈이 숨기로 작정한다면 찾아내기가 어렵다. 그게 고민인 거란다.”
“그럼 놈들의 손발을 다 자르면 나타날까요?”
태민의 말하는 방법이 바로 지금 무진이 쓰고 있는 작전이다. 황실과 무림의 핵심세력들을 제거해서 배후 인물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전.
“현재로선 그 방법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 있으면 제안해도 좋다.”
“대형 생각에 그 자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내가 놈의 손발을 자르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놈이 하늘의 선택을 받지 않는 한 앞으로 살날이 많진 않을 거다. 놈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거지. 만약 손발을 제거하면 다시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더 이상 숨진 못할 거다.”
“그럼 손발을 자르지 못한 채 놈들이 숨어 버리면 곤란하겠군요.”
“그렇지. 그래서 지금 우리가 준비할 것은 최대한 우리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 놈들의 핵심 세력들을 제거하는 거야. 그럼 놈은 오판을 해서 우리와 전면전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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