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53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53
“당연하지. 내가 살아 있는 한 조금이라도 관련된 놈들은 모조리 껍질을 벗겨 씹어 먹을 것이다. 모조리!”
부르르르르....!
방주는 말을 하면서도 분노로 전신을 떤다. 세상에 이런 걸 보고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만, 두 사람은 남다르다. 원래 개방은 의리로 뭉친 조직이다. 비록 무공은 다른 대문파들에 비해 밀리지만 일단 머리 숫자가 많고, 단결력이 뛰어나 이들을 건드리는 자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개방은 일단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 특히 형제들을 괴롭히는 자들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 항복을 받고서야 물러난다. 그 전에는 아무리 많은 희생을 치러도 물러서지 않는다. 과거 개방과 관련된 수많은 혈사가 있었지만, 그 어떤 세력도 개방을 전면 공격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분타주입니다.”
소개는 시신 중에서 사지가 잘리고 불에 탄 분타주를 찾았다.
“이게 모두 태양장 놈들 짓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놈들 말고 누가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개자식들! 당장 장로회의를 소집하라. 당장!”
“불가능합니다.”
“왜?”
“전서구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뭐라고? 그럼 어떡하지?”
두 사람이 대책을 세우고 있을 때 바깥에서 호각소리가 들려온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정문을 지키던 제자들이 부는 소리다.
“놈들이 다시 온 모양입니다.”
“가자! 가서 자근자근 씹어 먹자!”
“안 됩니다. 이렇게 가서는 복수는커녕 개죽음 당하기 십상입니다.”
“지금 그런 말이 나오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복수를 해야지. 복수!”
방주는 분을 못 참고 길길이 날 뛴다.
“그러다 사부나 제가 당하기라도 하면 개방은 어떻게 합니까? 사부 대에서 개방을 말아먹었단 소릴 듣고 싶습니까?”
“그렇다고 이렇게 도망치란 말이냐?”
“왜 도망친다고 생각하세요? 사부도 잘 아시잖아요?”
“그..그렇지. 그게 있었지. 어서 가자!”
“저깁니다.”
두 사람은 뜻이 통했는지 중앙의 큰 건물로 달려간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비밀통로를 통해 나온 곳은 낙양 시내의 한 주루이다. 아마 개방이 운영하는 곳인가 보다.
“다들 어디 갔죠?”
“이곳도 포위된 모양이다.”
주루는 조용하다. 손님은 한 명도 없고, 주인과 점원들도 모습을 감췄다.
“으하하하하! 대장 거지 놈아, 니들은 완전히 포위됐다. 항복을 해도 소용없다. 오직 죽어서만 나갈 수 있다.”
태양장의 소장주인 유현이다.
“저 개자식이! 야, 금수저 새끼야! 애비가 아니면 숟가락질도 못할 놈이 어디서 개수작이야? 그렇게 자신 있으면 1:1로 한 판 뜨자.”
“내가 미쳤냐? 곧 죽을 놈이랑 싸우게?”
“그래서 네놈은 겁쟁이란 소릴 듣는 거야. 가서 엄마 젖 더 먹고 와라. 생기다 만 놈아!”
“그렇게 죽고 싶다면 당장 네 형제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보내주마. 불화살을 쏴라!”
유현은 즉시 명령을 내린다.
“잠깐!”
태양장의 무사들이 불화살을 준비하는 사이 방주가 끼어든다.
“후후, 거지 대장께서 한 말씀하시겠다고? 근데 어떡하나? 난 너랑 말 섞을 생각이 없는데.”
“니 말 대로 우린 죽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유나 알고 죽어야 하지 않겠냐?”
“하긴 그래야 염라대왕에게 설명할 수 있겠지. 네놈들이 죽어야 할 이유는 많지만 꼭 오늘이어야 하는 건 네놈이 대협이라고 부르는 그놈이 우리 사부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놈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놈들은 모조리 죽어야 한다.”
소장주 유현은 흑마정에 빨려 들어가 죽은 좌,우호법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다.
“으하하하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근데 넌 어떻게 살아남았냐? 혹시 사부들이 널 대신해서 죽은 건 아니겠지?”
“왜 아니겠소? 평소 하는 싸가지를 보면 그러고도 남을 놈이요.”
소개까지 나서면 유현을 자극한다.
“크크크큭! 곧 죽을 놈이 입만 살아가지고, 네놈들에게 불화살도 아깝다. 불을 질러라!”
유현의 지시에 따라서 사방에서 횃불이 날아온다.
“사부, 아무래도 오늘은 일진이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살다보면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는 법이지.”
“흐린 정도가 아니라 소나기가 하루 종일 내릴 것 같은 데요?”
“그럼 피해야지. 뚫고 나간다.”
방주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밖으로 몸을 날린다.
“사..사부!”
소개가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창문을 뚫고 나간다.
퍼퍼펑!
하지만 그는 곧바로 튕겨서 원위치로 돌아온다.
“사..사부!”
소개가 달려가 그의 몸을 붙잡는다.
“어찌된 일입니까?”
“세심각이다.”
“세심각이? 물러나세요. 제가 맡겠습니다.”
“혼자선 힘들 텐데?”
“사부는 아직 자연무예에 익숙지 않아서 안 됩니다.”
“지난번엔 했잖아?”
아마 중원대장군부에 들어갔다 들켰을 때의 일을 말하는 모양이다. 당시엔 방주의 중독증상 때문에 제자들과 소개가 손발을 맞춰서 세심각의 초능력자들을 처리했다.
“그땐 초능력자들이 자연무예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지만, 이젠 다를 겁니다.”
“그래도 너 혼자 하는 것보단 낫겠지.”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습니다. 중독증상이 재발할 수도 있고요.”
“그럼 사부란 인간이 제자가 죽어나가는 걸 보고만 있으란 말이냐?”
“으음! 알겠습니다. 대신 위험하면 물러나셔야 합니다.”
“알았다. 니가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걱정 마라.”
두 사람이 얘기하는 사이 객잔의 지붕이 무너지고, 기둥들이 모두 부러져 사방으로 날아다닌다.
“이..이런 열 명이나 왔어? 자식들이 작심을 했군.”
소개의 말대로 초능력자들이 원을 그리며 공중에 떠 있다.
“열 명이면 어떻고, 백 명이면 어떠냐? 죽을 각오로 싸우면 되지.”
“사부! 각오는 좋지만 절대 먼저 공격하면 안 됩니다.”
“알고 있다. 기운을 받아서 너한테 넘겨줄 테니까.”
“후후후! 비까지 올 모양이군. 하늘도 네놈들의 죽음을 기뻐하는 구나.”
다시 태양장의 소장주가 나선다.
“바보야, 아님 멍청한 거냐? 그도 아니면 뻔뻔한 거냐? 네놈이 어디서 하늘을 들먹거려? 그 동안의 인연을 생각해서 말하는데, 번개가 치면 가능하면 멀리 도망쳐라. 네놈이 그 동안 저지른 패악을 조금이라도 알면 하늘도 결코 가만있을 않을 테니까.”
“건방진 새끼, 끝까지 잘났다고 주둥이를 놀리네. 뭐해? 빨리 처리하지 않고? 빨리 하란 말이다!”
유현은 소개에게 당한 걸 초능력자들에게 푼다.
“싸가지하고는, 야, 이 새끼야. 저들은 니 아비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이다. 근데 야라니? 못 배운 것들은 어딜 가나 표가 나요.”
“제자야, 그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한 거란다. 대체 태양장 놈들은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걸까?”
“자기 외엔 모두 개, 돼지로 보이니 무슨 교육이 되고, 인성이 되겠어요? 그러다 결국 저렇게 지 새끼들이 개, 돼지가 되는 거죠.”
“으아아아! 당장 공격해. 당장! 안 그러면 니들 각주에게 얘기해서 모두 잘라버리라고 한다.”
“저거 봐요? 저런 걸 갑질이라고 하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지 부하처럼 보이는, 일종의 병이죠. 죽을 때까지 고칠 수 없는 불치병.”
“걱정 마라. 저러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개, 돼지로 본다는 걸 깨달을 날이 올 테니까.”
“그게 바로 오늘이죠.”
우우우우웅!
두 사람이 소장주를 놀리는 사이 초능력자들이 공격 준비를 마친다. 그들의 공격이 늦은 건 모든 기운이 하늘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우르르르릉!
열 명의 초능력이 하늘을 움직이고 있다.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내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멀리서 천둥에 이어 번개도 천천히 다가온다.
“사부, 놈들이 번개까지 이용할 모양입니다. 저도 번개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땐 멀리 물러나세요.”
“알았다. 온다!”
콰아아아앙!
열 명이 한꺼번에 내뿜는 기운이 집중되자 두 사람은 전력을 다해서 막는다.
“뭐하느냐? 한 방에 날려버려! 한 방에!”
뒤에서 유현은 계속해서 소릴 지른다. 그 때문인지 초능력자들은 더 강하게 몰아붙인다.
쿠아아앙!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되자 방주와 소방주가 밀려난다. 이때 소개가 소리친다.
“사부, 지금입니다.”
“가자!”
방주는 왼손을, 소개는 오른손을 내밀어 꽉 잡는다. 순간 세 번째의 기운이 밀려온다. 이 상태에서 두 사람은 내력을 갈무리 하고 초능력자들의 기운을 모두 받아들인다.
우우우우우웅!
이번에는 소리가 다르다. 두 번째까진 두 기운이 서로 부딪혔지만, 이번에는 방주를 통해서 세심각 무사들의 기운이 흡수된 것이다.
“뭐..뭐하는 거야? 밀어붙여! 그대로 밀어버리란 말이다.”
소방주는 아무 것도 모르고 소리만 질러댄다. 모르기는 초능력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의 말대로 계속해서 기운을 쏟아 붙는다.
“사부! 전력을 다하세요. 단 한 번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당연하지. 수백의 맑은 영혼들을 위해서라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가즈아!”
방주는 혼신의 힘을 다해 초능력자들의 기운을 당기고, 소개는 그걸 자신의 전신으로 회전시키며 다시 방주에게로 돌려보낸다. 그럼 방주는 그 힘으로 다시 상대의 기운을 빨아들인다. 이렇게 되자 초능력자들은 자신들의 기운으로 자신의 기운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그건 금방 깨닫는다.
“우우욱!”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말했잖아? 지난번 중원대장군부에서 저놈들에게 당했다고.”
“이 상태론 어렵다. 번개를 이용하자.”
“하나로 뭉쳐야 한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초능력자들은 한쪽 손을 하늘로 올려 기운을 받아들인다. 그러자 천둥 번개가 점차 이들을 향해 다가온다.
“피..피하라!”
소장주와 태양장의 무사들은 겁을 먹고 황급히 뒤로 물러난다. 근데 정작 가까이 와서는 번개가 일어나지 않는다. 뭔가 커다란 힘을 모으는 것 같은 분위기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자 초능력자들이 소리를 지른다.
“이야아아아압!”
콰아아아앙!
기합소리에 이어 엄청나게 큰 번개가 방주와 소방주를 향해 내리친다.
찌지지지직...!
크아아아악!
두 사람은 번개를 정통으로 맞고 쓰러진다. 방주는 옷이 반쯤 탄 채로 정신을 잃었고, 소개는 간신히 일어선다.
“사..사부! 이..이런 내상이 심하다!”
맥이 제멋대로 뛸 정도로 불규칙하고, 입에선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이미 주화입마의 초기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이 상태로 오래 두면 위험하다. 반대로 살아날 수만 있다면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번개의 힘에 의해서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통로, 즉 혈도가 몇 배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번개의 기운을 받기 전의 소개만 해졌다. 물론 소개 역시 그전보다 배는 더 커졌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