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37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37
“크아악!”
하지만 그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뒤로 날아간다. 다리를 향해 움직이던 조충의 오른발이 위로 꺾이며 얼굴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무림인이면 실력으로 말해야지, 어디서 나이를 거들먹거리고 지랄이야?”
퍽! 퍽!
이어서 조충과 왕명은 옆에 있는 두 장로를 공격한다.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장로들이 두 사람을 피하며 그냥 몸으로 끌어안아버린 것이다.
“우욱!”
“여..영감, 지금 뭐하는 거야?”
“낄낄낄, 요즘 입맛이 없어서 말이야.”
“모처럼 배를 채워보련다.”
“영감탱이들, 흡성대공(吸性大功)은 마공인 거 몰라?”
조충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꼼짝을 못한다.
“마공? 우린 그런 거 모른다. 죽이고 싶을 땐 죽여야 직성이 풀리거든.”
“이렇게 말이야.”
장로들은 기운을 움직여서 두 사람의 내공을 빨아들인다. 손을 사용하지 않고 전신을 통해 받아들인다.
“우우욱!”
“크으윽!”
왕명과 조충은 내력으로 막아보지만 소용이 없다. 기본적으로 내력의 차이도 나지만 흡성대공을 전문적으로 익혔기 때문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우우웁!”
“울컥!”
결국 왕명 형제는 견디지 못하고 피를 토한다.
“크크크, 코흘리개들을 상대하느라 힘을 뺐더니 출출하군. 빨리 끝내지?”
“그게 좋겠지? 이엽!”
장로들은 한 방에 끝내려고 기운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하지만 왕명과 조충의 저항도 만만찮다. 더구나 조충의 부하들까지 달라붙어서 내력을 보탠다. 명색이 묵사회의 핵심인물들이라 내력이 만만찮다. 이렇게 되자 장로들이 잠시 주춤거린다.
“자네도 붙어. 어서!”
“아..알았네.”
지금까지 구경만 하던 장로까지 합세를 해서 흡성대공을 극성까지 끌어올린다. 순식간에 왕명 일행은 위기로 내몰린다.
‘너흰 날 믿느냐?’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회주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습니까?’
‘저도 마찬가집니다.’
‘전 회주와 죽기로 각오했습니다.’
‘좋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내가 신호를 보내면 모든 내력을 버려라.’
‘버리다뇨?’
‘모두 저 늙은이들에게 줘버리란 말이다.’
‘예에?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너희도 자연무예를 알지?’
‘예. 회주님이 하시는 걸 본 적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내력을 보내서 놈들의 내력을 모두 끌어오잔 말씀이죠?’
‘그래. 바로 그거다. 대신 기운이 돌아올 땐 몇 배 더 강할 거야. 걱정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라. 알았지?’
‘예!’
조충의 전음에 부하들은 모두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형님!”
“알았다. 가자!”
“지금이다!”
왕명의 신호를 보내자 조충이 소리친다. 동시에 다섯 사람의 모든 기운이 세 명의 태양장 장로들의 몸속으로 빠져나간다. 아니, 몰려나간다는 말이 정확할 거다.
“우악!”
“우우욱!”
“허억! 이..이게 뭐야? 아악!”
장로들은 돌발 사태에 놀라 몸을 빼려하지만 꼼짝도 않는다. 조금 전까진 자신들이 왕명 형제를 잡고 있었지만, 지금은 반대가 됐다. 당황한 나머지 내력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게 빌미가 돼서 밀려들어오는 왕명 일행의 기운이 장로들의 기운을 장악해서 그들의 몸속을 휘젓고 다닌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더니 장로들의 단전과 전신에 흩어져 있던 모든 내공을 끌어 모아 왕명 일행의 몸속으로 빠져나간다.
“아..안 돼!”
“마..막아야 돼!”
“이야아압!”
장로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내력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막질 못한다. 오히려 힘을 쓰면 쓸수록 더 상대방의 힘이 강해진다.
“으음!”
조충의 부하들도 엄청난 기운이 밀려들어오자 당황한다. 하지만 조충이 주의를 줬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인다.
“크아아아악!”
왕명 형제의 함정에 빠진 장로들이 자신의 모든 내공을 사용하는 바람에 단 한 번에 끝나버린다. 장로들의 몸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그렇게 허무하게 줄어든다.
“정신 차리고, 그 자리에서 운기조식을 시작해라. 무리하지 말고 기운을 안정시키는데 주력해라.”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시간은 우리가 벌 테니까 염려 말고. 시작해라.”
“예!”
조충의 명에 따라 부하들은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는다.
“형님!”
“그래. 지금부터 진짜 싸움이다.”
왕명과 조충은 부하들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자리를 잡는다. 진지전(陣地戰)으로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뜻이다. 그만큼 주위의 조건이 좋지 않다. 사람의 숫자는 배로 불어나 적어도 이백 명은 넘어 보인다. 게다가 모두 고수들이다.
물론 이 정도는 해 볼만 하다. 다만 조충의 부하들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그만큼 불리한 것이다. 그건 곧바로 현실로 드러난다. 사방에서 수백 개의 화살이 날아온다. 태양장의 무사들이다.
쉬이이이이잇...! 화르르르!
두 사람은 상의를 벗어서 회전하며 화살을 막아낸다. 다행히 첫 번째 화살은 모두 막아낸다.
“괴물 같은 놈들! 한꺼번에 모두 쏴라!”
태양장의 책임자는 장로들이 목숨을 잃자 극도로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댄다. 그건 태양장의 무사들로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화살을 장전한다.
“형님, 위기를 벗어나려면 자연무예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힘을 모두 보여줄 순 없다.”
“알겠습니다.”
왕명과 조충은 자신들의 살 방법을 안다. 자연무예로 주위의 기운을 이용하면 최소한 방어는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자신들의 실력을 모두 드러내야 한다. 그 때 무진이 자신들에게 신신당부한 얘기가 떠오른 것이다.
< 배후의 인물을 끌어내려면 실력을 감춰야 한다. >
두 사람은 상의에 꽂힌 화살을 뽑아 상대방을 향해 던지기 시작한다. 수십 대의 화살이 열을 지어 순서대로 태양장의 무사들을 향해 날아간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화살들이 날아온다.
“크윽!”
“우욱!”
간신히 조충의 부하들을 막는 덴 성공한다. 대신 두 사람의 몸엔 여러 개의 화살이 박혀 있다.
파파파팟!
조충은 신속하게 화살을 뽑은 다음 혈도를 막는다. 하지만 왕명의 상황은 심상치가 않다. 두 개의 화살은 뽑았지만, 한 개가 그대로 박혀 있다. 가슴 중앙에 꽂혀 건드리지 못한 것이다. 위치와 각도로 봐선 심장을 뚫었을 가능성이 높다.
뚝!
왕명은 양쪽에 튀어나온 화살촉과 날개 부분을 꺾은 다음 앞으로 나선다.
“지금부터 생사무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리고 감사합니다.”
조충은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왕명은 자신들이 아니었으면 이곳에 있지도, 이런 위기에 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상황으론 살아남기도 어렵다.
“그런 얘긴 여길 벗어난 다음에 해라. 내가 먼저 치고 나갈 테니, 애들을 맡아라.”
“예, 형님!”
다행히 그 사이 조충의 부하들이 깨어났다.
“가자!”
왕명은 가장 전력이 약한 영춘왕부의 관병들을 향해 달려간다.
퍼퍼퍼퍽....!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관병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그 덕분에 일단 포위망은 뚫는다. 하지만 그 앞을 다시 태양장의 무사들이 막고 있다.
“형님, 저랑 위치를 바꾸시죠?”
조충이 즉시 앞으로 나선다. 하지만 왕명은 피를 토하며 움직이지 못한다.
“형님을 맡아라.”
“예, 회주!”
부하들이 급히 왕명을 부축하고 뒤로 빠진다.
“연막탄을 던져라. 어서!”
조충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하들이 사방으로 연막탄을 던진다. 순식간에 주위는 허연 연기로 뒤덮여 일행은 조금 더 쉽게 빠져나간다. 이때부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거의 반나절의 도주 끝에 왕명 일행은 묵사회의 비밀장소로 몸을 숨긴다. 하지만 왕명은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고, 조충도 전신의 크고 작은 상처들 때문에 운신을 못한다. 그건 부하들도 마찬가지다. 그 중 한 명은 옆구리의 검상으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위독하다. 조충이 무진이 만든 영단을 먹이지 않았다면 벌써 세상을 하직했을 것이다.
“대형께 연락을 하고, 최대한 빨리 의원을 구해오너라.”
“하지만 회주님!”
“안다. 어렵다는 걸. 하지만 이대로 형님을 보낼 순 없다. 절대로!”
조충도 이미 주위 일대가 완전히 포위됐다는 걸 알고 있다. 비밀장소가 지하에 있기 망정이지, 만약 지상으로 올라가면 십 할 들킬 수밖에 없다. 그건 천하제일정보조직인 묵사회라도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엔 그에겐 왕명이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다. 만약 자신이 운신만 할 수 있다면 벌써 달려 나갔을 것이다.
“예.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호들갑 떨지 마라.”
그 사이 왕명이 정신을 차린다.
“혀..형님!”
“움직이지 마세요.”
왕명이 움직이려 하자 조충과 추개가 극구 말린다.
“괜찮다. 걱정마라.”
“심장을 관통했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합니까?”
“다행히 심장은 피한 것 같다.”
“저..정말입니까?”
“충이 넌 날 먼저 보내고 싶은 모양이구나.”
“예에? 그..그게 아니라. 그래도 그렇지. 화살이 가슴을 관통했는데 어떻게 괜찮단 말입니까?”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고, 일단 여길 벗어나자.”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형께 연락하지 마라. 걱정하신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우린 아직 영혼단의 효능을 잘 모르고 있다. 나도 지금 놀라고 있다.”
“아!”
“으음!”
그제야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다. 조충은 왕명이 부상을 당하자 가장 먼저 무진이 형제들에게 나눠준 영단을 먹였다. 그게 주효했고, 한숨을 돌리게 된 것이다.
잠시 후.
바깥으로 나갔던 부하가 그는 다시 들어온다.
“회주님!”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바깥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자세히 말해봐라.”
“중원의 빛입니다.”
“중원의 빛?”
“예. 그들이 장주님을 찾아온 모양입니다.”
“이..이런! 큰일 났다.”
조충은 혹시라도 ‘중원의 빛’마저 위기로 몰릴까봐 걱정한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들이야 말로 천군만마가 아닙니까?”
“일단 가보자. 아니다. 니들은 여기에 있어라.”
그렇게 말하곤 조충은 혼자 밖으로 나간다. 그는 지금 혼신의 힘을 다해 움직이고 있다.
“왜 저러지?”
“글쎄?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부하들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린다.
‘시간 없다. 형님을 모시고 나와라.’
잠시 후, 조충의 전음이 들려오고 부하들은 왕명을 업고 밖으로 나간다.
바깥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아무도 없다. 태양장이나 세심각은 물론 중원의 빛도 안 보인다. 심지어 싸운 흔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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