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31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31
중원대장군부
명실상부한 100만 대군의 총지휘부다. 그만큼 경비도 엄격하고, 고수들도 많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지금처럼 한밤중엔 경계가 더욱 심하다. 거짓말 좀 보태서 열 걸음 옮길 때마다 무장 병사들이 지키고 있을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원대장군부의 심장으로 숨어든 자들이 있다.
“사부, 너무 조용하지 않습니까?”
“그러게 말이다. 분명히 군부의 핵심 인물들이 이곳으로 집결하고 있단 보고를 받았다.”
이들은 개방의 방주 마영생과 소방주 소개이다.
“혹시 빠져나간 건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수백 년을 중원대장군부로 사용된 곳이기 때문에 비밀통로는 여러 곳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방주는 말을 하면서 주위를 살핀다.
“군발이들은 배운 대로 한다. 절대 이유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으음! 그럼 어딘가 밀실에서 회합을 하고 있겠군요.”
“저기다!”
방주는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킨다. 두 사람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곳은 철저하게 진법의 원리에 의해서 건물들이 세워졌다.”
“으음! 오행의 원리상 저기가 가장 중심부군요.”
“그렇지.”
“두 번째는 요?”
“저기만 유독 경계가 소홀하다는 것이다.”
“그게 이유가 될 수가 있나요?”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고 해야 하나? 이것도 두 가지 중의 하나다. 정말 지킬 게 없거나, 경계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한 놈들이 숨어 있거나.”
“진법 상 중심부라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굳이 따진다면 한 가지 더 있다.”
“혹시 벽체가 다른 곳보다 더 두꺼운 것 때문인가요?”
“짜식!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잘 봤다. 저 건물은 다른 곳보다 벽체가 배는 더 두껍다. 그만큼 숨길 게 많다는 뜻이지.”
“그럼 가봐야죠.”
“잠깐!”
소개는 먼저 움직이다 방주의 목소리에 멈칫한다.
“왜요?”
“저길 봐라.”
방주는 엉뚱한 곳을 가리킨다. 그들이 말한 건물과는 반대편에 있는 건물에서 수십 명의 사내들이 나오고 있다. 특이한 건 모두 군복을 입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장수라도 평소엔 군복을 잘 입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업무 시간이 끝난 한밤중이다.
“완전히 헛짚었군요.”
“그건 아닐 거다.”
“으음! 밀실에 통로가 따로 있군요. 그건 그렇고, 회합이 너무 일찍 끝난 거 아닌가요?”
“이유가 있겠지.”
“으음! 중원대장군을 만나기 전에 장군들끼리 먼저 의견을 조율한 모양입니다.”
소개의 말대로 일행 중엔 중원대장군이 보이지 않는다. 중원대장군부 정도면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가지의 보고서가 올라올 것이다. 그래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전 회의를 통해서 내용을 줄인다.
“그런 건 업무시간에 해야지.”
“이상하긴 하네요.”
“우리도 가보자.”
장군들이 한 군데로 향하자 방주도 따라 움직인다. 근데 이번에는 소개가 그의 옷자락을 잡는다.
“사부! 오늘은 이 정도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왜?”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습니다.”
“느낌이?”
“예.”
“오늘 회합이 중요할 것 같은데...”
“다른 방법으로 알아봐야죠.”
“세작들을 이용할 생각이냐?”
“묵사회도 있고, 아마 금의위도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그래. 나도 찜찜하긴 하다.”
후퇴를 결정하자 두 사람은 신속하게 중원대장군부를 빠져나온다. 근데 두 사람이 중원대장군부를 빠져나와 제법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골목을 걸어갈 때다. 주위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어라? 사부!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중원대장군부 주변은 늦은 밤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인데 인적이 뚝 끊겼다.
“비상조명탄을 쏴라! 어서!”
“예!”
사부의 명에 따라 소개가 품속에서 작은 물체를 꺼내 던진다.
펑! 쉬이이이익!
비상조명탄이 공중에서 터지면서 밝은 불빛을 만들어낸다. 개방의 비상연락방식으로 꽤 먼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피해라!”
방주는 비상조명탄을 보고 있는 소개의 허리를 잡고 바닥을 구르며 담벼락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긴다.
파파파파팟!
수십 개의 암기가 방금 두 사람이 서 있던 곳에 박힌다. 동시에 전면에 이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나타난다.
‘한밤중에 복면이라... 사부, 이들이 누군가요?’
‘너도 잘 아는 자들이다.’
‘동창?’
‘그래.’
‘근데 복면은 뭔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니?’
‘복면을 했다는 건 신분을 속이려는 거고, 그건 뭔가 찔리는 게 있단 말인데... 그게 뭘까요?’
‘일단 생각을 좀 해보자. 우리가 오늘 본 거 중에 이상한 게 있었더냐?’
‘오늘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며칠 전에 있었죠?’
‘영춘왕부 말이냐?’
두 사람은 영춘왕부에서 황실 인사들과 태양장의 핵심인물들이 난잡한 연회를 벌이는 걸 봤다. 그땐 안전하게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들킨 모양이다.
‘예.’
‘그렇다고 동창이 나서냐?’
‘영춘왕부가 황실을 장악했다는 증거죠.’
‘너도 알다시피 영춘왕은 황족이 아니다. 전임 황제가 외세를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왕위를 내린 것이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쯧쯧, 성질머리 하고는. 거지들은 성질이 급하면 안 된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찬밥이라도 한 덩어리 얻어먹는 법이란다.’
‘사부도 참, 지금 그게 아니잖아요?’
‘그런가? 뭔 얘기를 했지? 그래. 영춘왕이 황족이 아닌데도 어떻게 황실을 장악했을까?’
‘저도 그게 이상해요. 어젠 황족은 물론이고, 무림의 대표격인 태양장의 인물들도 참석했어요. 그건 영춘왕이 관부, 즉 황실과 무림을 동시에 장악했다는 걸 의미해요.’
‘자...잠깐! 그 말은 동창은 물론이고, 태양장도 우릴 공격할 수 있단 뜻이잖니?’
‘그렇군요.’
‘엿 됐다! 안 그래도 태양장이 우릴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게요. 이런 걸 똥 밟았다고 하는 거겠죠?’
‘지금부터 최대한 빨리 튄다.’
‘어디로 요?’
‘어디긴 어디냐? 무 대협이 있는 곳이지.’
‘사부, 늦었어요.’
‘이..이런! 피해라!’
두 사람은 다시 바닥을로 구르며 겉옷을 벗어 앞을 막는다.
따따따땅땅땅....!
수백 개의 화살이 주위에 떨어지고, 그 중 일부는 두 사람의 겉옷에 꽂힌다.
“니미! 좆 될 뻔했네.”
방주는 육두문자를 쓰면서 투덜댄다. 그도 그럴 것이 화살이 그의 겉옷을 뚫고 얼굴 코앞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그와 소개는 지금까진 조심하느라 전음으로만 대화했다. 헌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벽을 타고 움직여라!”
그는 소리를 지르더니 품속에서 둥근 물체를 여러 개 꺼내 사방으로 던진다. 그러자 주위가 하얀 연기로 뒤덮인다. 안 그래도 한밤중인데 연기까지 번지자 옆 사람도 알아볼 수가 없다.
“막아라! 놈들이 도주한다!”
동창과 태양장의 무사들은 방주의 말대로 담벼락을 중심으로 막는다. 하지만 방주와 소개는 도로의 중앙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잔머리로 위기를 넘긴 것이다. 그렇게 얼마를 지났을까? 갑자기 방주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우욱!”
“사..사부!”
“울컥!”
방주가 시커먼 피를 토한다.
“이걸 드세요.”
소개는 신속하게 품속에서 단환을 하나 꺼내 방주에게 건넨다.
“이게 뭐냐?”
“대형이 위급할 때 쓰라고 주신 겁니다. 모든 독을 해독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위기는 넘길 수 있을 겁니다. 어서 드세요.”
“넌 안 먹어도 되니?”
“전 괜찮아요. 만독불침은 아니지만 백독불침 정도는 됩니다.”
“정말 무섭다.”
“뭐가요?”
“무 대협 말이다.”
“아, 예.”
“불과 2년 만에,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2년도 안 됐지. 근데 어떻게 동생들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사부는 대형이 누군지 모르세요?”
“그걸 왜 모르겠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부는 난데 한 일이 없잖니?”
마영생의 목소리엔 힘이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부가 기초를 다지지 않았으면 대형이 아니라 그 할애비라도 이렇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밭이 좋아야 튼튼한 놈들이 생산되죠.”
“그치! 그치?”
“당연하죠. 안 그래도 대형께서 절 가르치실 때마다 사부를 칭찬하셨어요. 기초를 잘 가르쳤다고.”
“저..정말이냐?”
“그럼요. 제 형님들은 정확하게 두 부류로 나눠져요.”
“두 부류?”
“예. 한 부류는 명이 형님이나 일초 형님처럼 이미 일가를 이루신 분이고, 아님 태민이 형님이나 일이 형님처럼 가문이나 집안의 무공을 익히신 분들이죠. 근데 나이도 제일 어린 제가 사부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어찌 그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어요?”
“하하하하! 역시 내가 제자 하난 잘 가르쳤단 말씀이야.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맙다.”
“나 참! 난 진지하게 말하는데 사부가 웃어버리면 어떡해요?”
“그래. 나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만 가자! 놈들이 금방 쫓아 올 거다.”
“아닙니다. 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어째서?”
“대형께 한 가지 진법을 배웠습니다.”
“진법?”
“예! 비상조명탄을 쐈으니까 이 각 정도만 버티면 될 겁니다.”
소개는 주위에 흩어진 돌멩이와 나무 조각을 담벼락 근처에 일정한 간격으로 놓더니 내력을 불어넣는다. 그러자 주위의 기운이 몰려들어 작은 강기막을 형성한다.
“우웃! 어떻게 한 거냐?”
방주도 그걸 느꼈는지 깜짝 놀란다.
“자연무예입니다. 주변의 기운을 움직여서 진법과 일체화시키는 겁니다.”
“허허허!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볼 줄은 몰랐다.”
“사부도 곧 배우게 될 겁니다.”
“나도?”
“당연하죠. 대형도 반대하진 않으실 거예요.”
“이 나이에 새로운 무공은 무슨...”
“알았어요. 그럼 없던 일로 하죠 뭐.”
“야! 그렇다고 바로 그렇게 말하니? 한 번은 더 권해야지.”
“히히히! 농담이에요. 농담. 근데 몸은 어떠세요?”
“어라? 그러고 보니 멀쩡하네.”
“생각보다 효과가 좋군요. 이것도 가지고 계세요.”
소개는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사부의 품속에 넣어준다. 같은 해독약이다.
“그럼 넌 어떡하고?”
“전 백독불침이기도 하지만, 호란 누님에게 부탁하면 또 얻을 수 있어요.”
“정말이냐?”
“걱정 마세요. 사부보다 먼저 죽진 않을 테니까요.”
“설마 나보고 일찍 죽으란 말은 아니지?”
“그러고 싶으세요?”
“이놈아, 장가도 못 가보고 죽으면 억울하지.”
“그 다음엔 자식도 낳아야 하고, 또 시집 장가도 보내야 하니 장수하셔야겠습니다. 덕분에 저도 오래 살고.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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