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23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23
‘결국 황실은 겉으론 정상적이지만, 실질적으론 제 3의 세력에 의해서 완전히 장악된 셈이군요.’
‘내 생각대로면 그럴 거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흔들어 보면 반응이 나오지 않겠소?’
‘돈줄을 끊으면 놈들이 나설 거란 말씀이군요.’
‘그렇소.’
‘오늘 여러 가지 재미난 걸 많이 보게 되네요.’
‘반가사유상이 마음에 든 모양이오.’
‘가지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에요.’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소?’
‘저길 보세요. 지금껏 여러 불상을 봤지만 저렇게 실눈을 뜨고 고뇌하는 모습은 처음이에요. 너무 가슴에 와 닿아요.’
‘가지진 못해도 가끔 볼 수는 있을 거요.’
‘어떻게 요?’
‘소림이나 큰 사찰에 기증해서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거요. 그럼 자주 볼 수 있지 않겠소?’
‘야, 그렇게 되면 좋겠다. 부탁드려요.’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잠깐!”
무진은 앞으로 나서며 동창의 영주를 가로막는다.
“뭐하는 놈이냐? 누군데 감히 동창의 일을 방해하느냐?”
영주는 불쾌한 표정으로 무진을 노려본다.
“놈이라... 그거 참 마음에 드는 호칭이군. 후후후!”
무진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영주에게 한 발 더 다가선다.
“그런 네놈은 누군데 감히 사사로운 장소에 동창을 동원하느냐?”
무진의 말은 동창은 원래 황실과 관련된 사건에만 관여할 수 있다는 규칙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그건... 이 사건은 황실에 불법적인 자금이 흘러들어간다는 제보가 있어서...”
“그래서 폐하께 보고를 드리고, 장관이 명령을 내렸느냐?”
“그..그건...”
영주는 계속된 무진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한다.
“내가 알기로 장관의 명령은 문서로 하달된다. 사실이냐?”
“그..그렇습니다.”
영주가 대답하자 무진이 손을 내민다. 장관 명령서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왕야, 어찌 하오리까?’
영주는 천의왕에게 전음을 보내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신통찮다.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 자 누군데 그러십니까?’
‘나도 잘 모른다. 다만 그는 황룡패를 가지고 있다.’
‘예에? 화..황룡패라고요?’
‘오늘은 이 정도로 하는 게 좋겠다.’
‘장관께는 뭐라 보고 드려야 할까요?’
‘있는 그대로 전해라.’
‘알겠사옵니다.’
“왜, 잃어버렸나?”
“그게 아니라 구두로만 받은 명령이라....”
“호오! 자네가 곤란하게 됐구먼. 이런 경우 동창은 어떻게 처리하는가? 부하를 보내서 명령서를 받아오면 되겠군. 일각도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무진은 계속 영주를 몰아세운다.
“아..아닙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무슨 소린가? 어쩌면 역모의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사건인데, 덮으면 안 되지.”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제가 성급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보강 수사를 한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이런 일에 전문인 금의위를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
“아..안됩니다. 이건 동창의 사건입니다. 반드시 동창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나중에 다시 오시겠다?”
“아닙니다. 이번 사건은 이것으로 종결하겠습니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왕야, 결례가 많았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영주는 천의왕에게 인사를 하곤 바로 몸을 돌린다.
“그러시게. 나도 오늘은 일찍 돌아가야겠네.”
천의왕은 무진에게 목례를 하곤 뒤따라 사라진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무진도 목례를 한 다음 주호에게 시선을 돌린다.
“주인장!”
“예, 전하!”
주호 역시 무진을 전하라고 부른다. 무진이 황룡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주의 말에 의하면 이 물건은 불법적으로 중원에 들어온 것 같은데, 사실이오?”
“으음! 죄송하지만 사실입니다.”
“결국 장물이란 말인데, 이런 경우는 물품을 어떻게 처리하오? 그냥 부셔버리나? 아님, 내다 버리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어디 빈민구제단체에 기부하거나.... 참! 그것도 좋겠다.”
“어떻게 말입니까?”
“이건 불상이니까 소림사나 큰 사찰에 기증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고, 이백만 냥은 빈민구제단체에 기부해서 지난 번 황하의 범람으로 생긴 십만 이재민을 돕는 거요. 황족의 공동 명의로 말이오.”
“그..그것도 괜찮겠군요. 영주!”
주인장은 문을 나서려는 영주를 부른다.
“예!”
“방금 전하께서 말씀하신 거 들었소?”
“예에? 예. 들었습니다. 장관께는 그렇게 보고 드리겠습니다.”
영주는 그 말만 남기고 곧바로 줄행랑을 친다.
“후후후,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배는 채우고 가야지. 음식도 많이 준비했는데.”
무진은 방안 구석에 차려진 음식들을 가리키며 혼잣말을 한다.
“주인장!”
“예, 전하!”
“뒤처리를 부탁하오. 방금 말했듯이 각각 소림사와 빈민구제단체에 반가사유상과 돈을 보내는데 황족들의 공동명의로 해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휴우! 그나마 다행이다. 저 인간이 다 차지했으면 난 죽음 목숨인데...’
주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리고 말이오. 저들을 좀 불러주시오. 우리 집사람이 외국인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해서 말이오. 저기가 좋겠네. 다들 출출할 테니 음식도 넣어 주시고.”
“예, 전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주호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갑자기 무진이 강한 어조로 말한다.
‘으으으으! 이 숨 막히는 분위기는 뭐지? 저 자가 내뿜는 기운인가?’
“저..전하!”
“분명히 말하지만 더 이상의 장난은 용납하지 않는다. 알았느냐?”
“예에? 예. 알겠사옵니다.”
“후후후, 하긴 자네 같은 유약한 사내가 위험한 일을 할 리가 없지. 안 그래?”
“무..물론입니다.”
‘뭐야? 이놈이 내 정체를 안다는 거야? 서..설마?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주호는 무진의 입가에 번진 미소를 보며 몸서리친다. 그걸 보는 순간 전신이 발가벗겨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시 후.
밀실에는 일단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무진 부부와 세외오천의 사람들이다. 주호도 구석 자리에 앉아 있다.
“내가 여러분들을 보고자 한 것은 며칠 전 황실에서 발생한 불미스런 일 때문입니다.”
무진은 서두를 제법 거창하게 꺼낸다.
“그래서요?”
철기맹의 복장을 한 중년인이 불만스런 목소리로 되묻는다. 순간 주호의 눈이 반짝이며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간다. 아마도 자신이 남아 있어봤자 좋은 일이 없을 거라 판단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외오천의 대표자들은 돈만 날리고 뇌물을 효과를 보지 못해 상당히 흥분한 상태이다. 여차하면 무진에게 화풀이를 할 수 있다. 주호는 그걸 걱정하는 것이다.
“후후후! 대단하군. 요즘 철기맹이 대뢰음사와 손잡고 세외오천을 통일한다며 설친다는 소문이 많던데... 제법 세력을 많이 키운 모양입니다.”
하지만 도발은 오히려 무진이 먼저 한다. 막 문을 나서려던 주호는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무진을 쳐다본다.
‘어린놈이 완전히 겁을 상실했군. 철기맹의 부맹주가 저런 말을 듣고 결코 가만있진 않을 텐데. 이럴 땐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는 문을 닫는 순간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밀실에서 벗어난다.
“그대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고작 동창 장관의 부름에도 콧수염이 휘날리도록 달려온 놈이 감히 내게 눈을 부라려? 그러고도 여기서 살아나가길 바라느냐?”
웅! 웅! 웅! 웅! ....
순간 밀실은 무진과 철기맹의 부맹주가 발산한 기운으로 인해 터지기 일보직전의 상황이 된다. 이상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철기맹 부맹주의 표정이 일그러진다는 점이다.
‘이게 뭐야? 기운이 급속도록 빠져나가고 있다. 우우욱! 이..이러면 안 돼. 아아악!’
무진을 제압하기 위해 기운을 내보냈다. 근데 그 뒤로 기운을 회수하질 못한다. 회수는 고사하고 기운이 계속해서 빠져나고 있다. 이 상황에서도 무진은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다.
“마지막 경고다. 한 번만 더 내가 얘기하는 데 끼어들면 그땐 껍데기만 남게 될 거다. 알았어?”
다행히 무진의 말이 끝나자 기운도 더 이상 빠져나가지 않는다.
“아, 예! 휴우!”
철기맹의 부맹주는 금방 공손해진다.
“대뢰음사는 천년신궁과 화해를 했느냐?”
“그..그걸 어떻게 아시오?”
대뢰음사의 대표자인 붉은색 장삼을 입은 승려가 화들짝 놀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왜, 내가 알면 안 돼?”
“그게 아니라. 저희 대뢰음사와 천년신궁은 그 문제에 관한한 함구하기로 약조를 했습니다. 만약 한쪽이 약속을 어기면 막대한 위약금을 물리기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거야? 화해를 한 거야, 만 거야! 왜? 말하기 싫어? 그럼 하지 마!”
무진은 짜증을 낸다.
“화해는 했어요. 하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게 있습니다. 그래서 공표를 못하고 있답니다.”
천년신궁의 대표자는 말을 하면서 대뢰음사의 대표자의 눈치를 본다.
“지랄을 해요. 지랄을. 명색이 한 조직의 대표자라는 것들이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 무슨 놈의 협상을 하겠냐? 됐고. 지금부터 너희들을 황세손 살해 용의자로 조사하겠다. 주호야!”
“.....?”
“이 자식! 아니 이 년은 어딜 간 거야? 야! 당장 가서 주호를 잡아와. 어서!”
무진은 주호가 보이지 않자 소리치며 그의 부하들을 닦달한다.
“예에? 예. 알겠습니다.”
“변태 같은 년. 사내 옷을 입는다고 계집이 사내가 되냐? 할망구도 그렇게 생각해?”
“예에? 무슨 말씀이신지...”
북해빙궁의 부궁주는 영문을 몰라 눈만 멀뚱거리고 있다.
“쯧쯧, 그렇게 눈치가 없으니 여태 시집을 못 갔지? 너도 됐고. 영감탱이는 알겠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무진은 혈곡의 부곡주까지 걸고넘어진다.
철기맹의 부맹주 바투
천년신궁의 부궁주 화우선
대뢰음사의 대장로 간지즈
북해빙궁의 부궁주 천려
혈곡의 부곡주 허충
“그거야 주호란 놈의 행동이나 목소리가 워낙 계집 같아서...”
“바로 그거요. 사내놈이 목소리는 가늘고, 몸매도 호리낭창하고, 게다가 동작도 항상 비비꼬고, 목소리는 어떻소? 완전히 앵앵이요. 앵앵이. 그래도 그건 양반이오. 내 목소리가 조금 커지니까 꼬리를 내리며 도망치는 것 좀 보시오. 내 이 놈이 오면 그냥 확!”
무진은 말을 하다 말고는 문 쪽을 유심히 살핀다.
“미홍, 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오?”
오라는 주호는 안 보이고 미홍이 얼굴을 배꼼 내민다.
“저야 전하를 뵙기 위해 들렀지요.”
“그래. 왔으니까 일단 들어오시오. 안 그래도 황세손 살해 용의자로 다섯을 잡아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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