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이름으로 – 47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형제의 이름으로 – 47
“4호!”
가까이 있던 3호가 황급히 달려온다. 하지만 그 역시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목이 날아 가버린다. 두 사람이 모두 죽자 검은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하지만 4호가 죽은 후에 그의 검이 3호의 목을 자른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1호와 2호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걸 생각해내지 못한다.
“네놈 짓이냐?”
뒤늦게 상황 판단을 한 1호가 왕명을 노려본다.
“글쎄?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 봐.”
“물러나!”
갑자기 2호가 소리를 지르며 뒤로 몸을 날린다.
“.....?”
1호는 잠시 머뭇거리다 한 발 늦게 움직인다. 그게 문제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운이 그의 몸을 휘감더니 그를 뒤로 날려 보낸다.
“크악!”
1호는 먼저 움직인 2호와 부딪혀 바닥에 떨어진다.
“누..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우리가 모르는 자가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면 저놈들이 우리보다 강하단 거야?”
2호의 말에 1호가 강력 반발한다.
“한심한 놈들, 니들이 천하제일고수냐? 아니면 세심각에선 니들보다 잘 나가는 놈이 없어?”
“.....?”
왕문의 물음에 두 사람은 말을 못한다.
“그런 주제에 다른 사람들이 니들보다 강한 건 인정 못하냐?”
“그래도 이건 아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니들은 나 하나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랬지. 그래서 니들은 200년 전에도 무림을 지배하지 못한 거다. 우리 개개인은 니들보다 못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한 몸이 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지금처럼.”
“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냐?”
“어떻게 200년 전의 일을 알고 있느냐?”
1호와 2호는 아직도 왕명 형제에 대해서 잘 모르는 눈치다.
“우물은 목마른 놈이 파는 거다. 그건 니가 알아보고. 자, 그럼 결판을 내볼까?”
“자..잠깐!”
왕명이 움직이자 1호가 손을 들어 제지한다.
“너흰 분명히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가 됐다는 게 무슨 뜻이냐?”
“후후, 혹시 창의성이란 말 들어봤니?”
“창의성?”
“그래. 너희와 우리의 차이는 바로 창의성이 있고 없고 다. 우리가 배운 무공은 한 가지를 배워서 수많은 무공에 응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지만, 니들은 하나를 배우면 오직 그것만 흉내 내지. 니들은 합공을 어떤 행동, 즉 손이라도 잡아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다. 마음만 통해도 합공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왕명은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 흔들어댄다. 동시에 동생들도 같은 동작을 취한다.
스르르르릉....!
순간 주위의 기운이 움직이며 두 사람을 감싼다.
“크아악!”
“아악!”
가볍게 천천히 움직이던 기운이 두 사람을 옥죄며 뒤로 날려버린다.
“마..말도 안 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놈들이 다시 기운을 모으고 있소.”
1호가 넋을 놓고 앉아 있자 2호가 손을 잡고 몸을 날린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도주를 선택한 것이다.
“형님, 놈들이 도주합니다.”
“어서 쫓아라. 어서!”
조충과 왕명의 고함소리가 이어진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1,2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크윽!”
“푸하!”
“콜록! 콜록!”
1,2호가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다면 상황은 역전됐을 거다. 왕명 일행은 소매로 피를 닦으며 간신히 일어난다. 세 사람 다 아직 자연무예가 익숙지 못하고, 특히 조충은 초보단계라 무리하게 사용할 수가 없다. 한 번만 더 펼쳤으면 조충은 기운이 역류해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다.
“놈들이 다시 올지 모른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자.”
왕명은 조충을 업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들이 떠나고 불과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서 1호와 2호가 다시 나타난다.
“이것 보시오. 핏자국이오. 놈들의 속임수에 우리가 당한 거요.”
“이런, 쳐 죽일 놈들!”
“내상 때문에 얼마 가지 못했을 거요.”
“안 돼! 놈들을 놓치는 건 용서받을 수 있지만, 신분이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소?”
“그렇다고 놈들을 그냥 보낼 순 없소.”
“전서구를 보내서 놈들을 추적하게 하고, 우린 이 정도로 합시다.
“음! 좋소.”
2호가 손을 들자 잠시 후, 뒤쪽에서 전서구 한 마리가 허공을 맴돌다 어디론가 날아간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날까봐 추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다.
“대체 어디서 저런 놈이 나타났을까? 짐작 가는 게 없소?”
“난들 어찌 알겠소? 아니, 개개인이야 알고 있지. 왕명이란 놈은 청운장의 장주이고, 또 한 놈은 묵사회의 회주, 그리고 꼬맹이 놈은 개방의 소방주이니까.”
“문제는 저놈들이 형제란 거 아니오?”
“자..잠깐! 최근에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개방의 소방주란 놈이 무 대협이란 놈과 잘 어울린다고 하던데...”
“그럼 그 무진인가 하는 놈이 저들의 수장이란 말이오?”
“그건 확신할 순 없소. 일단 돌아가서 자세히 알아봅시다.”
“이것만으로도 질책은 면할 수 있을 거요.”
두 사람은 왕명 형제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에 만족하고 몸을 돌린다.
최수련.
한때 황실의 실력자였던 진천왕 최공의 무남독녀. 운명장의 장주이자 중원제일상단인 황금상단주의 수양딸이기도 하다. 당연히 후계자이다. 무진의 형제가 됐으며, 현재 운명장을 정리하고, 황금상단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
그녀는 진천왕부에서 총관 노릇을 하는 운고의 연락을 받고 정발과 함께 고향으로 가는 중이다. 정발은 한때 황실제일고수로 무림에도 꽤 이름이 난 인물이다.
“얼마나 남았어요?”
“니가 더 잘 알면서 뭘 물어보냐? 아니다. 반나절만 더 가면 도착할 거야.”
수련의 물음에 무뚝뚝하게 대답하던 정발이 다시 설명을 한다. 두 사람은 지금 말을 타고 가는 중이다.
“오라버닌 기분이 어떠세요?”
“나야 뭐. 너처럼 부모나 애인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고향을 찾는 것 같아서 기대도 되고 기분이 묘하네. 설렌다고 해야 되나?”
두 사람은 한 형제가 되면서 호칭부터 달라졌다. 수련은 정발을 오라버니라 부른다. 진천왕부의 총관인 운고와 정발은 나이가 같아 형제이면서 친구가 되었다.
“저도 한 번 물어봐 주세요.”
“그래. 넌 기분이 어떠냐?”
“전 후회하고 있어요.”
“후회?”
“예.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이모를 생각하니까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불쌍하고 또 고마운 분이에요.”
이모란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자신을 키워준 유모를 말한다. 엄마의 먼 친척이라 그냥 이모라고 부른다.
“부럽다. 난 엄마 얼굴도 모르는데.”
“미안해요. 제가 너무 투정을 부렸죠?”
“아니다. 우리 나이가 되면 그런 감정도 없어진단다.”
“근데 꼭 이렇게 기분이 꿀꿀할 때 시비 거는 놈들이 있단 말씀이야.
“잘 됐지 뭐. 화풀이 할 대상이 생겼으니까.”
“잘못하면 우리가 화풀이 대상이 되겠는데요?”
“태양장인가?”
이들의 말대로 약 십여 장 앞쪽의 세 갈레 길을 일단의 사람들이 막고 있다. 복장으로 봐선 태양장의 무사들이 분명하다.
“우릴 꼭 죽이고 싶은 모양이에요.”
“우리가 아니고 너다.”
“저요?”
“정확히 말하면 진천왕부겠지.”
“으음! 드디어 시작됐군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니면 너나 나나 결혼도 못해보고 가는 수가 있다.”
“그건 안 되죠. 이럇!”
수련은 말 고비를 움켜쥐고 달린다.
“타핫!”
정발은 뒤따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왼쪽 숲속으로 몸을 날린다.
“크아악!”
먼저 정면 돌파를 시도하던 수련이 몸을 날리자마자 태양장의 무사 두 명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진다. 수련의 발에 맞은 것이다. 나머지 세 명의 무사들은 그녀가 들고 있는 짧은 쌍검에 맞아 비명도 못 지르고 땅바닥을 뒹군다.
“히이이잉!”
다섯 명이 모두 쓰러지자 그제야 말이 도착한다. 이건 수련이 말보다 더 빠르게 날아왔단 뜻이다.
“으음, 혹시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잘 먹히네.”
수련은 무진으로부터 공간이동술(空間移動術)을 배웠다. 아직은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가볍게 펼쳤고, 태양장의 무사들은 그녀의 신법이 빠른 것으로 판단한다.
“계집의 움직임을 살펴라!”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오자 이번에는 열 명의 무사들이 달려든다.
“생..사..무!”
수련은 기다리지 않고 먼저 움직인다. 그녀는 태양장의 무사들 사이로 파고들면서 생사무를 펼친다. 다른 점이라면 그녀는 쌍검을 주먹 대신 사용한다는 것이다.
“컥!”
“쾌액!”
주먹 대용이라 자르기보단 찌르기를 주로 하고, 관절은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반대로 꺾어지기 때문에 태양장의 무사들은 전혀 대응을 못한다. 그녀의 생사무는 제법 수준급이다. 지난 반 년 동안 공간이동술과 그것만 수련했다.
“무..물러나라!”
뒤쪽에서 황급히 퇴각 명령을 내리지만 이미 늦었다. 열 명 중 여덟 명의 목과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나머지 두 명도 발에 거시기를 맞고 비실대며 쓰러지기 직전이다.
“어딜 가려고?”
“허억! 어..어떻게...”
마지막으로 남은 책임자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련이 그의 코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우리가 이 길로 올 걸 어떻게 알았니?”
“.....”
“모르겠다고? 그럼 할 수 없지 뭐.”
“크악!”
수련은 주저하지 않고 검으로 그의 목을 그어버린다.
“푸아아아!”
목이 바닥에 떨어지고, 피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이렇게 수련은 생각보다 쉽게 주변을 정리한다. 그에 비해 숲으로 들어간 정발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씨발, 완전 개망신이다. 개망신.”
그는 성급하게 덤비다가 위기에 몰려 있다. 그 때문에 화가 잔뜩 났다. 처음 열 명을 해치울 때까진 괜찮았다. 근데 그 뒤부터는 태양장의 무사들이 모두 나무와 바위에 몸을 숨더니 암기를 날리고 있다.
“이크!”
“허억!”
그는 공격은 고사하고 피하기에 급급하다.
화르르르...!
“그러게 성질을 좀 줄이라고 했잖아요?”
수련이다. 그녀는 자신의 몫을 끝내고 달려와 숲에 불을 지른다.
“침착하게 행동하면 정발이 아니지.”
“하긴 그러네요.”
상황이 급반전된다. 불이 나면서 숨어 있던 태양장의 무사들이 튀어나오고 정발은 그들을 하나씩 찾아서 제거한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화르르르르!
갑자기 그의 뒤쪽에서도 불이 나면서 두 사람은 그 사이에 갇히게 된다.
“화살이다!”
쉬이이잇...!
슈아아앙...!
사방에서 수백 개의 화살이 날아온다.
파팟!
수련이 그의 손을 잡고 공간이동을 한다.
“크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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