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이름으로 – 46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형제의 이름으로 – 46
“이기어검술!”
왕명이 검을 뽑아서 하늘로 날리자 조충과 소개도 같은 방법으로 검을 던진다.
“크아악!”
“커억!”
공중에서 연달아 비명소리가 들리며 거조의 목이 떨어져 나간다.
“퇴..퇴각하라!”
“방향을 돌려라. 어서!”
하늘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들이 되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창이 날아와 몸을 뚫고 지나간다.
“으윽!”
“크악!”
쿠웅! 쿵! ...
연이은 비명소리에 이어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다. 거조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다. 결국 수십 마리가 날아와 불과 두, 세 마리밖에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 왕명 형제와 부하들의 멋진 조직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특히 제자들이 어둠 속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세 사람이 신속하게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한 덕분이다.
“또 나타날까요?”
“그건 알 수 없다. 온다면 두 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할 거다. 그보다 형님께 전서구부터 보내라.”
“알겠습니다. 당장 1호를 날려라.”
“이미 날렸습니다.”
“근데 형님.”
소개가 부르자 왕명이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후후, 하고픈 말이 있는 모양이구나.”
“예. 다른 형님들을 어쩌고 혼자 다니시는 겁니까?”
다른 형님들이란 청운장의 총관인 양문과 개방의 고진분타주인 추개, 그리고 한 때 무림십대고수였던 황성을 말한다. 이들은 최근까지 같이 움직였다.
“음! 안 그래도 형님께 보고를 드렸는데, 최근 황실의 움직임이 물밑에서 급변하고 있다.”
“제가 듣기론 평화롭다고 하던데...”
“겉으로 봐선 그렇다. 하지만 큰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도 몇 군데로 나눠서 움직이고 있다.”
“위험하진 않을까요?”
“그래서 걱정이다. 내가 당했으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일단 우리 문제를 해결한 다음 생각해보시죠.”
“후후후, 근데 그게 쉽지 않구나.”
“벌써 왔단 말입니까?”
“잘 들어라.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다.”
“상대가 그 정도인가요?”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쫓던 자들인 것 같다.”
“세심각의 핵심 인물들이군요.”
“그건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자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살 길은 한 가지뿐이다.”
“그게 무엇입니까?”
“전력을 다해서 북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보다 대형이 주신 서찰을 읽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참, 그게 있었지.”
조충은 황급히 세 번째 서찰을 꺼낸다.
< 필사즉생(必死卽生), 죽으려 하면 살 것이다. >
“무슨 뜻일까요?”
“으음!”
모두 잠시 고민에 빠진다.
“뭐가 죽는 것이고,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사는 길은 최대한 여길 벗어나는 것이고, 죽는 건 여기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지.”
“그럼 반대로 하면 된다는 거네요.”
“놈들과 당당이 맞서 싸우란 건가?”
“상대해보면 알겠지만, 지금까지 상대한 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어느 정도입니까?”
“한 명의 힘이 아까 만난 네 명의 초능력자를 합친 정도라고 보면 된다.”
“으음!”
“무림에 그런 자들이 있었다니....”
조충의 표정에 긴장감이 넘친다. 그에 비해 소개는 약간 다르다. 오히려 전투력에 불타는 표정이다.
“형님, 이러면 어떨까요?”
그의 말에 형들이 동시에 쳐다본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니?”
“말해 봐라.”
“형님들도 그 동안 생사무를 수련하셨죠?”
“그랬지.”
소개는 생사무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
“하지만 난 배운 지가 반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조충의 말대로 그는 배운 지가 오래되지 않아 아직은 기초단계이다.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동안 우리 모두 생사무를 배우면서 자연무예를 사용하는 걸 자제해왔다. 만약 이번에 합공으로 자연무예를 펼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합공으로 요?”
합공이란 말은 소개도 처음 듣는다.
“합공을 하면 그릇이 커지고, 그만큼 더 많은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가 있다.”
“그래서 제가 초보인 것도 큰 문제가 안 될 수가 있단 말씀이군요.”
“그래. 놈들이 거의 다 왔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배운 대로만 해보자.”
“그런 거라면 대형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필사즉생이란 게 바로 이런 뜻이었군요.”
이때 네 사람이 어둠 속에서 왕명 형제가 있는 공터에 내려선다.
“후후후, 내 눈으로 능공허도(凌空虛道)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저런 걸 하늘을 걸어 다닌다는 거군요.”
왕명과 조충은 금방 긴장을 풀고 웃으며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의 말처럼 전신을 검은 천으로 뒤집어 쓴 자들이 허공을 걸어 내려온다.
“하하하하하! 겁먹고 도망칠 줄 알았는데 제법이구나.”
“기다리고 있었다면 믿겠니?”
“꼴에 허세까지? 하긴 무림에선 청운장주라고 하면 제법 말발이 먹히지. 하지만 우리에겐 안 통한다. 그게 네 명줄을 끊게 된다는 것도 잊지 마라.”
“누구 명줄이 끊길지는 두고 봐야지.”
“호오! 큰소리치는 걸 보니 단단한 동아줄을 잡은 모양이구나.”
“당연하지. 동생들이 날 도와주기 위해 왔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느냐?”
“으하하하하! 저 꼬맹이들로 우릴 상대하겠다고?”
“후후후, 니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형제들은 하나로 뭉치면 일당백의 힘이 생기거든. 하긴 나 하나가 무서워서 넷이나 온 놈들이니 어찌 그걸 알겠느냐?”
“뭐라고?”
“건방진 놈!”
복면인들은 화를 내며 당장이라도 공격할 기세다. 왕명의 심리전이 먹혀 든 것이다. 상대로 하여금 가능하면 1:1로 싸우자는 말을 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찮다.
“어린놈이 격장지계가 제법이구나. 하지만 우린 네 놈과 오랫동안 놀아 줄만큼 한가하지가 않다.”
“후후후! 이젠 됐소. 우리도 필요한 만큼 시간은 충분히 벌었으니까.”
왕명의 말대로 동생들은 자연무예를 합공으로 펼치는 데 필요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그럼 시작해볼까?”
“가능하면 한꺼번에 덤비시오.”
“무슨 뜻이냐?”
“우리는 내력도 딸리고 여러 번에 걸쳐서 싸울 여력이 없소. 가능하면 한 번에 승부를 가릴 생각이오.”
“그러니까 너희 셋과 우리 넷이 같이 붙자는 말이냐?”
“그렇소. 1:1이 싫다니 그렇게 해야지. 우리야 말로 시간을 끌 생각도 시간도 없소. 깔끔하니 좋잖소?”
“후후후, 무슨 꼼순지는 모르지만, 네놈 소원대로 해주마.”
지금껏 가슴에 1자 적혀 있는 복면인의 말이다. 근데 막상 공격을 하려는 순간 3번 복면인이 제지하고 나선다.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소. 우리 중 한 명만 나서도 될 놈들을 굳이 다 덤빈다는 건 자존심의 문제요.”
“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있소?”
말투로 봐선 이들은 번호 순서가 있을 뿐 계급 차이는 없는 모양이다.
“이번은 4호와 내가 처리하리다.”
“그게 좋을 것 같소. 다음 임무는 1,2호가 처리하시오.”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군.”
“2호가 찬성하는데 나 혼자 반대할 이유가 없지. 그럼 빨리 처리하시오.”
결국 4명 모두가 의견을 일치한다. 첫 공격은 3, 4호가 한다는 것이다.
“빨리 처리하고 말 게 뭐 있겠소? 사실 나 혼자 해도 될 일인데.... 야압!”
3호는 얘기를 하다 말고는 공중으로 몸을 날린다. 동시에 4호는 자세를 낮춰서 왕명 일행을 향해 달려온다. 상, 하로 나눠서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그들은 전혀 병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손에는 투명한 검이 쥐어져 있다. 기운으로 만든 검이다.
“형님! 물러나세요.”
소개가 황급히 소리친다. 그런데도 왕명은 그 자리에 지키고 있다. 대신 옆구리에서 자신의 애검을 뽑는다.
“고(高)..려(麗)..혼(魂)!”
그는 전력을 다해서 두 개의 투명검을 쳐낸다.
땅! 땅!
맑고 청아한 금속성이 연속으로 들리며 왕명의 몸은 공중으로 뛰어올라 멀리 뒤로 튕겨나간다.
“크윽!”
바닥에 떨어져 열 바퀴나 뒹군 왕명은 간신히 일어선다. 그의 입가엔 피가 흐르고, 검으로 간신히 버티고 서 있다.
“헐헐헐! 네놈은 고려의 후손이었구나. 왕씨 성을 사용하는 걸 보고 눈치 챘어야 하는데.”
“안 그래도 고려혼은 꼭 상대해보고 싶었다. 성의를 봐서 잠시 목숨은 연장시켜주마.”
3호는 왕명은 더 이상 건드리지 않고, 조충과 소개를 향해 몸을 돌린다.
이번에는 왕명의 동생들이 먼저 움직인다. 둘 다 병기를 들고 3호를 향해 몸을 날린다. 조충은 검을 높이 들고, 소개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타구봉으로 땅바닥을 긁으면서 달린다.
“차앗!”
이때 돌발 변수가 생긴다. 3호를 향해 달리던 두 사람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4호에게 달려든 것이다.
따땅땅!
연속으로 두 번의 금속음이 들려온다. 분명 4호는 예상을 못했다. 왕명이 쓰러지자 나머지는 3호에게 맡겨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낸다. 두 걸음 물러났을 뿐이지 전혀 충격을 받은 것 같지 않다.
그에 비해 두 사람은 모두 왕명이 쓰러진 곳까지 튕겨나간다.
“흐흐흐, 어린놈들이 잔머리는 수준급이구나. 하지만 고작 그런 실력으론 우리 옷자락도 건드리기 못한다.”
4호는 자신의 대응에 스스로 만족하는지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이상하지 않소?”
“뭐가?”
“고려출신 저 놈도 그렇고, 저 꼬맹이들도 무림에선 꽤 이름이 있다고 들었는데 너무 싱겁게 끝나서 말이오.”
“듣고 보니 그러네. 꼼수를 썼나?”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1호는 애써 무시해 버린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해? 당장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그의 말대로 왕명과 동생들은 모두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옷도 너덜너덜하다. 누가 봐도 패배자의 모습이다.
“빨리 처리하시오. 난 가서 쉬고 싶소.”
2호는 3호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재촉한다. 왕명 일행을 빨리 죽이라는 것이다.
“내가 처리하지.”
대신 4호가 나선다. 그는 천천히 왕명 일행을 향해 걸어간다. 그 사이 왕명과 형제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둥켜안고 서 있다.
“후후후, 키가 비슷해서 단칼에 보낼 수 있겠군.”
4호는 검을 공중으로 띄우더니 왕명 일행을 향해 날려 보낸다. 아니, 날려 보내려는 순간 갑자기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오더니 공중에 떠 있던 검이 날아와 자신의 목을 날려버린다. 전혀 예상 못한 일이라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4호가 날린 검은 일반 병기가 아니라 기로 만든 것이라 본인의 의지 없인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은 자결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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