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이름으로 – 9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형제의 이름으로 – 9
“쌍독?”
“그렇습니다.”
“그럼 이것도 그 연장선상이란 건데, 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그야 저 놈들을 조사해보면 알겠죠.”
진홍자가 손짓하자 무당 제자가 복면인 한 명을 끌고 온다. 여러 군데 상처를 입었지만 죽진 않았다.
“벗겨라!”
얼굴은 멀쩡하다. 삼십 대의 평범한 인물이다.
“소속이 어디냐?”
고허자는 검을 뽑으려다 간신히 참고는 질문을 한다.
“후후후. 살려줄 거냐? 그럼 말하지.”
복면인은 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여유를 부린다.
“약속한다. 살려주마.”
“후후후! 나로 인해 다섯 명의 제자가 죽었는데도?”
“으음! 약속은 지킨다.”
“약속을 지킨다고? 점창의 고허자가?”
“날 아느냐?”
“잘은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다. 네 놈이 장로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는지.”
“뭐..뭐라고? 이 자식이!”
고허자는 흥분한 나머지 검으로 복면인의 목을 날려버린다.
“사..사숙!”
곤일이 달려오지만 이미 복면인의 머리는 바닥을 구르고 있다.
“다른 놈을 데려오너라.”
“모두 죽었습니다.”
“뭔 소리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럿 있었는데... 지..지독한 놈들.”
고허자는 복면인들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모두 입가에 시커먼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기 때문이다. 독단을 삼킨 것이다.
“놈들에 대해서 알아낸 게 있나?”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짐작?”
“예. 그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정파를 이간질 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간질?”
“예. 소림으로 향하는 우리를 싸우게 해서 영웅맹을 만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아니면 설사 만들어지더라도 편 가름을 해서 무력화시키려는 것이거나.”
‘으음!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누가 이런 일을 꾸몄냐는 건데.... 이놈이 말하려는 건 분명 태양장일 것이다. 근데 장문 사형은 태양장이 영웅맹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아니면 혹시 상대하기 껄끄러운 소림이나 무당을 배척하려는 걸까? 그럼 우린 왜 공격하는 거야? 에이, 씨발! 나도 모르겠다.’
진홍자의 설명에 고허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그건 저보다는 제 사질이 잘 알고 있을 듯합니다.”
진홍자는 태민에게 화살을 돌린다.
“상대가 정파와 적대적인 세력이라면 영웅맹을 만드는 걸 방해하거나 그 과정을 통해서 정파를 무력화시키는 일을 할 겁니다.”
“그건 방금 말한 내용이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태민의 설명에 고허자가 까칠하게 나온다. 그래도 태민은 담담하게 계속 말한다.
“예. 여기서 전제가 되는 건 놈들의 힘이 정파보다 더 강하다는 겁니다.”
“으음!”
순간 고허자의 인상이 굳어진다.
“이런 때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입니다.”
“하나?”
“예. 단결입니다. 정파가 하나의 세력으로 단결할 수 있다면 그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뿔뿔이 흩어지면 각개격파 당해서 결국은 모두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대동단결이라....”
‘으음! 틀린 말이 아니다. 만약 영웅맹을 결성한다는 이유로 각 문파의 핵심세력을 소림으로 모이게 하고는 모두 제압해버리면.... 각 문파는 급격히 세력이 약해져 지리멸렬 될 것이다.’
고허자는 태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으음! 좋네. 제법 그럴듯한 분석일세. 자, 그럼 우린 곧바로 소림으로 갈 걸세. 무당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저희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시 저희랑 같이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그게 좋겠지?”
“이런 일이 또 생기면 각자 대응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럼 출발하세.”
“그리 하지요.”
이렇게 무당과 점창 두 문파는 소림까지 같이 움직이게 된다.
“여러분에겐 여러 가지로 신세를 졌소. 점창을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바이오.”
고허자는 무진 일행에게 정중하게 인사한다. 처음 봤을 때와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불과 몇 시진 전만 해도 무시하더니 이젠 마치 상전을 대하듯이 한다. 무진은 따로 답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며 인사한다.
“그럼 저흰 먼저 떠나겠습니다. 여러분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진홍자도 정중하게 인사한다.
‘민아! 너희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지만 마음은 항상 같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라.’
진홍자는 사질인 태민에게 전음을 남기는 것을 끝으로 몸을 돌린다. 고허자 역시 사질인 곤일을 물끄러미 보더니 뒤따른다.
“그냥 보내도 될까요?”
“내가 놈들이라면 공격하진 않을 거다.”
“이유가 뭡니까?”
“그럼 그럴수록 두 문파가 더 가까워질 테니까.”
“으음!”
“그렇겠군요.”
무진의 설명에 태민은 물론 형제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걸 끝으로 무진 일행도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후.
모두가 떠난 공터에 두 사람이 나타난다. 태양장의 소장주와 한 여인이다. 여인은 마치 사창가의 창기들처럼 온 몸을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하고 있다. 그게 오히려 그녀의 미모를 가리고 천박하게 만든다.
콰앙! 우지끈! 쿠우웅!
소장주는 주먹으로 옆에 있는 아름드리나무를 부러뜨린다.
“개자식! 저 새끼만큼은 반드시 내손으로 죽인다. 반드시!”
소장주는 무진에 대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호호호! 소장님도 참, 제가 있는데 뭘 걱정하세요? 제게 맡겨 주시면 깔끔하게 처리해드릴게요.”
“니가?”
“예. 제가 누구예요? 화요랑(花妖狼)이에요. 화요랑! 지금껏 제게 넘어오지 않은 사내놈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제 손에 죽은 소림 땡중만 해도 열 명이 넘는답니다. 그중에는 오십 년을 오로지 수련만 한 인간도 있어요.”
화요랑.
무림제일요녀라고 알려진 여인이다. 주안술을 익혀 겉보기엔 20대 같지만 실제 나이는 육십이 넘는다. 나이만 많은 게 아니라 상당히 미인이다. 그래서 지금껏 알려진 것만 해도 그녀의 품에서 세상을 하직한 무림 고수가 무려 이백여 명이 넘는다. 모두 흡혈마공에 내공을 빼앗겨 미이라 상태로 죽었다.
그래서 이십 년 전에 무림맹에 의해 무림공적으로 몰려 무림에서 사라졌다. 헌데 정파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태양장의 소장주와 같이 나타난 것이다.
“하긴 무림제일요녀인 네가 나선다면 안 넘어올 놈이 없겠지. 오늘 밤엔 네 몸에 향긋한 피 냄새가 나겠구나.”
“호호호! 기대하셔도 좋아요.”
“근데 넌 저놈이 누군지는 아니?”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소장주님이 저놈을 싫어하고, 제가 죽일 능력이 있으면 그만이죠.”
화요랑은 무진을 가볍게 생각한다. 이건 지피지기면 백전백성이란 무인의 기본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이것이 어떤 결과 가져올 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긴 누굴 원망하겠느냐? 너한테 걸린 저놈이 재수가 없는 거지. 하하하하!”
“호호호! 전 언제나 소장주님 곁에서 있고 싶어요.”
화요랑은 소장주의 품속에 안기면서 자연스럽게 옷을 벗는다. 아마 세상에 옷 벗는 기술로 친다면 이 여인을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냥 한 걸음 움직였을 뿐인데 무려 세 겹의 옷이 저절로 벗겨진다.
“하하하! 세상에 방중술의 대가인 널 싫어할 사내놈이 어딨겠니? 어디 한 번 보자. 지난번보다 가슴이 훨씬 더 탱탱해졌구나.”
“계곡은 훨씬 더 좁고 깊어졌답니다. 아이잉! 그렇다고 바로 진입하시면 어떡해요?”
소장주가 어떻게 했는지 화요랑이 몸을 비비며 소장주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벌건 대낮에 아무도 없는 숲속 공터에서 뒹구는 맛이라. 흐흐흐,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니 마음껏 즐겨보자. 허억! 벌써 시작이냐? 우웃! 내가 이런 맛에 널 찾는다.”
품속에서 소장주의 몸을 주무르던 화요랑이 천천히 밑으로 내려와 무릎을 꿇고 본격적인 봉사를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정사는 한 동안 숲속에 뜨거운 열기와 교성을 남긴다.
한 달 정도의 여행 끝에 무진 일행은 산동성의 제남(齊南)에 도착한다. 그들은 소개와의 약속 때문에 가장 먼저 개방의 분타을 찾는다. 근데 입구에서 묘한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보통 개방의 거지들은 분타에서 수련을 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싸움 장면은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이건 좀 다른 것 같다. 한 사람이 단검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 수십 명이 그걸 빼앗기 위해서 공격하는 형국이다.
“요즘은 거지들이 수련을 살벌하게 하네.”
“마치 실전 같은 데요?”
“거지들이 워낙 많아서 한, 두 명쯤 죽는 건 문제가 안 되는 건가?”
일초와 태운의 말처럼 거지들은 벌써 여러 명이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다. 모두 한 사람이 가진 단검에 당한 것이다.
“천개(賤丐), 이 개자식아! 계속 이럴 거야? 벌써 다섯이 다쳤다. 분타주가 오시면 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죽은 목숨이다.”
“웃기고 있네. 니들이 날 죽이고 빼앗으려고 했잖아? 누가 들으면 내가 지들을 공격한 줄 알겠네. 좆 까는 소리 말고 비켜! 난 오늘로 거지 생활 청산이다.”
거지들은 지금 단검 때문에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다.
“너 그게 무슨 물건인 줄은 알고 그러는 거야?”
“고금제일인의 유물이란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럼 그걸 니가 계속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중원에서 난다 긴다 하는 놈들은 죄다 널 죽이려고 할 텐데.”
“상관없다. 여기에 숨겨진 비밀만 풀면 그깟 놈들 수백 명이 달려들어도 문제없다.”
“그래서 개방과 등지겠다고?”
“지긋지긋하다. 속된 말로 이걸 대문파에 넘겨도 황금 수만 냥은 받을 수 있다. 더 이상 난 거지가 아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럼 맞아도 되겠네.”
“소..소방주!”
언제 나타났는지 소개가 버티고 서 있다.
“너 같은 놈은 졸라 맞아야 돼!”
“크악!”
소개는 주먹으로 천개의 얼굴을 때려 쓰러뜨린 다음 무자비하게 구타한다. 얼마나 맞았는지 나중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한다. 그런데도 소개는 분을 못 참고 계속 구타한다. 구경하던 제자들은 그 기세에 눌려서 한 명도 나서지 못한다.
“그만해라.”
할 수 없이 무진이 나선다.
“대형!”
“그만하면 됐다. 모두가 내 잘못이다.”
무진이 다소 무거운 목소리로 말한다.
“아닙니다. 부하들을 잘못 다스린 제 잘못입니다.”
“그걸 보여줄 수 있겠느냐?”
“예. 여기...”
소개는 천개가 쥐고 있던 단검을 빼내서 무진에게 건넨다.
“으음! 죽일 놈들.”
무진은 하늘을 보며 분노를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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