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62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62
“좋소.”
“동의하오!”
“빨리 저놈부터 처리합시다.”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저놈이 그래도 한 땐 천하십대고수의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오. 그에 걸맞게 우리도 최선을 다해야 할 거요.”
“당연한 말씀이오!”
“동의하오.”
“그래서 말인데 시간 끌 필요 없이 한꺼번에 치고 들어갑시다.”
“좋소.”
흑의 복면인이 선동하자 모두 병기를 쥐고서 백골신마를 뺑 둘러싼다.
“쳐라!”
흑의 복면인이 명령을 내리자 오십 명이 넘는 복면인들이 한꺼번에 덤벼든다. 한편 제일 뒤쪽에 있는 복면인 두 명이 서서히 현장에서 벗어난다.
“소장주님,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이런 걸 보는 건 시간 낭비다.”
“그래도 계획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우린 많은 놈들이 피터지게 싸워서 혼란을 조성하는 게 목표다. 어쩌면 더 잘됐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태양장의 소방주이고, 다른 한 명은 새로운 부하인 모양이다.
“그럼 넌 여기서 끝까지 지켜봐라. 난 먼저 갈 테니까.”
“아..안 됩니다. 우호법께서 소장주님을 그림자처럼 따르라 했습니다.”
소장주가 달려가자 부하도 황급히 뒤따른다. 반면 복면인들은 오십 명 전원이 전력을 다해서 백골신마를 공격한다. 하지만 그들보다 백골신마가 먼저 움직인다. 그는 자신의 애병인 긴 채찍을 휘두르며 선두의 복면인들은 그냥 두고 중간의 복면인들을 공략한다.
순간 복면인들 사이에 혼란이 생긴다. 중간에 있던 복면인들은 제대로 준비도 못한 상태에서 채찍에 맞아 왼쪽으로 쓰러진다. 연속으로 백골신마가 몸을 날려서 선두의 복면인들들 집중 공격한다.
“커억!”
“허억!”
선두의 복면인들은 우선 백골신마가 선공을 펼칠 줄을 몰랐고, 또 중간 부분이 먼저 무너지면서 당황했다. 그 상태에서 공격을 받아 위기에 몰린 것이다. 하지만 복면인들도 만만찮은 자들이다. 바닥을 구르며 채찍을 피한 다음 백골신마의 하체를 파고든다.
“크악!”
“우웃!”
복면인 둘이 채찍에 맞아 나가떨어지고, 백골신마도 왼쪽 다리에 검이 스치는 부상을 당한다.
“후후후, 그래도 쭉정이는 아니란 말이지? 좋다. 제대로 한 번 놀아보자.”
백골신마는 채찍을 갈무리 하더니 목에 걸고 있던 염주를 벗어 사방으로 던진다.
“백팔염라주(百八閻邏珠)다!”
복면인들 중에서 누군가가 소리친다. 동시에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크아악!”
“컥! 컥!”
백팔 개의 염주가 공중에서 흩어지면서 복면인들의 몸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쇠로 만든 염주에 백골신마의 공력이 실리면서 흉기로 변했다. 백팔염라주는 백골신마의 애병으로 백팔 개의 염주가 공중에서 흩어져 몸속에 박히면 터지게 돼 있다. 그래서 한 번 몸에 박히면 살기 위해선 그 신체 부위는 잘라 내야 한다.
한 번의 시전에 무려 십여 명이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그에 버금가는 숫자가 부상을 입고 신음하고 있다. 하지만 백골신마 역시 무사하진 못하다. 내력을 무리하게 사용하면서 다리에 난 상처에서 상당히 많은 피가 흘러내리고, 누군가가 던진 단검이 옆구리에 꽂혀 있다. 이 상태에선 효과적인 공격은 불가능하다. 이때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선다.
“후후후, 백골신마야. 큰소리치더니 볼만 하구나.”
그도 복면을 했지만 전신이 멀쩡하다.
‘흐음! 같이 있었으면서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건 상당한 고수란 뜻이다. 상황이 좋지 않다. 이런 땐 속전속결이 최고다.’
백골신마는 즉시 움직인다. 채찍도 백팔염라주도 아닌 품속에서 작은 통을 꺼내더니 하늘로 뿌린다.
“암기다. 피하라!”
복면인들은 모두 나무 뒤로 숨는다. 하지만 바늘만큼 가는 암기라 제대로 피하질 못한다. 다시 열 명에 가까운 복면인들이 쓰러진다. 더구나 암기에는 독이 발라져 있어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문제는 백골신마의 목표가 그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암기를 던진 것은 목표물을 공격했을 때 방해하지 못하게 할 목적이다.
“타핫!”
백골신마는 즉시 목표물인 전면의 복면인을 향해 몸을 날린다. 동시에 검을 빼들어 하늘을 향해 십자형의 그림을 그린다.
“허억!”
복면인은 뒤로 물러나며 검으로 맞받아친다.
챙! 챙! 챙! 챙!
공중에서 두 개의 검이 부딪히며 불꽃을 만들어낸다. 이때 전혀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새끼들. 참, 더럽게 시끄럽네. 잠 좀 자자. 잠을!”
그렇다고 큰 목소리는 아니다. 그냥 평범한 목소린데도 두 사람의 가슴을 뒤흔든다.
“으음!”
“크윽!”
그들은 곧바로 공중에서 내려와 간신히 몸을 가눈다.
“누구냐? 어떤 놈이 감히 나 백골신마의 일에 끼어드느냐?”
빠악!
“크아악!”
백골신마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군다.
“해골처럼 생긴 놈이 어디서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고 지랄이야?”
“끄으윽! 비..비겁하게 숨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백골신마는 여전히 머리를 잡고 힘겹게 일어선다. 이마에는 주먹 만 한 혹이 불거져 있다.
“자, 모습을 드러냈다. 어쩔래?”
“허억!”
백골신마는 얼마나 놀랐던지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사내가 그의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
쫘악! 쫘악! 쫘악!
정확하게 세 차례의 뺨 맞는 소리가 난 뒤 그는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서서히 뒤로 넘어간다. 쿵! 하는 소리에 맞춰 사내는 뒤로 돌아 복면인을 쳐다본다.
“네놈도 나한테 따질 일이 있냐?”
“아..아닙니다.”
“그럼 뭐해?”
“예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볼 일을 다 봤으면 꺼지라고. 싫어? 같이 놀아줄까?”
“아..아닙니다. 하지만?”
“하지만? 오라! 제대로 한 번 붙어보고 싶단 말이지? 원하는 바였다. 자, 간다!”
사내는 바로 공격 자세를 취한다.
“아..아닙니다. 전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뭔데?”
“저...저기 저건 어떻게 할 건지...”
복면인은 공터의 중앙에 떨어져 있는 지도를 가리킨다.
“저게 뭔데?”
“지..지도입니다.”
“후후후, 저게 바로 네놈들이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이유냐?”
“예에..”
“한심한 놈들. 딱 답이 나오네. 지금 저걸 보물지도라고 생각하고 누가 먹을지 싸우는 거지?”
“그렇습니다.” “
“쯧쯧쯧,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멍청하냐?”
“.....”
“이거 분명히 여러 번 주인이 바꿨지?”
“예.”
“그 과정에서 주인들은 모두 죽었을 테고.”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도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지고, 끼어드는 놈들은 더 많아 졌을 테고.”
“맞습니다. 지금이 그 상태입니다.”
“멍청한 놈, 그게 뭔 말인지 모르겠냐?”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너 천하제일고수냐?”
복면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니면 그게 걸맞은 권력을 가졌니?”
“아닙니다.”
“그럼 앞서 죽은 놈들 하고 다른 절기라도 있어?”
“.....”
“그래서 멍청하다는 거야. 설사 니가 저걸 차지했다고 치자. 그럼 뭐하냐? 좀 있으면 너보다 더 강한 놈이 나타나서 뺏어 갈 텐데. 물론 넌 골로 가겠지.”
“하지만 제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버리면 되잖습니까?”
“그게 이상하단 말씀이야. 다른 놈들은 너랑 생각이 달랐을까?”
“.....”
“놈들도 분명 보물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꽁꽁 숨어 지냈을 거야. 하지만 너무도 쉽고 허망하게 발각되고, 어떻게 알았는지 수십, 수백 명의 무림고수들이 나타났다. 내 말이 틀렸어?”
“그건 누군가가 지도를 가지고 음모를 꾸미고 있단 말씀인가요?”
“글쎄? 난 그런 건 모르겠고, 무림사에 이런 사건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는 걸 말하는 거야. 필요하면 얼마든지 가져가. 나 며칠 뒤엔 네놈 목이 저자거리에 걸린다는 데 오백 냥을 건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어서 가지고 꺼져!”
사내는 다시 몸을 돌려서 백골신마를 발로 차고는 관제묘 안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때 누군가가 달려와 그의 앞을 막는다.
“잠깐만 요.”
“에잉? 너처럼 어린놈도 보물에 눈이 멀었더냐?”
“그렇습니다. 제가 잠시 눈이 멀었습니다.”
“그 말은 지금은 아니란 뜻이겠지?”
“자신할 순 없지만 노력할 생각입니다.”
“후후후, 솔직해서 좋군. 그래, 무엇 때문에 앞을 막았느냐?”
“실은 제 아버님께서 지도를 우연히 얻었습니다. 근데 그게 우리 가족을 위험에 빠뜨려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그럼 되지 않았느냐? 아니면 다시 차지하고 싶어서 그래?”
“아..아닙니다. 제가 대협의 길을 막아선 것은 방금 하신 말씀을 들으니 지도가 가짜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럼 넌 지도가 진짜일 거라 생각했니?”
“예에?”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무림사를 조금만 공부해도 알 수 있는 수법이다.”
“어떤 수법을 말씀하시는지.”
“보물이나 비급, 그리고 영물과 같은 걸로 무림인들을 현혹시켜서 서로 물어뜯고 싸우게 하는 거야. 그럼 혼란해질 테고, 그걸 이용해서 특정의 세력들이 나타나 수습을 하는 거지.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 그 세력이 바로 무림의 주인이 되는 거야. 그래도 모르겠어?”
“아!”
곤일은 하늘을 보며 멍하니 서 있다.
‘이건 결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음모의 구린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런데도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금제일인자의 유물에 눈이 멀어 애써 부정해온 것이다.’
“이제 그만 길을 비켜주지 않겠니?”
사내는 곤일의 어깨를 툭툭 친다.
“대협!”
정신을 차린 곤일이 갑자기 사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내게 할 말이 더 있니?”
“대협,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곤일은 바닥에 엎드려 진심을 다해 말한다.
“가르침이라... 나도 배우고 있거늘 누구에게 가르침을 내린단 말이야?”
“대협!”
“하지만 형제가 되는 건 가능하지.”
“대..대협!”
“그래도 좋아?”
“무..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자리에서 일어나라. 형제에게 그런 형식적인 예는 필요 없단다.”
“예, 형님!”
“보아하니 부모님인 것 같은데, 의견을 물어봐야 하지 않겠니?”
그때까지도 곤명 부부는 공터 한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아닙니다. 전 제 아들의 눈과 뜻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부디 제 아들놈의 좋은 벗이 되어 주십시오.”
“못난 어미가 어린 시절부터 너무 품에 끼고만 살았습니다. 대협께서 아들놈을 진정한 사내로 만들어 주십시오.”
곤명 부부가 정중하게 인사하자, 사내도 답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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